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노트 80 – 들뜸은 아라한이 되어야 없어집니다.
< 수행 노트는 과거에 미얀마 마하시 명상원에서 수행을 지도하시는 스승과 한국인 수행자들의 수행면담을 해를 거듭하면서 기록한 내용입니다. 오래 전에 미얀마에서 약 10여 년 동안 수행한 기록을 요약해서 올리겠습니다. < 참고 >는 수행자의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서 사야도의 가르침 외에 별도로 보충한 내용입니다. 수행은 개인의 근기에 따라 다양한 수행방법과 지도방법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묘원 >
1. 질문 : 좌선을 할 때 견디기 힘든 통증 때문에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세를 자꾸 바꾸다보니 마음이 집중이 되지 않고 더 들뜨게 됩니다.
사야도 답변 : 몸에서 일어나는 통증은 될 수 있는 대로 참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 더 좋다. 몸에 통증이 있을 때 통증을 없애기 위해서 힘을 주지 말고 최대한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라. 통증 때문에 더 이상 견디기 힘들 때는 자세를 바꾸어도 된다. 하지만 자세를 너무 자주 바꾸지 말고 한 시간에 한번만 바꾸겠다는 다짐을 해보도록 하라.
< 참고 >
몸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앉아있으면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가 통증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자가 좌선을 할 때 움직이지 않으면 나타나는 현상이 통증과 졸음과 망상과 수행하기 싫음과 의심 등입니다. 이런 현상은 좌선을 하면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이며 반드시 알아차려야 할 대상이라서 법이라고 합니다. 또는 이런 현상을 불청객이 아닌 필요해서 찾아온 손님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찾아온 손님은 외면하거나 박대할 대상이 아니고 오직 있는 그대로 맞이해야 할 대상입니다.
일반적으로 좌선을 할 때의 주 대상은 호흡입니다. 그리고 호흡이 아닌 다른 현상은 보조대상입니다. 이때 중요한 사실은 주 대상이라고 해서 항상 호흡을 알아차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호흡은 가장 알아차리기 좋고, 다른 대상이 없을 때 오랫동안 알아차리기 때문에 주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좌선 중에 통증이 있을 때는 당연히 통증이 대상이어야 합니다. 좌선은 오직 호흡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때 주목해야 할 것은 주 대상이나 보조 대상이나 구별하지 않고 몸과 마음에서 나타나는 가장 강한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몸에서는 통증처럼 강한 대상이 없기 때문에 통증이 일어났을 때는 먼저 통증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때 어느 것이 되었거나 강한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기본입니다. 호흡이 주 대상이라고 해서 반드시 호흡을 알아차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수행이 깊어졌을 때는 강한 대상보다 미세한 대상을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다음 단계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호흡은 밥에 비유하고 다른 대상은 반찬에 비유합니다. 누구나 밥만 먹을 수 없습니다. 밥도 먹고 반찬도 먹어야 합니다. 수행자가 밥도 먹고 반찬도 먹으면 언젠가 밥그릇과 반찬그릇이 비워지기 마련입니다. 밥그릇과 반찬 그릇이 모두 비워지는 것을 열반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그릇이 모두 비워질 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사라져 열반에 이릅니다. 몸과 마음이 집중에 의해 가벼워질 때 무상, 고, 무아의 지혜가 나서 탐욕과 성냄이 어리석음이 소멸합니다. 이런 번뇌가 소멸해서 집착이 끊어진 것을 해탈이라고 하거나 열반이라고 합니다. 수행은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상의 성품을 알아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소멸하는 것이 최종적 목표입니다. 이런 단계에 이르려면 무엇도 얻으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대상이 가진 무상. 고. 무아의 성품을 알아야 합니다.
통증을 알아차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때 통증이라고 알아차리지 말고 찌르고 , 화끈거리고, 쪼이고, 욱신거리는 느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러한 느낌을 통 털어서 통증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이론으로는 지수화풍 4대라고도 합니다. 4대라는 말은 네 가지 성품이나 요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느낌을 통증이라고 하면 즉각 싫어하는 마음으로 반응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통증이 아닌 이런 느낌으로 알아차리면 견딜만하며 크게 거부하지 않고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또한 통증 때문에 자꾸 자세를 바꾸면 집중력이 생기기 않습니다. 아파도 움직이지 않으면 인내하는 힘이 생겨 의외로 통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너무 아플 때는 자세를 바꾸어도 되지만 조금 아파도 자세를 바꾸곤 하면 탐욕과 성냄으로 바꾸는 것이라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세를 바꿀 수 있되 참고 견디다가 견디기 어려울 때 바꾸려는 의도를 알아차리면서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수행의 장점 중의 하나는 인내하는 것입니다. 통증을 인내하는 연습을 하면 인생의 괴로움을 인내할 수 있어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수행을 하면서 마음이 집중이 되지 않고 들뜨는 것은 누구나 겪는 일상적인 일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계정혜(戒定慧)라는 팔정도를 수행하는 것인데 이때의 정(定)이 집중입니다. 계(戒)를 계율이라고 알지만 사실은 계율이라는 뜻도 있지만 수행자에게는 알아차림이라는 의미가 더 강조되어야 합니다. 알아차림 자체가 계율을 지키는 행위라서 계율과 알아차림은 동의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러므로 알아차림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알아차림은 아무리 많아도 항상 부족한 것이라서 결과적으로 알아차림에 의해서 생기는 집중은 항상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집중이 안 될 때는 알아차림이 부족하다고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잘 안 되는 집중을 억지로 하려고 하지 말고 집중이 안 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조건이 성숙되지 않아서 안 되는 집중을 억지로 하려고 하면 욕망이며 이것은 위빠사나 수행이 아닙니다. 