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과 졸업식, 이사하는 날, 첫 외식의 추억…. 짜장면은 우리 인생의 특별한 장면마다 함께한 음식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한국인의 100대 민족문화상징’에 선정되기도 했을만큼 짜장면은 한국인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음식이다. 우리가 오랜시간 사랑해온 짜장면은 어떤 모습인가? ‘짜장면 맛집’으로 자주 회자되는 중국집 다섯 군데를 추려 찾아가봤다.
3대째 이어지는 ‘향기로운 짜장면’
서울 대방동 <대성관>
68년 업력을 자랑하는 노포 중식당으로 화교 부부가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돈이 없어 음식 값을 내지 못하고 도망쳤던 서울공고 학생들이 지금은 어엿한 회사 사장이 되어 그때 음식 값을 내러 다시 찾아온다는 미담이 전해진다. 오래된 만큼 오랜 단골들도 많은데, 그들이 가장 즐겨 찾는 메뉴는 짜장면(4500원)이다.
<대성관> 짜장면은 입으로 먹기 전에 코로 향기가 훅 끼쳐올 정도로 후각적 임팩트가 강하다. 그만큼 ’불맛‘을 강조한 것이 이집 짜장면의 특징이다. 짜장은 윤기가 도는 진한 갈색이다. 속재료는 유니짜장처럼 잘게 썰어 넣었다. 돼지고기를 강한 화력으로 볶아서 짜장 전체에 고소한 향이 배어들게 했다. 인위적인 달콤함은 배제하고 양파와 돼지고기를 정성들여 볶아 자연스러운 단맛을 우려냈다. 미묘하게 느껴지는 생강 향도 매력 요소다. ‘심심할 정도로 담백하다’는 것이 방문객들의 대체적인 맛 평가다. 대신 그릇 가득 향기를 담고 있어서 간이 약해도 맛이 단조롭지 않다. 면을 먹고나서 남은 짜장은 수저로 퍼먹게 될 정도로 짜지 않고 맛이 좋다. <대성관>은 과거에는 수타면을 뽑았으나 현재는 기계면을 쓰고 있다. 쫄깃하고 매끌거리는 면발은 호로록 넘어간다.
이집 짜장면은 한 그릇을 다 먹을 때까지 짜장의 향기와 면발의 탱탱함이 유지된다. 비결은 75℃ 온도의 사기그릇이다. 주인장은 사기그릇을 뜨거운 물에 담궈 따뜻하게 데운 뒤 짜장면을 담아낸다는 원칙을 한결같이 고수하고 있다.
주소 서울시 동작구 여의대방로 204-1 전화 (02)815-0567
짜장면의 전성기 ‘수타 짜장면’
서울 마포 <현래장>
오래되기로는 서울에서 손꼽히는 노포 중식당이다. 한국전쟁 직후 마포동 언덕 위에 자리 잡고 반세기 동안 영업해왔다. <현래장>이 전국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수타면의 힘이 크다. 부드럽고 쫄깃한 <현래장> 수타면은 그 맛도 맛이지만 ‘오픈 키친’으로도 유명했다. 면을 뽑는 모습을 통유리를 통해 외부로 노출하면서 이목을 끈 것이다. 반죽을 접고 늘리면서 내리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이색적인 볼거리였다. 2008년에 불교방송국 빌딩 지하로 이전한 뒤에도 주방에 통유리를 달아 면을 뽑는 모습을 손님이 지켜볼 수 있게 했다. 대표 메뉴는 손짜장면(5000원)이다. 다진 돼지고기를 넣은 유니짜장 스타일로 달콤하며 대중적인 맛이다. 굵기가 일정치 않고 울퉁불퉁한 수타면은 수분기 많은 짜장 소스를 듬뿍 머금는다. 부드러운 듯 탄력적인 면발은 입 안에서도 꿈틀거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수타면은 반죽을 내리치는 과정에서 밀도가 높아져 식감이 쫄깃해지고, 밀가루 사이 공기가 빠져나가 소화흡수가 잘된다는 장점도 있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마포대로 20 다보빌딩 전화 (02)715-0730
간결하고 깔끔한 ‘간짜장의 명가’
부산 초량동 <원향재>
간짜장 맛으로는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집이다. 초량동 차이나타운에서 화교가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설명만 들으면 왠지 투박한 맛을 낼 것으로 예상하기 쉬우나 의외로 세련된 맛을 내는 반전 매력이 있는 집이다. 간짜장은 ‘간작干灼’으로 메뉴판에 표기했다. 마르게 볶았다는 뜻이다. 간짜장으로 유명한 집인 만큼 점심 손님 대부분 간짜장(5500원)을 먹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집 간짜장의 포인트는 기름기가 적어 느끼하지 않고, 싱거울 정도로 담백해 물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면과 짜장을 따로 내주는 것은 전국 어디나 같지만, 면 위에 달걀 프라이를 얹어주는 것은 이 지역 간짜장의 특징이다. 