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인 황현주하고의 여행은 각별했습니다.
모든 일정이 나를 어렵게 했지만, 그럭저럭 , 겨우겨우 견딜수 있었습니다.
황현주는 나의 사내중학교 친구들이 내게는 보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친구들로부터의 격려와 칭찬이 나를 견디게 한다고 이야기하는데에 인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친구들의 진정한 지지가 나를 늘 긴장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바꾸어서 나의 동창친구들도 나의 이러한 생각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이옥'의 따님 결혼식을 축하합니다.
동시에 모친상에 슬픔을 견디시는 필주란선생님께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기쁜일을 나누면 두배가 되고 슬픈일을 나누면 반쪽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하면 정말 그렇습니다.
사내중학교 동창들이 바로 그렇게 함께 나누기 때문에 우리가 늘 경험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모두에게 서로 가르치고 있는 격입니다.
춘천에서 그렇게 수고하는 지량이와 희진이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습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춘천의 박희진이를 만나지 못한 일입니다.
만나는 일은 고사하고, 전화로라도 제대로 인사한번 나누질 못했습니다
희진에게 아직까지 미안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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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화천까지 나와주었던 석권이와 종덕이가 그렇게 반가웠구요...
사실, 화천의 정군수가 방문해 줄것을 종용했지만 내심 기대는 종덕이와 석권이를 만날수 있다는 기대가 더 컸습니다.
내가 그 옛날 그렇게 기억하고 싶어서 석권이와 종덕이에게 화천에서 '다방'을 가 보자고 얼토당토않게 졸랐습니다.
화천읍내에 다방이 꼭 한 군데 있었습니다.
어렸을적의 다방은 나에게 화려했는데...형광등이 켜져있는 어항이 있고 , 폭신한 의자에 성냥개피를 갖고 놀수있는 반들반들 탁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의 다방에선 여지없이 그러한 기억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지저분했고 아늑한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화천군수님을 만났습니다. 스스로 게획한 프로젝트에 열성적인 모습이 아직도 여전했습니다.
5월26일 종공원 준공식에 고르바조프가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르바조프가 세계적인 유명세는 있지만 오히려 나는 평화에 대한 화천군민의 소박한 의지를 고르바조프가 훼선을 하지 않을까...염려를 했습니다. 그는 실패한 정치인 이상도 아님이 서서히 역사적으로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것 없다는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그의 유명세는 가치가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이해를 하기 때문에 그의 화천방문을 염려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종공원 관련해서는 그 취지와 본질이 퇴색되어질까......좀 우려도 되었습니다.
멧세지는 '평화"에 대한 최선이어야 합니다. '평화"란 개념은 상황과 조건에 의해서 달라져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정의', '평화'란 명분하에 얼마나 많은 죄악이 행해졌는지...우리가 늘 그것에 긴장해야 합니다.
승리로서 쟁취한 '평화'란 있을수 없습니다. 어쩌면 가장 완벽한 '평화'란 패자에서 찾을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화천의 종공원에서 말하는 평화는 완벽한 '평화'를 주장해야 합니다.
세월이 흘러도, 상황이 변해도 그 본질이 한결같이 전해질수있는 그러한 평화 이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과시(튀기위해서)하기 위해서 '평화'란 이름이 남용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이 ...바로 그것이 평화를 만들어가는 소박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화천서 돌아오면서 나는 황현주하고 화천의 종공원에 대한 그러한 일말의 우려에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화천의 평화는 바로 이종덕의 얼굴과 같아야 합니다. 순박하고 소박한 그러한 순백의 평화이어야 합니다.
작지만 이쁘고, 투박하지만 변치않을 그러한 정신이어야 합니다.
석권이하고는 춘천의 자취생활에 대한 기억을 피할수 없습니다.
17, 18살때의 우리들 마음엔 커다란 포부가 아니었습니다.
춘천도 도회지라고 사내면 광덕리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석권이를 보니까...그는 아직도 그러한 순박한 생각의 부스러기가 보였습니다.
