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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금은 소박한 꿈을 꿀 때가 아닙니다.
이 나라엔 정치 혁명이 필요합니다.”
미국 대선 가도에 등장한 태풍의 눈,
버니 샌더스의 정치 인생을 총괄한 자서전
1972년 첫 공직 선거 출마 득표율 2%, 40년 후 2012년 상원의원 선거 득표율 71%,
벌링턴 시장 4선, 연방 하원의원 8선, 연방 상원의원 2선,
한 도시와 한 주에서 성공시킨 정치 혁명을 이제 한 나라에서 성공시키기 위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민주사회주의자.
보수적 미국 사회에서 감히 ‘정치 혁명’을 외치는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버니 샌더스의 정치 혁명』은 2016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거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무소속 정치인 버니 샌더스의 정치 회고록이자 자서전이다. 샌더스는 1941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가난한 페인트 판매원의 아들로 태어나 시카고 대학의 학생운동과 인종차별 철폐 운동, 시민운동에 몸을 담고 1981년 버몬트 주 벌링턴 시장에 출마하여 단 10표 차이로 당선된 이후 시장 4선, 연방 하원의원 8선, 연방 상원의원 2선을 역임하고 있다. 이 책은 이 모든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남북전쟁 이후 100여 년간 공화당만 지지해온, 미국 내에서도 가장 보수 성향이 강했던 버몬트 주를 버니 샌더스가 어떻게 미국 진보정치의 진원지로 탈바꿈시켰는지 세밀하게 회고하고 있다.
1퍼센트가 모든 것을 소유하고 99퍼센트는 정치 참여에서마저 소외되고 있는 상황에서 샌더스는 선거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 혁명’이라고 역설한다. 평생의 일관된 소신과 원칙으로 마침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한 한 정치인의 유장한 회고와 정치 혁명의 길은,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는 한국 현실에서 많은 공감과 메아리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버니 샌더스
저자 버니 샌더스 (BERNIE SANDERS)는 “더 이상은 안 됩니다(ENOUGH IS ENOUGH). 우리에겐 정치 혁명이 필요합니다.”라고 외치며 미국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 버니 샌더스는 1941년 뉴욕 시 브루클린에서 가난한 페인트 판매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카고 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진보적 학생운동에 참여하고 1981년 버몬트 주 벌링턴 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이후 벌링턴 시장 4선, 미국 연방 하원의원 8선을 연임하고 현재 재선으로 미국 연방 상원의원직을 수행 중이다.
민주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를 표방하며 민주, 공화 양당 체제와 거리를 둔 무소속 정치인으로 일관되게 중산층과 빈곤층, 노동 계층과 소수자들을 대변하고 거대 자본과 과두제 정치 구조를 비판해 왔다. 버몬트 주를 기반으로 40여 년간 정치 활동을 하면서 남북전쟁 이후 100년 이상 공화당만을 지지하던 보수의 아성 버몬트 주를 풀뿌리 진보 정치의 진원지로 바꿔 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타협으로 2010년 12월 부자 감세 연장 법안이 상정되자 상원에서 8시간 35분 동안의 의사진행방해 연설을 펼쳐 일약 전국적인 진보 정치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2015년 4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하고 있다.
역자 : 홍지수
역자 홍지수는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KBS에서 뉴스 앵커로 일하면서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을 마쳤다. 컬럼비아 대학교 국제학대학원과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행정대학원에서 각각 국제무역과 환경정책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 정부의 정보통신부 차장, 리인터내셔널 무역투자연구원 이사로 일했다. 옮긴 책으로 『짝찾기 경제학』 『월든: 시민불복종』 『연애와 결혼의 과학』 『고령화 시대의 경제학』 『방황하는 개인들의 사회』 『자유』 『일본의 한국식민지화, 담론과 권력』 『뇌를 훔치는 사람들』 등이 있다.
