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는 가행정진하는 기회를 놓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루든 꾸준하게 계속해야 기대했던 결실을 보게 됩니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육도 유치원부터 연속해서 16년 이상을 받아야 하는데 인간을 벗어나고자 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하겠습니까.
억겁을 중생으로 살아왔다면 그 세월만큼 돌아가야만 원래의 자리로 환원하게 됩니다.
그런데 보통의 불자는 몇 년 아니면 십수 년 다니고는 다 그만두어 버립니다.
그만 둔 이유야 내외적으로 많겠지만 정확히 중생세계로 끌어당기는 죄업이 세어서 그렇습니다.
이것은 체내에 쌓인 니코틴 독성으로 금연에 실패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찰과 스님도 한 이유가 됩니다. 효가 인생의 근본이라고 해서 불교를 그렇게도 박해하던 제사후예들이 이제 그 제사가 싫다고 절에다 떠맡겨 버려요.
절은 그들이 던져버린 그 효의 찌꺼기를 받아서 제사로 먹고 살지요. 굿당에서는 무당이 굿을 하고 법당에서는 스님이 재받이 노릇을 해서 먹고 삽니다.
참 억장이 무너지는 현실이지요. 법당은 이미 제당이 되어 있고 불상은 제사에 필요한 보조상이 되어 버렸어요. 사찰이 무슨 세상 사람들 조상 재실입니까.
사찰이라 하면서 불사금을 받아 고래등 같은 건물을 지어놓고 영가 위패 장사로 사찰을 운영하고 있으니 너무 슬프고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인과를 말하면서 천도재를 지내고 윤회를 말하면서 위패를 봉안하고 무상을 말하면서 영탑을 세우고 무연자비를 말하면서 기도를 붙이고 하는 이런 모순이 실망을 주지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공무원과 관공서가 꼴 보기 싫어도 그들에 의해 나라가 움직이듯이 그런 스님과 사찰이 꼴 보기 싫어도 그들에 의해 불교가 이만큼이나마 존속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불교 속에 참다운 절이 있는 것입니다.
중생을 따라가며 마지막 치다꺼리하는 절이 아니라 중생을 영원히 살리는 길로 앞에서 이끄는 절입니다.
돈이 모이면 더 값진 것을 사러가듯이 기존 절에 다니면서 복이 쌓이면 그런 기복사찰을 떠나 발원수행을 하는 더 값진 사찰을 찾게 됩니다.
그런 사찰은 되도 않은 깨달음을 말하지 않고 가피나 소원성취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삼계의 화택에서 어떻게든 중생들을 끌어내 안락처로 데리고 가려합니다.
그런 청정한 도량에서 훌륭한 스님을 모시면 줄탁연기와 같아 그 수행은 나날이 향상되고 아름답게 회향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우나 고우나 부처님이 계시는 사찰과 함께 수행하지 않으면 신심이 퇴굴되거나 휴폐되어 가행정진의 큰 이익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終)
출처 : 대승기신론 해동소 전문도량 원효센터 3부 법회에서 공파스님 법문
카페 게시글
자유 게시판
스승과 절 없이 인터넷으로 신행하는 자는 여섯 가지 이익을 놓친다.6
지관知觀
추천 0
조회 4
24.10.16 12:58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