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말씀의 향기♣ No3583
8월15일[성모 승천 대축일]
--------------------------------
평화의 주님! 하루의 양식이 될 이 강론을 받아보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며 은총 주소서.
-------------------------------
**cpbc방송미사**
https://www.youtube.com/watch?v=fL-QFOv4GuE (이재화 사도 요한 신부님 집전)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우리도 언젠가 성모님처럼 불멸의 갑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을 것입니다!>
1950년 11월 1일 비오 12세 교황님께서는 회칙 ‘지극히 자애로우신 하느님’을 통해서 성모 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셨습니다.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셨던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는 현세의 생활을 마치신 후 육신과 함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 영광을 입으셨다.”
성모 승천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는 사건입니다. 승천하신 성모님께서는 오늘 지상 순례 여정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용기를 내십시오. 여러분에게도 가능한 일이 승천이고 구원이여, 천상 영광에의 참여입니다.”
성모 승천은 하느님께 대한 성모님의 신앙과 순종, 헌신적인 태도가 무위로 돌아가지 않고 구원과 승천이라는 풍성할 결실을 보았음에 대한 확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모님처럼 하느님께 자신을 개방하면서, 그분의 구원 의지 실현을 위해 헌신한다면 성모님처럼 구원과 승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모 승천은 지상 순례 여정 중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희망의 징표로 제시됩니다. 아울러 성모님이 도달한 목표는 성모님 당신 개인만의 목표가 아니라 믿는 모든 이들의 목표, 교회의 목표요, 오늘 우리들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마리아 안에서 교회는 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목표에 도달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교회는 후에도 이 목표에서 빗나갈 수 없다. 마리아의 현양은 세상 종말에서 교회 현양을 위한 보증이다.”
성모 승천은 교회와 전 인류가 그토록 바라던 최종적인 희망이 실현됨을 보여주는 축제일입니다. 성모 승천은 인류 구원의 역사가 완성되었을 때 모든 사람이 누리게 될 영광을 미리 보여주는 위로와 희망의 표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성모 승천 교리를 굳게 믿는 우리는 오늘 자신의 처지가 아무리 실망스럽더라도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좌절이 클수록, 고통이 커질수록, 우리가 나아갈 길이자, 역할모델이신 성모님을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린 대사건, 예수님의 부활 승천의 복사판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비록 나약한 인간이지만 썩는 몸에 썩지 않는 것을 입은 위대한 사건입니다.
성모님의 승천, 성모님께서 직천당(直天堂)하시고 성인 중의 성인이 되신 것은 우리에게 큰 희망을 준 대사건입니다. 우리가 비록 썩을 몸을 지닌 인간이지만, 우리도 언젠가 성모님처럼 불멸의 갑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음을 보여준 은혜로운 대사건입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동영상)
https://youtu.be/R3QSdSRfgVI
++++++++++++++++++
<성모님은 당신께서 승천하실 것을 아셨을까?>
오늘은 성모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날을 기념합니다. 예수님이야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다시 아버지께 당연히 승천하시어야 할 것입니다. 성모님은 예수님 덕분으로 하늘로 오르신 최초의 인간이 되셨습니다. 성모님께서 하늘로 오르신 이유는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은 성모님을 만나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그런데 무엇을 믿으셨을까요? 성모님은 승천하신 것을 믿으셨을까요? 이것이 궁금해집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하다 보면 우리도 승천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승천할 것을 믿어야 승천할 수 있을까요?
요즘 디즈니 플러스에서 ‘무빙’이라는 드라마를 합니다. 초능력을 지녔던 전직 국정원 부모들이 자신들의 초능력을 물려받은 자녀들을 낳아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었습니다.