탈색된 내 마음이 그의 앞에서 들키고 말았습니다. 석권이는 오히려 내 건강에 걱정이 있었습니다.
걔하고의 우정은 정말로 각별했습니다. 그때도 주름잡힌 얼굴이었는데 석권이의 어머님이 아직까지 광덕리 그곳에 여전하시다니
오히려 그가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석권이는 가장 적응이 안되는 ...늘 쪼그려 앉아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그런 촌스러움이 배어 있었습니다.
종덕이의 거무티티한 얼굴에선 한국인의 가장 건강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종덕이를 보면 한국이란 나라가 든든하게 여겨집니다.
바로 저러한 "늠름한 상"에서 한국의 미래가 보인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요.../?
나라가 위태로울때에 기득권층에선...양반들은...권력자들은...많이 갖은 자본가들은 ...어디론가 모두 사라졌지만...그들을 탓하지 않고 묵묵히 목숨을 걸고 나설수 있는 그러한 묵직한 기상을 나는 종덕이한테서 봤습니다. 정말로 자랑스런 친구상입니다.
종덕이는 부천의 성호네 병원까지 와 주었습니다. 그가 사태골을 그리워 하는 나를 위해서 된장과 고추장을 가져 왔습니다.
오늘, 뉴욕의 토요일입니다. 나는 종덕이로 부터 선물로 받은 그 고추장과 된장을 안주 삼아서 소주한잔을 했습니다.
사창리와 광덕리를 다녀오지 못한것을 아쉬어 하면서 ...뉴욕의 주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부천의 성호네 병원서의 모임이 즐거웠습니다.
성호는 늘 정성으로 우리 모드를 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복이 많습니다. 성호를 생각하면 모두가 그런 생각일 것입니다.
성호의 형님도 정말로 좋은 분이었습니다. 나는 성호네 형제의 우애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운배회장이 늘 기도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우리 모두를 위해서 기도를 햇습니다. 정말로 큰 선물이었습니다.
친구들의 과분한 환영이라는 황현주의 의견에 동의를 하면서도, 만일에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섭섭했을것이란 생각입니다.
그 일요일 가족과 함께 할 시간에 종덕,운배,성호,명국,석주,병선,용하,수용,선학,인숙,정자,정숙이가 부천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춘천에서 강원대총장과 만나는 자리에선 지량이가 나와 주었습니다..지량이를 볼때엔 이제는 좀 우울한 생각마저 들게 됩니다. 그가 우리 모두의 희망이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지량이는 이번에 목표를 확실히 했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지량이의 그것을 위해서 적극 도와야 한다는 것을 친구들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화요일 돌아오는 날 아침에, 나는 여의도 국회의원들과 간담회를 갖었습니다.
지난해 11월 부터 워싱턴DC를 방문했던 한국의 내노라하는 한국의 국회의원들 행태가 너무나 망신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서 '월간조선5월호'에 더 이상 그렇게 도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사실을 기초로 기고를 했습니다.
내가 기고를 했다는 것 보다는 월간조선측에서 그러한 내용을 좀 써 달라는 요청에 고민하다가 응했습니다.
그 글이 바로 내가 여의도에서 의원들과 만나는 그 날에 발간이 되어서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당사자 의원님들이 나를 향해서 많이 섭섭해 했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도 편치가 않았습니다.
만일에 기회가 되면 친구들이 한번 볼수도 있습니다. 월간조선 5얼호 입니다.
