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교사인 호세 루이스는 말도 배우기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어린 아들이 열세살이 됐을 때
비둘기를 그린 캔버스를 아들에게 넘겨주며 비둘기 다리를 그리게 했는데,
아들의 빼어난 솜씨를 보고 감탄하면서 자신의 붓을 꺾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내 꿈을 이루어 다오."
그 아들이 후에 20세기 미술사의 흐름을 바꾸게 되는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 입니다.
"라파엘 처럼 그림을 그리는데 4년이 걸렸다,
그러나 어린아이처럼 그림을 그리는데는 평생이 걸렸다."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들이 커서도 예술가로 남을 수 있게 하느냐이다."
- 파블로 피카소 -
이 그림은 스페인 태생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입체파 화가이자 조각가인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그린
<늙은 기타 연주자(The Old Guitarist),1903> 입니다.
항구 도시 말라가에서 태어나 어릴적부터 부친으로부터 그 재능을 인정받았던 피카소는
20세기 최고의 거장으로 생전에 명예와 부귀를 넘치도록 누렸었지만,
그 역시 인정받지 못하고 작품이 팔리지 않아 곤궁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그의 궁핍과 좌절을 반영하듯 무겁고 음울한 색조로 일관되어 있는데,
특히 어두운 청색이 두드러지게 사용되었습니다.
1901년에서 1904년에 이르는 이 시기를 피카소의 '청색 시대(Blue period)'라 부릅니다.
문학을 하는 이들은 손으로 시를 쓰고 예술을 하는 이들은 붓과 악기로 시를 씁니다.
<늙은 기타 연주자>는 피카소가 하나의 색에 천착했던 청색 시대인 1903년 무렵에 그려진 걸작입니다.
핼쑥한 얼굴에 남루한 옷을 입은 한 늙은 음악가가 기타를 부여잡고, 거리에 주저앉아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화면 전체를 압도하는 어두운 푸른색은 어딘지 모르게 음울하고 비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늙은 악사의 몸은 알 수 없는 어떤 긴장된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데,
눈을 감고 있는 것인지,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깊이 감긴 눈에서는 무한한 슬픔과 비애가 느껴집니다.
야윈 얼굴, 가느다란 사지, 뼈만 앙상한 손가락 등은 당시 피카소가 심취했던,
'영혼을 그리는 화가' 엘 그레코(1541-1614)의 신비주의적 요소가 작품의 전반적 구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색채의 대비에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어둡고 차가운 푸른색이 지배적이지만, 기타만은 따뜻한 갈색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기타가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고달픈 삶의 마지막 끈을 붙잡고 있는 행위로 해석됩니다.
청색풍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피카소에게 색채는 하나의 상징이었습니다.
사실 1890년대 상징주의 화가들은 청색이 주는 우울과 고독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피카소에게 청색은 밤의 색이고 바다의 색이며 하늘의 색입니다.
즉, 깊고 차가우며 허무주의와 빈곤, 절망감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색이었습니다.
마치 블루와 모노톤(monotone) 이외의 색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화면은 푸른 빛으로 가득 차 있으며,
희망과 새로움의 블루가 아닌 우울과 관조, 죽음과 가까운 분위기를 띄어 신비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피카소는 19세가 되던 해에 세계 미술의 중심지인 파리로 향했지만
파리에서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꿈을 나누며 동행했던 시인이자 화가인 친구 카사헤마스가
실연의 충격으로 사랑하던 여인을 죽이려다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홀로 남은 피카소는 가난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짓눌린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인생에 우울한 푸른색의 장막이 드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피카소는 훗날 전기작가이자 친구인 피에르 덱스에게
"내가 청색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카사헤마스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부터이다"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화가는 충만과 공허를 겪는다. 또한 그것이 모든 예술의 비밀이다.
나는 퐁텐블로 숲을 산책하러 가고, 나는 녹색 소화불량에 걸린다.
나는 반드시 이 감각을 그림으로 옮겨 없애야 한다. 녹색이 그것을 지배한다."
아마도 피카소는 <늙은 기타 연주자>를 그리던 시기에 파란 소화불량에 걸려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늙은 기타 연주자>의 모습에 조지 프레데릭 왓츠의 <희망(1886)>에 나오는
리라를 가슴에 안은 눈 먼 여인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희망은 잠자고 있지 않은 인간의 꿈"이라 말했습니다.
단 한 줄만 남은 리라를 연주하는 여인이든, 늙은 기타리스트이든 무언가...
결코 놓지 말아야 할 것들을 꼭 끌어안고 있습니다.
늙은 기타리스트에겐 갈색의 기타가, 여인에게는 줄이 끊어진 리라가 있습니다.
어떤 불의의 상황이 닥치더라도 끝내 놓지 말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인양...
'미라보 다리'로 유명한 시인 아폴리네르는 피카소의 작품을
"눈물에 흥건히 젖은 예술, 촉촉한 계곡의 푸르름"이라 표현했습니다.
당시 피카소의 그림들은 대부분 거지와 부랑자, 매춘부 등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떠돌이들을 그린 것이었는데,
그림 속에서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비애감은 피카소 자신이 느끼고 있던 소외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림은 미리 생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제작 중에 사상이 변하면서 그림도 변한다.
그리고 완성 후에도 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변화한다" 라며
끊임없이 창조와 파괴를 통해 20세기 화단을 견인해 온 거장 파블로 피카소..,
피카소의 청색 시대는 소나기가 내리는 어느 날,
그의 거처였던 '바토라부아르(세탁선이라는 뜻의 아파트)에서 쾌활하고 육감적인 그의 첫번째 연인
페르낭도 올리비에 라는 보헤미안 화가를 만나면서 끝이 납니다.
고독과 불안속의 청년을 구원하는 길은 오직 사랑뿐인 것인지...
한 여인으로 인해 그의 검청색 구름은 말끔히 걷히고 보헤미안적인 서커스 문화에 심취하면서
본격적인 장밋빛 시대(1905-1907)가 열리게 되며,
결국 피카소는 20세기 미술사에 큰 획을 긋는 큐비즘(cubism, 입체주의)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청색시대의 작품들은 당시에는 외면받았지만,
최근에는 작품 속의 인물들이 주는 리얼리티와 그 희소성으로 인해 5만 여점이나 되는 피카소의 작품 중
가장 인기있는 작품이 되고 있습니다.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이 그림(82×122cm)은 현재 미국 시카고에 위치한 시카고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시카고 미술관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보스턴의 보스턴 미술관과 더불어
미국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출처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