여기서 고3 김봉석은 하늘을 나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그리고 상처가 나지 않는 재생능력을 지닌 장희수를 좋아하게 됩니다. 김봉석은 기분이 좋아지면 하늘로 뜨게 되는데 엄마는 그런 능력이 발각되면 위험해질 것을 알아서 봉석이 날지 못하게 합니다. 무거운 것들을 차고 들고 넣고 다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체육관에서 농구대가 빠져 희수가 다치게 되었을 때 무거운 것을 차고 있는 봉석은 날아서 그녀를 구해줄 수 없었습니다. 대신 다른 능력을 지닌 반장 이강훈이 그녀를 도와줍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반장은 좋아하게 될까 봐 겁이 난 봉석은 자신도 나는 법을 제어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러면 아빠처럼 아이가 다치게 될까 봐 걱정하고 야단칩니다.
오늘 성모님은 하늘을 나셨습니다. 이는 이 세상의 누구도 그분의 믿음을 잡아끌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바탕은 지혜입니다. 지혜는 우리를 믿음으로 초대합니다. 믿음도 하나의 선택이고 결정입니다. 믿기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결혼은 생각하면 쉽겠습니다. 믿으니까 선택하고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선택을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식만 가지고는 속기 십상입니다. 결혼하기 전에 자꾸 만나보면서 내가 가진 지식으로 믿어도 될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게 됩니다. 자녀에게 지식이 아닌 지혜를 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모님께서 믿으신 것은 무엇일까요?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께 나타나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3,28)라고 말해줍니다. 은총은 아담의 죄로 끊겼고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수 없다는 믿음이 팽배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면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3,30)라고 말해줍니다. 더 말이 안 됩니다. 다른 수많은 여인이 있는데 왜 자신만이 특별히 하느님의 총애를 받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전해주는 말은 더 황당합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루카 1,31-32)
만약 성모님께서 겸손하셨다면 “농담이 지나치십니다!”라고 말씀하셔야 하셨을까요? 성모님은 감히 인간이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다는 말에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하십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더 겸손하여지려면 더 낮추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올라가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는 우리가 더 가졌다고 믿어야 진짜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지식이 아껴야 잘 산다고 말한다면, 지혜는 더 가졌다고 믿으면 결국엔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식을 지혜로 만드는 진리입니다.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9,23)
『더 해빙』의 홍주연 작가는 사업 실패로 돈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했던 아버지 밑에서 컸습니다. 아버지는 자린고비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굴비였습니다. 아버지가 췌장암에 걸렸다고 하여 홍주연 작가가 마지막에 굴비라도 실컷 드시고 가시라고 열 마리 보내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것도 아껴 드시다 다섯 마리를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병원도 굳이 6인실을 선택하여 죽을 때까지 돈을 아끼셨습니다. 그러나 홍주연 작가는 ‘그렇게 돈을 아끼면서도 왜 아버지는 평생 가난하셨을까?’를 궁금해하였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누군가에게 행복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은 상처가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난 행복하면 안 돼요.”
이것을 누가 정해줬을까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어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부활도 마찬가지고 승천도 마찬가지입니다.
홍주연 작가는 왜 아버지가 아끼면서 가난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비범하였고 지금은 전 세계 재벌들의 컨설팅을 해주고 있는 이서윤 선생을 만납니다. 그녀는 수십만 명의 부자들을 연구하여 ‘해빙’(Having)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인물입니다.
그녀는 홍주연 작가에게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기쁘게 쓰라고 말해줍니다. 돈을 낭비하라는 말이 아니라, 돈을 쓰면서 기쁜 마음이 들 때만 쓰라는 것입니다. 꼭 필요했던 것, 혹은 누군가를 도와줄 때는 돈을 쓸 때 마음이 기쁩니다. 그렇게 무언가를 기쁘게 내어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원천으로 향하게 됩니다. 원천으로 향할수록 더 많이 받게 됩니다. 원천은 그것이 솟아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쓰는 것이 부자가 되는 길이라는 말은 주님의 뜻대로 돈을 쓰면 주님께서 다 채워주신다는 믿음이 깔려있습니다. 너무 아낀다는 말은 행복을 스스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자신이 아니라 다른 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돈을 쓸 때 기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을 실천하는 이에게 주님께서도 아끼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삶 안에서 언제든 이런 부활과 승천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성모님께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셨으니 당연히 당신도 승천하실 것을 믿으셨다고 확신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니 자신도 걸을 수 있음을 믿었던 것과 같습니다. 성모님은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예수님께서 다 해주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처럼 할 수 있음을 믿으라고 인간이 되셔서 모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예수님의 승천을 보시며 당신도 승천하실 것도 믿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대로 되었습니다.
