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은 1636년 12월 10일에 일어남.
청군은 조선을 침공햇는데, 병력숫자는 당초 12만 8000명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47000명이었음. 그러나 초반에 투입된 병력은 겨우 15000명이었음.
전쟁 발생한지 단 6일만에 청군에 의해서 서울이 점령됨.
즉 1636년 12월 16일 오전때, 청군 소속 기병 1500명이 서울에 무혈입성함.
초반에 서울 점령 작전에 투입된 청군 병력은 15000명이었고,
평안도 황해도 경기도 서울에 주둔했던 7~8만명의 조선군은 이들을 제지하지 못한체
그냥 서울이 점령당함.
서울 점령하기 12월 14~15일 사이에 서울보다 김포가 점령당했는데
그때 김포에 도착한 청군 병력은 겨우 1000명이었다.(14일 저녁에 청군 500명이 김포에 도착했고,
15일오전에 후속부대 500명이 도착하였다.)
김포는 서울에서 강화도로 가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에
청군은 조선 조정이 강화도로 도망치는 것 방지하기 위해서 서울보다 먼저 점령한 지역임.
당시 서울을 떠난 조선 임금 인조 일행을 수호했던 병력은 중앙군 대부분이었다. 즉 12000명 병력이었음.
조선 정예군(중앙군)12000명에 병력의 40%가 조총으로 무장했고, 다수의 대형화포도 갖추고, 기병 전력도 상당했지만,
김포에서 강화도로 가는 길목을 점령한 청군 1000명이 겁나서 12월 15일(오후늦게 )에 남한산성으로 피신함.
장수들은 조정에 상소을 올려 청군이 며칠동안 말을 몰고 오느냐 말과 사람이 엄청 피곤한 상태이고,
제대로 된 기병 전술을 피지 못할 것이라면서 김포의 청군 1000명을 공격하고 강화도로 가자는 주장했음.
여차하면 인해전술( 병력숫자에서 우리가 엄청 많다면 그 병력으로 정면에서 공격하자고..)로
할수있다면 남한산성을 버리고 강화도로 가자고 했음.
눈이 내려서 임금께서 타시는 말이 미끄러운 길에 넘어질 수잇다는 애매한 말로 조선 조정은 무신들의 주장을 무시하고 남한산성에
그냥 있었음. (1636년 12월 16일 오전)
청군이 서울을 점령 작전시기는 12월 10일부터 12월 16일까지다.
그 시기에 한반도로 진입한 청군은 겨우 15000명이었음.
12월 16일에 서울을 점령한 청군은 1500명이고,
개성에 들어온 청군은 1000명,
서울 부근에 있던 청군은 1000명 , 김포쪽에 있었던 청군은 1000명이라서
서울 점령 당시 경기도에 주둔했떤 청군은 총 합쳐서 4500명 밖에 안되었음.
나머지 10500명의 청군은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서울로 진격중이거나 현지에 주둔하여 조선의 지방군을 견제했음.
한줌의 병력도 안되는 청군에 겁나서 조선 조정은 조선의 최정예 병력을 제대로 활용도 못하고 그냥
남한산성에서 도망간 것임.
청나라 국왕인 홍타이지는 12월 17일에 본군 병력 즉 나머지 병력 32000명을 이끌고 얼린 압록강을 건너
조선땅에 들어왔음.
조선 조정이 남한산성에 주둔했따는 소식을 들은 청군은
서울 부근에 있던 청군 1000명과 개성에 있던 청군 1000명, 김포에 주둔햇떤 청군 일부(500명)을
남한산성에 배치함.
2500명의 청군이 12월 17~18일 사이에 남한산성에 주둔함.
그 사이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서울으로 진격하는 청군 부대들이
속속이 서울과 남한산성으로 모이기 시작함.(12월 19일 이후에)
크리스마스 무렵인 12월 25일에 홍타이지가 남한산성에 도착함...
야 대몽항쟁 시기의 고려 정부도 이런 짓도 안했다 . 진짜...
임진왜란 시기에 20일만에 서울을 점령당한 것은 양반이네 진짜...
인조보면 선조가 진짜 성군일세 성군이야..
임진왜란때 초반의 조선군을 욕했는데
병자호란 시기의 조선군에 비하면
왜란 초반의 조선군은 정말 잘 싸웠어...
15000명의 청군에 의해서 6일만에 서울이 점령당하고,
5일만에 강화도 가는 길이 차단당하고..
12000명의 병력을 데리고 다니면서도
강화도 가는 길의 청군 1000명이 무서워서
남한산성에 도망치고....
육이오 전쟁때의 한국군이 3일만에 수도를 내주었지만, 그래도 직선 거리를 따진다면
병자호란때의 조선군은 육이오때의 한국군을 욕 못하겠찌..
세계 역사상 어덯게 6일만에 수도가 점령당햐냐..
중세 봉건 시기에 정말로...
그것도 15000명의 병력에게..

첫댓글 제대로 붙엇으면 이길수도 잇엇을거같음 물론 당시 청군도 강하긴해ㅛ는데 왜란이후로 조선군도 제대로 갖춰져서 전투력 절정이엇는데
이괄의난 터지고 정부 차원에서 북방 군사력 약화시키지 않았나요? 반란 무서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