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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전달하는 천사들의 집~!
 
 
 
카페 게시글
....................♡ 병무기자 스크랩 기회
호박조우옥 추천 0 조회 42 14.11.05 00:4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입대 전의 저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작금에는 어찌보니 그 덕에 이런 글을

쓸 영광스러운 기회를 얻었으니 다행이라고 천연덕스레 생각할 여유까지 얻었지만 진중하게

상기해보면 앞서 말한 그 허무한 마음이 들 당시에는 퍽 힘들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유쾌하지는 않을 수도 있는 이야기지마는, 저의 자원입대라는 선택이 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이자 삶에 대한 회고이므로 부족한 글 솜씨로나마 풀어볼까 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공놀이보단 책을 가까이하고 단체생활보다는 개인행동을 좋아하던 소극적인 취향이었고,

그럼에도 제법 활달하게 자랐습니다만 흔히 말하는 가정폭력과 부모님의 이혼, 금전과 같은 문제로 나날이

악몽 같은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저에게 굳게 다짐했던 진학을 위한 물질적 지원의 약속을 깨어, 당시에 유일한

희망이었던 장래까지 좌절되었고 저는 ‘화목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 후유증을 가진 사람’ 이란 문장을 보면

바로 떠오를만한, 독한 우울과 불안에 빠져 거의 칩거생활을 주로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때 처음으로 저는 잃을 것이 없다고 느낀 것 같습니다. 당연히 또래와도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고, 그 밖의

사람과는 더욱 친해지지 못하며 그 박탈감에 자책과 한탄만 하는 채로 시간만 축내 갔습니다. 그런 때에는

 심신이 피폐해지는 법입니다. 저는 병원을 열심히 다니는 것이 무색하게도 점점 더 우울해져 갔고, 매사에

소스라치게 불안했으며, 움직일 이유조차 느끼지 못하여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어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만큼이나 살만 쪄 갔습니다.

 

그런 식이니 병무청에서 신검 안내문이 왔을 때 저는 도저히 군대라는 곳에 갈 의지도 용기도 나지

않았습니다. 마침 체중도 기준치 초과였고,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움을 감출 길이 없지만 당시에는 4급 판정을

받았던 것이 사회성 없던 저에게는 퍽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안이한 삶의 자세로는 당연히

될 일도 안 된다는 사실을 그 때는 몰랐습니다. 결국 13년, 저는 그나마 남은 것도 잃어버렸다고 느끼게 되는

때가 왔습니다. 시간은 계속 지나가는데 누가 보아도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돕기는커녕 밖에도 잘 나가지 않는

저를 가족들은 이해할 수 없었고, 자연스럽게 사이는 나빠졌습니다. 그러다 결국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가족들은 저를 거의 쫓아내듯 ‘독립’이라는 명목으로 강제 분가를 시켰습니다. 당시에 생활할 능력이 전혀

없던 저에게 그것은 사형선고와 다를 바 없이 느껴졌고, 큰 배신감을 느낀 저는 가족들과는 연락조차 하지

않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때 마침 너무나 기막히고 끔찍하게도 교우관계와 연애관계에 금이 가는 복잡한 일에 연루되어, 그나마

혼자서라도 잘 살아보려고 부단히 헛된 힘을 쓰던 저는 그 의지마저도 잃어, 사람에게 배신감과 지겨움을

느껴 이제 거의 모든 대인관계를 끊어내고 살게 되었습니다. 자해와 자살기도로 집에 경찰이 들이닥치고,

스토커가 밤늦게까지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련의 극단적인 사건들 속에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 없이는 잠도 잘 수 없는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가족과 친구와 연인, 미래까지 나는 모든 걸

잃었다며 어리석고 부정적인 생각만 자꾸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운 좋게 얻은 맑은 정신 속에 저는 큰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꼭

죽고 말 것이다.’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이었습니다. 금전적으로,

인간관계도, 몸과 마음의 건강도 참 몰골이었습니다. 끝이 보였습니다. 그 때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살면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 적이 있는가? 아니다. 없었다. 이대로는 억울하다. 그러니까, 이렇게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저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리고 곧 제가 걸어온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무모했지만 자랑스러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군 복무라는 선택지를 찾아내 실행에 옮기기로 한

것입니다.