면발은 다소 얇은 편이지만 탄력이 있다. 즉석에서 달달 볶아낸 간짜장은 갈색이 아닌 짙은 검은색을 띠고 있다. 볶은 양파에서 스며나온 자연스런 단맛과 볶은 춘장의 씁쓸한 끝맛이 어우러진다. 어른스러운 맛이다. 혹자는 부산의 또다른 중식당 <화국반점>의 간짜장과 대비되는 ‘여성적인 간짜장’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주소 부산시 동구 대영로243번길 62 전화 (051)467-4868
조미료를 쓰지 않은 ‘돌직구 간짜장’
서울 신공덕동 <신성각>
효창공원 옆 주택가에 위치한 <신성각>은 테이블 네 개 규모의 작은 중국집이다. 가게 출입문 옆에 “한 그릇 먹어 보고 눈물을 흘려 줄 음식을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고 싶다”는 주인장의 자작시가 걸려 있어 ‘눈물의 짜장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집은 주문을 받고 나서 그때그때 수타면을 뽑기 시작하므로 음식 나오는 시간이 다소 걸린다.
이집 짜장면은 조미료와 설탕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착한 짜장면’ 또는 ‘맛없는 짜장면’이라고 표현한다. 또, 혹자는 이집 짜장면을 설명하면서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는 노자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가장 훌륭한 기교는 언뜻 보기에 거칠고 서툴러 보인다는 뜻이다.
<신성각> 음식은 감칠맛이 입안에 착 감겨오는 요즘 음식과 비교하면 투박하기 그지없다. 그저 춘장의 구수한 맛만 느껴지는 간짜장은 묵직한 ‘돌직구’와도 같다. 1981년 <신성각>을 오픈한 이래로 주인장은 변화구 한 번 던지지 않고 그 투박한 맛을 쭉 지켜오고 있다. 즉석에서 만드는 수타면은 갓 뽑은 가래떡마냥 쫄깃쫄깃하고 탄력적이다. 춘장과 함께 자글자글 익혀낸 양파와 양배추도 아작아작 씹혀 식감이 무척 경쾌하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임정로 55-1 전화 (02)716-1210
주문과 동시에 조리, ‘80년 내공의 유니짜장면’
경기도 평택시 <개화식당>
경기도 평택 <개화식당>은 화교가 운영하는 중식당이다. 허름하고 협소하다. 마치 1970년대 중식당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3대가 약 80년 이상 중식당으로 대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현재 자리에서는 1960년대부터 영업을 했다. 3세대 왕원덕씨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옛날짜장면과 유니짜장면은 강력한 중화 렌지에 그 때마다 즉석에서 만들어 준다. 홈메이드 짜장면이다. 신속성과 효율성은 상당히 떨어질 것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아이템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일반짜장면은 4000원이지만 가급적이면 6000원짜리 유니짜장면을 추천한다. 즉석에서 조리하기 때문에 뜨거운 상태로 제공된다. ‘식은 짜장면은 짜장면이 아니다’라는 마니아의 지론에 딱 맞는 짜장면이다. 따라서 일반 중식당 짜장면에 비해 구수한 맛이 더 강력하다. 유니짜장면은 짜장에 고춧가루를 섞어서 조리하는데 칼칼한 맛이 별미다. 양도 곱빼기만큼 푸짐하고 단맛과 조미료 맛도 상대적으로 현저하게 덜하다.
개화식당에서는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춘장을 만들어 썼다고 한다. 보건소가 식당에서 춘장을 만드는 식품제조 행위를 단속해서 춘장을 담그는 일을 중단했다고. 짜장면의 하향평준화가 이런 이유로 형성되었나 보다. 당시 콩 함유량이 최소 50%인 춘장으로 만든 짜장면은 지금의 짜장면에 비해 영양학적이나 미각적으로 훨씬 우월했다.
주소 경기도 평택시 통복시장로6번길 2 전화 (031)655-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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