무엇이나 현재 최종적으로 나타난 것이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그것이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상관이 없이 모두 하나의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집중이 되지 않아서 들뜬다고 했는데 이것 역시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알아차림이 부족해서 집중이 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들뜰 수밖에 없습니다. 알아차림이 부족할 때는 알아차림이 부족한 것이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집중이 되지 않았을 때는 집중이 되지 않은 것이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들떴을 때는 들뜬 것이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들떠 있을 때는 들떠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최상의 방법입니다. 들뜸은 조건이 성숙되어야 소멸하는 것입니다. 들뜸을 소멸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들뜬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모든 수행자에게는 열 가지 속박이 있습니다. 이것을 열 가지 족쇄라고도 합니다. 나를 세속에 붙들어 맨다는 뜻의 족쇄는 낮은 단계의 오하분결이 있고 높은 단계의 오상분결이 있습니다. 오상분결은 색계와 무색계에 존재를 붙들어 매는 번뇌입니다. 오상분결은 다섯 가지로 색계에 대한 욕망, 무색계에 대한 욕망, 아만, 들뜸, 무명입니다. 이때의 무명이 바로 어리석음입니다. 오상분결은 아라한이 되어야 없어지는 속박입니다. 오상분결 중에서 아홉 번째가 바로 들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어리석음입니다. 이들 10가지 족쇄는 아라한이 되었을 때 소멸합니다. 그러므로 아라한이 되기 전까지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대상입니다.
들뜸은 어리석음 직전까지 있는 가장 깊은 번뇌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아라한이 되기 전까지는 들뜸으로 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들떴을 때는 단지 들뜬 것을 알아차리는 방법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참고로 들떠 있을 때 들떠있는 것을 안 것은 그만큼 알아차리는 힘이 생겨서 안 것입니다. 사람들은 들떠 있으면서도 들떠있는지를 모르고 삽니다. 그러므로 들떠 있는 알아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아는 힘이 생겨서 매우 좋은 현상입니다. 이렇게 아는 힘에 알아차림을 하나 더 보태서 들뜸을 알아차리면 수행의 진전이 있습니다.
2. 질문 : 좌선 중에 앉아있는 엉덩이가 딱딱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배의 호흡도 딱딱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야도 답변 : 좌선을 할 때 몸이 딱딱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면 이때 딱딱하게 느껴지는 부분을 알아차려야 한다. 감각이 없거나 저릴 때도 두려움을 갖지 말고 단지 감각이 없다고 알아차리고 저리다고 알아차려야 한다.
< 참고 >
좌선을 할 때 알아차려야 할 대상은 몸과 마음입니다. 몸에서 알아차릴 대상은 지수화풍이라고 하는 4가지 요소입니다. 지대는 땅이 가지고 있는 요소인 단단함과 부드러움을 말합니다. 수대는 물이 가지고 있는 요소이지만 몸에서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몸은 물의 요소가 온갖 장기를 결속시키기 때문입니다. 밀가루를 반죽할 때 물이 있어서 응고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다음으로 화대는 불이 가지고 있는 요소인 뜨거움과 차가움을 말합니다. 그리고 풍대는 바람의 요소로 몸의 움직임과 호흡을 말합니다. 수행자가 자신의 몸에서 알아차릴 대상은 이상의 4가지 요소입니다. 이것을 4대라고 합니다. 이것을 알아차릴 때 느낌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몸이 딱딱하게 느껴질 때는 지대의 요소이므로 단지 딱딱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이때 몸이 왜 딱딱한 가를 알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단지 이런 현상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원래 몸이란 이런 네 가지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행자가 대상을 알아차릴 때는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하는데 이 말은 관념으로 본 대상이 아니고 실제로 본 대상이어야 합니다. 딱딱할 것을 느낄 때는 지대라고 알아차리지 말고 단지 딱딱하다는 느낌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관념은 명칭이나 개념으로 대상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관념은 느낌이 아니라서 대상이 가진 무상, 고, 무아의 성품을 알 수 없습니다.
좌선 중에 몸이 딱딱하게 느껴지는 것은 몸이 긴장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몸은 마음의 상태에 따라 긴장하거나 이완될 수 있습니다. 좌선할 때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경직될 수 있습니다. 또 수행을 할 때 자세하게 알아차리려고 힘을 써도 몸이 경직됩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완전하게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딱딱한 현상이 나타났을 때는 단지 딱딱한 느낌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설령 이런 현상이 편치 않고 통증을 유발하더라도 여기에 반응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런 현상 외에도 몸이 저리거나 어디가 가려울 때도 하나의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나 심하게 가려울 때는 긁으려는 의도를 가지 가볍게 긁으려 이내 가려움이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절대 자세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거나 절대 긁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없습니다. 가능하다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지만 필요할 때는 움직이려는 의도를 알아차리면서 움직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몸과 마음을 아무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차츰 마음이 가라앉아 집중력이 생깁니다. 그러면 긴장한 몸이 점점 부드러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긴장할 때는 딱딱한 현상이 있기 마련이라서 딱딱한 것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집중이 될 때 차츰 부드러워지기 시작합니다. 수행은 딱딱한 몸을 부드럽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은 조건을 성숙시키는 것이므로 단지 나타난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것이 최적의 조건을 형성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