곧바로 제가 지원할 수 있는지, 날짜는 언제인지를 조사하였습니다. 현역 처분을 받기 위해서 일단 음주를

관두어 체중을 줄였고, 병무청에서 안내해 준 우울증과 같은 문제는 의지만 있으면 재검을 받을 때 따로

정신과적인 진단을 받지는 않아도 된다는 다행스러운 답을 곱씹으며 마음을 차분히 하였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모든 걸 다 잃었다면, 앞으로는 얻을 일만 남은 것이다. 더 잃을 게 없으니까, 나한테는 무서울 것도

없잖아?’ 하고 생각하였지만, 제 심신의 피폐함을 알던 주변 사람들은 기겁을 하며 말도 안 된다, 가면 못

버틸 것이다. 꼭 죽어서 나올 것이라는 말까지 하며 뜯어말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확고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우울해지는 지나간 일만 붙잡고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군복무는 불러서 가는 시간 죽이기 같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과 자기극복에 대한

기회이자 정의로운 사회적 기여의 마지막 기회이자 도전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재검을 신청했고, 현역

입영 대상자가 되었습니다.

 

그 해 가을, 현역의 기회를 얻은 것만큼이나 또 운 좋게도 선착순으로 결정되는 입대일 선정에서 원하는

날짜를 고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신기하게도 제 결정을 기점으로 다시 뭉친 가족들과도 극적으로 사이가

좋아져 참 다행이라고 느끼며, 마음을 여미고 얼마 남지 않은 짐을 정리해 소중했던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그야말로 신변정리를 했습니다. 주변에서는 꼭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군다며 과분한 걱정을 해주었지만

어떤 의미로는 그게 맞았기에 입을 다물고 ‘죽으러 가는 것 맞다, 단지 죽는 것은 이제까지의 바보 같은

나이고, 더욱 발전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한다.’ 하고 되뇌었습니다.

 

그리고 겨울, 저는 306 보충대로 입대했습니다. 주변 지인들이 많이 거쳐 간 곳이기에 짠한 마음과 군복을

입은 사람이 많은 생활에 막 익숙해질 때 쯤, 지금의 17사단 훈련소에 입소하게 되었고, 험한 훈련병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겨울 훈련소는 정말 춥고, 힘들고, 엄격했습니다. 그러나 약이 오르게도 악으로

버티고 구르며 동기들과 간부님의 도움을 받아 막 적응할 만하니 기가 막히게도 수료식이 코앞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이등병 약장과 인식표를 받고 지금의 자대인 17사단 102연대 전투지원중대로 전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얼마나 긴장했는지, 수료식 날에도 자대 갈 생각에 면회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 조차

못하고 불안에 떨던 상태였지만, 막상 와보니 제가 걱정하던 그런 군대와는 달라서 놀라고, 간부님들께서

병사들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에 또 놀라고,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전우와 간부님들은 제가

밖에서 울증과 불안증이 있었던 것을 이해하며 충분히 배려해주었고, 모르는 것은 타박과 구타가 아니라

교육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또, 아픈 곳도 신속히 치료받게 해주었습니다. 입대 전과 훈련소에서 왜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걱정을 했을까하는 마음이 절로 들 정도로 선진병영이었습니다. 이것에 대한 단적인 예로,

제가 부상을 당했을 때 거동이 제한되는 저에게 밥을 대신 떠주었던 선임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좋은 선임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부조리와 가혹행위가 만연한 곳이라면 이런 일은 없지 않겠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배려 속에 최근에는 일병 약장까지 무사히 달게 되었습니다. 벌써 후임도 많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런 좋은 부대에서 복무하는 것이 마냥 자랑스럽습니다. 그렇기에 건강을 회복하여 저희 연대의 목표인

임무 완수 연대, 행복한 연대에 이바지하고 싶고, 제가 받은 배려 그 이상을 전우들에게 다시 베풀 수 있는

용사가 되어 남은 군 생활을 할 것입니다. 그 후엔 무사히 전역하여 저처럼 부족한 사람도 해낼 수 있다는

증거로서 남고 싶습니다. 그것이 지금 저의 목표이며, 저의 신념인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가장 가까운

길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최근에는 잃을 것이 없으니 아무렇게나 행동한다든가 하는 생각 따위는 이제

하지 않습니다. 입대를 하지 않았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변화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기회를 준 조국에

감사합니다.

 

덧붙여 만일 군복무를 아직 하지 않았거나 걱정하고 있는 미래의 전우가 있다면, 저는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고 그럴 자격이 있다는 것도 엄청난 행운이자 특권이며, 지금은 이등병은 PX를 못 간다든가 혹은 얻어맞는

다든가하는 쓸모없는 부조리 따위는 없는 선진병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과,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발전할 수 있는 성찰의

시간까지도 될 수 있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군복무는 단순한 의무 이상인,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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