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에서 잡지기사 생활을 할 때 남해안에서 진주 양식을 하는 한 어민을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50대 남자인 그는 양식하고 있던 진주조개를 바닷속에서 끄집어내어 칼로 조개 속을 벌려 보여주었습니다. 조개의 몸 속엔 아직 채 만들어지지 않은 진주가 들어 있었습니다.
양식 진주는 조개껍데기로 둥글게 만든, '핵'이라고 일컫는 알갱이를 진주조개 속에 집어넣어 만듭니다. 그 조개를 매년 5월에 바닷물 속에 넣어두었다가 이듬해 12월에 건져 소위 원주라고 하는 진주를 채취합니다.
그 때 제가 본 진주는 한창 바닷속에 키우고 있던 것이어서 빛깔이 영롱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진주조개는 몸 속에 이물질이 들어오면 뱉어내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여의치 않으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조개껍데기와 같은 성분의 분비물로 이물ㄹㄹ질의 둘레를 자꾸 감싸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꾸 쌓이고 쌓여 바닷 속의 광물질과 결합되는 과정 속에서 진주가 됩니다.
그러니까 진주는 조개가 모래알 같은 자극물에 의해 상처가 생겼을 때, 그에 대한 내부반응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상처 회복에 필요한 온갖 성분이 상처 입은 부분으로 급히 보내지고, 오랜 시간 동안 상처를 치유하다가 마지막으로 얻어지는 게 바로 진주입니다. 상처 입은 조개가 그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영롱한 진주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그 때 조개의 몸 속을 들여다보면서 모패인 저 진주조개의 상처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만일 진주조개라면 내 속에 모래알이 들어와 상처를 내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상처를 낸 모래알을 미워하고 원망하다 못해 증오하고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상처 자체를 멀리하고 상처 회복에 필요한 그 어떠한 성분도 보내지 않고 절망의 나날만 보내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생각되자 제 자신이 무처 나약하게 여겨졌습니다. 크고 작은 상처들을 치유하지 못하고 그 상처 때문에 가까운 가족마저 괴롭히는 제 자신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나 끝내는 저도 진주조개처럼 상처가 아물 때까지, 그리하여 빛나는 진주가 될 때까지 차가운 바다 바위 밑에서 참고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의 상처가 나의 아름다움을 낳습니다. 상처의 고통을 견뎌내는 적극적인 인내의 힘이 진주와 같은 아름다움을 낳습니다. 나에게 왜 상처가 필요한 것일까요. 왜 나에게 슬픔이 필요하고 눈물이 필요한 것일까요. 그것은 나에게도 진주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인생도 아름답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의 창조는 상처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영롱한 진주도 처음에는 하나의 상처였습니다. 상처를 낸 침입자 모래알을 어떻게 밖으로 내보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오직 방법이 있다면 체액으로 그 모래알을 두텁게 감싸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정성을 다해 상처를 보듬고 감싸는 일! 그것이 아름다운 보석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정호승,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