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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年 성경적 신앙 뿌리를 깊이 내리는 해(前)
† 구약(舊約)☆(歷史書)
룻1:1-18절) 하나님의 비밀(祕密)계획(計畫)
가장 슬프고, 절망적(絶望的)으로 시작되는 내용이 룻기입니다. 룻기는 세 과부(寡婦)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즉 남편과 두 자녀가 죽고, 살아남은 사람은 시어머니와 두 며느리, 이렇게 세 과부(寡婦)뿐입니다.
그리고 두 며느리에게는 자식(子息)도, 재산(財産)과 돈도 없었습니다. 사람이 망해도 이렇게 망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집이 룻이 시집간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룻은 이 비참(悲慘) 한 상황에서 세상(世上)으로 돌아가거나, 절망(切望)해서 주저앉지도 않고,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룻의 믿음을 아름답게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룻은 아무런 희망(希望)도 없던 이방(異邦)여인에서 이스라엘의 가장 복(福)된 여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땅의 흉년(凶年)과 엘리멜렉 집에 생긴 이 비극(悲劇)을 통해 모압 여인 룻을 하나님께로 이끄셨습니다.
룻은 모압 땅에서 얼마든지 자기 뜻대로 살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세상 적(世上 的) 행복(幸福)을 뿌리치고, 베들레헴으로 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여인에게 복(福)을 주셔서 이스라엘의 영적(靈的)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죄인(罪人)하나를 구원(救援)하기 위해 하나님이 펼치시는 구원(救援)의 손길은 정말 놀랐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順從)해 세상(世上) 욕심(慾心)을 버린 자에게 받는 축복(祝福)도 놀랍습니다.
I.엘리멜렉의 집에 불어 닥친 불행(상)
룻기의 배경(背景)은“사사(士師들이 치리(治理)하던 때”였습니다. 우리는 사사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적용(適用)하는 과정에서 불안정한 시기(時期)를 보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信仰)을 굳게 지키지 못하고, 가나안의 우상숭배(偶像崇拜)에 물들어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징계(懲戒)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것은 그 땅에 흉년(凶年)이 들었다는 데 있습니다.“그 땅”이란 가나안 즉 하나님이 약속(約束)하신 땅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世上)을 살다 보면, 흉년(凶年)과 혹은 풍년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의 경우는 좀 특별(特別)합니다. 왜냐하면, 가나안의 흉년(凶年)은 그들의 신앙(信仰) 상태를 나타내는 표지판(標識板)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기도도 하지 않고, 거룩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가장 먼저 타격(打擊)을 받는 것이 농사(農事)였습니다. 즉 기근(飢饉)으로 소출(所出)이 줄어들거나, 메뚜기나, 깜부기 같은 병충해(病蟲害)가 생기곤 했습니다.
아니면, 이방인(異邦人)들이 쳐들어와서 가축(家畜)과 곡식(穀食)등을 약탈(掠奪)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사(萬事)를 제쳐 놓고, 하나님 앞에 모여 자기의 죄를 회개(悔改)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고통(苦痛)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흉년(凶年)이 들면, 자신들의‘신앙(信仰) 노선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죄를 회개(悔改)하고, 특히 우상숭배(偶像崇拜) 등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버려야 했습니다.
여기서 베들레헴이란 *떡집*을 말합니다. 아마 베들레헴은 농사(農事) 중심지(中心地)로 항상 먹을 것이 풍족했습니다. 아무리 흉년(凶年)이 들어도 떡집에는 먹을 것이 있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떡을 만들어 주다보면, 부스러기라도 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떡집인 베들레헴도 궁핍(窮乏)할 정도로 심한 흉년(凶年)이 닥친 것입니다. 이때,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의 이름은 신앙적(信仰的)입니다. 즉 엘리멜렉이란 *하나님은 왕이시다'란 뜻입니다. 이름만보면, 이 사람의 신앙(信仰) 이 대단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實際)로 그의 신앙(信仰)은 이름값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만약 진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면, 이런 흉년(凶年)이 들었을 때, 기도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어야 합니다. 그런데, 엘리멜렉은 베들레헴에 흉년(凶年)이 들자마자, 가나안 땅을 피하여 모압으로 이사(移徙)를 가버렸습니다.
1:2절)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론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그곳에 아주 주저앉아 살려고, 베들레렘에 있는 재산(財産)들을 모두 다 처분(處分)하고, 그곳(모압)으로 간 것입니다.
