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시비리스크에서 아침 10시 기차로 예카테란브르크로 간다.
약 21시간을 가야한다.
숙소 funky hostel에서 기차역까지는 1.2키로이다.
남아있던 밥과 과일 체소로 든든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8시 20분경 숙소를 나섰다.
오늘 하루 종일 기차에서 보내야 한다.
내일 아침 8시에 예카테란브르크에 도착예정이다.
예카테린부르크는 1700년 초에 표토르 대제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이다,
표토르 대제는 강력한 러시아를 만들기 위해 두 도시를 새롭게 건설하였다.
하나는 발틱해 연안의 땅을 개간해서 만든 항구도시 생트페태르브르크이고,
다른 하나가 광산을 개발할 목적으로 우랄 산맥 넘어에 있는 이곳을 도시로 만들었다.
예카테리나는 표토르 부인의 이름이다,
또한 1917년 레닌의 공산혁명으로 축출된 리콜라이 2세 황제의 가족 모두가 1918년 처형된 곳이기도 하다.
해가 저무는 시간쯤 정차한 역에서 훈제한 생선을 파는 아주머니.
검은 반팔 옷을 입고 있는 아주머니가 왼손에 들고 있는 것이 훈제 생선.
크기에 따라 100루불, 150루불한다.
구입하면 종이에 싸서 준다.
경찰의 단속을 피해 팔고 있어 , 무슨 낌새가 보이면 일제히 건물 뒤로 숨는다.
우리 자리는 3등열차의 6인실 통로쪽 침대이다.
이번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다섯번째 이용하는 구간이다.
처음으로 배정받은 불편한 창가쪽 침대이다.
앞 침대에 우리말을 조금 하실 수 있는 할아버지와 손녀가 탔다.
7살 손녀의 오빠는 군복을 입고 있는 성인이다.
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북한에서 하바롭스키로 이주해 오셨다고 한다.
갓을 쓰고 한복입은 빛바랜 사진을 보여준다.
스탈린의 이주 정책에 의해 우주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해 , 본인은 그곳에서 태어나셨다고 한다.
키르키스탄에서 농사를 짓고 사시다 나이 50에 하바롭스크로 돌아왔다고 한다.
자식으로는 2남 1녀를 두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모스크바에 살고 있고 방학 중 손녀를 데리고 돌아 가는 길이다.
한달 후 다시 돌아 갈 때는 할머니가 대려다 준다고 한다.
편도가 7박8일이니. 오고가는데만 보름이 걸리는 먼길이지만 매년 하는 연례행사라고 한다.
우주베키스탄에서 태어나 러시아에서 평생 사신 평범한 농부이지만 우리나라 말을 잘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가 낮설어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있어도 ,모국어라고 기억하는 대한민국은 이분에게 어떤 나라인지 궁굼하다.
전형적인 고려인의 삶을 사신 분이다.
손녀는 이민4세대이지만 아이의 외모는 그냥 우리동내 아이처럼 생겼다.
아마도 4대를 거치는 동안 한국인 끼리만 결혼한 모양이다.
러시아 사회는 아직도 일찍 결혼한다. 할아버지 나이가 70세인데 손자가 성년이란다.
옆칸에 탄 자매는 울산 아이들이다,
18살, 22살로 고등학교와 대학을 휴학하고 세계일주에 나선 당찬 자매이다.
아이들보다 여행을 허락한 부모가 더 개방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
논스톱으로 모스크바로 가서 네델란드, 터키 그리고 조지아를 지나 스페인까지 가서 남미에서 돌아오는 7개월 세계 일주를 막 시작한 셈이다.
할아버지와 손녀.
할아버지 손에 들고 있는 신문뭉치가 훈제한 생선이다.
기차시간으로 새벽 2시가 되니 해가 뜨고 있다.
4시가 되니 사람들이 침구를 정리하고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금발의 젊은 차장은 전형적인 러시아 아가씨이다.
저녁 내내 사복을 입고 젊은 손님들과 어울러 놀다가 시간이 되니 정복으로 갈아 입고 나온다.
벼개카버와 이불카버 그리고 지급받은 수건을 차장에게 건내주고 정차하기를 기다린다.
브라딕보스톡에서 승차한 손님은 5일 만에 하차하는 셈이다.
5시 5분 예카테린브르크 역에 도착했다.
역 앞에 인포메이션이 있고 출구나 대기실에는 경찰이 사방에 배치되어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곳에 월드컵 경기가 많이 예정되어 있어 경계가 심하다고 한다.
인포에서 알아본 결과 1번 버스를 이용하면 숙소 근처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버스에서 내려 공원을 가로 질러 가야한다.
아침부터 공원 호수에 낚시를 하는 사람이 보인다,
B&B hostel. 예카테란부르크 숙소는 간판이 A4 용지에 인쇄한 것이 전부이다,
숙소는 12층 건물의 한층을 사용한다.
러시아 대부분의 도시는 옛소련 시절에 지은 큰 건물이 많다.
지금은 별로 소용이 되지 않고 버려진 건물들도 많다.
소련연방에서 독립한 발칸반도 국가나 조지아를 여행하면서 느낀 점이지만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다.
b&b hostel은 새로 시작하는 숙소이다,
매트리스도 침구도 모두 새로 구입한 신제품이다.
오늘이 화요일, 금요일에 있을 월드컵 페루 게임을 응원 온 페루 사람들이 많이 투숙해 있다.
