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돌봄의 사랑
작은 공동체인 가정은 가족 간에 나눔과 돌봄, 훈육으로 이루어진 사랑의 공동체이다. 예부터 가정은 어머니의 역할이 컸다.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면서도 매로써 훈육했다. 그러나 세월이 변함에 따라 그 사랑도 변하는가 보다. 지금은 자식에게 그저 베푸는 게 사랑인 양 과잉보호와 돌봄으로 변했다.
학교 교육에도 매가 사라져 학생들이 천방지축으로 날뛰어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인성교육은 사라지고 지식교육에 치닫고 있다. 학생들은 인성교육의 부재로 자기 조절 능력이 없어 제멋대로 행동하니 사회의 악이 범람하여 상상도 못 할 일이 백주에 일어나고 있다. 참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경전의 말씀에도 “아이를 훈육하는 데에 주저하지 마라. 아이를 매로 때리는 것은 그의 목숨을 저승에서 구해 내는 일이다.”(잠언 23, 13)라고 한다. 우리의 옛 ‘밥상머리 교육’은 대가족 제도에서 식사 때에 웃어른께서 하신 말씀이 아랫사람에게 전해지는 훈육이었다. 예절이며 인성이 웃어른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전승되었다.
이스라엘은 ‘탈무드’라는 교육 지침서가 있다.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자식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교본이다. 어릴 때부터 그런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으니 반듯한 인격이 형성된다. 미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에는 유다인이 많다고 하며 그들의 애국심은 대단하여 자국 이스라엘을 돕고 있다.
인간성 회복은 윤리와 정신에 있다. 오늘날 과학 만능 시대에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물질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충족시켜주니 남을 위한 배려와 나눔의 정신이나 윤리 사상은 없으며 종교도 멀리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물질적으로 풍족한 데에 비하면 정신은 뒤떨어져 잘 살면서도 행복감은 떨어지고 있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다.
행복은 가치관에 있다. 어른들의 말씀에 없이 살아도 옛날 그때가 행복했다고 한다. 작은 것이라도 이웃에 나누고 서로 돕고 살았으니 말이다. 현대는 물질적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니까 여러 가지 갈등이 일어난다. 윤리적, 정신적(영적) 가치를 회복하여야 삶이 평화롭고 기쁨이 커짐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현대는 천구백오륙십 년 대 삶에 비해 수백 배나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 그런가 하면 정신적으로는 비례하여 아래쪽으로 퇴보하여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삶의 질이 물질에만 매달리고 있으며 정신의 함양에는 전무(全無)한 실정이다. 학생들이 의대나 약대에 가려고 하지, 철학이나 인문학에 공부하려는 학생이 없으니 말이다.
우리 사회는 어른을 존중하는 사회, 사회복지가 원만한 사회, 없어도 무시 받지 않는 사회, 자기 일에 만족하는 사회가 되어 이웃에 정을 나누고 어려운 이에게 돌볼 수 있는 사회가 하늘의 천국이 지상의 천국이 되는 것이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며 이웃사랑을 행하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