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40]삼일절 105주년 그리고 김구응金球應열사
어제는 삼일절 105주년 되는 날입니다. 당연히 하는 대통령의 기념사를 들어보셨나요? 삼일정신의 뿌리가 ‘자유自由’였다고 하더군요. 그분은 걸핏하면 시도때도 없이 자유와 법치 그리고 상식을 들이대지만, 이것은 좀 쌩뚱맞지 않던가요? 당시 한민족, 우리 국민은 당연히 독립이고 해방된 조국이었지 않은가요? 허나, 본인도 염치廉恥는 있었는지 공식 기념식에서 ‘통일統一’을 처음으로 언급했지요. 삼일정신의 완성은 ‘자유통일’이라더군요. 참말로 ‘웃기는 짬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패널리스트는 핍박받던 나라의 대통령이 ‘피해자 의식’이 아닌 ‘가해자 의식’으로 충만하고 “참 일본 좋아해”라고 하더군요. 하하. 100퍼 공감입니다. 어째서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걸까요? 알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어제 새벽 보관한 태극기를 제 불찰로 찾을 수 없어 국기國旗를 게양하지 못한 불충不忠을 저질렀습니다. 마침 서가書架에 꽂혀 있는, 최근 전주 치과의사가 선물한 책을 꺼내 읽었습니다. 『김구응 열사 평전-4.1아우내만세운동의 주역』(전해주 지음, 2023년 4월 발행, 174쪽, 15000원). 유관순, 전태일, 이한열, 박종철 열사의 이름은 알았어도, 김구응金球應(1886-1919.4.1.) 열사의 이름은 금시초문이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열사도 계시는가? 대체 누굴까? 몹시 궁금했습니다. 아우내만세운동은 1919년 4월 1일 아우내(병천並川. 천안군 목천면) 장터에서 많게는 1만명이 넘게 모여 만세운동을 벌인 큰 사건입니다. 그 운동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유관순 열사’가 주도한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한 성공회 신부(전해주)의 노력으로 이제껏 가려지고 묻혀있던 김구응 선생이 아우내만세운동을 처음부터 기획하고 선두에서 평화적으로 시위를 이끌었으나, 당일 일제의 총칼에 찔려 현장에서 순국, 거기에 대항한 모친 최정철 열사도 함께 피살되었다는 사실이 역력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많이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화까지 났습니다.
물론 이화여전에 다니던 16세의 유관순 열사도 고향인 아우내에 내려와 태극기 제작, 배포, 시위 독려와 참여 등 만세운동의 역할을 크게 한 후 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고초를 겪다 의연히 순국을 했습니다. 결코 유열사의 활동과 공로에 대해 낮게 평가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유열사 영웅화작업과 이를 상품화한 병천지역의 정서 등이 김구응 열사에 대한 조명을 가로막은 듯도 하더군요. 당시 지역의 진명학교 교사로 신학문을 가르치며 민족독립의식을 고취한 근대교육의 선구자였습니다. 빈약한 사료는 김열사의 얼굴사진 한 장을 못남긴 게 천추의 한이지만, 여러 사람의 증언이 남아있습니다. 백암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지혈사』에는 “주모자 김구응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헌병의 총에 맞아 즉사하고, 노모 최정철 열사도 칼에 맞아 숨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말이 실감나는 삼일절 105주년. 김열사를 알게 되어 ‘민족사적 수확(?)’이었습니다. 안동 김씨, 임진왜란 의병장 김시민 장군의 12대손, 조선후기 문신 김득신의 10대손, 이럴 때 ‘뼈는 못속인다’는 말이 나올까요?
열사의 당시 나이 32세.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숨진 대학생 열사들과도 비교되더군요. 그후 남겨진 아내와 세 아들의 삶은 가시밭길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도 손자가 의연하게 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의 거룩한 삶의 수수께끼를 하나씩 꿰맞추며 기리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오죽하면 박완서 작가가 『오만과 몽상』에서 “매국노는 친일파를 낳고, 친일파는 탐관오리를 낳고, 탐관오리는 악덕 기업인을 낳고……, 동학군은 애국투사를 낳고, 애국투사는 수위를 낳고, 수위는 도배장이를 낳고……”라고 썼겠습니까?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지요. 책 말미에 손자 김운식씨가 써놓은 수기手記는 너무나 진솔하기에 아무리 감정이 메마른 사람도 눈물없이 읽지 못할 글입니다.
아무튼, 이 평전을 쓰느라 애쓴 신부의 노력도 가상하지만, 늦게나마 지역의 뜻있는 분들이 기념사업회를 만들고, 열사의 정신을 연구하고 잇고자 애쓰고 있어 천만다행한 일입니다. 1977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그게 민족의 희망希望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