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동항 촛대바위 앞에서
2013년 3월 1일
새벽 3시 10분에 시청역을 출발한 버스는 7시가 안 된 시각에 강릉항에 우릴 내려놓습니다. 전날 저녁부터 오락가락하던 비도 다행히 멈춰주었습니다. 횡성휴게소에서 10여분의 휴식을 취할 때까지만 해도 꽤 굵던 빗줄기였는데 말이지요.
그런데 도착 후 버스에서 내릴 때,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빛이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그때 온몸으로 훅, 한기가 끼쳐오면서 드는 생각, ‘오늘 배가 못 뜨면 어떡하지?’였습니다. 여객선 터미널로 들어서니, 예정돼 있던 7시 출항은 해경으로부터 허가가 나질 않아 ‘8시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안내방송입니다.
이른 시각인데도 터미널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그곳에서 마냥 기다리기도 뭣하고 해서 아침을 먹기 위해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섭니다. 입구의 식당을 찾아 들어가니 이미 많은 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습니다. 우선 빨리 나오는 메뉴, 순두부 백반으로 통일을 합니다. 저와 은미 언니는 배멀미 걱정 때문에 밥 한 공기를 반씩 나누어서 먹었지요. 그런데 이 집(이름은 모르겠고요^^) 순두부 맛은 제법 괜찮았던 것 같아요.
식사를 하고 나오니, 배가 곧 뜰 수 있다는 소식입니다. 터미널로 가니 다른 여행객들은 이미 승선을 마쳤습니다. 우리 팀이 거의 꼴찌로 올라탔지요. 검표원들에게 “왜 이리 늦으셨냐?”는 쿠사리(?) 한마디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해요. ^^
시스타 3호였나, 일단 자리를 잡은 뒤 몇몇 형들은 선실 구경을 하신다고 이층과 이곳저곳 살피시는 것 같았지만 전 그냥 잠들기로 합니다. 멀미를 피하는 특효약이 ‘잠’이라는, 회장님의 경험담을 미리 들어서지요.
잠결에 듣기로도 파도가 심하니 자리를 뜨지 말아달라는 방송도 있었던 것 같고, 강릉서 3시간 남짓 걸린다는 뱃길은 높은 파도로 서행한 탓에 한 시간 지연돼 연착한다는 방송도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3박을 하고, 강릉으로 나올 때는 정확하게 3시간 걸린 뱃길이었지요.
그렇게 4시간여를 달린 우리는 정오가 넘어 저동항에 내렸습니다. 검은 구름으로 가득 찼던 뭍의 새벽하늘과 달리, 울릉도는 볕 좋은 날씨로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첫눈에 들어오는, 저동항 주변 언덕배기의 오밀조밀하게 낡은 집들과 풍경은 시골스럽고, 질박한 모습 그대로였지요. 저동항에서 미니버스로 도동항 쪽으로 이동, 숙소에 짐을 푼 뒤 점심을 먹었습니다. 3일 동안 아침과 점심을 제공했던 ‘국이랑, 밥이랑, 안주랑’^^에서.
첫날, 오후 일정은 울릉도 해안 일주도로 드라이브입니다. 도동에서 출발하여 사동항→통구미→ 현포항까지 이어지는 울릉도 북쪽의 해안도로입니다. 거북바위와 송곳봉, 코끼리바위, 황토굴, 삼선암 등 기묘한 형상의 바위와 봉우리들이 계속해서 눈을 떼지 못하게 했습니다. 물론 호박엿 공장도 들렀지요.
이날 오후가 되면서 울릉도 날씨는 급변했습니다. 풍랑도 거세졌고, 기온도 무척 차가워졌지요. 우리가 입항한 이후 3일 동안 이곳에서 더 이상 배는 뜨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길안내를 맡아주었던 기사분은 첫 날 "3박 4일 푹 쉬시다 가실 생각을 하셔야 할 것"이라고 했던 것도 같아요. 하지만 우리가 탔던 버스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온 이들도 있었거든요.
