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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lio-eJ8TLw8 < 1:29:12
[TV문학관] 154화 감자 | (1984/10/20)
감자 / 김동인
싸움, 간통, 살인, 도둑, 구걸, 징역, 이 세상의 모든 비극과 활극의 근원지인, 칠성문 밖 빈민굴로 오기전까지는 복녀이 부처는(사농공상의 제이위에드는)농민이었다.
복녀는, 원래 가난은 하나마 정직한 농가에서 규칙있게 자라난 처녀였었다.
이전 선비의 엄한 규율은 농민으로 떨어지자 부터 없어졌다. 하나, 그러나 어딘지는 모르지만 딴 농민보다는 좀 똑똑하고 엄한 가율이 그이 집에 그냥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서 자라난 복녀는 물론 다른 집 처녀들같이 여름에는 벌거벗고 개울에서 멱 감고, 바지바람으로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을 예사로 알기는 알았지만,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막연하나마 도덕이라는 것에 대한 기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열다섯 살 나던 해에 동네 홀아비에게 팔십 원에 팔려서 시집이라는 것을 갔다. 그의 새서방(영감이라는 편이 적당할까)이라는 사람은 그보다 이십년이나 위로서,
원래 아버지의 시대에는 상당한 농민으로서 밭도 몇마지기가 있었으나, 그의 대로 내려오면서 하나 둘 줄기 시작하여서, 마지막에 복녀를 산 팔십 원이 그의 마지막 재산이었다.
그는 극도로 게으른 사람이었다. 동네 노인의 주선으로 소작 밭깨네 얻어주면 종자나 뿌려둔 뒤에는 후치질(땅을 갈고 흙덩이를 부수는 것)도 안하고 김도 안 맹고 그냥 버려두었다가는,
가을에 와서는 되는 대로 거두어서 '금년은 흉년입네.'하고 전줏집에는 가져도 안가고 자기 혼자 먹어 버리곤 하였다. 그러니까 그는 한밭을 이태를 연하여 붙여본 일이 없었다.
이리하여 몇 해를 지내는 동안 그는 그 동네에서는 밭을 못 얻으리만큼 인심과 신용을 잃고 말았다.
복녀가 시집을 온 뒤, 한 삼사년은 장인의 덕으로 이렁저렁 지내갔으나, 예전 선비의 꼬리인 장인도 차차 사위를 밉게 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처가에까지 신용을 잃게 되었다.
그들 부처는 여러가지로 의논하다가 하릴없이 평양 성안으로 막벌이로 들어왔다. 그러나 게으른 그에게는 막벌이나마 역시 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지게를 지고 연광정에 가서 대동강만 내려다보고 있으니,
어찌 막벌이인들 될까. 한 서너 달 막벌이를 하다가, 그들은 요행 어떤 집 막간(행랑)살이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집에서도 얼마 안되어 쫓겨나왔다. 복녀는 부지런히 주인 집 일을 보았지만, 남편의 게으름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만날 복녀는 눈에 칼을 세워가지고 만편을 채근하였지만,
그의 게으른 버릇은 개를 줄 수는 없었다.
"남 졸음 오는데, 님자 치우시관."
"내가 치우나요?"
"이십 년이나 밥 처먹구 그걸 못 치워."
"에이구, 칵 죽구나 말디."
"이년, 뭘!"
이러한 싸움이 그치지 않다가 마침내 그 집에서도 쫓겨 나왔다.
이젠 어디로 가나? 그들은 하릴없이 칠성문 밖 빈민굴로 밀리어 나오게 되었다.
칠성문 밖을 한 부락으로 삼고 그곳에 모여있는 모든 사람들의 정업은 거지요, 부업으로는 도둑질과(자기네끼리의) 매음, 그밖에 이 세상의 모든 무섭고 더러운 죄악이었다.
복녀도 그 정업으로 나섰다. 그러나 열아홉 살의 한창 좋은 나이의 여편네에게 누가 밥인들 잘 줄까.
