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낭
정진명(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궁낭은 복주머니를 말합니다. 복주머니를 하나 구하여 허리춤에 차는데, 그것을 활과 관련된 소품을 넣어둔다고 하여 궁낭(弓囊)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깍지는 시위 당길 때 엄지손가락 아프지 말라고 끼우는 것입니다. 작아서 잃어버리기 쉽죠. 그래서 이런 주머니를 하나 구하여 넣어두는 것입니다.
궁낭에 들어가는 소품으로는 밀피, 촉돌이, 쌈지, 끈 같은 것들입니다. 여자들 주머니에 이것저것 많은 것들이 들어있듯이, 한량들 궁낭에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희한한 소품들이 들어있습니다. 아이들이 보면 환장을 하고 뒤적거리며 신기해합니다. “이건 뭐예요?” 하면서 말이죠.
이 궁낭을 쓰는 한량도 거의 없습니다. 대개 새로운 물건이 나오면서 이런 것을 보관하는 방법도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옛날식으로 운치를 더하려면 이런 소품이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구할 길도 없습니다. 활터가 과녁 맞히기에 빨려들어 사격장으로 변하다 보니 이런 고풍스런 풍속과 물건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옛날 사진을 보면 한량들의 허리춤에 이런 것이 달려있습니다. 해방 전이나 조선 말기의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 안경집과 쥘부채가 소품으로 등장하듯이 한량들의 사진에는 이런 궁낭이 꼭 등장했습니다.
온깍지궁사회에서 전통 풍속을 강조하며 활동한 이후, 이에 대한 관심이 잠시 일었다가 분위기가 다시 사격 광풍으로 휩쓸려가면서 이런 물건은 다시 천년 세월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런데 2002년 무렵에 납궁례를 한 향촌 할매가 저더러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는 겁니다. 그랬는데, 며칠 뒤에 소포가 왔습니다. 뜯어보니 궁대와 궁낭이었습니다. 바느질을 소일거리 삼아 하시는 우리 어머니께 보여드렸더니, 감탄으르 하십니다. 바느질 솜씨가 아주 좋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궁낭을 열어보시더니 또 한 번 감탄하십니다. 궁낭에서 100원짜리 동전이 나왔거든요. 다른 사람에게 복주머니를 선물할 때는 재물과 복이 많이 들어오라고 동전을 하나 넣어서 준답니다. 그래서 너무 아까워 쓰지 못하다가 20년이 지난 뒤에야 꺼내 썼습니다. 조금 더 안 쓰면 영영 못 쓰고 박물관이나 벽장 속으로 사라질 것 같아서 저의 손때를 묻혀야 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 뒤 10년쯤 지났을까? 또 한 번 궁낭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사계로 전환한 온깍지궁사회 모임이 영덕에서 열렸는데, 뜻밖에도 미카엘라 여무사가 궁낭을 몇 개 만들어서 사계원들에게 하나씩 돌린 것입니다. 솜씨가 일품이었습니다. 그래서 김향촌 여무사가 준 궁낭을 다시 집어넣고, 미카엘라 여무사가 만들어준 궁낭을 씁니다. 이런 특별한 궁낭을 두 개나 받다니, 이게 웬 복인가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씁니다.
미카엘라 여무사는 고향이 슬로바키아입니다. 오래 전에 한국에 와서 정착하여 부산 사직정에서 활을 배운 여무사입니다. 한국의 활량들이 까맣게 잊은 궁낭을, 외국에서 와서 정착한 분한테서 받는 이 마음을, 뭐라고 형언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곁의 것이 소중한 줄을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쪽으로 흘러가는 생각의 꼬투리를 이쯤에서 잘라버립니다.
첫댓글 아 ㅠ 진작에 알았으면 100원씩 넣어드릴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