=====================
[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8월 15일은 광복절이며 성모승천 대축일이다. 성모승천에 대한 것이 성서에 나타난 근거는 없지만, 초대교회에서부터 이에 대한 신앙을 간직해 왔고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가 ‘대자대비하신 하느님’(Muniticentissimus Deus)이라는 칙서를 통해 믿을 교리로 선포하셨다. 교회는 2000년간을 마리아의 승천을 기념했으나 정식으로 신앙 교리로 선포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교회는 오늘 하느님의 모친,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의 가장 큰 축일을 지내고 있다.
복음: 루카 1,39-56: 마리아의 노래
주님의 천사가 성령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전갈을 마리아에게 전하고 난 후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복음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이를 낳게 하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을, 즉 남자가 없는 처녀가, 그리고 아기를 낳을 수 없던 엘리사벳, 노인 즈카르야의 아내가 아기를 가졌다는 것을 확인해 주고 있다.
마리아는 천사에게 즉 하느님께 충실히 그 뜻을 받아들이고 있다. “말씀하신 대로”, 즉 하느님의 말씀대로(38절). 하느님의 말씀을 잉태하고 즉시 집을 떠나 엘리사벳을 방문하고, 봉사하기 위해 서둘러 길을 떠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엘리사벳에게 인사한다.”(36절)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한 마리아는 이제 성령으로 가득 차 있다.(35절) 그리고 엘리사벳이 당신 친척의 “인사”를 들었을 때, 먼저 당신의 태중의 아기가 성령으로 가득 차 기뻐하였다. 마리아의 방문과 인사는 엘리사벳에게 또한 성령의 충만함을 주었다.(41절)
이렇듯 마리아는 첫 번째로 성령을 받은 분이셨으며, 엘리사벳은 두 번째 성령을 받으신 분이시다. 이 두 여인은 바로 성령을 전달해 주는 분들이다. 이 두 여인은 함께 태어날 아기들에게 있어 주님의 공동체, 구원의 공동체, 위대한 왕의 거룩한 나라의(참조: 시편 47,3; 마태 5,35), 성령으로 준비된 성전의 처음의 중심인물이 된다. 즉 성령을 모신 궁전이 되신 분들이다.
<마리아 승천 축일의 의미>
오늘 축일은 마리아의 신앙과 삶의 승리와 영광을 드러내 주는 동시에 구원역사의 완성에 희망을 준다. 성모승천은 예수님 부활의 은혜를 입은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언젠가 성실한 신앙인 모두에게 주어질 부활의 영광을 마리아를 통하여 미리 앞당겨 이루신 사건이다. 즉 성모승천은 예수님 부활의 재확인이며 미래에 이루어질 우리의 부활의 보증이다. 성모님의 승천은 꼿 이루어져야 하는 사건이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이미 영원으로부터 당신의 아들을 잉태하실 수 있도록 마련하신 분이시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실 때, 땅에서 흙을 빚어 만드셨는데 그 땅은 아무도 밟아보지 않은 깨끗한 “처녀지”였다. 그 땅의 흙으로 첫 아담을 지어내셨다. 마찬가지로 둘째 아담이신 아드님께서 이 세상에 하느님이시면서 사람으로 태어나시기 위해서는 깨끗하고 순결한 죄에 물들지 않은 처녀, 동정녀가 필요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죄에 물들지 않은 성모님은 죽음의 고통 없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셔야 마땅했다. 또한 마리아께서는 신앙으로서도 스스로 당신을 비우시고 낮추신 하느님께 당신의 육체를 내어드림으로써 하느님의 아들이 완전한 인간이 되게 하셨기에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다. 이 완전한 인간인 그리스도는 세상의 구원이시다. 우리도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생활하면 우리도 그 말씀을 세상에 다시 낳아주는 마리아가 된다. 마리아를 닮는 삶으로 우리가 모두 같은 영광에 참여할 것이다.
