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상담방에 있는 드림테크님의 글이 개혁방 토론의 주제와 맞아서 옮겨왔습니다.
드림테크님...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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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이런 질문에 답을 드린 적이 있었는데 다시 한 번 제가 느낀 것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성경의 어떤 곳을 보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하여 행위를 강조하는 자는 외식한다하여 저주를 받는 것처럼는 적혀있고 또 어떤 곳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하여 성경을 읽는 성도들이 헷갈리게 되어있습니다.
더 문제는 이 문제를 명쾌하게 설교하는 목사님은 안계시고 이럴 때는 이랬다 저럴 때는 저랬다하여 더 헷갈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일단은 '믿음'으로 구원이냐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가를 떠나서 어떤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는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키위해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하셨습니다.
왜 그런 명령을 하셨는지는 1500년 후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예표하기 때문에 그 사건을 미리 보여주시려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키위해 그들을 그냥 데리고 나오시면 될터인데 구태여 양의 피를 바르라 하셨고 실제로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의 장남만 구원하셨습니다.
애굽사람이라도 문설주에 피를 발랐으면 장남이 죽지 않았고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좇지 않고 피를 안발랐으면 장남이 죽었습니다.
수많은 잡족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문설주에 피를 발라 구원을 얻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 광야로 나섰습니다.
결국 그 백성들은 하나님을 잘 믿지는 않고 늘 불평만 늘어놓고 살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자들은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2 노아의 방주
노아는 당대의 의인으로 하나님께서 방주를 지으라 하셨고 그 방주에 탄 사람들과 동물들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노아의 부인과 세 아들과 세 며느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방주에 탔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당시 이웃 사람들이 방주를 탔더라면 구원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가 악인이었든, 선인이었든 관계없이 구원의 방법은 방주를 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 정하신 것입니다.
노아의 부인이었더라도 방주에 타지 않았다면 그녀에게 구원은 없었을 것입니다.
3 광야에서 뱀에 물려 죽게된 자
광야에서 불평을 하다 독사에 물려 죽게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방법을 일러주십니다.
회개한 자, 약을 먹는 자, 기도한 자, 선을 행하는 자, 제물을 바친 자, 놋 뱀을 만진 자가 아닌 놋뱀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왜 또 그리하셨을 까요?
예수님의 구원을 예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3장 14절에서 주님의 구원의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놋뱀을 바라본 자만이 구원을 받았듯 예수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4 잔치에 초대받은 자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구원이 예정되었던 유대인들은 잔치 초애에 응하지 않고 이방인들이 초대되어 잔치에 참석을 합니다.
그런데 예복을 입지 않은 어떤 이가 쫓겨나게됩니다.
우리도 구원을 얻으려면 예복(주님의 의의 옷)을 입어야합니다.
당시 잔치 때에는 초대한 자가 손님들에게 예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쫓겨난 자는 자신의 옷이 더 좋다고 여겨서인지 거저 준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결국 잔치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은 자는 쫓겨나고맙니다.
5 주님의 음성을 들은 자
계시록 3장에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문을 두드린다 하셨습니다.
구원을 얻으려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문을 두드린 때 우리가 직접 문을 열어야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는 들어오셔서 우리와 같이 식사를 하시고 동행하십니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예들이 있지만 위에서 본 것 같이 '믿음'과 구원을 얻기 위한 '행함'은 나누어진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어로 '믿음'은 '아만'입니다
헬라어로 '믿음'은 '피스티스'입니다.
히브리어로 '충성' 역시 '아만'입니다.
헬라어로 '충성' 역시 '피스티스'입니다.
믿음과 충성은 같은 단어입니다.
구원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합니다.
예향의 어느 분께서 말씀하신대로 로마서 10장 9절의 예수를 주로 '시인히여'의 시인한다는 말이 헬라어로 '호몰로게오' 즉 호모(함께) + 로고스(말씀) 즐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가 되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믿음이냐 행함이냐가 논쟁의 대상이 될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충성 된 삶,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그 말씀대로 행하는 삶이 모두 포함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왜 그리 행함이 아닌 믿음을 중요시했을까요?
그 당시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이 헬라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꾸 할례를 받으라하였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구원의 표시로 인식하는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이 퍼져 육체의 할례를 받고 외식하는 삶을 살게될가봐 경계한 바울의 말임을 알아야합니다.
바울이나 루터의 말보다 예수님께서 구원의 방법을 일러주신 것을 마음 깊이 새겨야할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첫댓글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믿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충성된 삶, 말씀에 순종, 말씀대로 행하는 삶이 포함된 것.
행함과 믿음에 대하여 이해하기 쉽게 설명 하셨습니다. 감사~~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요6:40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요6:47
믿는다는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 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롬4:20
((약속하신 그 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 하였으니.. 21절
아브라함이 바랄수 없는 중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던 것이
의로 여김을 받은것 처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4:25
이사실을 믿는 우리도 아브라함 처럼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
는 약속이 롬4:24절에 기록되어 있지요
위 글에 대부분 아멘입니다,,
제가 댓글을 다는것은 위글을 반박하고자 함이 아님을 먼저 밝힙니다,,
다만 자칫 오해하기 쉬운부분이 있을것 같아서
짚고 넘어가고자 몇자 적어봅니다
<<구원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합니다>>
이 말은 구원의 조건인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면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도
구원을 받을수 없다는 뜻인가요,?
구원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말씀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이렇게 기록이 되었더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믿음도 순종을 요구하지만 율법도 철저한 순종을 요구하지요,,
구원받기위한 믿음이 원하는 순종은
복음을 듣고 마음을 열라는 것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받아들이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마음이 열리면 주님은 그에게 들어가
그에 주인이 되어 그의 삶을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가 정말 구원받았다면 이제 육신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충성된 삶이라는것은 이 믿음의 삶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만!! 구원을 받는다,, 이런 ((조건이 붙으면))
아무도 구원받을수 없는 인생이라는걸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4:5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6절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7-8절
우리는 아무 공로없이 다만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내죄가 가리워지고
내 불법이 사해 지고 오늘도 지은 죄가 죄로 인정치 않는자가 된것이지요,
애~ 이제 그만 하는게 좋겠습니다 ^^ 들을 자 들을 것이고 볼 자 볼 것이니... 우리가 우리 힘으로 우리의 노력으로 그것이 될 수 없겟지요. 길친구님.... 시간 낭비입니다. ^^ 사단의 강력하고 견고한 진을 파하는 것은 이론대 이론이 아닙니다. 모든 이론을 내려놓고...십자가의 피 로 씻겨져야 하지요. 바른 믿음이 아니라면 바른 행함이 나올 수 없지요. 야고보서의 행함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라 함은 그런거죠...바른 믿음이 아니라면 행함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죠. 르터는 죽을때까지 성직을 고수했지요. 마리아를 하나님 어머니 라고 했다던가 어쨌다던가... 그 뿌리가 다르니 그러한 열매가 나온것이죠.
야고보서신을 지푸라기 취급하였다면 말 다한거 아니겠어요 ^^;
결국 신학자들(교부들의 영향권 아래서의 태생적 한계라고 봐야죠 ^^)
그런 신학이론으로 말씀을 해부하겠다는 자체가 발칙한 것이죠 ㅋㅋㅋ
3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끝>
우리가 변화되고 삶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게 기쁨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에 근거한 죄 용서와 내주하는 성령을 통한 내적 변화는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과 율법의 완성(사랑)은 마지막 구원을 위해 필요함과 다르지 않음을 믿습니다. 사랑 안에서의 율법의 완성이 믿음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