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국립현충원에 가면
글/김덕길
노량진 국립 현충원에도 가을이 저뭅니다.
예상치 않았던 일정입니다. 서울 마곡동에 식물원이 생겼다 해서 가보고자 나선 길입니다. 아직 미완성인 식물원입니다. 임시로 개방을 한 탓인지 주차장은 협소했고 시설은 미미했습니다. 싱가포르 보타닉가든의 웅장한 식물원과 낙차가 큰 거대한 인공폭포를 기대한건 아닙니다. 그러나 이왕 만들거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웅장한 식물원을 만들어야합니다. 눈높이가 높아진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려면 아낌없이 투자를 해야 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 건축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베트남 다낭의 ‘바나힐 골든 브릿지’는 손으로 다리를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다리가 한강을 가로질러 건축되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환상적입니까? 왜 그들은 하는데 우리는 하지 못합니까?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뒤고 하고 서둘러 식물원을 벗어납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면서 올림픽 대로를 달립니다. 아내에게 묻습니다.
“당신 현충원 가봤어?
“아니…….”
“비 오는 날 여름에 현충원을 걸으니 좋던데 한번 가볼까?”
“그래 한번 가 봐요.”
벚꽃길이 유명하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가을 단풍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고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도 가보고 싶었습니다.
현충원내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우리는 육개장을 먹습니다. 배고플 때 먹으니 맛있습니다.
식사를 하고 자판기 커피를 마신 후, 우리는 식당 건물을 벗어나 건물 뒤쪽으로 걸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와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아내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고 커진 눈동자를 감지 못했습니다. 눈앞에는 서울 그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는 단풍 숲과 작은 호수가 펼쳐져있었던 것입니다. 단풍잎은 켜켜이 서로 다른 색으로 덧칠해 있습니다. 진하다가 여리고 붉다가 푸릅니다. 떨어진 낙엽은 생기를 잃어 마르다가 부서집니다. 다시 떨어뜨린 이파리는 홍조띈 모습으로 잔디 바닥을 덮습니다. 타는 가을의 막바지 몸부림은 처연한데 슬프지 않습니다. 애절한데 아리지 않습니다. 안타까운데 붙잡지 못합니다. 가면 오고 오면 가고 그것이 인생이고 그것이 계절의 순리일 테니까요.
현충원의 가을은 수많은 전사자의 영혼이 울림이 되어 피의 절규로 단풍을 만드나 봅니다. 붉은 단풍은 처절하게 붉습니다. 마른 잔디 사이마다 줄지어 늘어선 작은 용사들의 묘비가 시리도록 아픕니다.
우리는 현충원의 둘레 길을 걷습니다. 솔내길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걷습니다. 뿌연 연무에 휘감긴 현충원의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습니다. 아스팔트 바닥에 노란 은행잎이 주단을 깔아줍니다. 도로가에 줄지어선 은행나무는 수령이 수십 년을 넘습니다. 하나같이 장엄하고 위엄이 있습니다. 온통 은행나무와 단풍 숲 천지입니다.
둘레길 건너편 울창한 산은 그야말로 형형색색으로 내가 알지 못하는 모든 색을 다 동원해 색칠해놓은 듯싶습니다. 가슴이 벅차서 발걸음을 옮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찾아갑니다.
안내표지가 작아서 하마터면 스쳐지나갈 뻔 했습니다. 입구에는 대통령의 말씀이 새겨있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통일에의 희망이 무지개처럼 떠오르는 나라를 만들 것입니다. -김대중-
인동초 같은 삶을 살다가 IMF 경제 위기에 빠진 나라를 일으켜 세우시고 끝내 한줌 흙으로 돌아가신 그분의 묘는 역대 임금의 묘처럼 크지도 않았고 화려하지도 않았고 멀리서 잘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우리도 한줌 흙으로 돌아갈 인생인 것을…….’
돌아보고 현충원을 나오는 내내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현충원을 다녀와서 너무 뿌듯합니다. 수많은 희생 장병들의 노고를 가슴깊이 새기며 살아가렵니다.
막바지 가는 가을을 원 없이 함께 할 수 있었고 재충전할 수 있어서 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