<마리아는 믿음의 여인>
마리아를 보면 모든 것이 믿음에서 출발하여 완성에 이르는 모습이다. 즉 천사의 알림에서 십자가 사건 그리고 성령강림까지 믿음으로 가득한 분이시다. 아브라함보다 더 자신을 하느님께 내맡긴 믿음으로 아드님의 구원사업에 협력하신 분이시며, 하와의 불순종의 매듭을 당신의 순종으로 풀어주시고 세상에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한 새로운 하와이시다.
마리아는 우리에게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르쳐 준다.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역사를 인정하며, 감사와 찬미를 드릴 수 있게 해준다. 마리아는 단순히 예수님을 낳으신 그 혈연관계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던 신앙의 여인이었기 때문에 복된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의 생애에 언제나 칭송과 영광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분은 어머니로서 또한 많은 고통을 받으신 분이시다. 그러나 항상 하느님께 대한 변치 않는 믿음이 모든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우리 신앙인의 모델인 성모님께서 인간으로서 당신이 하늘의 영광에 첫 번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이 우리 모든 믿는 이들에게 마리아와 같은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준다.
우리의 생활이 마리아의 삶을 따를 때,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으며,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낳아줄 수 있다. 마리아로서 살도록 노력하자. 그것이 우리 신앙인들이 가야 할 길이다. 이때 우리도 마리아와 같이 하느님께 찬미의 노래를 불러드릴 수 있을 것이다.
=====================
[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가톨릭 평화신문 미주지사)]
토마시 할리크의 ‘그리스도교의 오후’를 읽고 있습니다. 책은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신앙은 믿음의 대상을 중심으로 바라보면 ‘종교, 교리, 교의, 신학, 조직’의 형태가 된다고 합니다. 이런 신앙은 전승과 역사를 통하여 발전하지만 신앙의 이름으로 다른 신앙을 판단하고, 때로는 박해하기도 합니다. 신앙인이라고 하지만 삶이 불신앙인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판하셨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에도 신앙의 이름으로 이방인을 판단하고, 죄 없는 사람을 단죄하고, 죽음으로 몰아갔던 적이 있습니다. 신앙은 믿음의 대상으로뿐만 아니라 신앙은 삶과 생활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을 부른다고 하느님나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이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말은 따르지만 그들의 삶은 배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삶에는 위선과 가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신앙인이지만 신앙인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칭찬하셨습니다. 백인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고, 이방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자캐오를 칭찬하시면서 “오늘 이 집은 구원 받았다.”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의 위기가 있다면 신앙을 대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앙은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삶과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끌림과 떨림’은 비슷한 면도 있고, 다른 면이 있습니다. 처음 본 사람인데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처럼 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격이나 취미가 비슷하면 더 끌리기도 합니다. 음식도 그렇습니다. 맛이 있는 음식도 있지만 입맛에 끌리는 음식도 있습니다. 술도 비싼 술이 좋지만 입맛에 끌리는 술이 있습니다. 저는 해산물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예수님께 마음이 끌린 사람이 있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소리쳤던 소경, 깨끗해지기를 바랐던 나병환자, 부하의 병을 고쳐달라고 찾아왔던 백인대장, 딸의 병을 위해 찾아왔던 여인,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했던 자캐오, 예수님께 시중들던 마르타, 예수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듣던 마리아가 있습니다. 세상의 욕망과 권력에 끌리기보다는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리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청혼하는 연인은 마음이 떨릴 것입니다. 서품식에서 바닥에 엎드려 성인호칭기도를 듣는 서품자의 마음도 떨릴 것입니다. 둥지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새도 떨릴 것 같습니다. 드디어 새집을 마련해서 입주하는 아내의 마음도 떨릴 것입니다. 처음 무대에서 노래하는 가수의 마음도 떨릴 것입니다. 저도 첫미사를 봉헌할 때 무척 떨렸습니다. 무서워서 떨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벅차서 떨리는 것입니다. 하혈이 멈추었던 여인의 마음도 떨렸을 것 같습니다. 들것을 들고 걸을 수 있었던 중풍병자도 떨렸을 것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났던 막달라 마리아도 떨렸을 것 같습니다. 다락방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도 떨렸을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께 말씀을 들었던 제자들도 떨렸다고 합니다. 익숙함으로 소중함을 잊어버리기보다는 처음 성체를 모셨던 그 설렘과 순수함으로 신앙을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성모승천 대축일입니다. 