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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반적인 인식의 변화
최근의 일간지와 문예지에서 시와 감상문을 소개하
는 칼럼에서도 시를 선별하는 기준이 전반적으로
산문시에 그 기준을 두고 있다. 예를 들면, 조선일보
'정끝별의 시 읽기'에서 이진명의 산문시 <눈물 머
금은 신이 우리를 바라보신다>, 곽효환의 산문시 <
벌초를 하며>, '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에서 문
신의 산문시 <이십세기>, 김이강의 <정거장 가는
길> 등에서 산문시의 선별 기준을 확인할 수 있다.
일간지, 문예지 등 시문학의 발표 지면에 소개하는
'명시 소개' 등에서도 일부 원로 시인들의 자유시의
고전을 최근 현대시는 산문시를 주로 선별하고 있으며, 빼어난 작품으로 소개하는 논평을 더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신춘문예의 응모자뿐만 아니라 젊은
시인들과 독자들의 일반적인 인식조차도 현대시를
산문시로 오도(誤導) 하는 변화를 만들고 말았다.
5. 현대시의 미래
현대시는 자유시와 산문시 사이에서 어떠한 시의
경향이 더 문학적 가치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현대시에서 자유시와 산문시는 각각 그 작
품의 완성도와 감동에 따라 세대를 초월하는 생명
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1) 현대시는 진화 중(進化 中)
서정시의 시대 100년의 트렌드는 2000년대에 들
어서면서 산문시가 시문학의 주류로 대두했으며,
산문시조차 다양한 장르로 일탈을 감행하고 있다.
그 결과 ‘댓글 시’, ‘한뼘시’, ‘시산문(詩散文)’, ‘쓰레
기 시’ 등으로 산문시의 부류가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전통적인 서정시가 선도하는 시문학계에서 산문시
의 대두에 대하여 비하하고 비난할 필요는 없다. 시
문학은 그 자체로 진화하며 변화하기 때문이다. 현
대시의 전체적인 흐름이 아닌 사소하거나 우연한
사건이 현대시의 정체성에 상처를 주겠지만, 현대
시의 흐름에서 일탈한 새로운 경향은 그 자체의 생
명력에 의해 생존하거나 소멸하게 될 것이기 때문
이다.
슬픈 기사에 나타나는 댓글 시인 - 2000년대 들어
서면서 인터넷을 이용한 댓글이 시의 형식을 빌려
서 새로운 장르로 출현하였다. 짧은 내용의 상징과
은유, 풍자와 감흥을 댓글이라는 형식을 빌려서 많
은 독자들에게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면, 포털 사이트 다음(daum)에서 이른바 '댓글
시인'으로 유명한 '제페토'의 시를 모은 [그 쇳물 쓰
지 마라] 등이 있다.
'한 뼘 시' 혹은 '손바닥 시' - 2009년 문학과 지성사
에서 발간한 시선집 300호 이후의 시집 중에서 비
교적 짧은 호흡으로 따라 읽을 수 있는 작품을 골라
내 엮었다. 수록된 시 중에서 김성규의 <절망>은 2
행이고, 신미나의 <겨울 산>은 딱 한 줄이다. '한 뼘
시' 혹은 '손바닥 시'라 부를 만하다. 한 뼘 시의 예를
들면,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 정현종의 <섬> 등
도 있었다.
시산문(詩散文) -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산문시
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산문시 집도 출현한다.
물론 시의 정체성인 서정성, 상징과 은유를 무기로
시평까지 곁들이면서 '시산문'이라는 새로운 장르
를 개척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김혜순의 시산문 <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시산문 문집인 '마중문
학'의 수상자인 이명숙의 <까만 화병> 등이 있다.
'쓰레기 문학'과 '시 아닌 시' - 1990년대부터 원태
영, 신진호, 이풀잎, 류시화 등 젊은 시인들의 시집
이 수십만 명의 독자가 찾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들이 산문시의 시대를 활짝 열었지만, 문단에서
는 '쓰레기 문학'으로 취급한다. 시적 상징이나 은유
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시 아닌 시'라고 한다. 그러
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대중시'도 하나의 문학 장르
로서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러
한 시의 선두에 원태연의 시 <이별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