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을 맞아 예천군 관내의 명승 및 관광지 등에 주말과 휴일이면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는 가운데 특히, 삼강주막, 회룡포를 둘러본 관광객들이 용궁 순대와 오징어를 맛보기 위해 용궁면을 찾아 대기표를 받고 길게 늘어서 차례를 기다리는 진풍경을 한 번 경험해 보자. [예천군 관내 봄 여행으로 인기가 높은 지역을 소개한다]
회룡포=회룡포는 마치 용이 휘감고 있는 듯한 모양으로 한 삽만 뜨면 섬이 되어 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물도리 마을로, 2005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6호 지정, 2009년 국토해양부와 한국하천협회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 최우수상 수상, 대한민국 여행 작가가 추천한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 등 화려한 수식어를 자랑하는 만큼 맑은 물과 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진 자연경관으로 전국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과거 회룡포는 나룻배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워 한국전쟁을 피해갈 정도로 한적한 곳이었다. 그래서 나라의 큰 난리가 있을 때마다 인근 백성의 은신처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마을 대부분이 논밭이지만 원래는 밖에서 보면 안에 무엇을 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소나무가 무성했다.
회룡포와 세상을 이어주는 길은 개포면에서 들어오는 임도와 육지의 모래밭과 마을의 모래밭을 이어놓은 철다리다. 교각을 세우고 공사장에서 쓰는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을 두 줄로 깔아 놓은 다리로 마을 사람들은 구멍이 뽕뽕 나 있다고 해서 '뿅뿅다리'라고 부른다. 2000년 KBS 인기드라마 '가을동화'의 주인공 준서와 은서가 어린 시절 놀던 곳으로 다리를 건너보는 것 또한 신나는 추억거리가 된다.
내성천과 회룡포의 참모습을 한눈에 보려면, 장안사가 있는 비룡산 중턱의 회룡대에 올라야 한다. 솔향기 그윽한 장안사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금강산과 경남 양산, 국토 중간인 비룡산에 하나씩 모두 3개의 장안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가 머무르며 '장안사에서'란 절창을 지어낸 유서 깊은 도량이다.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명승지 회룡포에 대한 자연적.문화적 경관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탐방객들이 체험하며 즐기고 볼 수 있도록 보완하고자 소나무 숲 복원, 마을 안 도로 및 담장 정비, 연지 및 휴식공간 조성, 마을 내 전선 지중화 등을 추진하여 아름다운 회룡포를 보존하고자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강주막=풍양면 삼강은 서울로 향하는 길목으로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장사치들이 문경새재를 넘기 위해선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만 했다. 삼강나루는 1960년까지 김해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온 소금배가 드나들던 곳으로 그 시절만 해도 주막엔 늘 장사꾼과 길손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는 게 삼강주막의 마지막 주모 유옥연 할머니의 생전 증언이다.
전국 도처에 산재한 다른 주막과 마찬가지로 삼강주막 역시 나루터가 제 기능을 잃기 시작하면서부터 급격히 쇠퇴하였고,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고 막걸리가 서민들로부터 외면 받으면서 쇠락은 더욱 촉진됐다. 결국 주모와 손님도 삶의 애환을 뒤로하고 주막을 떠나가는 와중에도 삼강주막과 유옥연 주모만이 70년 긴 세월을 꿋꿋이 지켜왔다. 2005년 주모가 작고하여 전통주막은 사실상 민중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졌다.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강을 건너야 하는 선비의 결기나 뱃사공의 영혼, 보부상과 장돌뱅이의 헛헛한 마음이 장착되지 않고서는 '주모 한상'을 차려 잔을 기울여도 제 맛을 느꼈다고 하긴 어렵다. 삼강주막은 사극에서 보는 주막과는 거리가 좀 있다. 몇 차례 물난리를 견딘 어른 팔뚝 굵기의 나무기둥과 머리를 꼿꼿이 들면 닿을 수도 있는 낮은 천장, 어른 몇이 앉기에도 옹색한 두 칸 방이라 툇마루에까지 상을 차렸고, 바로 음식을 내게끔 모든 방은 쪽문이 부엌으로 트여 있다.
어쩌면 주모의 걸쭉한 입담과 주모에게 거는 은밀한 수작의 감춰진 스토리 하나쯤 발굴해낼지도 모르겠다. 이제 소금배와 나룻배는 사라지고 삼강교와 신작로가 들어서면서 교통요지로서의 인적은 끊겼지만, 주막의 옛 정취를 찾으려는 발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군청에서도 회룡포 등과 묶어 관광자원으로 활용코자 주변을 잘 정비해 두었다.