"젊은 거이 거랑질은 왜?"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는 여러 가지 말로, 남편이 병으로 죽어가거니 어쩌니 핑계는 대었지만, 그런 핑계에는 단련 된 평양 시민의 동정은 역시 살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 칠성문 밖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 가운데 드는 편이었다. 그 가운데서 잘 수입되는 사람은 하루에 오리짜리 돈푼으로 일원 칠팔십전의 현금을 쥐고 돌아오는 사람까지 있었다.
극단으로 나가서는 밤에 돈별이 나갔던 사람은 그날 밤 사십원을 벌어 가지고 그 근처에서 담배장사를 시작한 사람까지 있었다.
복녀는 열아홉 살이었다. 얼굴도 그만하면 빤빤하였다. 그 동네 여인들의 보통 하는 일을 본받아서, 그도 돈벌이 좀 잘하는 사람의 집에라도 간간 찾아가면, 매일 오륙십전은 벌 수가 있었지만,
선비의 집안에서 자라난 그는 그런 일은 할 수가 없었다. 그들 부처는 역시 가난하게 지냈다. 굶는 일도 흔히 있었다.
기자묘 솔밭에는 송충이가 끓었다. 그때 평양부에서는 그 송충이를 잡는데(은혜를 베푸는 뜻으로) 칠성문 밖 빈민굴의 여인들을 인부로 쓰게 되었다.
빈민굴 여인들은 모두 지원을 하였다. 그러나 뽑힌 것은 겨우 오십 명 쯤이었다. 복녀도 그 뽑힌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복녀는 열심으로 송충이를 잡았다. 소나무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는 송충이를 집게로 집어서 약물에 잡아넣고 또 그렇게 하고 그의 통은 잠깐 새에 차곤 하였다.
하루에 삼십이 전씩의품삯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 그러나 대엿새 하는동안에 그는 이상한 현상을 하나 발견하였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젊은 여인부 한 여남은 사람은 언제나 송충이는 안 잡고
아래서 지절거리며 웃고 날뛰기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놀고 있는 인부의 품삯은 일 하는 사람의 삯전보다 팔전이나 더 많이 내어주는 것이다.
감독은 한 사람뿐이었는데 감독도 그들의 놀고 있는 것을 묵인할 뿐 아니라 때때로는 자기까지 섞여서 놀고 있었다.
어떤 날 송충이르 ㄹ잡다가 점심때가 되어서 나무에서 내려와서 점심을 먹고 다시 올라가려 할 때에 감독이 그를 찾았다.
"복네! 얘, 복네!"
"왜 그릅네까?"
그는 약통과 집게를 놓고 뒤로 돌아섰다.
"좀 오나라"
그는 말 없이 감독 앞에 갔다.
"얘, 너, 음.....데 뒤좀 가보자."
"뭘 하레요?"
"글쎄, 가야...."
"가디요, 형님!"
그는 돌아서면서 인부들 모여 있는 데로 고함쳤다.
"형님도 갑세다."
"싫다 얘. 둘이서 재미나게 가는데, 내가 무슨 맛에 가갔니?"
복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되면서 감독에게로 돌아섰다.
"가 보자."
감독은 저편으로 갔다. 복녀는 머리를 숙이고 따라갔다.
"복네 좋갔구나."
뒤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복녀는 숙인 얼굴른 더욱 빨갛게 되었다. 그날부터 복녀도 '일 안하고 품삯 많이 받는 인부'의 한 사람으로 되었다.
복녀의 도덕관 내지 인생관은 그때부터 변하였다. 그는 여태껏 딴 사내와 관계를 한다는 것을 생각하여 본 일도 없었다. 그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요, 짐승의 하는 것쯤으로 만 알고 있었다.
혹은 그런 일을 하면 탁 죽어지는지도 모를 일로 알았다. 그러나 이런 이상한 일이 어디 다시 있을까. 사람인 자기도 그런 일을 한 것을 보면 그것은 결코 사람으로 못할 일이 아니었었다.
