삶에 영향을 주는 거대한 공기덩어리 기단(air mass, 氣團)
해무가 해운대를 덮치는 장면. 따뜻하고 습한 해양성 기단인 북태평양 기단이 다가올 때 발생하는 현상 중 하나다. <출처: 기상청 기상사진전>
풍력으로 대양을 항해하던 시대에 선원들은 이곳을 가장 두려워했다. 이곳에 들어가면 바람이 없어 배가 멈추어 버렸다. 오도 가도 못하고 굶어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폭풍을 벗어나자 이번에는 적도무풍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은 말 그대로 바람 한 점 없는 곳이었다. 뜨거운 태양열 아래 눅눅해진 공기마저 썩어 있는 듯 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꼼짝없이 삼 주 동안 갇혀 있었다. 조류와 해풍이 없기에 파두아호를 움직일 방법이 없었다.”(고동현의 '검은 바다'중에서)
바람도 없고 뜨거운 공기와 높은 습기를 가진 곳이 적도무풍대다. 적도 기단의 성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기단이란?
기단이란 기온·습도 등의 대기 상태가 거의 같은 성질을 가진 공기덩어리다. 수평방향으로 수천km, 수직방향으로 수km 이상이다. 기온이나 습도 등의 물리적인 성질이 균일하거나 변화가 완만하다. 지구에서 넓은 지역에 비슷한 성질의 공기가 만들어지는 지역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기단이 만들어지는 지역은 넓은 대륙의 빙설원이나 사막 등이다. 큰 바다와 같이 성질이 균일한 곳도 좋은 곳이다. 이런 지역에 공기가 오래 머물러 있으면 뚜렷한 특성을 가지게 된다. 대기와 지면의 경계층을 통해 열과 수증기 등이 공급된다. 대기가 지표면의 고유한 성질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럼으로써 기단의 기본적인 특성이 결정된다. 이런 곳을 기단의 발원지라고 부른다. 발원지는 대개 고위도 및 저위도 지역의 대륙과 해양이다. 중위도 지역은 편서풍이 강하다. 저기압이나 전선 등이 만들어져 주기적으로 통과한다. 그러다보니 기단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고위도의 대륙에 위치한 빙설원. 차갑고 건조한 대륙성 한대기단을 만든다.
기단의 분류
기단은 어디서 발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대륙에서 발생하면 대륙성기단(continental air mass)이 된다. 건조하다는 특성이 있다. 해양에서 발생한다면 해양성기단(maritime air mass)이다. 습윤한 성질을 가진다. 기단은 이 두 가지를 기본으로 다시 세부적으로 분류한다.
기단의 성질이 차가운지 더운지에 따라 먼저 구분한다. 위도에 따라 한대기단(Polar air mass)과 열대기단(Tropical air mass), 적도기단(Equatorial air mass)으로 나눈다. 한대기단은 해양성한대기단과 대륙성한대기단으로 구분한다. 극기단(Antarctic air mass)은 대륙성한대기단안에 넣었다. 열대기단도 해양에서 발생하는 열대기단과 대륙에서 발생하는 기단으로 구분한다. 기단을 기호로 표시하기도 한다. 해양성(marintime)이나 대륙성(continental)을 뜻하는 영어소문자 m과 c가 앞에 나온다. 뒤로 한 대(polar)를 뜻하는 P와 열대(tropical)를 뜻하는 T를 이어서 사용한다. 그러니까 해양성한대기단이라면 mP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적도기단은 적도(Equatorial)을 뜻하는 E를, 극기단은 극(Antarctic)을 뜻하는 A를 사용한다. 아래 표는 기단의 분류를 나타낸 것이다.
베르제론(Talphas Bergeron)은 위의 분류에 기단의 열역학적 특성을 고려하여 세분화하기도 했다. w, k의 기호를 추가하였다. w는 기단이 하부의 지면 또는 수면보다 따뜻할 때 사용한다. k는 기단이 하부의 지면 또는 수면보다 차가울 때 사용한다. 안정도와 연관이 있기에 예보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분류이기도 하다. k와 w는 기호의 끝에 추가하여 사용한다. 대륙성한대안정기단이라면 cPw로 표기한다. 아래 표는 w와 k기단의 기상학적 특성이다.
앞의 분류에 속하지는 않지만 독특한 기단이 있다. 지표면의 성질과는 전혀 무관한 기단으로 상층 기단(superior air mass)이 있다. 고기압권 내에서 상공에서 하강해 오는 공기덩어리에 의해 만들어진다. 상층공기가 하강하면 기단의 온도는 건조단열적으로 상승한다. 따라서 하층은 상당히 고온 건조한 특성을 보인다. 사막지방의 열대기단과 유사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아열대 고기압의 북반부에서 중위도 편서풍 영역의 남반부에 이르는 구역에 나타난다.
