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학] 그리스도인의 성장 : 주님의 기도
교회는 우리 자신이 아닌 하느님 뜻에 따라 살아가라고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런 가르침 앞에서 가끔 마음이 불편해질 때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시선을 느낄수록 유혹이 더욱 무겁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에게 유혹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소명에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지요.
‘주님의 기도’에는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청원에 대한 의구심은 그동안 줄기차게 제기되었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청원하는 것이라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유혹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빠지다(inducas)’라고 번역된 구절이 ‘인도하다’, ‘이끌다’라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생각하기에 따라서 하느님이 유혹으로 인도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해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유혹에 해당하는 명사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 라틴어로 tentatio]’는 그 자체로 ‘악으로 이끄는 유혹’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악에 점령된 상태의 인간을 방치할 수 있다는 식으로까지 해석될 여지가 있었지요. 그래서 여러 유럽권 교회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수정하기 위해 2020년에 ‘우리를 유혹에 버려두지 마소서.’라고 기도문을 수정하기도 했습니다.
성경에서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도록 명하는 분으로 표현되었고,(창세 22장 참조) 성령은 예수님을 광야에서 유혹을 받도록 이끄는(마르 1,12-13 참조) 분으로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확실히 볼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은 우리를 악으로 이끄는 분이 아니라 시험을 통해 성장시키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유혹이라는 단어 역시 ‘악에 빠뜨리는 유혹’이 아닌 ‘시험에 들게 하여, 성장하고 성숙할 기회를 얻게 하는 유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유혹에 버려두지 마소서.”라는 기도가 단지 하느님의 권능에 기대어 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청원이라면, 이는 하느님의 본성을 온전히 담지 못한 기도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능력 이상으로 시련(시험)을 겪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시련(시험)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십니다.”(1코린 10,13)
하느님은 악이 지배하는 유혹에 인간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악에 점령당하도록 유혹하는 이는 사탄이며, 그 악에 넘어가는 것은 인간일 뿐입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이 시험을 통해서라도 성장하기를 바라며,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돕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신실하심을 느끼며 기도해야 합니다. 시험의 상황에서 우리가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청하며, 또한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유혹에 우리를 버려두지 않도록 간청해야 하겠습니다.
[2024년 11월 10일(나해)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서울주보 5면, 전인걸 요한보스코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