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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김장수 유작집
『갈대』 (엮은이 김용승)
979-11-7155-066-1 / 147*210 / 198쪽 / 2024-05-15 / 15,000원
■ 책 소개 (유튜브 영상 바로보기)
“시대를 앞섰던 선각의 시인은/ 불의에 맞춰 지축을 뒤흔들며/ 위대한 대구의 정신을 드높였던 2·28의 뜨거웠던 함성과/ 길이 청사에 빛날 거룩하고도/ 장엄한 4·19 별들의 외침을/ 어느 누구보다 먼저 노래로 남기셨다”(김민구 시·시조 시인)
시조 시인 김장수(1926~1976) 선생의 유작집 『갈대』가 발간되었다. “2·28 행진곡” “4·19의 노래” 작사가이며, 60년대 초 대구 문단에 나와, 영남의 시조 문학을 주도했던 《낙강(洛江)》의 창립 동인으로 문학의 발전과 문인들의 화합에 이바지한 김장수 시조 시인의 유고 작품들이『갈대』에 한데 모였다. 선생이 생전에 남긴 시조 스물다섯 편, 자유시 한 편, 수필이 열네 편 외에 선생의 삶과 문학세계에 관련한 글이 실려 있어 대구 문단에 큰 족적을 남겼음에도 희미하게 잊혀 가는 김장수 시인의 문학적 성취를 다시 되새겨 볼 수 있는 귀한 유작집이다.
■ 저자 소개
김장수(金章洙)
• 1926.3.8~1976.11.21
• 경북 군위 출생(1926.3.8)
• 경북중학교(5년제) 졸업(1944.3)
• 대구대학(현 영남대학교) 전문부 법과 졸업(1949.7)
• 대구여중, 능인중·고, 대구고 외 교사(1946.3~1961.6)
• 한국교원노조 총연합회 대구지구 중등교원노조위원장(1960.5~1961.6)
• 대구일일신문(대구일보전신) 신춘문예 입선(1943.3)
• 개천절 경축 제2회 전국백일장 입상(1958.10)
• ‘2·28 행진곡’ 작사
• ‘4·19의 노래’ 작사
• 영남시조문학회 총무·부회장(1967.6)
• 『낙강』 동인지 총무(1967.6)
• 문협 경북지부 부지부장〈시조 분과위원장〉(1974.9)
• 대구에서 별세(1976.11.21)
• 문협 경북지부 주관 최초 문인장 거행(1976.11.23)
• 칠곡 가족 묘소 내 「갈대」 시비 건립(2013.5.30)
■ 목차
│추모시│시대를 앞선 ‘2·28 행진곡’과 ‘4·19의 노래’_ 김민구
│머리말│시조시인 김장수 선생 유작집에 붙임_ 이종문
1부 시인의 유작
│시조│
한산도(閑山島) / 맥령(麥嶺) / 다부원전적비(多富院戰跡碑) / 억새 / 송뢰(松籟) / 낚시터 / 세모(歲暮) / 갈대 / 들국화 / 능금 / 화관(花冠) / 분수(噴水) / 귀뚜라미 / 위령탑(慰靈塔) / 망향제(望鄕祭) / 생사(生死)의 변(辯) / 통일의 꽃 / 코스모스 / 다람쥐 / 가을산성 / 은행(銀杏)나무 / 태종대(太宗臺) / 천마도(天馬圖) / 화관(花冠) / 물레방아 / 박꽃
│자유시│
잃어서는 안 된다
│노래 가사│
2·28 행진곡 / 4·19의 노래
│수필│
세대교체(世代交替) / 매명주의(賣名主義) / 시향(詩鄕) / ‘배(輩)’ 자(字) 돌림자 / 상(賞)에 대한 단상(斷想) / 문화예술인 산업시찰 기행 / 나의 첫 작품 / 꽃바람 / 저임금(低賃金) / 산불 / 분묘(墳墓) / 심전(心田) / 권위의식(權威意識) / 존비칭(尊卑稱)
2부 시인 관련 글
나의 문학 나의 인생 / 김장수 詩兄 靈前에 / 경북 문단에 쏟으신 그 情熱 / 이수남의 되돌아본 향토문단 / 文壇逸話 60,70 《洛江》의 시조시인 / 김장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대구역사문화대전〉) / ‘4·19의 노래’ 3종의 의미를 되새기며 / 대구에서 부활한 4·19의 노래들 / ‘2·28 행진곡’ 민주화운동 60년 만에 영남일보 게재 확인 / ‘2.28 행진곡’ 발굴 계기로 민주운동 고귀한 정신 담은 ‘대구정신’ 되살려야 /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영남일보와 ‘2·28 행진곡’의 활용방안 논의 / [사설] 60년 만에 빛 본 ‘2·28 행진곡’을 다시 부르게 하자 / ‘2·28 행진곡’과 ‘4·19의 노래’의 대구 정신
│맺음말│유작집을 엮으면서_ 김용승
■ 출판사 서평
1부는, 시인의 1958년 개천절 경축 전국백일장 입상 작품인 「한산도」를 비롯하여 동인지 《낙강》, 《영남일보》 등에서 발표한 시조 작품과 자유시, 2·28 행진곡, 4·19의 노래 가사, 《매일신문》에 발표한 수필 작품이 모두 실렸다. 선생의 맏아들인 김용승 씨가 동분서주, 노심초사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찾아낸 시인의 소중한 유고 작품들이다.
