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용•치•훼"
며칠전에 "중국은 왜 한국을 능멸하는가?" 라는 조선일보 칼럼을 읽었다.
그 칼럼이 문제 제기한 "불용치훼" 라는 단어에 대하여
의전과 예절에 정통한 김언종 전 고려대 교수는 위 동영상의 내용과 같이 설명하였다.
한마디로 중국은 한국을 너무 깔보고 있다는 얼굴 화끈한 얘기라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필자는 우리와 중국의 4천년 역사를 되짚어 보게 되었다.
우리를 멸시하는 이런 중국의 태도는 바로 중국과 우리의 지난 역사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천년간 중국의 조공국이었다.
우리가 중국을 사대한 역사를 보면 그 강도는 세월이 지날수록 강해져 왔음을 알 수가 있다.
고구려 시대에는 우리와 중국이 대등한 위치에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부분적 사대가 있었으나 완전한 굴복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중국의 승인이 없으면 왕이 될수 없는 그런 신하국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거의 굴복의 상태인 것이다.
그런 조선이 일본에게 망하고 임시정부 시대에 이르면
그 강도는 눈을 뜨고 보기가 민망스러운 경지에 이른다.
우리는 지금까지 독립운동사를 배우면서 임시정부=광복군으로 배워 왔다.
그리고 그 임시정부와 광복군은 너무나도 위대해서
해방후 역사에서 신성불가침의 존재였다.
독립운동사에서 태두의 자리에 있는 학자라 할지라도,
또 그 권위가 모든이의 신망을 받는 그런 학자라 할지라도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폄훼하고서는 견뎌날수 없는 그런 독립운동계의 풍토였다.
유관순을 살짝 건드렸다가 엄청난 사회적 몰매를 맞은 어느 교수를 떠올려 보면
학자들의 곡학아세 자세가 인간적으로 이해는 간다.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흘린 순국선열의 피가 그토록 신성했기 때문에
그런 사회적 풍토가 조성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민중들의 인식을 이용하여 스스로를 살찌운 그룹이 있었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그들이 바로 독립운동에서 살아돌아온 그룹이다.
순국선열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 그룹이라는 조건은
그들에게 체중증가를 위한 훌륭한 뒷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순국선열이 이미 돌아가셔서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살아돌아온 독립운동가들이 크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풍토가 되었던 것은 쉽게 이해가 된다.
당연히 그들은 순국선열을 代身해 호가호위하게 되었고
순국선열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을 代身 받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 사실을 제대로 직시하는 사람이라면
나의 권위가 순국선열로 부터 주어진 것임을 깊이 깨닫고
그런 권위를 준 순국선열을 선양하는데 가장 앞장을 서야 하는 것이 상식적 생각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호가호위의 위세를 업고 그 위세의 원천인 순국선열을 업신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순국선열은 58평 셋방에 몰아놓고 수천평의 백범 기념관을 짓고
그것도 모자라서 또 수천평의 임시정부 기념관을 지었다.
국가 최고 의전시설인 국립 서울현충원에
당연히 설치해야할 순국선열의 묘역은 설치하지 않고
자기들이 죽어서 들어갈 애국지사 묘역만 설치를 했다.
또 순국선열의 후손들에게 가야 할 순국선열애국지사 기금은 그들이 97%를 독식하고 말았다.
그것뿐인가?
독립운동으로 3대가 망한 후손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예산은
해방후 자라난 그들의 후손들이 현재 독차지하고 있다.
16,258명이 지원을 받으면서 독과점의 비난을 피하기 위하여
순국선열 후손은 양념으로 1,270명만 끼워넣었다.
수십만명의 순국선열 후손들은 그런 자금이 있는줄도 모른다.
그들의 이런 행태를 독립운동 학자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모르고 있었다면 연구가 모자랐다고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이런 학자들의 자세는 상식적 판단에서 정당한 것인가?
또 그들이 아세하여 정립해 놓은 임시정부 역사는 정당성을 인정할수 있는 것인가?
또 더하여 이런 일에 앞장선 인사가 사회의 전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회가 상식적 사회인가?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 바로세우기 위하여 피를 흘린 순국선열과 같이
왜곡된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해서 피를 흘릴 학자는 정녕 없는 것인가?
지금까지의 독립운동 역사에서 우리가 그렇게 위대시 했던 광복군이 탄생할 때에
중국과 우리가 묵인하여 따른 합의가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지 못했다.
이른바 "광복군 9개 준승" 이다.
일반적으로 계약서의 제1조는 그 계약의 전체적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광복군 9개 준승도 마찬가지이다.
광복군과 임시정부의 중국내 전체적 위상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 제1조를 보면 "광복군은 중국군사위원회에 직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직예" 라는 단어를 한글로 써 놓으면 무슨 말인지 얼른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한문으로 써 놓으면 삼척동자라도 금방 아는 그런 단어이다.