나의 이번 한국방문의 목적은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안정되고 편안하게 하기위한 유력한 미국정치인 한국방문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습니다.한국이 세계에서 알아주는 강력한 국가중의 하나인데...놀라웁게도 미국의 정치인과 한국의 민간차원의 교류가 전무하다는것 입니다. 이스라엘 대만, 중국, 그리고 인도와 여타의 아시아국가들도 이러한 일에 경쟁적입니다. 우리나라는 외교부의 맹점이 있습니다. 전략이 없고 늘 관성적인 행태가 한국외교의 모습입니다. 돈을 퍼 부으면서 성과가 없습니다. 워싱턴DC내 각국의 대사관저(대사가 사는 집) 중에서 한국대사관저가 가장 화려한 저택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외교에 돈은 많이 붓고 있지만...성과는 미비합니다. 울화통 터지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나는 기회가 있을때마다 의지를 갖고서 적극적인 의견을 낼 생각입니다. 이번에 내가 모시고 갔던 인디애나 출신의 Dan Burton의원이 아주 만족해 하고 있습니다. 그가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 연방의회에서 한국을 위해서 내가 할수있는 일이 무엇인가../ 언제든지 알려달라...' 란 멧세지가 왔습니다. 작지않은 성과입니다. 힘들었지만 보람입니다.
나는 이번에 서울서 차인표씨를 만났습니다.
그 분의 생활을 알고서 나는 그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나를 존경한다고 했고 내가 쓴 글을 읽고 많은 부분 동의한다고 했습니다.
차인표씨는 나보다 어리지만 그의 생활 방식은 나보다 성숙했습니다.
일본군에 끌려가서 청춘을 유린당한 피해자 할머니들을(경기도 양평족의 나눔의 집) 그와 함께 방문 했습니다.
그는 그러한 할머니들을 진정으로 섬기고 위로했습니다. 할머니들의 고통은 우리의 잘못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진정한 회개의 모습을 그에게서 찾았습니다. 그는 늘 ㅡ기도하는 생활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차인표가 오히려 나를 존경한다고 내 호텔로 찾아온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나는 늘 이러한 부끄러움의 반복으로 철이 들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워싱턴 의회에서 위안부결의안을 통과 시키는데에 앞장섰던 마이크 혼다 의원에게 나는 차인표를 소개했습니다.
우리가 늘 배워야 한다는 것에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동창들이 나눔의 모범을 보였으면 하는 바램을 갖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수있고,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열흘만에 돌아왔는데...
떠날때엔 앞마당의 목련꽃의 봉우리를 보고 떠났는데...돌아와 보니까...목련이 만개해서 이미 꽃잎이 덜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건강하길 바라구요...
모두의 모든일이 순조롭길 바랍니다.
따듯한 마음으로 늘 환영해 주는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밤을 그냥 이렇게 넘기고 말았네요...
이미 6시 새벽이네요...
뉴욕서 김동석.
첫댓글 칭구 동석 몇번에 기회가 있었지만 만나지 못해 서운해. 글구 여러 방면으로 가슴 짠한 마음으로 우리에 자랑거리 칭구야. 부인과 함께한 자리 못가서 더 아쉽구만 느을 행복하고 건강하렴
이제는 안주 하고픈 시기인 것 같은데, 동석의 글을 읽으면 계속 긴장된 진행형이구먼. 우리 친구들의 우정이 네게 힘이 된다니 고마울 뿐이네. 건강 하시게...
동석아~! 글이 올려 있으니 무척 반갑다. 정자가 니가 너무 피곤해 보인다고 얼마나 걱정을 했다고...현주씨도 피로는 좀 푸셨는지? 너의 순수한 열정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도 하고, 반성도 하고~~ 건강하렴*^^
한국에서의 빠듯한 일정에 고생 많았수다..말일 뉴욕가서 연락하리다..
부천 모임 전날 화천 온 김에 혹시 광덕리에서 옛생각하며 자는 줄 알고, 방해 않으려고 전화 안했드니 그게 아니었구만! 어쨌든 종덕이가 된장 고추장 선물했으니 잘 됐네!! 자세한 내용은 이멜 보내마. 다녀간 모든 일들이 잘 진행되었다니 반갑다.건강해라.
안녕! 이렇게 밤 새우면 안 되는데...글 반갑고 건강하세요.
우리딸결혼을제일먼저축하해줘서고마워,,,이번에못만나서섭섭하네 현주씨도꼭한번보고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