목차
* 추천의 글 : “이 사람은 진짜로구나”─ 이재명(성남시장)
* 추천의 글 : “한국의 ‘버니 샌더스’는 어디에 있는가” ─ 조성주(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
* 개정판을 펴내며
프롤로그 / 투쟁과 낙관에 관한 기록
1. 정치 혁명의 출발점
상대 후보의 때 이른 도전 / 돈줄과 기교가 좌우하는 선거판 / 페인트 판매원의 아들, 상원에 도전하다 / 양당체제 벗어난 관점 전파하기 / 제3정당의 역할과 한계 / 행동하지 않는 노동자들 / 벌링턴 시장 출마: 연대란 이런 것이다! / 선거운동 전 체크리스트 / 기적 같은 10표 차 당선
2. 공화당 텃밭에서 진보 정치 구현하기
출마 선언 / 지긋지긋한 언론의 행태 / ‘벌링턴 인민공화국’의 탄생 / 시 의회의 훼방 놓기 / 우리는 눈부신 시정을 펼쳤다 / 벌링턴 시장의 외교 정책 / 진보연합의 약진 / 풀뿌리 소액 기부로 맞서다
3. 무소속의 외로운 행군
‘벌링턴 혁명’을 확산시켜라 / 연이은 낙마 / 뭐야, 또야? / 버몬트 주, 역사를 만들다 / 의회에 입성한 아웃사이더
4. 우리도 이길 때가 있다
최저임금 법안 통과 / 선거 앞두면 당론보다 여론 / 흥미로운 좌우 연대: 샌더스-스미스 수정안 /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 / 누가 전쟁에 찬성하는가 / 자취를 감춘 반전론 / 버니, 목소리가 왜 그래요? / 버몬트 농부들을 위한 싸움
5. 의회는 희생양을 찾는다·
없는 자끼리 싸우게 하라 / 보수의 필승 카드, 호모포비아 / 민주당의 급격한 붕괴 / 투표는 생각하지도 마 / 스위처, TV 광고 돌입하다 / 샌더스식 선거운동의 목표 / 프로그레시브 코커스를 결성하다 / 회기 마지막 순간의 만장일치
6. 지역구에서 발품 팔기
민주당은 왜 버니를 지지하나 / 전당대회, 각본 있는 쇼 / 거리집회와 지역축제에서 어울리기 / 건강보험, 특권에서 권리로 / 시민에게 알려라, 그들이 반대하게 하라 / 가까스로 3선 의원 /“그건 버몬트답지 않아”/ 공화당 인베이전
7. 버니 샌더스를 떨어뜨려라
버니가 세금을 천 달러 올렸다고? / ‘미국과의 계약’의 정체 / 시민 교육, 정치의 역할 / 기업으로 흘러들어가는 세금 / 네거티브 선전에 대응하는 자세 / 진흙탕 싸움을 벌여야 하나
8. 무엇을 할 것인가
빈부격차 해결하기 / 민주주의를 회생시킬 묘책들 / 노동자에 정당한 보상을 / 국가 정책 우선순위 재조정 / 국가건강보험 도입과 공교육 강화 / 99퍼센트, 아웃사이더에서 국가의 주인으로
에필로그 /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 아웃사이더
공화당의 아성을 뒤엎다 / 마음을 얻는 비결 / 월스트리트 합의를 거부하다 / 미국을 감동시킨 8시간 35분의 연설 / 원내 전략과 원외 전략 / 함께하는 정치 혁명
* 고마운 사람들
* 버니 샌더스 연표
출판사 서평
버니 샌더스가 직접 쓴
솔직 담백한 정치 자서전
원더박스의 신간 『버니 샌더스의 정치 혁명』은 2016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에 나서서 거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무소속 정치인 버니 샌더스의 정치 회고록이자 자서전이다. 올해 4월 샌더스의 대선 출마 선언 이후 미국 서점가에는 그의 정책, 연설 등을 담은 단행본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지만, 샌더스 자신이 직접 집필하고 정치 인생 전반을 담은 자서전은 이 책이 유일하다.
