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홍 정 희
어느 집이나 원하지 않은 문제들이 있듯, 우리 집안에도 어려운 일이 생겼다. 그것은 지금 어떻게 수습해 보려고 안달을 해도 해결 될 것이 아닌, 시간이 지나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머리가 아팠다.
일요일 아침 새벽, 전날 밤에 남편이 머리도 식힐 겸 모처럼 바다를 구경하러 가자고 하여 날이 밝자 바로 서해대교 쪽으로 떠났다. 새벽이라 그런지 지나가는 차가 적어, 분당에서 서해대교에 도착하기까지는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서해대교는 크고 아름다운 교량과 넓은 도로로 이어진 무척이나 긴 다리였다. 우리보다 먼저 그곳에 도착한 사람들이 다리 중간에 높게 만들어 놓은 조형물이 있는 도로 한쪽에 차를 세워놓고, 물이 빠져나간 바다를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이 바라보는 곳을 보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생각보다 날씨가 쌀쌀하고 바람이 불어 조금 추웠다. 다리 난간 가까이에 다가가자 눈앞에 군데군데 불이 켜진 포구가 보였다. 그곳은 이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아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았던 곳 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 서 있고, 포장 된 큰 도로 옆으로 잘 정리 된 작은 공원도 보였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비릿한 바다 냄새가 가슴 속에 깊게 들어 왔다. 여기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먼 바다가 한 눈에 잘 내다 볼 수 있는 음식점을 찾았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넓은 창으로 갯벌과 이어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밤 동안에 밀려 나갔던 물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멀리 수평선 부근에는 몇 개의 배들이 떠 있었다. 얼마 후에 부부인 듯 한 남녀가 탄 배가 흰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지나가자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크게 말했다.
“저기 배가 가요. 재미있겠다!”
그 소리에 옆에서 반찬을 챙겨주던 아주머니가 바다 쪽을 흘끔 돌아보더니 대뜸 대꾸를 하였다.
“보기에 좋지요? 저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재미있느냐고? 도시 사람들은 모르지요. 일이 얼마나 힘든지….”
그 말에 멀쑥해져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나 자신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갯벌에는 빨강, 노란 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아주 조그맣게 보였다. 그리고 우리가 앉아 있는 창 근처 갯벌에서 머리에 목도리를 두르고 열심히 무엇인가를 캐고 있는 아주머니들이 보였다. 그들은 우리가 먹을 음식이 나오고 이어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도, 밀려오는 물을 피하여 조금씩 자리를 이동 할 뿐 일어서는 것을 보지 못했다.
식사를 마친 후 갯벌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여 천천히 그들을 향하여 다가갔다. 그중 한 사람이 갑자기 일어서서 옆에 있는 바위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손에 흰 통을 든, 허리를 뒤로 꺾어질 듯 재끼고 다리가 양쪽으로 휜 키 작은 할머니였다. 안 보는 척 슬쩍 들여다보니 바지락이었다.
갯벌에 물이 많이 들어오자 멀리 나갔던 배들이 하나 둘, 방파제로 들어 왔다. 사람들이 배 쪽으로 몰리고 있었다. 우리도 그곳을 향해 뛰어 갔다. 배를 타고 온 어부들은 금방 잡아온 물고기를 통째로 넘겨 팔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요구하는 대로 회를 떠 주기도 하였다. 참으로 살아 있는 삶의 순간이 보였다.
어떤 배에는 건져온 바지락조개가 초록색 그물들 속에 잔뜩 담겨 있었다. 그물에 담긴 조개들이 무척이나 무거운지 두 장정이 드는 모습이 아주 힘겨워 보였다. 그 배들은 바다에 나가 바닷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바지락을 캐고 들어온 ‘바지락 채취선’ 이었다. 배의 한쪽 구석에 놓인 네모난 페인트 통 안에서는 땔감으로 던져진 나무들이 불타고 있었다.
건져온 바지락 무더기들이 방파제 위에서 배까지 이어진 밧줄에 줄줄이 얽혀 매어 졌다. 그 줄 하나하나에 다 임자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드디어 끝까지 오랜 시간 일어나지 않고 열심히 일하던 아주머니가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그물에 담긴 무엇인가를 힘들게 바닷물에 헹구자, 아들로 보이는 젊은이가 가서 함께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도 바지락이었다. 나이 많아 보이는 그녀를,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똑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이 가장 힘들고, 자기 어깨에 진 짐이 가장 무겁다고 생각한다.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나의 삶도 무척 피곤하고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직접적으로 삶에 짊어진 무거운 짐들을 보니 내 짐은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TV 뉴스와 신문에 서해의 한 바지락 채취선이 침몰하였다는 뉴스를 보았다. 배에 탄 사람 가운데 9명이 생사를 알 수 없고, 다음 날 한 명만 사망이 확인 되었다고 나왔다.
출렁이는 배 위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그들이 생각났다. 이번 사고에 특히 올해 새 배를 장만하였다며 페인트 냄새가 가시지 않은 반들반들 윤기 나던 배가 대견하여 툭툭 두드리며,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하던 그 부부가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전혀 남의 일 같지 않게 걱정되었다. (원고지 13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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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희(洪正姬)
1952년 부산 출생.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수필 ․ 평론 등단.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한국수필가협회, 한국가톨릭문인회, 수필문우회,《시와함께》운영위원. 경기도문인협회 사무국장(역), 한국문협 성남지부 상임이사(역),《수필시대》편집국장(역), 수원교구 해외선교지 편집팀장.
수상 : 경기도문학상(2005년), 서울시 수필공모 시장상(2000년),
경기도의회 예술공로 의장상(2006년), 성남시 예술공로 시장상(2008년)
저서 : 수필집-『그때는 아무도 모른다』, 『꽃비늘의 바다』, 『가려진 시간』
시 집 -『푸른 가락 고운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