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310) - 얼룩진 가정들, 화목이 중요하다
현충일이 낀 주말연휴에 가문의 전통인 화목과 우애를 다지는 친목여행을 다녀왔다. 행선지는 통영과 거제 일원, 산수가 아름다운 남녘의 명승지를 돌아보며 세파에 시달리는 심신을 추스르고 활력을 다지는 행복한 나들이였다. 지천명을 지나 이순, 고희에 접어든 사촌과 장조카 등 열네 명이 참여하여 3일간 이어진 남녘여행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1. 산자수려한 통영, 관광인파로 붐비다
현충일인 첫날, 아침에 일어나 조기를 달고 오전 10시부터 국립현충원에서 거행된 제59회 현충일기념행사를 지켜본 후 서울에서 전날 내려온 사촌 동생부부, 청주에서 내려 온 장조카와 함께 오전 11시 넘어 광주를 출발하였다. 서울에서 출발한 일행들과는 통영의 마리나 리조트에서 오후 3시 쯤 합류하기로 하였는데 고속도로가 막혀 서울 팀은 예정시각보다 늦게 도착하였다. 통영 시내에 들어서서 해안가의 숙소까지 이동하는데도 한 시간 넘게 걸리는 등 연휴의 나들이 인파로 남녘의 휴양도시가 크게 북적인다.
오후 5시경에 여장을 푼 일행들은 리조트에서 시작되는 한산도 대첩길 해안산책로로 나가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며 걷기에 나선다. 그중 일부는 낚싯대를 드리우는 일에 골몰하고. 한 시간여 산책을 즐기고 나니 저녁 먹을 시간이다. 이틀 후에 회갑을 맞는 사촌동생이 저녁을 내겠다고 앞장선다. 동생이 정한 저녁 메뉴는 굴전, 굴 무침 등 여러 가지 굴이 코스로 나오는 굴 정식(통영은 굴의 명산지)이다, 저녁을 들고 인근에 주차해 둔 승합차에 올라 한참을 기다려도 여성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사연인즉 잡화점에 들러 누비옷과 가방 등을 사느라고 지체한 것이다. 통영은 누비제품으로 유명한 곳임을 알고 미리부터 눈독을 들였나보다. 리조트와 길가의 상점에는 꿀빵이 명물이라는 선전이 요란하다. 내친 김에 꿀빵도 맛보기로.
리조트에서 단잠을 잔 일행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나둘 짝을 지어 경관이 아름다운 산책길로 나간다. 취향 따라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두 시간의 산책코스를 다녀오는 발걸음들이 가볍다. 지역마다 아름답게 가꾼 걷기코스들이 개발되고 있는데 해상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한려수도의 산책길은 그중의 엄지손가락에 속할 듯. 바쁜 일상에도 한 번 쯤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2. 6.25를 되새긴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전날 사온 꿀빵과 라면, 과일 등으로 간단히 아침을 들고 오전 9시에 본격적인 주변탐방에 나섰다. 리조트에서 살핀 관광코스에는 삼도수군통제영, 한산도 뱃길, 미륵산 케이블 카, 해상 요트 타기 등이 있는데 우리는 드라이브 코스가 아름다운 미륵도 일원을 돌아본 후 거제도를 다녀오기로 하였다. 미륵도는 꽤 많은 어촌과 수산과학기지가 자리 잡은 해양수산전진기지, 그 중 섬의 남쪽에 통영시 관광개발공사가 세운 수산과학관이 볼만하다. 각종어류와 해양 정보를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수산과학관을 한 시간여 돌아보고 통영 이웃 고을인 거제시로 향하였다.
크게 베푼다는 뜻을 담은 거제시는 제주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데 신라 경덕왕 때부터 독립된 행정구역을 이루었고 지금은 삼성중공업, 대우조선 등 굴지의 조선소가 들어선 인구 23만의 활기 있는 경제도시로 우뚝하게 일어서는 중이다. 그곳에 6.25 전쟁 중에 17만 여 명의 포로가 사로 잡혀 수용된 포로수용소가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담고 있고 15만의 피난민이 이곳을 거쳐 간 구휼의 터전이기도 하다.
먼저 찾은 곳은 6.25 한국전쟁의 아픔을 딛고 통일을 염원하는 역사의 현장인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다. 때마침 6.25가 낀 6월, 우리 가족도 두 명이나 머물렀던 포로수용소를 찾는 감회가 별다르다. 이전부터 있던 것을 더 확장하고 개발하여 작년에 새로 문을 연 유적공원 탐방은 6.25전쟁의 실상과 폐해, 자유를 박탈당한 포로들의 열악한 수용소 생활과 내부 암투, 폭동 등의 아픈 상처를 실감나게 되새길 수 있어서 유익한 방문이었다. 한 시간 여 이를 돌아보며 6.25 때 백만 명이 넘는 군인과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것, 160여만 명의 미군이 참전하였고 그 중 3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을 비롯하여 16개국의 유엔참전 용사와 희생자들의 추억과 고난이 서린 것들을 제대로 알아두었으면.