버니 샌더스는 1941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가난한 페인트 판매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카고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뛰어들고 베트남전 반대 평화운동, 인종차별 철폐운동과 노동운동에 참여하면서 민중주의자, 민주사회주의자로 성장해갔다. 중산층과 노동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민주, 공화 양당 체제에 반감을 느끼고 1981년 무소속으로 버몬트 주 벌링턴 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민주당 후보를 단 10표 차이로 제치고 당선한 후 시장 4선, 연방 하원의원 8선을 역임하고 연방 상원에 진출하여 2선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대선에 도전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버니 샌더스의 정치 혁명』은 소상하게 담아낸다.
-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 책은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정치적 전기다. 나와 내 동료들이 버몬트에서 이룩한 몇 번 안 되는 값진 승리의 기록도 담겨 있지만, 수많은 선거운동 실패와 좌절된 시도 역시 담고 있다. (미국에서 정치적 좌익의 입지를 고려하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은 경제적 사회적 정의라는 비전을 간직하기 위해 벌이는 투쟁에 관한 책이요, 그 비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낙관주의에 관한 책이다. (본문 37~38쪽)
선거에 임박해서 출간되는 정치인 전기라는 것이 후보의 명분과 업적을 포장하기 위한 지루하고 의례적인 이야기를 잔뜩 포함한 경우가 없지 않은데, 이 책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솔직하고 직설적이며 유머러스하다. 민주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하여 평생 색깔론에 시달렸을 74세 정치인의 표정이 저리도 맑은 이유가 짐작된다.
- “의회에서 유일한 무소속 의원의 선거총괄본부장 구함. 민주사회주의와 무소속 정치에 대한 식견을 지닌 사람. 반드시 버몬트와 시골에서의 삶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함. 주 80시간 근무. 대단한 책임감의 소유자. 형편없는 급여.” (본문 79쪽)
- 당장 시장이라는 직위에 걸맞은 옷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였다. 당시에 나는 양복이 한 벌도 없었고, 코듀로이 캐주얼 재킷 한두 벌과 넥타이 몇 점이 전부였다. 미국에서 제일 옷 잘 입는 시장이 되거나 정장을 자주 할 생각은 없었지만 차림새를 말끔히 한다고 손해 볼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룻밤 사이에 옷장에 걸린 내 옷이 두 배로 늘어났다. (본문 107쪽)
- 자, 1만 7,000명의 노동자를 해고하는 대가로 중역들이 9100만 달러의 상여금을 받는다는 사실만 해도 기가 찰 지경인데, 설상가상으로 내 입법 활동 보좌관인 빌 굴드는 그 상여금 가운데 3100만 달러가 국방부의 ‘구조조정 비용’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방 정부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선심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된 즉시 나는 국방부가 그 상여금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정안 초안을 작성했다. 상상해 보라. 자기를 해고한 개자식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주는 데 자기가 낸 세금이 쓰인다고 말이다. (본문 176쪽)
공화당의 백년 아성 버몬트 주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나?
버몬트 주는 샌더스를 연방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으로 연속 선출해준 정치적 고향이지만, 본디 미국 남북전쟁 이전부터 100년 이상 공화당의 아성으로 존재하던 지역이다.
