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김민기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오늘 아침 신문을 보고 알았다. 안타깝다. 좋은 노래와 연극으로 우리곁에 더 계셔야 할 분이다. 자신을 "뒷것"으로 호칭하며 연극 감독의 거장 역할을 훌륭하게 하신 분이다.
노래 두 편을 올리며 김민기 선생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김민기 선생님 고맙습니다."
'봉우리', '잘 가오'
봉우리(峰) / 김민기
1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 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거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2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 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 볼 수 있을 테니까 말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하면서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 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올 때는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1984>
음반, '김민기' 1971, '아빠 얼굴 예쁘네요' 1987, '엄마, 우리 엄마' 1988, '김민기 1' 1992, '김민기 2' 1992, '김민기 3' 1992, '김민기 4' 1992, 'Past Life Of 김민기(6CD Box Set)' 2004.10.21, '공장의 불빛' 2004, '김민기' 김창남 엮음, 한울 2020-7-15,
봉우리 / 김민기 글, 가락,
https://youtu.be/_Mmh-U-BF14
잘 가오 / 김민기
먼 길 가는 친구야 이 노래 들어요
나 가진 것 하나 없어 이 노래 드려요
언제나 또다시 만나게 될런지
잘 가시오 친구여 부디 안녕히
언제나 또다시 만나게 될런지
잘 가시오 친구여 부디 안녕히
* 이민 가는 친구의 환송회 자리에서 선물 대신 만들어 불러주었다는 노래이다. '올드 랭 자인'의 도입부를 이용한 아이디어가 재미있다.
'김민기' 김창남 엮음, 한울엠플러스
초판 1쇄 2004.10.15, 초판 2쇄 2020.7.15
https://youtu.be/Uts8okcBZKs
첫댓글 이 나라의 거목 한분이 너무 일찍 떠나셔서 안타깝습니다.
서산에 붉은 해 걸리고 강변에 앉아서 쉬노라면
낯익은 얼굴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온다
늘어진 어깨마다 퀭한 두 눈마다
빨간 노을이 물들면 왠지 맘이 설레인다
강 건너 공장에 굴뚝엔 시꺼먼 연기가 펴 오르고
순이네 뎅그런 굴뚝엔 파란 실오라기 펴 오른다
바람은 어두워 가고 별들은 춤추는데
건너 공장에 나간 순이는 왜 안 돌아오는 걸까
높다란 철교 위로 호사한 기차가 지나가면
강물은 일고 일어나 작은 나룻배 흔들린다
아이야 불 밝혀라 뱃전에 불 밝혀라
저 강 건너 오솔길 따라 우리 순이가 돌아온다
라라라 라라라 노 저어라 열여섯 살 순이가 돌아온다
라라라 라라라 노 저어라 우리 순이가 돌아온다
바다
어두운 밤바다에 바람이 불면
저 멀리 한바다에 불빛 가물거린다
아무도 없어라 텅빈 이 바닷가
물결은 사납게 출렁거리는데
바람아 쳐라 물결아 일어라
내 작은 조각배 띄워 볼란다
그 누가 탄 배일까 외로운 저 배
그 누굴 기다리는 여윈 손길인가
아무도 없어라 텅빈 이 바닷가
불빛은 아련히 가물거리는데
바람아 쳐라 물결아 일어라
내 작은 조각배 띄워 볼란다
바람아 쳐라 물결아 일어라
내 작은 조각배 띄워 볼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뚝 서계셨던 분, 너무나 슬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