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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기운을 받은 안동시
경상북도에서 가장 넓은 시가 있다. 한반도를 횡단하는 백두대간을 뚫고 가야 하며, 영주, 예천, 봉화, 의성 등 선비문화의 고장으로 둘러 싸인 곳. 동쪽의 태백산맥과 서쪽의 소백산맥의 기운을 받으며, 서울의 2.5배 면적을 가지고 있는 안동시이다.
안동시는 징비록을 쓴 류성룡의 풍산 류씨의 하회마을, 퇴계 이황의 제자들이 세운 도산서원 등 조선시대 명문가가 모여있는 곳으로도 잘 알려졌다. 이러한 안동시가 역사 속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후삼국 시대. 고려 태조 왕건이 안동에서 견훤을 물리치고 후삼국을 통일하는 초석을 세웠는데, 그때 처음 안동이란 이름이 등장한다. 이후 13세기에 몽골의 침입으로 개경을 비롯한 경기도권이 크게 황폐해지자 안동이 국가의 물적, 인적 기반이 되었고, 고려 말에는 김방경(金方慶)·권부(權溥) 등과 이들의 후예들이 고려 후기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정치적·학문적으로 중시되면서 예절을 지키고 학문이 왕성한 곳으로 불리게 된다. 이를 통해 여러 성씨가 대를 이어 살며 조선 시대 대표적인 명촌(名村)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안동소주가 등장한 것은 몽골의 병참기지 때부터
조선 중기의 실학자 지봉 이수광의 지봉유설을 보면 소주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시작은 고려 시대의 원 간섭기. 1274년, 그리고 1281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을 정벌할 때 안동은 제주도, 합포, 개성과 함께 원의 병참기지가 있었고 여기서 술의 증류기술이 도입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안동소주의 시작이 몽골을 통해 들어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스코틀랜드의 스카치 위스키도, 프랑스의 와인 증류주인 꼬냑(브랜디)도 다 이슬람의 증류기술이 대륙을 건너 그 지역에 토착화하면서 발전된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증류 기술을 조선 세조 때 일본 대마도에 전래, 일본 보리소주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문화란 국가의 소유도, 개인이 소유도 아니며, 따라서 국경도 있을 수 없다. 누가 더 그 문화를 아끼고 즐기느냐, 오직 그것만이 문화의 종주국이 될 수 있다.
안동소주대란을 주도한 명인안동소주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작년 초에는 ‘안동소주 대란’이란 것이 일어났다. 내용인즉슨 어느 한 소비자가, 은은하고 맑은 향 그리고 숙취가 없으니 위스키나 보드카 대신 안동소주를 마시라고 권한 인증사진 하나가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고, 시음한 네티즌들이 앞다퉈 그 맛이 특별하며 맛이 좋다고 동시 다발적으로 인증사진을 올리면서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사재기 시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안동소주 대란의 주인공이 바로 명인안동소주. 농식품부 식품명인 제6호로 지정된 박재서 옹이 만들며, 2015년 농식품부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지정된 곳이다.
주소 경북 안동시 풍산읍 산업단지6길 6
견학 문의 054-856-6903
홈페이지 http://www.adsoj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