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ve and take’ 아닌 ‘give and forget’ 만신창이 조조 앞에 선 관우부하들에 ‘뒤쫓지 말라’ 명령 “남자로서의 우정의 낭만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도리에 어긋나지 않으면 우정은 유지된다고 말한다. 삼국지에 나오는 우정 가운데 백미가 관우와 조조의 우정이다. 관우의 충절과 무예와 의리에 흠뻑 빠져버린 조조는 관우를 꼭 자기 부하로 삼고 싶었다. 그러나 빛나는 미래가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관우는 유비 신하로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떠난다. “음, 과연 관우로구나. 신하의 도리를 다하려 하다니, 참으로 훌륭하다.” 감동한 조조는 관우가 떠나자 죽이자는 부하들에게 “쫓아가서는 아니 된다. 관우는 입은 은덕을 갚아 줬다. 군주에게 충절을 다하는 사나이의 삶의 모습이 아닌가!” 조조는 관우와 남자로서의 우정을 소중히 생각했다. 역사를 보면 소인배들과 달리 영웅은 우정과 의리를 중시한다. [TIP]관우의 義를 이용한 전략 “누구든 조조를 눈감아준 자는 사형에 처한다.” 적벽대전 후미전투에서 제갈공명이 조운, 장비, 관우를 조조가 도망칠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 보내면서 다짐했던 말이다. 그럼에도 관우는 군령을 어기고 조조를 살려 보냈다. 중국 사람들이 관우를 좋아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한다. 우정과 의를 중시하는 관우가 너무 멋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용도 전투에는 제갈공명의 전략이 숨어 있었다. 관우를 제압하지 않고는 유비 진영의 리더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 제갈공명의 의도적인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조조가 죽어서는 공명이 꿈꾸는 천하삼분지계가 불가능했다. 조조도 살아야 하고, 관우가 조조에게 진 빚도 갚고, 관우를 통제하면서 유비 진영의 리더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화용도 전투였던 것이다. 적벽에서 주유에게 화공으로 거의 전 병력을 잃은 조조는 오림으로 도망친다. 적벽대전 승리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면 조조를 죽이는 것이었다. 제갈공명은 조조가 도망칠 곳으로 예상되는 곳에 병력을 배치했다. 조운에게 군마 3000명을 주어 오림에 매복하게 했다. 장비에게도 3000명을 주어 이릉으로 가는 길을 끊고 호로곡 어귀에 매복하게 했다. 유기에게는 무창에 매복하도록 했으며 관우는 화용도에서 조조를 기다리도록 했다. 오림에 도착한 조조는 조운에게 공격당하자 혼비백산했다. 서황과 장합의 분전으로 겨우 탈출해 맹장인 허저와 합류한다. 조조는 이릉으로 가던 중 호로곡에서 잠시 쉰다. 그러나 그곳에는 장비가 매복하고 있었다. 허저의 분전으로 도망치는 데 성공하지만 조조의 군사는 만신창이가 된 채 겨우 100명만 남아 조조를 따르고 있었다. 조조는 화용도로 길을 잡았다. 드디어 적벽대전 화공 이후 최고의 백미라고 알려진 화용도 전투가 시작된다. 화용도는 오늘날의 호북성 감리현 변하향 조교촌으로 알려져 있다. 조조가 도망치던 길은 조교촌의 북쪽에서부터 모가진에 이르는 전체 길이 7.5킬로미터의 도로라고 한다.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한 때는 동짓달 한겨울이었다. 적벽대전 전후의 날씨 기록을 보면 전형적인 날씨 패턴을 따랐음을 알 수 있다. 공명이 화살을 구할 때의 날씨가 강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는 것은 이동성 고기압의 날씨였다. 공명이 남동풍을 부를 때는 강한 기압골이 접근하고 있을 때였다.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화공으로 참패를 하고 도망치던 때의 날씨는 춥고 비가 내렸다고 기록돼 있다. 겨울철 기압골이 통과하면서 비가 내리고 나면 추워지는 것은 정한 이치다. 한겨울임에도 비가 내린 것은 적벽대전이 벌어진 지역이 중국의 남부지역으로 한겨울에도 거의 비가 내린다. 큰 비가 내리면서 도망치는 조조 병사들의 군복은 완전히 젖어 있었다. 굶주림과 추위에 덜덜 떠는 모습이 보기에도 비참했다. 도망치던 조조가 화용도에 이르니 길은 온통 진흙탕이었다. 도저히 말이 지나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산양공재기(山陽公載記)에는 “조조가 함선이 불탄 후에 잔여부대를 이끌고 화용도에서 걸어서 돌아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울러 “도로는 질퍽거려 걸을 수 없었고 거센 바람까지 불어 조조는 이병에게 명령해 풀을 지고 다니면서 길을 메우게 했다. 이병은 부대원 중에서 전투력이 비교적 약한 병사나 부상병을 말한다. 이병들이 길을 수리해 가까스로 다닐 수 있게 하면 기병들이 돌진해 지나가는데 이병들의 생사는 전혀 안중에 없었다.” 이제 남은 병력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홀연 포성이 울리더니 관우가 언월도를 들고 나타나는 것이었다. 최악이었다. 유비의 군사 중에 최강의 부대였다. 조조의 군사는 지쳐서 싸울 힘조차도 없었다. “관우, 아직도 여전한가? 우정을 생각한다면 이 자리를 눈감아 주게.” 관우는 자기에게 은혜를 주었던 조조를 죽일 수가 없었다. 그는 병사들에게 “흩어져서 벌려서라! 그리고 뒤쫓지 마라”고 명령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남자 간의 우정으로 적군에게 관용을 베푸는 장면이 화용도 전투다. 관우의 우정에 호소해 목숨을 건진 조조는 남은 군사들을 수습해 근거지 허창으로 돌아간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