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나는 한국에, 작은형은 미국에 살고 있었고,
그땐 어머니도 아버지도 살아 계셨다.
작은형은 '가람과 뫼'라는 아이디로 5060 카페에
잠시 머문 적이 있는데, 요즘은 교민봉사활동으로
바빠 간혹 서로 안부 정도를 물으며 지내고 있다.
집에서 쉬는 시간, 지난 글들을 돌아보던 중에 가람형과
나눈 대화를 글로 옮겨둔 걸 보게 되었다.
2005년 1월이니 20년도 훨씬 지난 글인데...
그 대화로부터 나는 얼마나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최근의 어수선한 글마당 골목에 타인의 긴 대화를
듣다 보면 혹 어수선함도 가라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바람으로 그 대화를 올려 본다.
**
가람형과 메신저로 대화를 하는 중에 어머니가 전화를 주셨다.
어머니는 다짜고짜 이렇게 물으셨다.
“니 요즘은 성당 나가나?“
“ㅎㅎ 성당에 등 돌릴 때처럼 자연스러운
계기가 오면 또다시 나가겠지요.“
“니 우얄라꼬 노상 그 소리고... 그냥 나가마 되지...“
“아무 걱정 마이소. 성당 안 나가도 나중에 저 세상에
가면 어무이 꼭 찾아 가께요.“
“성당을 안 다니는데, 우에 알고 찾아 오노...
까불지 말고 얼른 다시 나가라 고마.
새로 이사 간 집 가까이 성당도 있다메?“
어머니는 연세 일흔쯤에 성당에서 영세를 받으셨다.
다른 동기도 많았겠지만 가장 중요한 동기는
어머니가 아끼고 사랑하는 큰형과의 인연을
현생뿐만이 아니라 내생까지도 잇고 싶어서였다.
그 큰형이 독실한 가톨릭 집안의 형수에게
장가들기 위해 교리수업을 받고 영세를 받을 때,
나는 14살 많은 큰형의 손을 잡고 성당으로
오가는 그 길이 좋았고, 교리를 가르치는 수녀님이
나를 많이 사랑해 주던 서울 간 큰누나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따라다니다가 큰형과 같은 날 영세를 받았다.
그날 받은 내 새 이름은 시몬이었다.
14살, 내 눈에 비친 성당은 형식과 율법, 의문과
두려움 그 자체였다. 성당을 다녀올 때마다 배로
부풀어 오르던 의문들. 그 의문들을 제기라도
할라치면 나는 무리 속에서 늘 믿음이 부족한
아이가 되고 말았다.
19살 되던 해에 나는 성경을 내려놓고 성당을 향한
발걸음을 더 이상 떼지 않았다.
당연히 낯선 이방인의 이름은 더 이상 내 이름이
아니었다. 대신 리차드 바크가 쓴 “갈매기의 꿈“이,
오천석님이 쓰신 “노란 손수건“이, 청담 스님이
쓰신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 세월을 달리하며
나의 새로운 성경들이 되었다. 족보 없는 종교가
긴 세월 동안 내 속에서 자랐다.
늦게 영세를 받은 어머니에게 그런 과정을 겪은
나는 가슴에 박힌 옹이가 되어 버렸다.
너무 커버려 어릴 때처럼 안아서 달래며 이해시켜
줄 수 없으니 어머니의 안타까움이 되고 걱정거리가
되어 버렸다. 그 어머니의 마음을 아는 나 또한
어머니의 그 마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니 어찌하면 좋으랴..
자연히 형과의 대화는 종교 이야기로 흘렀다.
마음자리 님의 말
어무이 전화
가람 님의 말
아...
마음자리 님의 말
끝났어요~
마음자리 님의 말
성당 다시 나가라고...ㅎㅎ
가람 님의 말
글쿠나...
마음자리 님의 말
늘 마음에 걸리시나 봐요
가람 님의 말
글쎄, 종교란 워낙 어려운 문제라서...