곤충의 세상! 예천곤충생태원=곤충!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 하늘소를 잡아 재미있게 싸움을 시켰던 기억도 있지만 해롭고, 징그럽고, 성가신 존재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우리 주변에 가장 가까이 있는 파리, 모기, 바퀴벌레 등 해충을 많이 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곤충이 해충은 아닐뿐더러 만약 곤충이 없다면 자연 생태계는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자연에서 곤충은 1차 소비자인 동시에 식물의 수분을 도와 개체수를 늘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곤충이 없다면 농산물 수확량이 급격히 줄어 식량부족 사태를 낳고, 산소도 부족해질 것이다. 이에 곤충은 지구상의 마지막 미개발 생물자원으로 재평가되고 있으며, 그 해답은 예천군 곤충연구소를 찾아보면 알 수 있다.
예천군 곤충연구소는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 고항리 일원에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1997년 산업곤충연구소를 설립한 이래로 화분매개곤충인 호박벌과 머리뿔가위벌의 연구 및 사육기술 개발로 전국의 과수농가와 시설채소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곤충체험관찰시설로 각광받고 있는 예천곤충생태원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나비터널은 연장 67m 폭 22m 높이 13m의 규모로 쥐방울 덩굴, 자귀나무 등 기주식물과 다양한 밀원식물을 식재하여 꼬리명주나비, 암끝검은표범나비, 호랑나비 등 다양한 종류의 나비들이 자연적으로 서식하도록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여 관찰할 수 있도록 조성했다.
이밖에 곤충을 잡아먹는 식충식물과 허브식물을 식재해 놓은 식충식물온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무당벌레 야외분수와 바닥분수, 벅스하우스, 수변생태공원, 곤충체험원, 전망대, 산책로, 장수풍뎅이와 쇠똥구리 모양의 편의시설과 전국 조각 작가들의 조각품들이 숲속에 전시되어 관람객들에게 곤충 학습과 휴식공간으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곤충생태체험관에는 3D영상관, 곤충역사관, 곤충생태관, 곤충자원관에서 곤충의 역사와 생태도 배울 수 있다. 비단벌레는 신라시대 왕릉 금관총에서 발견된 의류와 말안장 장식, 고구려 동명왕릉 해뚫음무늬금동장식 등 고대 왕들의 부장품에서 장식용으로 발견되어 예로부터 부와 명예 그리고 영생의 상징으로 전해진다.
특히 지난해에는 2012 예천곤충바이오엑스포를 개최하여 85만여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고, 34억 원의 입장료 수입을 올렸으며, 1천억 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거두는 성과를 올렸다. 세계곤충학회로부터 세계 최고 곤충축제로 인증 받았으며, 대한민국 지방자치 축제 대상 수상하는 등 예천은 곤충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용문 금당실=금당실은 정감록(鄭鑑錄)에 남사고(南師古:1509~1571)가 꼽은 '십승지지' 중 한 곳으로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고 했던 만큼 경치가 빼어나다. 소백산 자락에 자리잡은 마을 옆으로는 금곡천이 흐르고 비옥한 농경지가 형성돼 있다. 특히 '충효마을'이라는 이름 아래 남녀노소를 불문한 자연과 문화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많은 전통 문화재가 산재돼 있다.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저택 터를 비롯한 고가옥, 인근에는 초간 권문해의 유적인 초간 종택과 초간정, 용문사 등의 문화유적이 많이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생활의 재현과 대동운부군옥(보물 제878호), 초간일기(보물 제879호) 등의 사료적 의미를 가진 유교문화자원을 통해 산실 교육의 장으로도 좋은 곳이다. 고가옥과 미로로 연결돼 있는 돌담길은 양반문화를 그대로 간직해 역사, 문화, 전통이 강하다.
마을의 매력은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반상의 문화가 공존했던 마을의 특성을 살린 다양한 고택 민박과 농촌 체험이 인기다. 소달구지를 타고 마을을 둘러볼 수도 있고 곡물 파종과 나무캐기도 할 수 있다. 채취한 산나물은 집으로 가져가도 된다. 직접 김장을 담궈 김치도 맛볼 수 있다. 장터 체험, 투호와 제기차기 등 전통놀이도 인기다.
최근에는 영화 영어완전정복(2003), 나의 결혼원정기(2005), 그해 여름(2006), KBS 드라마 황진이(2006) 등 각종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서도 명성을 얻고 있다. 이곳을 찾은 한 관광객은 "개인주의와 핵가족화로 잊히고 있는 이웃사촌간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지나가는 나그네라도 물 한 모금과 따뜻한 아랫목을 내어줄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을"이라며 "선조들의 지혜와 생활양식을 체험할 수 있어서 유익했다"고 말했다.
예천인터넷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