- 1854년 ‘그랜드 올드 파티’ 창당 후 첫 한 세기 동안 공화당은 다른 주에서는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버몬트 주의 정치를 지배했다. 100여 년 동안 공화당 진영은 주 전체를 관장하는 주요 공직 선거마다 매번 승리했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1964년 배리 골드워터의 경우를 제외하고 1856년 존 프레몬트에서부터 1988년 조지 H. W. 부시에 이르기까지 공화당 소속 대통령 후보들이 버몬트 주 선거인단 표를 휩쓸었다. 상원의원 선거도 워터게이트 사건이 일어난 1974년 민주당 후보 패트릭 레이히가 1,000표도 안 되는 차이로 (그리고 자유연합당 후보로 출마한 버니 샌더스와는 상당히 큰 표 차로) 공화당 후보에게 승리해 의석 한 자리를 차지한 일 외에는, 공화당 후보들이 계속 이겼다. 남북전쟁 이전부터 제퍼즈가 66퍼센트 득표율로 당선된 2000년 선거까지 공화당은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본문 366쪽)
버니 샌더스가 처음 시장에 당선되자 민주, 공화당으로 이루어진 시 의회는 그가 제청한 각료 임명을 모두 거부했다. 1년 동안 그의 주요 참모들은 시장실이 아닌 샌더스 자택 테이블에 앉아서 회의하며, 무보수로 시정 업무를 보아야 했다. 이러한 고장에서 무소속 민주사회주의자로서 거대 정당들로부터 견제당하고 보수적 매체들의 공격 표적이 되면서도 연전연승을 거둔 것은 특별한 선거운동 비결이 있어서가 아니다. 샌더스는 정치를 평범한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희망을 제시하는 일로 보았고 의회에 자신들을 대변해줄 사람 하나 없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정치적 대변인을 선출하면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 나가는지 차근차근 보여주었다. 시 행정 업무에서는 어떤 관료나 보수 인사들보다 철저히 주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면서도 예산을 절감해냈다. 그가 시장으로 8년을 재직하고 퇴임할 때 벌링턴 시는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환경과 문화 선진 도시로 꼽혔다.
- 한 어르신이 일간지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가 떠오른다. 그 분은 이렇게 적었다. “나는 사회주읜가 뭔가는 모르겠소이다만 샌더스는 도로정비 하는 일 만큼은 제대로 하더이다.” (본문 117쪽)
샌더스는 선거운동이 벌어지면 TV 광고와 매체 선전전으로 가득하고 워싱턴 출신의 정치 컨설턴트들이 활개 치는 선거운동 방식을 무시하고 가가호호 방문과 불과 수십 명의 주민들이 참여하는 타운 미팅을 끝도 없이 전개했다. 이러한 진정성은 버몬트 주민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가 외치는 민주사회주의란 것이 결코 과격하거나 불순한 이념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이고 국민 대다수의 바람을 담은 정치라는 점을 인식시킬 수 있었다.
- 버몬트 주민들은 민주사회주의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 버몬트 주민들은 민주사회주의가 북한 공산주의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민주사회주의는, 우리 나라의 경제와 정치를 소수 억만장자 집안들이 장악하는 상황을 두고 보지 않겠다는 뜻임을 버몬트 주민들은 알고 있다. 또한 민주적이고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고, 모든 사람이 버젓한 일터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가능케 하는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고, 소수 부유층과 권력층이 아니라 평범한 미국인을 대변할 정부가 필요하다는 뜻임을 알고 있다. 버몬트 주민들은 내 뜻을 정확히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난 선거에서 71퍼센트를 득표했고 버몬트 주에서 가장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들에서도 이긴 것이다. (본문 400쪽)
1972년 사회운동가이자 풋내기 정치인 버니 샌더스는 연방 상원의원을 뽑는 선거에 첫 출마를 하여 겨우 2퍼센트의 득표를 했다. 정확히 40년 후인 2012년 그가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얻은 득표율은 71퍼센트였다. 40년간 정치 노선을 한 번도 바꾸지 않고, 색깔론에 주눅 들지 않고, 시류에 영합하거나 거대 양당에 굴하지 않고 버몬트 산골을 누빈 풀뿌리 정치인의 승리였다.