군대에서 작전상 부대 일부분을 타부대에 파견할때 쓰는 단어가 셋 있다.
" 배속", "예속", 그리고 "직예" 이다.
배속은 타부대에 가더라도 상당한 독립성을 가진다.
그 작전에 자신의 의견을 말할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러나 예속은 다르다.
그쪽에 가서 그쪽의 종이되라는 것이다.
작전에 임하여 자신의 의견을 섞을수 없고 시키면 시키는데로 노예처럼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직예" 는 또 무엇인가?
예속이라는 단어보다 또 훨씬 더 강한 의미의 단어이다.
종 노릇을 하는 평민 신분이 아니라 신분 자체가 직접 종이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상대방이 발가락을 핥으래도 핥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배속은 흔히 쓰는 단어이고 예속이라는 단어는 부득이한 경우에 사용한다.
그러나 그 단어는 내국적 관계에서 국한되어 쓰여지는 단어이다.
국가대 국가의 관계에서는 절대로 쓸 수 없는 단어가 "예속" 이란 단어인 것이다.
너무나 굴욕적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가가 서로 전쟁을 해서 그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가
패전국에 요구할 수 있는 극단적 단어일 뿐이다.
"예속" 이 그러할진대 "직예" 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수치의 극치인 것이다.
일본의 지배를 받던 시기가 예속의 시대였고 그 예속의 수치를
우리는 지금까지도 가슴 깊이 새겨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위안부의 분노가 그렇고 강제노동의 분노가 또한 그러하다.
이런 일본을 향한 극혐정신이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은 바로
그 일본으로부터의 예속적 역사에서 기인하는 것이 또한 분명하다.
그렇다면 직예의 시대는 과연 어떤 시대를 의미했을까?
임시정부에는 많은 지식인들이 있었다.
국제적 박사도 많았고 더구나 한문의 뜻에 대해서는
필자나 현재 독자들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수준높은 한학자가 수두룩했다.
그런 학자들이 이 단어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편해 했던 기록을 찾을수 없다.
불편하게 느끼지 않았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임시정부가 중국과의 위상에서 그 단어대로를 인정했고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를 말 궁둥이에 붙은 파리로 본 것은 아니었을까?
독립운동 임시정부 중심주의 학자들에게 물어본다.
우리가 그런 그 임시정부를 우리의 법통으로 삼아도 좋은가?
일본의 "예속" 은 불편하고 중국의 "직예" 는 편안한가?
"준승" 이라는 단어도 절대로 예사롭지 않다.
지켜야 할 사항을 표현할 때 보통의 경우는 "준수" 라고 표현한다.
필자가 처음에 "광복군 9개 준승" 이라는 단어를 보고
그 뜻을 금방 알아차리지 못했다.
"준승" 이 뭐지?
옥편을 찾아보고서야 그 뜻을 알게되었다.
"승" 은 밧줄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노예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밧줄로 꽁꽁 묶어놓고 일을 시킨다는 의미이다.
정말로, 정말로!
세상에, 세상에!
수치스런 단어는 몽땅 모아서 묶어놓은 묶음이" 광복군 9개 준승" 이고
임시정부는 중국정부와 그렇게 노예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 노예계약의 댓가로 그 알량한 생활비를 받아서 가족들을 멕여 살렸다.
왜 서간도 지도부들 처럼 자기가 벌어서 먹고살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차라리 주려죽을지언정 민족의 지도자라는 인식이 손톱만큼만 있었어도
이런 노예계약은 맺지않았을 일이다.
이제 해방 80년을 목전에 두고 우리 후손들은
독립운동 선열들의 행적을 조목조목 따져서 선열들의 품격을 구분할 때이다.
자랑스런 순국선열의 행적이 행여 묻혀서도 아니될 일이며
수치스런 애국지사들의 행적이 미화되어서도 아니될 일이다.
조상의 부끄러운 행적은 바로 오늘의 나에게 직접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트럼프 앞에서 시진핑의 발언이 바로 현재의 나를 욕하는 것이 아닌가?
돌아가신 임시정부 요인 여러분들께 두손모아 빕니다.
제발 먹고살기위해 개인적으로 벌린 일이라고, 꿈에서라도 증언해 주십시오.
36년간 일본의 강압적 노예 역사는 후손들이 변명이라도 할수 있지만
자발적으로 계약한 노예 역사를 우리 후손들이 어떻게 하란 말씀입니까?
절대로 우리는 한민족을 대표하지않았다고,
중국 네티즌들의 꿈에 나타나서 증언해 주십시오.
전직 순국선열유족회장이 엎드려 비옵니다.