게다가 일 안하고도 돈 더 받고, 긴장된 유쾌가 있고, 빌어먹는 것보다 점잖고....일본말로 하자면 '삼박자(三拍子)'같은 좋은 일은 이것뿐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비결이 아닐까.
뿐만 아니라 이 일이 있은 뒤부터 그는 처음으로 한 개 사람이 된 것 같은 자신까지 얻었다. 그 뒤로부터는 그의 얼굴에는 조금씩 분도 바르게 되었다.
일년이 지났다. 그의 처세의 비결은 더욱 더 순탄히 진척되었다. 그의 부처는 이제는 그리 궁하게 지내지는 않게 되었다. 그의 남편은 이것이 결국 좋은 일이라는 듯이 아랫목에 누워서 벌씬벌씬 웃고있었다.
복녀의 얼굴은 더욱 예뻐졌다. "여보, 아즈바니. 오늘은 얼마나 벌었소?" 복녀는 돈 좀 많이 벌은 듯한 거지를 보면 이렇게 찾는다.
"오늘은 많이 못 벌었쉐다."
"얼마?"
"많이 벌었쉐다가레. 한 댓냥 꿰주소고레."
"오늘은 내가...."
어쩌고 하면, 복녀는 곧 뛰어가서 그의 팔에 늘어진다.
"나한테 들킨 댐에는 뀌구야 말아요."
"난 원 이 아즈마니 만나믄 야단이더라. 자 꿰주디 그 대신 응? 알아 있디?"
"난 몰라요. 해해해해."
"모르믄, 안 줄 테야."
"글쎄, 알았대두 그른다."
―그의 성격은 이만큼까지 진보되었다.
가을이 되었다. 칠성문 밖 빈민굴의 여인들은 가을이 되면 칠성문 밖에 있는 중국인의 채마밭에 감자(고구마)며 배추를 도둑질하러 밤에 바구니를 가지고 간다.
복녀도 감자깨나 잘 도둑질하여왔다. 어떤 날 밤 그는 고구마를 한 바구니 잘 도둑질 하여 가지고 이젠 돌아오려고 일어설 때에 그의 뒤에 시꺼먼 그림자가 서서 그를 꽉 붙들었다.
보니 그것은 그 밭의 주인인 중국인 왕 서방이었다. 복녀는 말도 못하고 멀찐멀찐 발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 집에 가." 왕 서방은 이렇게 말하였다.
"가재믄 가디. 원, 것두 못 갈까."
복녀는 엉덩이를 한번 홱 두른 뒤에, 머리를 젖히고 바구니를 저으면서 왕 서방을 따라갔다. 한 시간쯤 뒤에 그는 왓 서방의 집에서 나왔다.
그가 밭고랑에서 길로 들어서려 할 때에 문득 뒤에서 누가 그를 찾았다.
"복네 아니야?"
복녀는 홱 돌아서 보았다. 거기는 자기 곁집 여편네가 바구니를 끼고, 어두운 밭고랑을 더듬더듬 나오고 있었다.
"형님이댔쉐까....형님두 들어갔댔쉐까?"
"나? 눅 서방네 집에, 님자는?"
"난 왕 서방네....형님 얼마 받았소?"
"눈 서방네 그 깍쟁이놈, 배추 세 패기...."
"난 삼원 받았다."
복녀는 자랑스러운 듯이 대답하였다. 십 분쯤 뒤에 그는 자기 남편과 그 앞에 돈 삼원을 내어놓은 뒤에 아까 그 왕 서방의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있었다.
그 뒤부터 왕 서방은 무시로 복녀를 찾아왔다. 한참 왕 서방이 눈만 멀찐멀찐 앉아 있으면, 복녀의 남편은 눈치를 채고 밖으로 나온다.
왕 서방이 돌아간 뒤에는 그들 부처는 일원 혹은 이원을 가운데 놓고 기뻐하고 하였다.
