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성지통(崩城之痛)
[요약] (崩: 무너질 붕. 城: 재 성. 之: 갈지. 痛 아플 통)
성(城)이 무너질 만큼 큰 슬픔이라는 뜻으로, 남편(男便)이 죽은 슬픔을 이르는 말.
[출전] 《유향(劉向)의 열녀전(列女傳)》 등등.
[내용] 남편이 죽어 슬피 우는 것을 뜻하는 이 성어는 한(漢)나라의 유향(劉向)지은 열녀전(列女傳)》 4권 정순전(貞順傳)에 이렇게 전한다.
제기량처(齊杞梁妻)제나라 기량의 아내이야기.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 기량식(杞梁殖)의 아내가 있었다. 제나라 장공(莊公)이 거(莒)땅을 습격하였는데, 그때 기량식은 앞장서서 적군을 많이 죽이며 처
들어갔다. 장공이 기량에게 ‘거 땅의 백성도 우리백성이 될 것이니 너무 죽이지 말라’라면서 말렸으나 기량이 듣지 않고 싸우다가 죽었고 죄를 얻었다.
장공이 승리하고 돌아오다가 기량의 아내를 만나게 되어 사자를 보내 길에서 조문을 하게했다. 그러자 기량의 아내가 말했다.
“저의 남편이 죄를 얻었는데, 어찌 주군의 명을 욕되게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저의 남편의 죄를 사해 주시면 천첩은 남편의 누추한 자리 밑에 있을 것이며, 첩은 부득이 들판에서 조문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에 장공은 자신의 불찰을 뉘우치고 수레를 돌려 기량의 집에 들려 정중하게 조문을 하고 돌아갔다.
기량의 처는 자식이 없었으며, 내외로 오속지친(五屬之親= 초상을 당했을 때 망자(亡者)와의 혈통관계의 원근에 따라 다섯 가지로 상복을 입을 친척)도 없었다. 기량의 처는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남편의 시신을 성 아래 두고 통곡을 하니,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며 모두 눈물을 흘리더니, 10일 지나자 성이 무너져 내렸다(乃就其夫之尸於城下而哭之,內諴動人,道路過者莫不為之揮涕,十日,而城為之崩).
그렇게 장례를 치른 기량의 아내가 말했다.
“나는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부녀자에게는 의지하여 살 곳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계실 때는 아버지에게, 남편이 있을 때는 남편에게, 자식이 있을 때는 자식에게 의지하여 살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의지할 아버지, 남편, 자식이 없다. 안으로 의지하여 내 정성을 쏟을 곳이 없고, 밖으로는 내 절의를 세울 일이 없다. 내 어찌 개가를 할 수 있겠는가! 아 나에게는 죽음만 있을 뿐이다(吾豈能更二哉!亦死而已).” 그리고는 치수(淄水)로 달려가 빠져 죽었다.
군자가 이르기를, ‘기량의 처는 정절의 예를 알았다(杞梁之妻貞而知禮).’고 했다.
이하 대전일보[우리예절 바로알기] 조상과 문상을 바르게 하자
요즘 잇따른 부고(訃告)에 장례식장을 자주 찾게 되면서 조상(弔喪)하고 문상(問喪)하는 예절을 생각하게 됐다. 꽤 오래 전에 상가에 조문을 하러 갔더니 성복(成服) 전이고 내간상이라 조문(弔問)하지 않고 문상만 했다. 그런데 다른 조문객들을 살펴보니 많은 사람들이 조상하고 문상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면서 상주가 조상하지 않은 나에게 오해나 하지 않을까 염려했던 기억이 있어 고례(古禮)에 의한 조상과 문상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고례(古禮)에 조상하는 법은 죽은 이를 생전에 알았으면 죽은 이에게 조상하고 상주에게도 문상하지만, 죽은 이를 알지 못하고 상주만 알면 죽은 이에게 조상하지 않고 상주에게만 문상한다 하고 또한 남녀의 내외(內外) 법이 엄격해 죽은 이가 여자인 내간상(內艱喪)인 경우 상주에게만 문상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교인들은 빈소에 절하지 않기 때문에 고례에 의하여 조상하지 않아도 크게 흠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조상하는 순서는 우선 상가에 도착하면 호상소(護喪所)에 들러 빈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공수(拱手)한 자세로 극진히 곡하고 두 번(여자는 네 번) 절한다. 분향 대신 헌화를 하는 빈소가 많은데 이 때 꽃송이가 조문객 쪽으로 오게 놓아야 한다. 문상(問喪)하는 요령은 상주가 손님에게 먼저 절하고 (맞절하지 않을 정도의 아랫사람이면 절하지 않는다) 손님은 상주의 절에 답배한다(상주가 절하지 않을 정도의 아랫사람이면 절하지 않는다).
문상(問喪)하면서 손님이 상주에게 하는 위문(慰問)의 말을 보면 부모의 상에는 "얼마나 망극(罔極)(부), 애통(哀痛)(모) 하십니까?", "천붕지통(天崩之痛)을 무엇이라 여쭈리까?" "상사의 말씀 여쭐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면 상주는 "오직 망극(罔極)(父), 애통(哀痛)(母)할 따름입니다." 남편의 상에는 "붕성지통(崩城之痛)을 무엇이라 여쭈리까?", "상사의 말씀 여쭐 말씀이 없습니다." 미망인은 "눈앞이 깜깜합니다." "그저 하늘이 무너진 듯하옵니다". 또 아내의 상에는 "고분지통(叩盆之痛)을 무엇이라 여쭈리까?", "상배(喪配)의 말씀 무엇이라 여쭈리까?", 상주인 남편은 "그저 땅이 꺼진 듯합니다." "앞날이 막막합니다." 또 아랫사람의 상을 당한 어른에게는 "얼마나 가슴 아프십니까."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복인은 "인사 받기가 부끄럽습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에게는 "상명지통(喪明之痛)을 무엇이라 여쭈리까?"라고 한다고 하였으나 그 말들이 어려워 실용화되지 않고 있고 현재에는 "얼마나 슬프십니까?", 또는 "상사(喪事)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또한 부의금(賻儀金)은 영좌(靈座)에 올려놓거나 상주에게 직접 주는 것이 아니고 호상소에 내는 것이고, 장인 장모 당내간(堂內間= 8촌 이내 일가)에는 '부의(賻儀)'라 쓰는 것이 아니라 '애도(哀悼)', '애통(哀痛)'이라고 써야 옳다.
사람의 죽음은 돌연한 것이기에 서로 최선의 부조를 하는 것이 예의이다. 부의금(품)은 영좌에 올리거나 상주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조문 후 호상소에 전달한다. 과학 문명의 발달로 풍요로운 세상이지만 윤리 도덕이 날로 땅에 떨어지고 있는 요즘, 어른들로부터 우리의 예절을 잘 익히고 지켜서 도덕적인 건전한 사회를 이룩하여야 하겠다.
김태현 한국전례원 충남지원장
첫댓글 고례의 전통을 따름이 옳겠지만 시류에 부합되지 못하면 이또한 왕따라니......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네에. 시절에 맞는 예법이 예이지요. 감사합니다.
붕성지통(崩城之痛), 시골에 친구의 부고를 받고 가고 있는 중에 이 글을 보고 있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