제발 이 후손들의 굴레를 벗겨 주십시오.
트럼프에게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한 시진핑의 말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할수 있는가?
시진핑이 사실과 다른 말을 했으면 역사가들이 역사적 사실을 내세워서 이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간 필자는 동남아 모든 국가가 전부 중국에 조공을 바쳤는데
우리만 콕 꼬집어서 트럼프에게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 라고 말한
시진핑이 경제적으로 발전한 한국을 심정적으로 시기해서
부당한 말을 했다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않다.
중국에 직예한, "직예" 도 모자라서 "준승" 으로 직예한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역사를 알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역사는 잘한것을 잘했다고 평가해야 하고
못한것은 못했다고 평가해야 세계인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잘못한 것을 자꾸 잘했다고 반대로 주장을 하면 국제적 망신을 사게 된다.
현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자신들의 국토회복이라고 주장하니 세계가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다.
잘못된 사실을 역사에 분칠하는 일은 사마천이 사기를 쓰던 그 옛날에,
역사가가 역사를 독점하던 그런 시대에 먹혀들어가던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로 일반 시민들도,
한문으로 된 수천년전의 역사를 그대로 읽을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필자도 역사가가 아니지만 인터넷에서 보고 광복군 9개 준승이 있었음을 알았다.
또 최근에 밝혀진 독립운동 역사를 보면 임시정부는
西間島 軍정부에 比하면 실로 하찮은 존재였었다.
서간도 군정부는 최대 3萬의 군대를 가졌던 군단규모의 정부였고
임시정부는 500명의 광복군을 가진 中隊규모의 정부였다.
임시정부는 장개석으로 부터 생활비를 얻어쓴 철저한 對중국 의타정부였고
西間島 軍政府는 산업을 증진(논 농사)시켜 백성들을 가난에서 구제하고
그 백성들이 낸 세금에 의하여 운영된 우리의 자랑스런 自立政府였다.
또 최근에 밝혀진 괄목적 역사 사실은 서간도 군정부가 한만 합작으로
약50만의 군대를 가진 강력한 韓. 滿 합동 滿洲國 건설에 합의했던
그런 규모의 독립운동 단체였음이 밝혀졌다.
임시정부나 광복군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그런 위대한 역사였다.
서간도 군정부는 옛 고구려 영토 회복을 목전에 두었던 그러한 엄청난 정부였던 것이다.
바꾸어 말을 해 보면 김동삼이 이끌었던 서간도 군정부는
對중국 관계에서 同列에 있었던 고구려의 위상을 되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에 비하여 임시정부는 돈이 없어서 서간도 군정부로 부터 돈을 얻어서 운영하다가
임시정부가 참의부를 세워 만주 독립운동계를 분열시키니까
서간도 군정부가 자금지원을 중단했고 운영자금이 없는 임시정부는
한사람의 직원 월급도 줄수 없는 極貧단체가 되어
아무 일도 못하는 식물정부가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장개석의 생활비 지원을 받으면서 그래도 민중의 눈에 보이는
활동을 할수 있는 처지가 되었고 숨이라도 제대로 쉴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중국이 준 자금은 앞에 밝혔듯이 그렇게 더러운 자금이었고
그 자금으로 비롯된 임시정부의 활동은 자금귀속성으로 볼 때
우리의 독립운동이 아니고 중국 항일활동의 일부라고 봐야 한다.
그 이유로 임시정부가 중국에 직예를 준승하게 되었고...
문제는 우리가 해방 후에 일본으로 부터는 국교정상화 과정에
한. 일합방조약을 확실하게 무효화시키고 독립을 선언 했지만
임시정부와 중국이 광복군 9개 준승을 합의한 이후에
우리는 중국으로 부터 독립을 선언한 사실이 없다.
미국이 이런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역사 사실만 있을 뿐
미 군정이 물러난 이후에 우리는 다시
그 종의 역사를 부활시켜 양반의 역사로 둔갑시키고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불가침 영역으로 울타리를 만들어서
행여 이 울타리가 무너질까 저어하여 헌법 전문에 넣어서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그 임시정부와 중국이 맺은 9개 조항의 흑역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지만
중국은 아직 그 종문서를 불태우지 않고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명확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자꾸 이를 부인하고
사실과 다르게 우기니까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미국대통령을 향한 시지핑의 수치스런 발언인 것이다.
역사를 바로 알고 그런 객관성에 기준한 국제적 평가에 올바르게 대처해야
우리가 국제적 신뢰를 얻게 되고 대한민국이 세계의 선두국가로 진입할 수가 있을 것이다.
우선 나를 바르게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것이 나를 내세우는 기초임을 명심하면서
후세들에게 역사를 바르게 교육하자.
2023.04.28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명예회장 김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