한 정치인의 진정성이
보수적 사회에 정치 혁명의 꿈을 불러일으키다
2012년 12월 부시 정부에서부터 실시되어온 부자 감세 연장 법안이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의 타협으로 의회에 상정되자 버니 샌더스는 상원에서 8시간 35분 동안의 의사진행방해 연설을 펼쳐 일약 전국적인 진보 정치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버니 샌더스는 2015년 4월 30일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출마 선언 직전 전국 지지율은 힐러리 클린턴 61.6퍼센트, 샌더스 8.7퍼센트에 불과했지만 11월 25일 현재 두 후보의 지지율은 56.6%와 31.7%로 꾸준히 좁혀지는 상황이다. 첫 민주당 코커스와 프라이머리가 열릴 아이오와 주와 뉴햄프셔 주를 대상으로 한 9월의 여론조사에서는 샌더스가 힐러리를 누르고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버니 샌더스 돌풍이 거세다. 무엇이 미국인들로 하여금 한적한 버몬트 출신의 이 사회주의자 정치인에게 열광하게 만드는 것일까. 샌더스는 선거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들을 깨우치고 조직하여 정치의 역학을 바꾸는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 선거운동은 그저 표를 얻고 당선되는 일 이상의 무엇이어야 한다. 사람들을 깨우치고 조직되도록 돕는 일이어야 한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정치의 역학관계를 바꿀 수 있다. 이 나라 국민의 80퍼센트에서 90퍼센트가 투표에 참여한다면, 그들이 중요한 사안이 뭔지 알게 된다면, 그리고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당당히 요구할 수 있게 된다면, 워싱턴 정가와 의회는 현재 거대 자본이 장악한 의회, 거대 자본이 원하는 사안들만 다루는 의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본문 404쪽)
정치인 대다수가 보수화의 물결에 편승할 때, “아니오, 그럴 수는 없소.”라고 단호하게 99퍼센트의 국민을 위한 정치를 외치며 한 도시를 바꾸고 한 주를 바꾸는 데 평생을 바쳐온 버니 샌더스의 진정성
책속으로
나는 뉴욕 주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중하위 계층 집안에서 자랐고 경제적으로 쪼들리면 집안에 긴장감과 우울한 분위기가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페인트 판매원으로 날이면 날마다, 달이 가고 해가 가도 열심히 일했다. 먹고 살기에는 모자람이 없었지만, 방 세 개 반짜리 월세 아파트에서 나와 우리 집을 장만해 이사하는 어머니의 꿈을 이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 p.49
규모가 작은 자유연합당에서 딱히 너도나도 이 두 의석에 출마하겠다고 나서지는 않았다. 무엇이 옳고 정의로운지에 대한 신념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던 나는 손을 번쩍 들고 교육, 경제, 베트남전쟁에 대한 내 의견을 밝혔다. 한 시간 후 나는 상원에 출마할 자유연합당 후보지명을 따냈다. (중략) ‘따냈다’라는 말은 지나치게 관대한 표현이다. 사실 나 말고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만장일치로 선택되었다. --- p.53
미국에서 제3의 정당은 끊임없이 소멸하는 게 현실이었다. 토론이 끝난 후 항상 청중 가운데 누군가가 내게 전화를 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곤 한다. “버니, 당신이 한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오. 하지만 제3당 후보에게 투표해서 내 표를 사표(死票)로 만들고 싶지는 않소.” 나는 그런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 p.56
미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정치적 위기는 노동자들이 행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조원 5퍼센트만 정치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해도 우리는 이 나라의 경제 사회 정책을 대대적으로 전환할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저소득층 노동자는 투표를 하지 않고, 정치가 자신의 삶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다. --- p.66
