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화요일엔 3월의 눈을 맞으며 경안천을 걸었다. 상쾌하고 좋았다. 겨우내 입던 검은 롱 패딩을 입고 추위를 막았다.
일주일 사인데... 오늘은 완전 봄날이다. 미세먼지는 잔뜩끼고... 검단산 오르는 길에 산수유 봉오리 맺힌 걸 보았다. 예정 대로 약수터까지 오르고 올랐던 길로 내려왔다.
쇼핑몰에서 장을 몇개 보려고 인적과 차가 드문 길로 내려왔다. 아파트 뒤로 폼나게 자리잡은 쇼핑몰이 보인다. 횡단 보도에 섰다. 맞은 편에도 누군가 서있다. 금세 불이 바뀌고 나는 도로를 건넌다. 맞은 편 여자가 건너오지 않는다. 누굴 기다리나 보다 생각했다. 근데, 내가 횡단보도를 다 건너자 여자가 내게 방향을 틀어 다가오는 것 같다. 용건이 있나보다,
-여기서 시청 가려면 어떻게 해야하죠?
-여기선 시청 가는 버스가 없고요. 이 도로엔 버스가 아예 없어요. 저기 쇼핑몰 앞에 있는 정거장으로 가야 합니다.
여자는 뭔가 난감한듯하다. 그녀는 어깨에 커다란 천가방을 하나 둘렀고, 길 위엔 50리터 크기의 비닐 봉투에 녹색채소가 가득 든 짐이 있다. 어짜피 같은 방향이라 그녀가 몸을 움직이면 함께 걸으며 이야기나 하려고 했는데... 그녀는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여 혼자 걷기 시작했다. 50미터쯤 걸었나보다. 뒤를 돌아보니 그녀가 채소가 가득 든 짐과 어깨 가방을 메고 낑낑거리며 같은 방향으로 걸어온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가, 짐을 좀 들어드릴게요, 했다. 그녀가 나의 친절을 완강히 사양하여.. 잠시 보조를 맞추며 걸었다.
-이사온지 얼마 안되는데, 지인이 시금치 갖다 먹으라고 해서 왔어요.
-시금치는 어디서 뜯으셨나요?
나는 괜한 호기심에 물었다. 그녀는 저기라고 말하며 화훼단지를 가리켰다. 그 단지 안 어느 하우스에선가 뭐든 기를 수 있으니까. 그녀의 지인은 시금치를 겨우내 키우는가 보다.
- 여기 너무 불편하네요. 버스 노선도 별로 없고, 인프라가 너무 안좋아요.
그녀는 불평을 한가득 풀어놓는다. 그녀의 채소 짐이 너무 무거워 보여 같이 들어주려고 손을 뻗었더니, 묶음이 풀어질지 모른다고 거절한다.
-그럼 어깨 가방이라도 들어드릴게요, 했더니 그제서야 가방을 건넫다.
평생 살던 동네에서 하남으로 이사온지 2년 되었단다. 영등포, 당산동에서. 거긴 너무 좋다며, 지금은 무기력하게 살고 있다고. 내가 이런저런 모임을 하니 시간있으면 함께 하자고 했다.. 지금도 산을 걷고 오는 길이라고. 그리곤 301호를 알려줬다.
-그건 어디에요?
-시청 뒤로 버거킹과 KFC가 들어있는 건물 3층이에요.
-알아요, 거기.
-그리오세요. 심심하시면. 시민단체 공유 공간인데... 하남시에서 시민단체에 한 번 발들이면 무료할 틈이 없어요.
그러자 한 번 가보겠다고 한다.
- 사람이 늘 있진 않아요. 왔다 가실 때 문에 메모를 남기셔도 좋습니다.
버스정거장에 가까와 지자, 그녀가 탈 수 있는 50번 버스가 다가오고, 나는 그녀의 가방을 돌려주었다. 버스에서 내려서도 그녀는 집까지 또 한 참을 무거운 시금치를 들고 걸어갈 것이다.
오늘 참 친절했다. 내가 그런 모습으로 거리를 걷는 일이 많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