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정열로 피어나는 꽃
꽃이 열정으로 빨갛게 웃으면서
가슴을 활짝 풀어헤친다
눈부시게 활횔타오르는 눈빛
마음은 욕정으로 요동치는 데
꽃향기가 온몸을 휘감고 똬리를 튼다
무심코 꽃잎에 살며시 손을 댔다
꽃잎의 감촉에 사로잡히는 순간
기억의 안개가 슬며시 걷히면서
한 소녀가 머릿속으 밀물인양 밀려들었다
소녀의 갸름한 얼굴이, 미소 띤 표정이
손의 감촉이 생생하게 의식속으로
쏟아져 들어와서 나를 당황케했다
정신이 그 토록 마비된 데 놀랐다
얼결에 잡아본 손,
소년 소년의 감성이 오롯이 오고갔던 그때,
어쩔줄 몰라 쩔쩔매고 있던 나와 소녀의 모습
순수하고 순결한 마음의 물결에 자연스럽게
따르고 있었던 그때가 한치의 오차도없이
떠올랐다
나는 두 눈을 지긋이 감았다
사랑의 순간순간이 머리속을 휘젓고
다녔다
소녀의 말이 머리속에서 뚜렷하게
재생되었다
그녀의 밝은 미소와 맑은 눈빛이
나의 눈속에서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름의 안개비를 닮아
부드러웠다
안개비처럼 포근하게 감싸주듯 말하려고
무척 애썼던 소녀였다.
가당치도 않은 말을 들어도 온화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는 태도에 내가 마음속으로 고개를
숙이곤했던 일도 생각났다.
잠시 잠깐이지만 늙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10대의 소년으로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소녀 생각에, 소녀의 숨결에 따라 소년이 되는 듯했다
꽃잎에 조심스럽게 손을 대면서 소녀의 손을
잡은 듯, 소녀의 숨결을 느낀 듯 흐뭇한
기분에 젖어 보는 행복을 맛보았다
행복이란 얼마나 순간적이고, 덧없고,
허망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행복을 내 마음 대로 내 손에 움켜쥘 수도 있다는 행복한 꿈결속에서 즐거웠다.
천진난만하게 웃는 소녀의 얼굴이 눈앞에서 어른거리고, 소녀의 숨결을 닮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내가 있는 공간을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