마음자리 님의 말
나이 쉰이 다 되어가는데...어머니 걱정이나
시키고 있으니...ㅎㅎ
마음자리 님의 말
네. 큰형 손잡고 재미로 나갔던 일이 참 오래
제 곁에서 맴돌고 있네요
가람 님의 말
주말이 더 바빠 (형수나 나나) 나도 요즈음은
성당에 좀 뜸하게 나가고 있다.
마음자리 님의 말
그러시겠네요
가람 님의 말
솔직히, 아직도 종교생활에 대한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 상황이다.
가람 님의 말
다만, 내가 공부했던 분야와 종교를 결부시켜
하나의 컨셉을 만들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자리 님의 말
네...저는 한 때 불교 쪽에도 관심이 많이 갔었고,
지금은 한 개인의 완성 쪽에 생각이 많지요.
성경도 다시 읽어보고, 요즘은 도덕경을 조금씩
읽고 있어요
가람 님의 말
무조건 창조주 하나님을 맹신할 것이 아니라...
그분이 갖고 계신 원대한 계획
을 내가 배운
우주의 역사와 결부시켜 이해하는 그런 내용
마음자리 님의 말
장교수님(* 가람형의 대학시절 지도 교수)이
그런 시도를 했었지요?
가람 님의 말
그렇지...
마음자리 님의 말
그 책이 참 좋았던 것 같은데...
가람 님의 말
창세기에 말하는 것처럼 세상을 6일 만에 만들어
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세상을 조금씩 조금씩
긴 시간의 토대 위에 역사를 만들면서 하나씩 발전
시켜 나가신다는 생각이 맞는 것 같다.
마음자리 님의 말
형님은 학문을 한 깊이나 삶의 굴곡, 종교에 대한
이해로 보아서, 충분히 그런 쪽의 완성도 높은
글을 쓰실 수 있을 겁니다
가람 님의 말
컴퓨터 기능을 사람들이 286, 386, 486
펜티엄등으로 업그레이드시켜 왔던 것
처럼,
하느님도 긴 계획을 갖고서 조금씩 조금씩
이 우주의 발전을 그려오고 계신 듯...
가람 님의 말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시라지만, 이 세상의
복잡다단한 변화를 일순에 완성시킬 수는
없을 테며...
마음자리 님의 말
네...성경 속에 묶인 하느님이 아니라 자유한
하느님으로 다시 재해석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가람 님의 말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조금씩 업그레이드 시켜 왔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란 피조물에게 영혼이라는
선물과 이성이란 해석능력을 부여하여
최초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스스로
유도하셨고... 자유의지를 주어 스스로를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하나씩 완성해 나가도록
유도하고 계신 것 같다. (당신이 세상을
그렇게
운용해 오셨듯이...)
가람 님의 말
스스로에게 맡겨보니 너무도 안타까워 예수라는
교사와 성경이란 교과서를 이 세상에 보내어
살아가는 요령과 지침을 제시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마음자리 님의 말
자연과학이란 학문이 워낙 긴 시간을 배경으로
하는 학문이라...형님이 그렇게 해석을 시도할 수
있었나 봅니다. 보통 사람들이란, 짧은 한 생애에
국한되어 있다 보니 대부분의 종교를 구복신앙으로
이해하는 편이고, 역사학자들이래야 인류의
역사가 긴 듯해도 우주의 생성부터 보자면야
찰나에 불과하니...긴 시간을 두고 폭넓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가람 님의 말
현재의 목회자들은 너무 성경 속에 구속되어
맹신하는 분위기...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느껴진다. 긴 역사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그저 성경의
문맥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은 종교생활을 보니
안타까울 따름.... 종교지도자들이 하느님이
갖고 계신 역사의식을 빨리 이해하고 그런 안목에서
접근해 가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람 님의 말
하느님이 갖고 계신 그 긴 역사의 계획과 완성에
대한 큰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저 찰나적인
이해만으로는 절대 그분의 큰 계획에는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 내가 갖고 있는 견해란다.
마음자리 님의 말
네 맞아요~
가람 님의 말
자연의 신비나... 세상의 흐름과 역사를 이해하고
사유하는 데는 자연과학이란 학문 외에는
접근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단다.
