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41]아름다운 사람(1) -송경태
엊그제 오수개연구소 정기총회 말미에 시각장애인 송경태 박사의 특강을 들었다. 자신의 저서 『엉금엉금 에베레스트』(따뜻한 손 2018년 펴냄, 279쪽, 16000원)도 한 권 선물받았다. 입춘이 지나고 내일모레 경칩을 앞두고 눈발이 날리는 등 꽃샘추위가 요란한 3월 첫 일요일 아침, 그 책을 펴들었다. 그는 육군 이등병 시절 폭발사고로 시력을 잃은 1급 국가유공자.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고비·아타카마·남극 등 ‘세계 4대 극한 마라톤’을 완주하여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철각鐵脚 철인鐵人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그동안 책도 6권이나 펴냈고, 2012년에는 휴먼 다큐 <인간극장 5부작>에도 출연한 유명인사였다. 게다가 내 고향 인근마을(임실 오수면 상신촌) 출신인 것을. 유튜브에서 그가 지었다는 ‘삼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 낭송도 들으며, 주최측이 “아름다운 사람-송경태 박사”라고 소개했듯, 진정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우리 주변에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얼굴이 스님들처럼 맑았다. 욕심이 없으면 그렇게 되는 걸까.
이 책은 안나푸르나·킬리만자로 등을 등정하고, 에베레스트에 도전했으나 정상을 눈앞에 둔 임자체에서 네팔 대지진으로 철수한 이야기를 담담히 풀었다. 천재지변으로 완등完登은 못했으나, 온몸으로 사선을 넘으며 삶과 죽음의 의미라는 인생의 다른 가치를 체득했다는 내용이다. 도대체 체력이 얼마나 좋고, 신체 단련을 얼마나 했으면, 정상인들도 꿈을 못꿀 극한지역 마라톤과 5000m도 넘는 고산 등반을 할 수 있을까? 믿기조차 어렵지만, 그가 못해내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회복지학 박사가 되었는가 하면, 작가와 강사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고 한다.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 (사)헬렌켈러복지회 이사장, 전북장애인신문 발행인 등 직함도 여러 가지이다. 그는 2016년 에베레스트 도전을 높이 평가받아 '엄홍길도전상'을 받기도 했다. 어찌 ‘대다나다(대단하다)’는 말로 그칠 것인가. ‘삶의 영웅’ ‘아름다운 사람’은 이런 분들을 일컫는 게 아닐까. 짧은 특강은 건강하고 유복裕福한 내가 쥐구멍으로 숨고 싶을만큼 부끄러운 시간이기도 했다.
송경태의 ‘삼일만 눈을 뜰 수 있으면’(지금은 절판됐겠지만, 동명同名의 책도 2008년 펴냈다) 시 전문을 전재하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심호흡을 한 후 천천히 읽어보시기 바란다. 시인은 내일이면 다시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될 마지막 날 "실컷 울겠다"고 한다. 어찌 뭉클하지 않은가. 나도 몰래 한 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다.
첫 날은 제일 먼저 사랑하는 아내 얼굴을 보고 싶다
25년 전 앞 못 보는 남편 만나
속이 다 새까맣게 타들어가도
묵묵히 가정을 지켜준 천사의 얼굴을 꼭 한번 보고 싶다.
다음은 부모님 얼굴을 보고 싶다
두 눈을 잃은 아들 부여잡고 통한의 아픔이 있어도
꿋꿋이 한 서린 삶을 살아 오신 인자하신 얼굴을 보고 싶다.
다음은 두 아들 녀석 얼굴을 보고 싶다
야구놀이 같이 안해줘도 친구들 앞에서 기죽지 않고
깡총깡총 토끼처럼 건강하게 자란 두 아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둘째 날은 집 주변 풍경을 보고 싶다
아파트촌 숲길 거닐며 옆집 아저씨도 만나서 골프며 고스톱도 치고 싶다
다음은 운전을 하고 싶다
전국 방방곡곡 신나게 누비며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인터넷 게임을 하고 싶다
화려한 화면을 보면서 열광적으로 신나는 게임을 하고 싶다
삼일 째 되는 날은 영화 감상을 하고 싶다
심야에 심형래의 디워도 보고 해리포터도 보면서
아름다운 화면을 기억하고 싶다
그 다음은 여행을 하고 싶다
나 홀로 자전거 타고 이름 모를 곳으로 가 사색을 하고 싶다
그리고 책을 읽은 후 실컷 울겠다
읽고 싶었던 책 실컷 읽고
세상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기에 실컷 울겠다
시각·청각·언어장애(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음) 등 3중고를 극복한 ‘인간승리’ 헬렌 켈러(1880-1968)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과 곧바로 비교가 되지 않은가. 헬렌은 “장애는 불편할 뿐 불행하지는 않다”며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첫째 날은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겠고, 둘째 날은 밤이 아침으로 변하는 기적을 보겠다, 셋째 날은 사람들이 오가는 평범한 거리를 보고 싶다. 단언컨대, 본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본다는 것만큼, 볼 수 있다는 것만큼 큰 축복祝福이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우리가 이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배우고 본받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해보자. 전라도말로 “지(제) 복에 겨운 줄도 모르고 ‘야냥개’ 떤다”는 말이 있다. 야냥개는 ‘엄살’을 뜻하는 듯. 우리에게 지금 주어진 환경과 조건 등은 아랑곳하지 않고, 삶에 감사하기는커녕 걸핏하면 투털이스머프가 되지는 않는지 자성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