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28일 현대자동차의 누적 수출대수가 1000만대를 돌파했다. 이로써 현대차는 1976년 국내 첫 고유 모델인 ‘포니’ 6대를 남미 에콰도르에 처음 수출한 지 28년 만에 자동차 수출 1000만대 기록을 달성했다. 금액으론 816억달러에 이르는 수치였다. 자동차 1000만대는 여의도 면적의 27배에 달하며, 자동차 1000만대를 일렬로 세우면 지구 둘레를 한번 돌고도 한반도를 두번 더 왕복할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지난 67년 창업한 현대자동차가 이날 자동차 수출 1000만대의 금자탑을 쌓기까지는 눈물겨운 곡절이 많았다. 68년부터 포드자동차와 제휴해 조립 생산한 ‘코티나’가 잦은 고장을 일으키자 고(故) 정주영 회장은 주변의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내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미쓰비시로부터 엔진 기술을 넘겨받고, 이탈리아의 디자이너에게 자동차 디자인을 맡겨 76년 1월엔 국내 첫 고유 모델인 ‘포니’를 자체 제작했다. 포니는 당시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현대차는 그해 6월 ‘포니’ 6대를 남미 에콰도르에 처음 수출했다.
현대는 또 80년대 초반엔 캐나다에 포니 생산공장을 지었고, 미국으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애프터 서비스망이 부족했던 현대차는 곧바로 소비자들로부터 버림받기 시작했다. 사막에서 차가 고장나면 그냥 버리고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돌리는 데 10년 이상 걸렸다.
유독 품질 경영을 강조하던 정몽구 회장의 취임(99년)과 함께 자동차 품질이 크게 개선되면서 소비자들로부터 다시 인정받기 시작했다. 현대차 소나타는 2004년 미국 자동차품질 조사기관인 JD파워로부터 중형차 시장에서 1위를 인정받았고, 시장 점유율도 0.9%에서 2.5%까지 끌어올렸다. 2004년 현재 현대차의 수출국은 지난 80년 38개국에서 193개국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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