첫 여정을 시작하면서 울릉도가 ‘3무 5다’의 섬이라는 버스기사분의 멘트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내용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버스로 이동하면서 중간중간 졸음이 쏟아지기도 했고요. 아, 울릉도는 화산 바위섬이라, 또 향나무가 많아 뱀을 들여와도 3일 이상을 살지 못한다는 말은 기억이 또렷하게 납니다.^^ 도동으로 되돌아올 때에는 졸다가 핸드폰이 주머니에서 떨어진 줄도 모르고 아주 잘 잤슴다. 쿨쿨 ㅠㅠ 하루 지나 버스 좌석 틈새에서 다시 찾았지만^^.
약소고기, 홍합밥, 씨껍데기술, 문어 숙회...
이미 카톡 실시간 중계(?)로 보셨지만, 이번 여정에서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은 역시 맛 여행이지요. 첫날 저녁으로 고른 메뉴는 약소고기입니다. 약초를 먹여 키운다는 쇠고기 구이입니다. 그래선지 육질이 정말 부드럽고(그런데 이렇게 부드러운 건 약소가 아니라고 하던데^^), 또 씹을수록 고소하더군요. 약소고기는 명이절임에 먹어야 제맛. 이 집에서 명이절임을 먹을 수 있었지요. 하지만 만만찮은 가격 때문에 다음 메뉴는 불고기구이로 정합니다. 이 또한 전호(산미나리) 샐러드와 함께 먹으니 그 독특한 맛과 향이 일품입니다.
또 다른 별미 홍합비빔밥(보배식당)은 둘째 날 저녁 메뉴였지요. 홍합밥에 곁들인 몇 찬의 나물들이 참 맛있었던 곳입니다. 식사를 마칠 무렵, 이곳 사장님이 ‘사모님’들만 드시라며 전호로 담근 물김치를 내주셨는데, 이 또한 특별한 맛이었어요.
울릉도에서 처음 맛본, ‘마가목’ 열매 껍질을 넣어 만들었다는 ‘씨껍데기(껍질이 맞지요^^)’ 술맛도 독특했습니다. 한방약의 향도 나는 것도 같고.... 이 막걸리는 나리분지에 있는 식당에서 맛볼 수 있었는데, 너울성 파도로 하루 일정이 연기되면서 얻은 행운이었지요.
울릉도에서의 마지막 밤, 저동항에서의 저녁만찬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이 만찬은 특별히 컴불 형이 쏘셨지요. 문어숙회와 한치찜, 소라, 해삼, 멍게 등으로 입 호강을. 또, 국물이 시원했던 매운탕도 맛있었어요. 이날 먹은 한치찜은 1만원에 한 접시(2마리)였는데, 전 날 저녁 숙소에서의 회식을 위해 도동항의 한 식당에서 3~4마리에 8만원을 지불해야 했던 알 형과 댕기 님은 그저 아깝다며 장탄식을 했답니다. 그런데 갓 쪄낸 싱싱한 한치 맛이 (댕기 님 표현대로 가격대비^^) 정말 그만이었습니다.
특히 이날 우리 중에 저동항 만찬시간이 특별했던 분은 그린랜드 형이셨지요. 25년 전 기획하셨다던 ‘울릉도 쇼’의 그 무대가 바로 이날 소주를 마셨던 그 장소였다니 말이지요. 이날 술자리를 정리하면서 누군가가 그러셨습니다.
“10년 후 2023년 3월 3일, 이곳에서 다시 모여 소주 한 잔 하는 걸로 합시다.”
우리 모두는 힘찬 건배로서, 그 약속을 무조건 따르는 걸로 했답니다.
성인봉(984m) 산행
우리 팀의 둘째 날 오전 일정입니다. 알 형은 처음에 대원사 코스로 계획을 했다가, 아침식사 중 식당 사장님의 권유로 코스가 바뀌었는데, (댓글에서 이미 읽으셨겠지만) 참 잘한 선택이었다는 결론이었지요. 도동에서 택시를 타고, KBS 중계소가 있는 곳에서 들머리 삼아 왕복 5시간여가 소요되는 코스입니다. 들머리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린 아이젠을 신어야 했습니다. 고도를 높이면서 쌓인 눈은 30센티미터가 족히 되는 듯 스패츠까지 착용해야 할 정도였지요.
급사면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역시 만만찮은 위험이 산재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인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마치 산수화의 화폭처럼 이어지는 능선들과 동해바다의 일망무제는 오르면서 느꼈던 그 무서움(?)을 떨쳐내기에 충분했지요. 컴불 형께서 오르는 사람 일일이 순서대로 독사진을 찍어주셨지요.