가람 님의 말
하느님의 의도와 큰 계획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보는데 참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과학적으로 어떤 사실을 깨닫고 이해하는 것도
알고 보면 하느님이 이 세상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메카니즘의 하나로 이해하는 편이다.
가람 님의 말
언젠가... 내가 쓴 글 중... 미완성의 영혼이란 글이
있을 것이다. 인간의 현주소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을 담아 본 글이란다.
마음자리 님의 말
네
가람 님의 말
기회가 있으면 이런 내 생각들을 정리해서
장교수님처럼 단행본으로 엮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단다.
가람 님의 말
종교지도자들이나 맹신자들의 편협한 사고와
생각에 경종을 울리고 싶은 생각에서...
마음자리 님의 말
네. 좋을 것 같아요. 과학도들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거시적으로 삶을 다시 정리해 볼
필요가 있으니까요. 물론 종교 쪽에서도...
가람 님의 말
인간의 현주소와... 인류의 과제 같은 문제를
지금껏 기존의 생각이나 견해와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마음자리 님의 말
그럼요~ 현상을 두고 너무 근시안적인 해석들만
주류로 인정받고 있으니, 거시적으로 보는 것이
참 필요한 부분이지요
가람 님의 말
인류란 존재는 아직 잘 연마되지 않은 돌멩이들과
같아...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아직도
조약돌로 다듬어지기에는 머나먼 길을 가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가 아닐까
마음자리 님의 말
네. 저도 늘 그 불완전함이란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가람 님의 말
네 업무시간인데... 내가 너무 시간을 뺏는 것 같구나.
가람 님의 말
오늘은 대충 이 정도로 해두자.
마음자리 님의 말
ㅎㅎ 네~ 하루 이틀에 끝날 이야기가 아니지요
가람 님의 말
차곡차곡 대화로 생각을 풀어보자... 그러다 보면
생각도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가 될 듯하고...
그러다 보면 나중에 좋은 자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자리 님의 말
네~
메신저를 닫았다.
형은 나와는 또 다르게 스스로 탐구한 학문과
삶의 굴곡을 바탕으로 종교를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뿌리가 얼마나
튼튼할지는 안 보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어떡한다...?
올해 연세 80이 되신 어머니가 저리 섭섭해하시고
걱정을 하시니...
가람형이야 외국에서라도 성당에 적을 두고
있다니 괜찮겠지만, 저 세상에서 어머니 찾아갈 수
있다는 내 말은 어머니가 코웃음을 치시니... 그 참...
저 세상이야 시간과 공간이 소멸된 곳이니
어머니 따스했던 그 품만 잊지 않고 있으면
못 찾아갈 리도 없을 텐데...하느님이 성당 다시
안 다녔다고 쩨쩨하게 못 오게야 하실라구...
저 세상은 그렇다 치고 연세 많으신 어머니,
혹 하나 달고서라도 현생에서나마 오래도록
뵐 수 있게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오래
장수하시기만을 빈다.
***
긴 대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는 하느님의 품으로 먼저
가셨고, 저는 미국에서 살고 있네요.
돌아보니 형과의 대화 중에도 늘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찾아갈 필요도 없이 늘 저와 함께 계심을 알고 있어요.
어머니...
첫댓글 잠실에서 지하철 타고
탁구장에 가는 중입니다.
정신세계의 긴 대화
잘읽었습니다.
참 좋으신 어머니에
좋으신 형님을 두셨습니다.
하나씩 보태가는 마음자리 님의 심성도 엿보고요.
석촌님 건강이 여전하시군요.
꾸준히 산책하시고 건강관리하신
덕분인가 봅니다.
전 이제 탁구를 치면 종아리에
알통이 배겨 애를 먹습니다.
클 때는 몰랐는데 어른이 되고나서
제가 가족복이 아주 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
글에서
^슬퍼도 기도하고
아파도 웃자^
저는 맹신합니다.
신심은 무조건 믿습니다.
오랜 신앙생활에서
제가 잘했다고 토닥여 주는것
절에 다니던 시어머니
영세 받고
새 며느리 영세 받음 입니다.