복녀는 차차 동네 거지들한테 애교를 파는 것을 중지하였다. 왕 서방이 분주하여 못 올 때가 있으면 복녀는 스스로 왕 서방의 집까지 찾아갈 때도 있었다.
복녀의 부처는 이제 이 빈민굴의 한 부자였다. 그 겨울도 가고 봄이 이르렀다. 그때 왕 서방은 돈 백원으로 어떤 처녀를 하나 마누라로 사오게 되었다.
"흥!" 복녀는 다만 코웃음만 쳤다.
"복녀, 강짜 하갔구만."
동네 여편네들이 이런 말을 하면, 복녀는 흥 하고 코웃음을 웃고 하였다. 내가 강짜를 해? 그는 늘 힘 있게 부인하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생기는 검은 그림자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놈 왕서방. 네 두고 보자."
왕 서방이 색시를 데려오는 날이 가까워졌다. 왕 서방은 아직껏 자랑하던 긴 머리를 깎았다. 동시에 그것은 새색시의 의견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흥!" 복녀는 역시 코웃음만 쳤다.
마침내 새색시가 오는 나리 이르렀다. 칠보단장에 사린교를 탄 색시가 칠성문 밖 채마밭 가운데 있는 왕 서방의 집에 이르렀다.
밤이 깊도록 왕 서방의 집에는 중국인들이 모여서 별한 악기를 뜯으며 별난 곡조로 노래하며 야단하였따. 복녀는 집 모퉁이에 숨어 서서 눈에 살기를 띠고 방안의 동정을 듣고있었다.
다른 중국인들은 새벽 두시쯤 하여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복녀는 왕 서방의 집 안에 들어갔다. 복녀의 얼굴에는 분이 하얗게 발리어 있었다.
신랑 신부는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것을 무서운 눈으로 흘겨보면서, 그는 왕 서방에게 가서 팔을 잡고 늘어졌다. 그의 입에서는 이상한 웃음이 흘렀다.
"자, 우리 집으로 가요."
왕 서방은 아무 말도 못하였다. 눈만 정처 없이 두록두록 하였다. 본녀는 다시 한번 왕 서방을 흔들었다.
"자, 어서."
"우리, 오늘 밤 일이 있어 못 가."
"일은 밤중에 무슨 일."
"그래두, 우리 일이...."
복녀의 입에 여태껏 떠돌던 이상한 웃음은 문득 없어졌다.
"이까짓 것."
그는 발을 들어서 치장한 신부의 머리를 찼다.
"자, 가자우, 가자우."
왕 서방은 와들와들 떨었다. 왕 서방은 복녀의 손을 뿌리쳤다.
복녀는 쓰러졌다. 그러나 곧 다시 일어섰다. 그가 다시 일어설 때는 , 그의 손에는 얼른얼른 하는 낫이 한 자루 들리어 있었다.
"이 되놈 죽어라. 이놈, 나 때렸디! 이놈아, 아이구 사람 죽이누나."
그는 목을 놓고 처울면서 낫을 휘둘렀다. 칠성문 밖 외따른 밭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왕 서방의 집에서는 일장 활극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활극도 곧 잠잠하게 되었다.
복녀의 손에 들리어 있던 낫은 어느덧 왕 서방의 손으로 넘어가고 복녀는 목으로 피를 쏟으면서 그 자리에 고꾸라져 있었다.
복녀의 송장은 사흘이 지나도록 무덤으로 못 갔다. 왕 서방은 몇 번을 복녀의 남편을 찾아갔다. 둘의 사이에는 무슨 교섭하는 일이 있었다.
사흘이 지났다. 밤중 복녀의 시체는 왕 서방의 집에서 남편의 집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시체에는 세 사람이 둘러앉았다. 한 사람은 복녀의 남편, 한 사람은 왕 서방, 또 한 사람은 한방의사.