“뭍에도 못 오르고 강심에도 못 잠기고/ 갯벌에 자리하여 진흙에 박혔다가/ 가는 밤 외 밝은 밤에/ 그림자나 띄우자// 물새도 숨어버린 해 저문 강나루에/ 어스름 타 흐르는 여울이나 지었다가/ 빈 들녘 쇠잔한 바람을 몸으로나 울리자// 물리고 비벼대고 살아가는 세상 밖에/ 덧없는 세월이야 강물로나 흘려두고/ 그 깊이 삿대를 찔러 뗏목이나 보내자”(「갈대」 전문)
시인은 당시 사라져 가는 민족의 운율, 시조 문학에 대해 누구보다 진한 애정을 가졌다. 끈질긴 투지와 좌절, 애조가 저류에 흐른다는 평을 받는 시인의 시조는 “투박한 토기”의 정서로 우리의 “민족혼”과 “삶의 비애”, “자연의 허허로움”을 노래했다, “동강 난 이 강산에 몰아쉬는 탄식인가”(「송뢰(松賴)」), “내 조국 대동맥에 수혈하고 가신 임들”(「위령탑」), “장부라 장부라 하고 다짐도 해 왔건만/ …/ 오늘도 서투른 곡예의 줄을 타는 이 슬픔”(「세모(歲暮)」), “사랑도 영고성쇠(榮枯盛衰)도 한 장 종이의 어룽”(「은행나무」), “짚불을 지펴놓고 모기 쫓는 뒷마당에/ 어스름 스며드는 달그림자 비쳐 올 때/ 수줍어 고개 숙이며 돌아서는 아가씨”(「박꽃」) 등, 편 편이 소중하다.
또, 시인이 세상을 떠나기 몇 개월 전에 매일신문 <매일춘추란>에 기고한 수필 작품들에서는, 병마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잃지 않았던 시인의. 세상을 향한 단순 소박하지만 깊은 성찰의 충언을 확인할 수 있다.
1960년대 불의와 독재로 민주주의를 억압하던 시대에 사회적 인간으로 한 지식인으로 고뇌하던 시인은 역사 인식과 현실 인식이 투철하여 대구 능인 고교 영어 교사 시절에 ‘데모규제법’, ‘반공 특별법’, ‘이대 악법반대 운동’ 등 많은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시인의 올곧은 정신은 4·19 민주 의거의 고귀한 정신을 계승하는 “4·19의 노래” 노랫말을 작사함으로써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되새기는 역사적 기록물을 남기기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자유당 이승만 독재정권에 반기를 들었던 대구지역 학생들의 기상 ‘대구 2·28 민주화운동’을 노래한 “2·28 행진곡”의 가사를 작사하는 등, 시대를 앞선 저항적 문인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연보라 피어나던 젊은 꽃송이/ 나라와 겨레의 살길을 찾아/ 총칼을 무릅쓰고 정의를 위해/ 하늘 높이 외치던 4월 19일/~/~/ 아~아~ 청사에 길이 빛날/ 거룩한 별이여 님의 별이여”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격동의 생애를 보내고 불의에 저항하며 옥고를 치르고, 천직으로 여기던 교직에서 물러나 생업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에서도 역사적 현실적 기반에 충실한 시절가조(時節歌調)를 남긴 김장수 시조 시인, 선생의 유작집 『갈대』를 통하여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하여 선봉에 섰을 뿐 아니라, 문단의 중요한 직책을 맡아 헌신하면서 창작활동을 통해 대구사회에 큰 발자취를 남”긴 한 시인의 참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