수용소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오후 1시가 넘었다. 인근의 음식점 골목에서 점심을 들고 바다와 해안 경치가 절경인 거제도 일원을 차창으로 살피며 일주하였다. 연휴기간이어서인지 바닷가 명승지에 차량들이 긴 줄을 이어 해금강에 이르는 남녘 바닷길을 빠져나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도로변에 코스모스처럼 가늘고 긴 노란 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어 더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가 되었다. 정확한 꽃 이름이 무엇인지 궁금한데 아는 이가 없다. 돌아와 인터넷을 살피니 중국코스모스가 이와 비슷하나 확실하지 않아 거제시청 관광과에 물으니 금잔화라고 대답한다. 아무리 보아도 금잔화는 아닌 것 같은데 너무나도 샛노란 네 이름이 무엇이더냐. 김춘수(金春洙: 1922-2004) 시인의 유명한 시, 꽃 한 구절로 아쉬움을 달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3. 어두움 밝히는 연필등대와 초록이 짙은 지리산자락
셋째 날 아침, 리조트 앞의 요트와 작은 배들이 정박한 선착장 쪽으로 산책을 하였다. 300여 미터 전방의 유리관으로 세운 뾰족한 등대가 있는 곳까지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다리가 놓여 있다. 다가가서 살피니 2009년에 세운 연필등대라 적혀 있다. 당대의 문인들 중 시인 유치환, 김춘수, 시조시인 김상옥, 소설가 박경리 등이 통영이 배출한 인물들이라며 문인들이 글로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역할과 밤바다의 어둠을 밝히는 등대의 기능이 같은 것임에 착안하여 이곳에 문필등대를 세운다는 취지다. 산세가 붓을 닮았다하여 문필봉이라 이름 지은 곳은 더러 보았으나 등대를 연필에 비유하여 세운 것은 처음일 터, 가뜩이나 어두움이 가득한 세태를 돌아보며 그 발상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아쉬운 것은 등대 주변에 버린 지 오래된 쓰레기들이 가득한데 이를 치우지 않고 방치한 것, 30여분을 등대 오가는 길의 쓰레기 줍기로 보냈다.
이틀간의 휴식을 마치고 오던 날의 교통체증을 감안하여 일찍 출발하기로 하였다. 가는 길목에 있는 지리산 청학동을 경유하기로 하고. 청학동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도인촌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가파른 돌판 길을 따라 막바지에 있는 천제궁에 이르니 백발이 성성한 도인이 툇마루에 앉아 있다가 어디서 왔느냐며 옆 자리에 앉기를 권한다. 인사를 나눈 후 제단이 있는 방에 들어가 대화를 이어갔다. '유불선합일갱정유도의 청학동 청강 김덕준'이라고 새긴 명함을 건넨 도인은 천하의 대운이 바야흐로 한반도에 돌아와 작은 나라가 능히 만국 중에 우뚝 서는 기운이 이곳을 중심으로 뻗치고 있다며 모처럼 열리는 시대의 기운을 따라서 나라와 개인이 잘 되기를 기원하노라고 조용한 음성으로 그가 체득한 천기를 전파한다. 800여 미터 높은 산자락의 맑은 공기처럼 번잡한 시류에서 한발 비껴선 도인의 말에 고개를 숙여 감사함을 표하였다.
도인촌에서 내려오니 점심시간이다. 점심메뉴는 주차장이 넓은 관광안내소 주변의 통나무 식당에서 주문한 산채정식이다. 갖가지 싱싱한 산채와 밑반찬이 개운하고 정갈한 편, 일행 모두 깊은 산중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음에 드나보다. 점심을 들고나니 오후 1시 반, 초록이 짙푸른 산자락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 후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맑은 바다와 짙푸른 송림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경관의 휴양지에서 시원한 바람, 좋은 음식, 수려한 경관을 맛보고 감상하며 즐겁고 행복한 가족여행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지리산에 들어가기 전 휴게소에서 예배 겸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가족모임이 있을 때마다 빠뜨리지 않는 행사이기도 하다. 살핀 성경구절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이는 하나님이시라'(잠언 16장 9절)과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 17장 1절)이다. 이번 가족나들이가 읽은 성경구절처럼 우리가 마음으로 계획을 세웠으나 가는 곳을 인도하며 깨침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요 가문의 긍지요 전통인 화목과 우애를 더욱 돈독하게 다질 것을 확인하는 뜻을 새기며. 이번 지방선거를 통하여 일부 후보자들의 맨 얼굴을 드러낸 얼룩진 가정의 모습들이 안타까웠다. 후보들 만이랴. 우리 모두 화목한 가정을 가꾸는데 힘을 쏟자.
* 이번 나들이 코스인 통영과 거제, 지리산을 처음 찾은 가족도 있고 여러 차례 다녀온 가족도 있다. 어쩌면 특정한 장소보다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더 중요할 터. 이에 더하여 각 지역이 갖는 역사와 문화, 자연을 관찰하고 감상하는 것도 과외의 소득이었다. 동생들이 카톡으로 전해 온 여행소감, '모두들 잘 도착하셨지요? 3일 동안 아주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또 이런 기회 마련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도 감사하고 행복했어요.', '형님이랑 동생들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내가 보낸 답신, 모두 즐겁게 참여하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