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국은 있는 대로의 자연을 있는 대로의 상태로 옮기되 철저하게 투명한, 이빨이 딱딱 부딪치도록 다부진 화면으로 꾸며나가는 작가이다. 그리하여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어지지 아니하는 완벽한 구도와 그 구도를 넘어선 자연까지 자신의 세계를 색칠해나가련다는 집념이 화면 구석까지 옹골차게 배어 나오는 치밀함을 보여주는 작가이다.

신상국의 작품이 주는 인상은 우선 깔끔하다는 느낌이다. 작품 <암불정의 명암>에서 처음 화면에는 조그만 한 티끌이나 실수로 남겨진 붓 자국 하나 보이지 않는다. 어떠한 종류의 소재건 마치 손맛 감치는 아낙네가 정성스레 마련한 주안상처럼 정갈하고 깔끔하게 화면 위에 올려지는 것이 신상국의 화면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주리라고 생각되는 인상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인간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인간의 생활과 땀과 고뇌가 없다 왼쪽아래에는 용트림을 하여 오른쪽으로 변죽을 치고 왼 중간의 트럭에로 시선을 이끈 후 이어 탄광촌으로 연결 되면서 오른쪽으로 빠지는 유연한 구도에 힘입어 화면은 차분하고 굳건한 느낌을 줄지언정 인간의 냄새가 배어들지 않은 무대 세트처럼 보일 수도 있음은 역시 지나치도록 깔끔한 신상국의 마무리 솜씨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느낌을 좀 더 파고 들어가 보자. <고한의 탄광촌>에서 우리는 슬레이트 지붕 위에서 눈 녹은 물이 구성지게 떨어지는 따뜻한 겨울의 오후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사실상 ‘눈 녹은 물이 낙수져 내리는 따뜻한 겨울’ 은 화면 구성상의 요소들을 분석하여 얻어질 수 있는 설명은 아니다. 왜냐하면 청색조의 화면은 따뜻한 화면으로 느껴지기 힘들고 슬레이트 위에는 이미 눈이 녹아버렸으며 화면구성으로 보아 정감적인 부드러운 구도라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오랫동안 지칠 줄 모르고 포근하게 쓰다듬어온 신상국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듯이 보인다. 오른쪽 아래 녹색창문의 대비에 의해 한층 신선하게 느껴지는 버밀리언Vermilion의 문틈과 기둥은 직사각형의 형태로 왼쪽 아래와 왼쪽 위쪽으로 시선을 급속히 이끌어가므로 써 S字形구도의 시발점이 되는데, 마치 버밀리언의 긴 사각형을 S字形으로 배열해 나가는 듯이 보이게 되어 푸른색조의 화면에 활력을 주면서 화면을 따스하게 보이게도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눈은 쌓여있되 겨울의 맹위를 자랑하려 함이 아니라 따뜻한
눈이 되는 것이나, 여기에도 인간이 없다. 다시 말하여 인간의 삶과 땀과 고뇌가 없는 것이다. 시청 도시계획과 직원이 책상 위에서 달동네 주민의 공동 빨래터를 구상하듯 피상적인 달동네가 신상국의 화면에 그려지는 이면에는 사실상 신상국의 소재에 대한 결벽이 자리잡고 있다. 신상국은 지나가는 말처럼 탄광촌 광부의 점심 식사장면을 차마 사진 찍지 못했노라고 털어놓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신상국은 구조를 그린다. 뼈가 부서지도록 부딪쳐 삶과 땀과 고뇌를 공유하련다는 사회의식보다 인간의 삶고 인간의 정의情意로 포근히 감싸줄 수 있으면서도 그러한 객관적이고 중성적인 자신의 접근 방법을 스스로 탓하듯 무섭도록 꼼꼼히 자신을 화면 위에 깔아 나가면서도 그 결과로서의 화면은 따스하고 포근하게 그러면서도 깔끔하게 마무리 된다.
그리하여 왜 신상국은 인간이 깃들되 그 흔적을 남기지 않는 구조를 고집하는가 라고 누군가가 화면을 보면서 생각했다면 그 해답을 <정산 광업소를 찾아서>에서 다시 검토해 보기로 하자.
작품 <정산광업소를 찾아서>는 전체적으로 신상국의 작품이 깔끔하다는 인상에서부터 시작하여 투명하다는 인상을 덧붙일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준다. 신상국의 그림에는 시선을 가로막는 구도가 없다. S字나 지그재그의 구도를 선택하므로 써 신상국의 화면은 역동적이고 유연한 흐름을 보여준다.
그런데 작품 <나한광업소>는 시멘트벽을 앞으로 내세우므로 써 마치 딴 구도들에 대해 반역을 꾀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다시 한번 살펴보면 이 구도 역시 그림자나 지붕의 선이 단속적인 S字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시선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역시 신상국의 꼼꼼한 마무리하지만 여기에 덧붙여지는 것은 대상을 보는 투명한 눈이다.