나중에 나오미가 돌아와서 1:21절)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라고 말한 걸보면, 그들은 오히려 재산(財産)이 풍족했었는데도 불구하고, 베들레헴을 떠났습니다.
그 이유는 흉년(凶年)이 들어 가난한 사람들이 자꾸만 *도와 달라'고 손 벌리는 것이 부담 (負擔)스러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엘리멜렉은 자기 재물(財物)을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기가 싫어서 모압으로 도망친 것입니다.
사람은 한 가지 사실을 관점(觀點)에 따라서 아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은 경제(經濟)가 어려울 때, 자기에게 재물(財物)이 있다면, 이것은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라고 생각합니다. 즉 *다른 사람을 도우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平素 사랑하고 존경하던 분, 朝餐祈禱會도 참석하던 분, 詐誕의 使嗾를 받아 信念을 굳게 지키지 못하고 背信한 나쁜 政權의 成果금 정책과 神의 직장이라고 뻐기던 토개공의 貪慾이 *힘없는 세입자'라는 약점을 알고 *악법도 법*이라면서 하나님이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시는 중에 전 財産을 팔아 공식설립한 예배당을 빼앗아 알거지로 만들고, 힘들게 전도한 교회(공동체)를 주일 11시예배 직전. 흩어지게 했을 때. 국가와 관계 공직자들이 주님의 懲戒를 받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젠 변하여 주님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오길 매일 새벽 기도하고 기대합니다.
서울시 중구 영락교회는 북한에서 피난온 한경직 목사님이 158명 중 152명과 함께 세운 교회입니다. 당시 성도들에게 *10일간 먹을 것만 남기고 모든 재산을 건축헌금하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알고. 순종하여 6명만 불참했고, 모두가 헌금하여 설립한 주님의 몸된 교회입니다.
대상29:14절)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그 후 건축헌금한 그들이 굶어 죽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자아(自我)를 비운 아름다운 믿음의 그릇을 보시고. 기뻐하셔서 남대문시장을 비롯한 한국 경제부흥의 기적을 일으켜주셨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없는 재능(才能)이 자기에게 있다면, 이것으로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기에 기뻐합니다. 그런데, 심보가 이기적(利己的)이며 시기(猜忌)하는 좀비들은 그런 재물(財物)과 재능(才能)으로 우쭐하고, 남을 무시(無視)합니다. 그리고 가진 것을 남에게 주기 싫어서 퇴출시키고 도망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10리도 못가서 쫄딱 망할 것입니다.
엘리멜렉이 베들레헴을 버리고, 모압으로 도망친 근본적(根本的)인 원인(原因)은 그에게 “약속의 땅”에 대한 비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약속의 땅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를 깨달았다면, 아무리 힘이 들었어도 끝까지 꾹 참았을 것입니다.
약속(約束)의 땅은 하나님의 죄 용서(容恕)함이 있는 곳입니다. 누구든지 변(變)하여 새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약속(約束)의 땅은 성령의 임재(臨在)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이 있습니다. 엘리멜렉이 진정한 신앙인(信仰人)이었다면, 이런 흉년(凶年)이 들었다 해서 쉽게 베들레헴을 포기(抛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과의 이해관계 때문에 너무나 쉽게 교회(공동체)를 포기(抛棄)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공동체)가 얼마나 복(福)된 곳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공동체)는 하늘이 열린 곳이요, 성령의 생수(生水)가 흐르는 곳입니다.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없는 신령한 복이 임(臨)하는 곳이 주님의 몸된 교회(공동체)입니다. 엘리멜렉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所望)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엘리멜렉처럼 돈은 많지만, 믿음이 적은 사람은 주위에 가난한 사람이 많은 것을 부담(負擔)스러워합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부자(富者)들만 모이는 곳을 찾아갑니다. 왜냐하면, 부자(富者)들끼리 모이면, 부담(負擔)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돈이나 재산의 분량(分量)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분량(分量)대로 살아야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재산이 있어도 내놓을 믿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남에게 필요한 것이 자기에게 있다는 사실로 기뻐하고 감사(感謝)하며, 자신의 것을 그들에게 나눠' 줍니다.이것이 곧 선(善)한 청지기입니다.아-멘
찬송가 240장 *주가 맡긴 모든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