경찰노조의 지지 표명은 내 선거운동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었고 매체에서 비중 있게 다루었다. 베트남전쟁 반전 운동가였던 좌익 민중주의자가 법과 질서를 책임지는 경찰노조의 지지를 얻다! 저소득층,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주택 소유자들, 환경보호주의자들, 임차인들, 노조원들, 대학생들, 교수들, 이제 경찰들까지, 우리가 결성한 연합 세력은 함께 힘을 합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서로에게 다져 주었다. 우리가 ‘정치적 연합’을 결성했다는 사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미국에서 희망의 불씨를 다시 살리는 길은 여럿이 힘을 모으는 것임을 우리는 뉴잉글랜드 지역에 있는 작은 도시에서 깨달았다. --- p.75
두 달 후 시장이 공식적으로 내각 조직을 발표하는 날, 시 의회는 내가 임명한 사람들을 모두 거부했다. 어불성설이었다. 방금 치열한 선거 끝에 내가 패배시킨 사람이 이끌던 행정부와 내 정치적 목표를 강력하게 반대하던 사람들을 데리고 시정을 이끌라는 말인가. 우리가 중요한 결단을 내릴 때마다 시 의회는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시 의회 표결 결과는 늘 같았다. 11대 2. 민주당 여덟 명과 공화당 세 명이 한편이 되고 테리와 새디가 다른 한편이 되었다. 민주당의 전략은 그리 복잡한 게 아니었다. 내 손발을 묶어서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게 한 다음 내 무능을 주장하면서 시장직을 도로 낚아채는 것이었다. --- p.112
나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고 강력한 경쟁자도 없는 것으로 여론조사에 나타났지만, 나는 1989년 4월 시장에서 물러났다. 8년이면 충분했다. 4월 말, 벌링턴 시장으로서 마지막으로 시 의회 회의에 참석했다. 시 의회와의 첫 만남보다 마지막 만남이 훨씬 훈훈하게 마무리되어서 정말 기뻤다. 민주당, 공화당, 진보 진영 시의원들은 내가 시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있었던 주요 사건이 실린 기사들로 아름다운 콜라주를 만들어 나에게 헌정했다. --- p.127
선거 때마다 버몬트 주민들로부터 받은 개인 소액 기부 건수는 내가 훨씬 많지만 전체 모금액에서는 늘 경쟁자들에게 뒤졌다. 내가 받은 기부금 평균액은 35달러에 못 미친다. 나와 경쟁하는 공화당 후보의 기부금 평균액은 항상 훨씬 높다. 이를테면, 스위처는 버몬트 주 최고 부자들로부터 1,000달러짜리 수표를 긁어모은다. 딕 아미가 참석한 500달러짜리 모금 행사에서 조성한 3만 달러는 말할 나위도 없고 말이다. --- p.129
역시 매체를 상대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나중에 내가 하원의원에 당선된 후 《AP》 버몬트 지국 편집장이 워싱턴으로 가서 내가 능력 있는 의원인지 여부에 대해 긴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가 어떤 결론을 내렸을지 상상해 보라. 하지만 이제 끝난 일이다. 다 지나간 일이다. 되새길 가치도 없는 일이다. 《AP》와 나는 이제 화해했고 진정으로 정치인과 언론으로서 철저히 공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럴까? 정말로? 나 참. --- p.142
벌링턴 시에서는 진보 진영이 민주당을 밀어내고 정권을 차지했기 때문에 모두가 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정통 민주당 지지자 상당수가 내가 연설할 때 일어나 돌아서서 침묵시위를 하기도 했다. 연설을 마치고 내 자리로 돌아왔을 때 청중 가운데 한 여성이 내 따귀를 갈겼다. 흥미진진한 밤이었다. --- p.145
아미는 혼신을 다해 최저임금 인상을 막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실제로 행동에 옮겼다. 공화당 지도자는 표결을 최대한 지연시켰다. 하원 공화당 콘퍼런스 의장 존 베이너는 최저임금 인상안이 통과되면 자결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물론 그는 자살하지 않았다. 공화당의 명예를 정말로 지켜야 할 때나 좀 나서지 않고. --- p.169
전쟁을 정당화하고 칭송하는 매체의 선동이 점점 확대되고 강화되는 상황에서 반대표를 던지기란 어려웠다. 얼마 전 183명의 의원이 전쟁을 반대하고 경제제재를 계속 가한다는 데 찬성표를 던졌었다. 그런데 집계 결과를 알리는 전광판을 보니, 하나같이 찬성표를 던지고 있었다. 카드를 기계에 꽂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하원의원 경력은 오래가지 못하겠구나.” 나는 반대 버튼을 눌렀다. 나 외에 반대 투표한 의원은 겨우 다섯 명이었다. 집계 결과는 399대 6이었다. 그 투표 기록은 이후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녔다. 선거 때마다 경쟁자들은 나를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전쟁 와중에 버니 샌더스는 미군을 지지하는 데 찬성하지 않았다.” 새빨간 거짓말이자 현실 왜곡이지만 30초짜리 라디오 광고에서는 잘 먹혀들어 간다. --- p.189쪽