시멘트벽에는 빗물에 씻기면서 햇빛에 표백되어지는 시멘트의 얼굴이 그려지는데, 신상국의 투명한 눈은 이 얼룩을 마치 반사유리에 그려진 하늘처럼 해석해낸다. 육중한 시멘트의 구조가 날렵한 유리 집처럼 투명해지는 순간인 것이다.
<의룡 광업소에서>는 동력선이 화면의 위쪽으로 지나가고 아래쪽으로는 전봇대를 설치하므로 써 화면의 구조를 이원화 해주고 있다, 즉 동력에 관계되는 구조물들이 하나, 동력에 의해 움직이라고 생각되는 구조물이 하나로 묶여지되 이 두개의 구조물이 화면 위에서 의미가 통합 되어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하늘은 결코 카메라의 기계적인 눈으로 포착할 수 없는 투명함을 보여준다. 숱한 질감이 깔리고 점과 점으로 마치 공기의 입자를 그리듯 그려진 하늘이 보여주는 투명함은 그 아래 인간이 만든 숨통 막히는 구조물에 대비되어 더욱 투명해진다.
투명함....문경 새재에서 내려다 본 투명한 산하와 새재 저편의 투명한 인간이 만들어 내는 투명함
<나한광업소>는 위로 올려다본 구조물이 그려져 있다. 실제로 눈으로 볼 수 있는 위치가 앙각이기는 하겠지만 신상국의 솔직하고 꾸밈없는 대상에의 자세를 보여주는 화면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폐광일지도 모르는 음산한 건물이 화면 위에는 따스한 손길로 다듬어져있다. 이렇게 치밀한 수법으로 빈틈없이 구축되어진 화면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은 태양광선의 적절한 안배와 뒷산에 아무렇게나 칠해진 것 같은 몇 개의 거친 터치 때문이다.
숨통-구조물 앞뒤로 틔워지는 숨구멍은 작품을 크게, 깊게 보이게 한다
<철암광업소의 잔설>에서 신상국의 그림은 또 하나의 면모를 보여준다. 뒤쪽의 시꺼먼 산으로 막혀 숨 가쁜 화면에 앞쪽 건물에 비치는 따스한 겨울 햇살이 시각적으로 숨구멍을 틔어주는가 하면 뒤쪽 산에 남아있는 잔설이 뒤쪽의 숨통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꽉 막힌 화면의 앞뒤가 시원하게 틔어 화면은 다시 넓어지고 깊어지게 된다.
<외어골의 버력>에서는 화면이 이분법에 의해 구성되어진 듯이 보인다. 하얀 자갈더미와 상대적으로 어둡게 보이는 탄좌-자갈의 하얀 색과 석탄의 까망-쏟아져 내린 자갈과 쏟아져 내릴 석탄이 그려진 이 작품에서 신상국은 화면이란 작가가 통제하기보다 작품스스로가 어느 시점에서 작가의 손길을 거부 한다는 것을 배운 듯이 보인다.
<함태광업소의 여명>은 투명하다 못해 파랗게 보이는 경치가 산 그림자와 부드럽게 대비되므로 써 마치 추상화면을 연상케 한다. 여니 작품과 마찬가지로 군더더기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깔끔한 화면이 매우 당당하게 보이면서도 여기에는 강하게 내뿜는 서정성이 있다.
서정성이란 자연을 대상으로 할 때 자연과의 친화관계, 자연애의 침잠이요, 자연과 자신이 일체가 되었다고 느낄 때 더 강하게 내뿜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주왕산의 계류>에서 신상국의 가능성, 어쩌면 이번 전시를 기점으로 더욱 더 심화될 조형언어의 가능성을 본다.
<함태광업소의 여명>과 마찬가지나 여기에서 자연은 하나의 구성 요소로 환원한다. 딴 작품들에서 보여 주었던 가능성 즉 철저하고 치밀한 화면 구성과 빈틈없는 터치 그리고 투명한 공기의 묘사에 이어 여기서는 인간의 감성이 그림자에 의해 짙게 깔려 들어가면서 서정적 추상화면을 연상케하는 작품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신상국의 이야기는 하나로 묶어질 수 있게 된다. 즉 가장 철저한 대상을 객관화하고 인간의 냄새를 지워 나가는 비인간적인 터치에 의해 가장 인간의 깊은 곳에 있는 정서, 이를테면 자연과
일체가 되었다고 느껴질 때 표현 될 수도 있을 서정성을 끌어낼 수 있는 작가-그것이 신상국의 신상명세서이다.
1998-2019
#신상국 #申相國
*보유補遺-인용된 작품도판사진은 평문작성 당시 작품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숨 막힐 정도로 투명한 그림이 어떻게 부드러운 감성의 자연으로 그려지는지 그 과정과 추이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019
이미지
안동뉴스
http://www.andong.net/news-2007/view.asp?seq=3706
단순한 자연의 재현이 아닌 생명을 창조하는 신상국
신상국 화백 문경시 청소년문화의집에 유화 기증
https://blog.naver.com/dsb1009/221221748451
문경시민뉴스
http://www.sjournal.co.kr/default/index_view_page.php?idx=95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