여기가 남미의 어느 도시같은 느낌이 든다,
페루도 우리나라처럼 1패를 안고 싸우는 두번째 개임이다.
3번째 개임은 흑해 연안의 소치에서 한다.
소치는 평창 동계 올림픽 이전에 올림픽이 열린 휴양도시이다.
여기서는 기차로 2일을 가야한다.
이 사람들 이 경기가 끝나면 그 곳으로 간다.
이런 열정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싶다,
어느 아버지와 아들은 전형적인 남미인 외모인데 미국 뉴저지에서 응원 왔다고 한다.
여기에 와 있는 페루인들은 전 세계에 살고 있는 페루인들인 셈이다.
프랑스 아이 2명도 같은 개임을 응원 왔다.
금요일 개임이 프랑스와 페루 사이에 개임이다.
숙소 공용공간에서 바라 본 앞 건물.
담배를 피기위해 나와 있는 사람들이 인상적이다,
낮 동안은 언제나 비슷한 그림을 볼 수 있다.
6월19일이면 우라나라는 여름이 시작하는 시기이다.
거리에 나가니 너무 춥다.
현지인들의 복장이 겨울 옷이다.
따뜻한 옷으로 갈아 입고 거리로 나왔다.
예카테린브르크는 150만명이 사는 러시아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다.
가장 이상적인 도시이다.
넓은 도로, 무성한 숲과 호수 그리고 깨끗한 거리.
높아야 대부분이 4층 이하의 석조건물, 여유로운 공간.
부담스럽지 않은 초현대식 고층건물.
매력적인 도시이다.
피의 성당과 맞주보고 있는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도로변에 있는 피의 성당.
니콜라이 2세 가족이 처형된 자리에 서 있는 성당.
내부는 가족 박물관같이 만들어 놓았다.
세월이 지나니 혁명을 이르키게 했던 농노들의 비참한 환경은 잊혀지고, 왕족에 대한 향수가 남는 모양이다.
피의 성당 내부. 혁명 당시의 사진과 보도 자료들을 전시해 놓았다.
피의 성당옆 1918년 건축된 개인 주택. 보존해야할 건물로 지정되어 있다.
사거리에 있는 성당이 석양에 조각처럼 보인다.
한평도 안되는 작은 성당.
그래도 갖출 것은 모두 갖추고 있다.
동양과 서양을 가르는 우랄 산맥의 도시 ( E/A ). 유럽과 아시아란 의미이다.
여기는 동양도 서양도 아니라고 쓰여 있다.
월드컵 페루 경기를 앞두고 있다.
페루 응원단과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dana.
호수공원 터널 안.
전설적인 러시아 로커. 빅토르 최의 벽화.
도로변 호수가에 있는 19세기 어느 부호의 저택이다.
호화롭기가 궁전같다.
호수에서 바라본 신도시.
더 이상 누워있을 수 없을 정도로 해가 방 깊숙이 들어온다.
시각을 보니 새벽 4시 30분이다.
이렇게 하루 종일 해빛에 노출되어 있어도 건강에 이상이 없을까 걱정스럽다.
4인실 도미토리 이층침대를 사용하는 두 젊은이는 페루 리마에서 온 친구사이라고 한다.
한 명은 내일 경기만 보고 귀국한다. 휴가 일정이 여기까지라고 한다.
다른 친구는 소치에서 3차전까지 관전하고 귀국할 예정이라고 한다.
어제 저녁이는 무엇을 했는지 새벽에 들어와서는 해빛 속 열탕이 되버린 방에서 자고 있다.
한사람 사용료가 450루피, 약 8500원이다.
아침 식사까지 대륙식이라고 하면서 제공해준다.
치즈 한조각, 케익 한조각 ,그리고 식빵과 요구르트가 정부이지만 무료로 항시 제공하는 커피 한잔이면 아침식사로 충분하다.
11시경 숙소를 나오니 거리는 온통 페루 복장을 한 남미인이다.
예카테린부르크는 시에서 관광코스를 정해서 붉은 선으로 도로 위에 표시된 거리를 따라가 보았다.
이곳의 6월의 날씨가 그런지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한다.
비가 왔다가는 금방 눈이 부실 정도로 맑은 날씨가 되었다가는 다시 비구름이 몰려오는 날씨가 반복되고 있다.
이 곳 사람들은 비가와도 가던 길을 계속 가고 있고, 벤치에, 앉아 있는 체로 비를 맞고 있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곧 그칠 비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민속박물관 정원에서 유화를 그리고 있는 미대생.
지금은 어디에나 라일락이 만발하다.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19세기 건물.
상인의 집이었다고 한다. 목조건물이지만 조각같이 멋을 부린 건물.
2018 러시아 월드컵 페루 응원단. 거리에는 온통 붉은 옷을 입은 키작은 페루인을 볼 수 있다.
1905거리 앞 시청청사.
비를 피해 들어간 백화점에는 페루인으로 가득하다.
dana옆에 있는 사람이 페루의 전설적인 축구 영웅이라고 한다.
상가에 이층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 올라가 보았다.
이 분은 아마도 페루 방송국 직원들과 같이 나온 듯하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건물이라는 작은 표식이 있는 가옥들은 대부분 주민이 살고 있다.
예카테린브르크의 렌드마크이다. 약 50층 건물.
이 보다 더 높은 현대식 빌딩이 곳곳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