그리고 며느리 대모가 되었습니다.
인내심 안에
믿음이 살아 있었으니요.
마음자리님
무조건 믿습니다.
그리고 아멘입니다.
이해인 수녀님, 저도 무척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시로 기도를 쓰시고, 채로 거른 것
같은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들여다
보시지요.
신앙은 성전의 틀 안에 있지않고
우리 안에 이미 천국과 함께
와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내가 나이를 먹다보니 제일 어른이 되었습니다. 대학교수였던 큰형은 15년전 별세했고 작은형은 미국으로 이민간지 58년이 되었고 치매로 요양원에 있으니 형제간의 진솔한 대화는 사라졌답니다. 대중가요중에 있을때 잘해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그래서인지 요새는 집사람을 수시로 장난삼아 디스해도 잘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흐르는 세월이야 막을 수가 없지만
인연과 함께 나눈 기억들은
세월과 상관없이 그때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글을 참 의미있게 정독했습니다.
많은부분 공감하고요.
형님의 합리적인 의심과 사고력의
진중함도 마음에 듭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할지
아니면 하루라는 날과 관련된 부분이
다른 말씀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조사 해 볼 필요를 느낍니다.
아담 창조가 BC4026년이니
지구에서 살기 시작한 인간의 역사가
600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우주탄생을 수십억년 전으로 봅니다.
그러면 창조의 날과 관련된 하루가
24시간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현재의 과학이
성경의 기록을 어떻게 뒷바침하는지
하느님의 하루와 인간의 하루가 같은지
창세기의 창조기록은 인간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쉽도록 기록된 책인지~
가장 큰 사기가 종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맹신은 위험하다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형의 전공이 지질학이라
종교를 보는 눈이 남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글에 언급된 장교수님의 책
'자연과 창조의 오솔길'에서도
제라님의 생각과 비슷한 내용이
들어있지요.
마음자리님 글을 읽으며 제 남동생들을 떠올렸습니다.
세속적으로는 5살 아래 큰동생, 9살 아래 막내동생이지만 그들의 의식세계는 넓고 깊어 가끔씩 누이인 제가 여동생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
가족들이 주는 선한 영향 모든 부분에서 감사히 받아 드리며 서로 의좋게 살아갑니다. ^^*
제 누나들은 기독교, 제 형들과
어머닌 카톨릭, 아버진 유교, 저는 이도저도 아닌 떠돌이지만
서로 종교적 갈등은 없이 우애있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마음자리님과 가람님의 대화 잘 엿들었습니다.^^
한 때, 가람님의 글을 읽었기 때문에 더 정스럽게 읽었습니다.
종교를 대하는 마음에, 두 형제 분의 대화가 귀에 속 들어옵니다.
어머님의 마음을 이해하는데도,
마음자리님의 마음을 알아듯는데도 모두가 그 마음을 이해하지만,
마음자리님의 말 중에
성경 속에 묶인 하느님이 아니라 자유한
하느님으로 다시 재해석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담을 벗어났다 생각했기에
오히려 더 많은 질문과 답을
구하면서 살게 된 것 같아요.
요즘 길에서 많은 대답들을
듣고 있습니다.
콩꽃님, 아름문학상 심사하시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마음자리님의 글을 읽고 제이야기를 써봅니다
저는 4살무렵 유아영세를 받고 학창시절 카톨릭학생회 군시절에도 성당에 나갔지요 그리고
결혼도 성당 부모님도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치를 만큼 성당과 가까운 생활을 했는데
지금은 인나갑니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고해성사를 하기가 귀찮은데서 찾겠지만
신앙심이 식었기 때문일겁니다
죄송한건 천주교묘지 안장을 희망하신
어머니를 향후회묘지를 거쳐 화장후
호국원으로 이장한일니다
영세 받은 다음 해, 중2 부활절에 첫 고해성사를 했는데, 고해 할 잘못이 떠오르지 않아, 거짓말로 잘못을 지어내서 고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ㅎ
어머님은 어디에 계시든 머무시는 곳에서는 평안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