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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띠 을미년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요즘 한국 사람들은 하늘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푸른 창공의 맑고 거대한 기운을 느끼기보다는 너도 나도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고 땅만 보고 지낸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 안에서 독서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는 거의 보기 힘든 장면이 되었다. 젓가락으로 콩을 집을 수 있는 민족의 DNA는 이제 거의 마술에 가까운 엄지족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방통위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63.5%(2012년)이다. 1년 사이에 무려 두 배로 뛰어오른 것이다. 초고속인터넷 보급률(100.6%, 2011년)과 인구 100만 명당 특허출원 건수(2,634건, 2009년)도 OECD 국가 중 1위다. 이런 점에선 우리들은 분명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 국가’에 살고 있다.
지난 수천 년간 인류는 동서양을 대표하는 슈퍼스타들이 만들어놓은 사유의 산물로 인해 그것을 학습하며 지식과 전공의 칸막이를 이어왔다. 그러나 구글의 음성인식이 키보드를 대신하고 소위 TGIF(트위터, 구글, 아이폰, 페이스북)로 상징되는 전 세계 SNS의 엄청난 유통은 이제 정보 빅데이터의 대홍수기를 가져왔다. 철학자 데카르트의 대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조차 이제는 “I‘m connected, therefore I am"이라고 하는 시대다. 작년 지식콘서트 '지금은 생각의 시대'에서 김용규 박사는 “인터넷 접속 인구가 현재 10억 명에서 10년 후면 50억 명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다. 지식은 사흘마다 두 배씩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그 많은 걸 머릿속에 넣어 다닐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언제든 검색해서 쓰면 된다. 대학 건물은 머지않아 물류 창고로 전락할 것이다.”라고 설파하였다. 아는 것은 더 이상 힘이 아니다. 지식이 경쟁력인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생각이 힘이고, 경쟁력이다.
인간은 로봇이나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일을 하지 못하면 존재 의미는커녕 생존조차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인터넷과 SNS 이제는 웨어러블 기기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ICT 기술의 혁명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인간 생각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노브레인 현상에 대해 저명한 미국의 IT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카는 그의 저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일종의 뇌 강탈자로서 인터넷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인류는 지식을 함양하는 존재에서 전자 데이터라는 숲의 사냥꾼이나 수집가로 전락하고 있다.”라고 우려하고 있다. 심지어 대학 강의실에서 인터넷에서 찾다 없으면 교수가 과제를 잘못 출제했다고 하는 학생들도 있다. 발표 자료는 멋지게 제작해오는 학생들도 막상 그것을 해석해내는 자리에 서면 종합적이고 깊이 있는 사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해몽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70% 가까운 사람들이 일개 포털사이트에서 올린 뉴스와 정보, 지식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 현실에서 빌게이츠나 아인슈타인이 나오길 기대하긴 힘들다. 작년 삼성전자가 신입사원 채용 시 종이신문을 보지 않는 사람은 뽑지 않겠다고 한 것도 결국 사고의 중요성을 평가한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검색의 고수를 자랑하는 고급 무뇌아들이 대량으로 이 사회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통계를 보아도 이러한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미래 지성인으로 커야 할 한국 남자 대학생이 하루 책을 읽는 시간(42분)은 인터넷을 이용하는 시간(127분)의 3분의 1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국인 10명 중 3명(33.2%)은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다. 국민의 연간 독서량 또한 0.8권에 불과해 유엔 191개국 중 166위라는 이야기는 경제 대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무색케 한다. 결국 세계 최고의 창의성을 가진 우리 민족의 원형질이 손가락과 눈동자에 의존하는 검색의 노예가 되어가고 우리 선현들과 같은 사색의 향기는 사라지고 있다.
한편, 『2030 기회의 대이동』에서 저자 최윤식은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 라는 화두와 관련하여, “디지털 사회가 가속화되어갈수록 오히려 아날로그적 예술적 상상력이 그 어떤 능력보다 큰 능력으로 인정받을 것이라며, 결국 끊임없이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것은 상상력의 몫이다.”라고 역설하고 있다. 요컨대, 탁월함보다 새로움을 창조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상상은 기존의 금기에 대한 도전이자 기분 좋은 반란이다. 사실 예술적 상상력은 기존의 것을 부정하고 전혀 새롭거나 또는 엉뚱함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찾아 나서는 힘으로 작동되는 인간의 최고 능력이다. 인터넷에 떠 있는 것을 퍼다가 나열하여 퍼즐식으로 짜 맞추는 학습으로는 정답형 인간을 길러낼 순 있겠지만 절대 해답형 인간을 육성해낼 순 없다. 오로지 인류가 쌓아온 지혜와 사색의 향기에 빠져들어야만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질 수 있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정신 가치를 얻게 될 것이다. 국내 교육의 대전환이 시급한 실정이다.
시대를 바꾸는 창의력은 폭넓은 교양과 깊이 있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며, 교양은 독서의 힘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에 모바일 메신저 ‘카톡’의 돌풍을 일으킨 SNS 주역 김범수 의장조차 “인터넷 검색은 독서를 대신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진정 사유는 고독을 먹고 자란다.
이동규 국내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경영·정책 자문 교수, 행자부 정부혁신관리위원(대통령 표창),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평가위원을 거쳐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정부경영평가단 팀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생산관리학회 부회장, 품질경영학회, 서비스경영학회, 문화예술경영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기타 행정자치부 정책자문위원, 한국철도공사(KR) 경영자문단 CS위원장, LG 그룹 경영 자문 교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의 경영코드』(21세기북스) 외 품질경영과 서비스 분야에 관한 10여 권의 저서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