우리 팀 중 산행 경험이 많지 않으셨던 은미 언니께서 조금 힘들어하셨지만, 산행 코스의 2/3 지점까지 너끈하게 다녀오셨으니 이 또한 대단하시다고 할 밖에요. 저와 서승교 선배님이 바로 앞서서 내려온 뒤, 희망과용기 형이 후미 대장을 맡아 애써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산 중, KBS와 대원사 코스 갈림길에서 알 형이 조금 더 늦게 내려왔거나, 제가 좀 더 빨리 내려왔다면 저는 길을 잃고 미아 신세가 될 뻔했지요. 아, 생각만 해도 등줄기에서 땀이....^^
성인봉 산행 이후에는 관음도와 죽도가 한눈에 내려다 뵈는 울릉도의 동쪽 해안길 드라이브와 봉래폭포, 내수전 일출 전망대 산책로 등 저로서는 체력적으로 다소 버거운 일정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오후에 걸었던, 저동항에서 도동항까지 잇는 해안 산책로, 정말 울릉도 여행의 하이라이트(산행이 아닌^^)라 해도 될 만큼 아름다웠어요. 우측으로 펼쳐지던 기기묘묘한 암벽들도 인상적이었고요, 행남등대 가는 길의 해송에서 뿜어져 나오던 솔향기도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번 일정에서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면, 끝내 우리에게 독도 입항을 허락하지 않았던, 심술맞은 봄바람, 그 너울이었겠지요. 대신, 숙소에서 멀지 않았던 독도박물관을 들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또 그 높은 파도 덕분에 우리는 예정에 없던 나리분지엘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
여행기, 혹은 산행기를 쓸 요량이었다면 간단하게라도 기록을 해 두는 것인데....^^
제가 요새 좀체 시간 여유가 없어 두서없는 짧은 기록으로 대신합니다.
못다한 이야기는,
긴~ 댓글로다 이 여행기를 완성시켜 주셨으면 합니다.^^
첫댓글 애썼다. 몇 가지 오류가 있고 빠진 대목도 여럿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더 이상 자세히 얘기해주지 말자. 울릉도 여행에 동행한 사람끼리만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자꾸나. ㅋㅋㅋ.
4일 일정을 줄여서 간소하게 쓰려다 보니...빠트린 대목이 많아요... 시간이 되면 빠짐없이, 좀더 사실적으로, 재밌게 쓰고도 싶었는데용 ㅎ~
형, 자체검열을 해 보이 '먹거리 이름' 빼고는 죄다 한 글자씩 틀렸더라구요.
내수전 일출 전망대, 행남등대, 섬에서 길을 잃다, ㅋ 동서남북 방향감각 상실 등등
여튼 고쳤어요. 흐흐
일 하다 잠깐 들렀는데....ㅠㅠ...나도 가고 잡다. 그래도 알 형이 약오르지 말라고 단톡에서 절 빼주시는 배려를 하신 덕분에 염장질 당하는 것은 면했다는.... 10년 뒤에는 저도 갑니다.꼭!!!!
단톡이 뭔가 했네...ㅎㅎ
오솔길,수고 많았다.짧게 정리하려해도 길어질 수 밖에 없는 3박4일의 기록이기에 더욱 수고했어.^^
그리고 3무는 도둑,공해,뱀이고 5다는 바람,물,돌,미인,향나무 였는데,다 수궁은 가는데 미인은 글쎄올시다. . .
3무 5다였네요, ㅎㅎ
아 또 울릉도에 뱀이 살지 못하는 이유가 향나무의 향 때문이라고도....ㅎ
쓰느라 수고했다. 다시 울릉도의 신선한 공기가 생각나는 듯하다. 담엔 또 어딜 가서 색다른 시간을 보내볼까나? 그나저나 알아, 의상능선인가는 잘 다녀왔지? 난 일이 있어서 못갔지마는 애초에 니가 날 배제한 기미가 역력해!!! 바위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내모습을 니가 알믄서 코스 잡은 거 보면...아니 내가 안 가리라는 조짐을 너무 흘렸나?@#$% 별로 안 그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