왕 서방은 말없이 돈주머니를 꺼내어 십 원짜리 지폐 석장을 복녀의 남편에게 주었다. 한방의사의 손에도 십 원짜리 두 장이 갔다.
이튿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한방의사의 진단으로 공동묘지로 실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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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올린 노래 세 곡은
목단꽃 친구가 정모 마친 후
불렀던 노래
숨어 우는 바람소리 / 이정옥
갈대밭이 보이는 언덕 통나무 집 창가에
길 떠난 소녀같이 하얗게 밤을 새우네
김이 나는 차 한 잔을 마주하고 앉으면
그 사람 목소린가 숨어 우는 바람 소리
둘이서 걷던 갈대밭길에 달은 지고 있는데
잊는다 하고 무슨 이유로 눈물이 날까요
아~아~아 길 잃은 사슴처럼 그리움이 돌아오면
쓸쓸한 갈대숲에 숨어 우는 바람 소리
둘이서 걷던 갈대밭길에 달은 지고 있는데
잊는다 하고 무슨 이유로 눈물이 날까요
아~아~아 길 잃은 사슴처럼 그리움이 돌아오면
쓸쓸한 갈대숲에 숨어 우는 바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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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2008.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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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회자정리는 매일 꽃길만 걷고있네
마음속 풍경은 알수 없지만
앞날도 아름다운 꽃길만 걷길~~
사는거 별거 아니드라
행.불행은 각자 해석하기 나름이니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해석해서
행복하도록 하자
이미자의 "첫 눈 내린 거리 "
처음 들어 봤는데 넘 좋다
가슴에 와 닿고
좋은 노래 올려쥐서 고맙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이 비로소
재조명 될 시점이어라~ 경자년 시발점부터
찾아든 불청객 코로나19로 인해 우려. 불안.
공포감에서 이젠 상실과 침체, 체념과 포기
그리고 우울증까지 겪게 되는 건 아닐까낭 ㅎㅎ장기화 될 가능성 농후하니 그야말로
춘래불사춘이어라. 호시절에 날벼락이 웬말
이다냐 ㅎㅎ화무십일홍이어늘 아직은 너무
이른 백일홍을 기다린들 뭣하랴. 주변에
만개한 벚꽃이라도 즐겨야징~ㅣ첫눈 내린
거리라는 노래는 사당에서 쥐방 11월 정모
선.후배 뒤풀이 장소인 노래방에서 60쥐방
목단꽃 친구가 잘 불렀다지. 목단꽃 노래
듣고픈데 그 언제가 될 지 그 누구도 기약할 수 없어라.봄삐도 신곡 준비 중이시죵^ㅋ
친구야 온통 벚꽃이구나
그 벚꽃사이에 너의 얼굴도 담아보지 ㅎㅎ
화자정리는 늘 나그네 인생을 사는듯 해 보이네 ㅎ
바람따라 구름따라 계절따라 풍경따라 세월따라
아주 잘 흘러가고 있구나 ㅎ
너의 삶을 응원하마~~ㅎ
벚꽃 사이로 내 얼굴을 등장 시키라궁ㅎㅎ
건 곤란햐~ 큰바위의 얼굴은 잘 안 어울려징
화빈이가 언젠가 한양출두하면 실물 볼 수
있을 게야 볼만햐^ 기대햐 ㅋㅋ
내가 뜬구름 같은 삶을 지양하려 해도 처한
실제 상황과 달리 맘은 늘 낯선 먼 길을
지향하나니 앞날은ㅍ어찌 될지 나도 모르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삿갓 쓰고 죽장
집고 정처없는 길 떠날 때 화빈 친구가 응원의
노랠 들려주렴~ 님께서 떠~어난 길~은
영~광의 길 이옵~길을... ㅎㅎ안 어울리겠징
어쨌건 호시절 봄날을 지혜롭게 즐겨 봅세^
뜬금없이 질문을, 소주 잘 드시낭 노랜? ㅎㅎ
아 ..
김동인의 <감자>
노래도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