나는 벌링턴 시장이 됐을 때 투표율을 거의 두 배로 끌어올렸다. 왜일까? 우리가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위해 맞서 싸우겠다고 분명히 말했고 또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은 이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우리를 지지했다. 투표를 하면 변화가 생긴다는 걸 믿게 되면 그들은 투표를 한다. 이 나라의 지배 계층은 투표율을 억누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미국은 선진국들 가운데서 유권자의 투표 참여율이 가장 낮다. --- p.225쪽
우리 다섯 명은 합심해 ‘프로그레시브 코커스’를 결성했다. 세월이 가면서 우리 코커스는 꾸준히 성장했고 우리 코커스 사상 최대의 결전, 즉 뉴트 깅리치와 그가 밀어붙이는 반동적인 의제 ‘미국과의 계약’에 맞선 투쟁에 임할 때 즈음해서는 회원 52명이 소속된 막강한 코커스로 성장했다. 나는 1991년 프로그레시브 코커스 의장에 선출된 이후 계속 의장직을 유지해 왔다. --- p.241
비보가 들려 왔다. 우리가 예측하고 우려한 일이 일어났다. 스위처가 부정적인 TV 광고를 하고 있다. 대대적으로. 정치에서는 매체 컨설턴트들이 사용하는 효과가 입증된 공식이 있다. 추악하지만 이따금 먹혀들기도 한다.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고 아무리 애써도 지지가 답보 상태에 머무르면, 이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경쟁자의 신뢰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유권자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선택지 두 개만 남게 된다. 유권자들이 최악과 차악 가운데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면 이길 승산이 생긴다. 지금 스위처 진영은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있다. --- p.297
부의 분배가 점점 불평등해지는 추세를 뒤집으려면 지난 20년에 걸쳐 부유층에게 제공한 세금 혜택을 철폐해야 한다. 1971년부터 1981년까지의 기간 동안 중위소득 가구가 지불하는 사회보장세와 소득세의 합이 329퍼센트 급증했는데, 소득 100만 달러 이상인 개인과 가구가 내는 세금은 34퍼센트 감소했다. 민주당의 지원을 받은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 최고 부유층에 적용하는 연방세율 상한선을 70퍼센트에서 28퍼센트로 낮췄다. 1953년, 기업들은 총 세수의 33퍼센트를 부담했다. 오늘날에는 10퍼센트가 채 안 된다. 1980년대에는 수십억 달러를 버는 기업들 가운데 세금을 땡전 한 푼 내지 않은 기업들도 있었다. --- p.334
미국인들은 뉴스의 85퍼센트를 TV로부터 얻는다. 그리고 그 뉴스들 대부분은 주요 방송국 여섯 군데에서 제공한다. NBC는 제너럴일렉트릭(GE), CBS는 웨스팅하우스, ABC는 디즈니, 폭스(FOX)는 우익 성향의 억만장자 루퍼트 머독이 소유하고 있다. CNN은 최근 세계 최대의 연예사업복합체인 타임워너가 사들였다. ‘공영’ TV 역시 점점 다양한 기업 이익집단에서 장악력을 강화하고 있다. --- p.342쪽
20년 전 미국 노동자들이 임금과 수당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것도 노조가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순위가 오늘날 세계 13위로 떨어진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954년, 노동자 3명 가운데 1명은 노조원이었다. 오늘날에는 6명 가운데 1명이 채 되지 않는다. --- p.350쪽
우리가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미래로 나아가 수천만 명의 미국인이 적극적으로 정치적 절차에 관여하고 그들의 권리와 그들 자녀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는 날이 오면, 의회 의원 대다수는 비로소 부유층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이익을 대변하게 된다는 희망이 나를 지탱한다. 그런 날이 오면 나 역시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