기단의 변질
기단은 성질이 급히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단이 초기에 영향을 주는 지역의 날씨는 기단 발원지의 성질이 나타난다. 이와 같은 성질을 기단의 보존성(保存性)이라 한다. 예를 들어보자. 북태평양기단은 고온다습하다. 이 기단이 여름철에 우리나라로 흘러오면 고온다습한 날씨가 된다. 반대로 겨울철 시베리아 기단은 춥고 건조하다. 이 기단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면 우리나라는 춥고 건조해진다. 그런데 기단은 이동해 가면서 여러 가지 원인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것을 기단의 변질이라고 한다. 기단의 발원지와 지표면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보자. 춥고 건조한 시베리아 기단이 서해상을 지나오면 변질된다. 차고 건조한 시베리아 기단이 따뜻하고 습한 서해상을 지나면 하층부터 급속히 따뜻해진다. 공기가 불안정해지면서 대류가 일어난다. 이때 많은 수증기가 공급되면서 적운이 발생한다. 적운은 이동거리가 길어지면서 더 발달하게 된다. 아래 그림처럼 서해안에 상륙한 적운구름은 눈이나 비를 뿌린다. 시베리아 기단의 성격과 전혀 다른 기상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차가운 기단의 변질모식도 <제공: 케이웨더>
반대로 북태평양기단이 이동해 오면서 변질되는 경우다. 북태평양 기단이 북상하여 남해에 이르면 찬 해류와 만난다. 기단이 냉각되면서 하층에 찬 공기층이 생기고 기온의 역전이 만들어진다. 아래 그림처럼 이 역전층에서 해무나 층운이 발생한다.
따뜻한 기단의 변질 모식도<제공: 케이웨더>
기단이 변질은 달라진 지표면과의 열과 수증기 교환에 의해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대기의 역학과정에서도 변질이 일어난다. 먼저 열과 수증기 교환으로 이루어지는 열역학 변화과정이다. 열역학적 요소 중 먼저 하부로부터의 가열이 있다. 보다 따뜻한 지표면으로 이동을 하면 대기하부는 가열된다. 여기에 태양의 지표가열에 의한 하부가열도 있다. 두 번째로 하부로부터의 냉각이 있다. 보다 찬 지면으로의 이동에 의한 하부냉각이다. 여기에 지표면의 복사냉각에 의한 하부냉각도 있다. 세 번째가 증발에 의한 수증기의 공급이다. 공기덩어리가 물이나 얼음, 눈 표면을 만나면 습기가 공급 된다. 이외에 상층에서 기단을 통해 떨어지는 빗방울이나 다른 강수형태로부터의 증발에도 영향을 받는다.
열역학 과정 말고 역학 변화 과정도 있다. 역학 변화는 열역학 변화와는 다르다. 역학변화는 기단의 실제 이동과 관련된 혼합이나 기압 변화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지형에 의해 치올려지거나 하강하는 공기. 상층수렴공기의 하강 등이다. 대류권 중층과 상층에서의 역학 과정이 기단변질의 주된 원인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단은 세 단계의 일생을 보낸다. 발원지로부터 온도와 습도 등의 특성을 획득하는 단계가 처음이다. 기단이 통과해가는 지역의 특성에 따라 변질되는 단계가 두 번째다. 마지막으로 본래의 특성을 잃어버리면서 소멸하는 단계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기단
겨울철에 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기단이 시베리아 기단이다. 대륙성한대기단으로 우리나라에는 시베리아고기압으로 영향을 준다. 겨울철 시베리아 대륙이 냉각되면 시베리아 고기압이 만들어진다. 이로 인해 한랭건조한 시베리아 기단이 발생한다. 시베리아 기단은 북서계절풍으로 이동해 온다. 우리나라에 춥고 건조한 날씨를 나타낸다. 최근에 혹한을 몰고 오는 주범으로 몰린 기단이 극기단이다. 북극의 빙하로 인해 극고기압이 만들어지고 이로 인해 극한랭한 극기단이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에는 혹한으로 영향을 준다.
여름철에 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기단이 북태평양기단이다. 해수온도가 높은 북태평양은 기단의 좋은 발원지가 된다. 여름철에 북태평양고기압으로 우리나라로 북상하면서 고온다습한 날씨를 보인다. 또 다른 여름철 기단으로 오호츠크해 기단이 있다. 늦은 봄에서 이른 여름에 걸쳐 나타나는 기단이다. 이때는 오호츠크해의 수온이 주위보다 낮게 되면서 이곳에 기단이 형성된다. 오호츠크해 고기압 내에서 발생되는 기단이 오호츠크해 기단이다. 해양성한랭기단으로 한랭하고 습윤하며 장마로 영향을 준다. 적도기단도 주로 여름에 영향을 주는 기단이다. 적도지방에서 만들어진 태풍이 우리나라로 북상하면서 영향을 준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기단 <제공: 케이웨더>
이 외에 봄가을에 영향을 주는 양쯔강 기단이 있다. 양쯔강 기단은 대륙성 열대 기단이다. 중국의 양쯔강 이남 지역 평야에서 발생한다. 이 기단은 워낙 건조하고 고온이어서 비가 잘 내리지 않는다. 이동성고기압으로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면서 오랫동안 맑은 날씨를 보인다. 예전에는 기단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최근 학교 교과서에서는 양쯔강 기단을 기단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양쯔강 지역이 기단의 발원지로 부적합하고, 시베리아 기단에서 변질된 기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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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반기성 | 케이웨더 기후산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