초대교회는 성모님께서 죽음을 거치지 않고 하느님께로 가셨다고 믿었습니다. 교리적으로는 성모님께서는 원죄 없이 잉태되셨기 때문에 원죄의 결과인 죽음을 맞이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신학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인간이면서 하느님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성모님은 이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성모님께 대한 이 모든 찬사와 공경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우리는 그것을 천사 가브리엘과 성모님의 대화에서 알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성모님께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이끄심이며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들이면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면서 성모님께 대한 찬사와 공경은 시작된 것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들 모두 언젠가 하느님의 품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의 표징입니다. 누군가 이야기 했습니다. 영원한 것은 끝도 없는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영원한 것은 채워짐이라고 했습니다. 희망이 채워지고, 사랑이 채워지고, 믿음이 채워지는 것이 바로 영원함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끝도 없는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 속에서 우리 모두는 사랑으로 채워 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 신앙인이 가야할 미래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일생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충실한 응답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의 삶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으셨습니다. 우리도 성모 마리아처럼 자신보다는 이웃과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는다면 이 세상에 더 많은 평화가 이룩될 것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들이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지혜롭게 극복되기를 기도드립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
<신앙생활을 잘하는 비결>
신앙생활을 잘하는 비결은 ‘성모님처럼 하는 것’입니다.
1) 기도 - 성모님은 “주님께서 언제나 항상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루카 1,28) 이 말은, 성모님 쪽에서도 언제나 항상 주님과 함께 계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방법은 ‘기도’입니다. 성모님처럼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성모님처럼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신앙인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2) 순종 - 성모님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또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더라도, 겸손하게 순종하신 분입니다. 예수님 탄생 예고 이야기를 보면, 가브리엘 천사가 한 말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카 1,31-33) 이 말은, 일방적인 통고나 명령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그래도 어떻든 성모님 입장에서는 동정녀인 자신이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것과 그 아들을 이스라엘 왕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은 정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때 성모님은 천사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는데(루카 1,34), 이 질문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라는 뜻이 아니라, “그런 일이 이루어지려면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이미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나타냅니다. 천사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라고 대답했고(루카 1,37), 성모님은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했습니다.(루카 1,38)
성모님께서는, 이해는 안 되지만 하느님의 뜻과 계획이 그렇다는 것을 믿었고, 믿었기 때문에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겸손과 순종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믿고 순종하면 언젠가는 이해할 날이 옵니다.(1코린 13,12) 또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하느님께서 도와주십니다. 하느님은,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강요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3) 실천 - 성모님은 ‘생각만’ 하거나 ‘말만’ 하는 분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시는 분입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가 좋은 예입니다.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져서 신랑이 난처해질 상황이 된 것을 아신 성모님께서는, ‘가엾게 되었구나.’라고 생각만 하신 것도 아니고, ‘딱해서 어쩌나.’ 라고 말만 하신 것도 아니고, 직접 나서서 행동하셨습니다. 그 상황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예수님의 권능을 믿고, 예수님께 그 상황을 알린 것(요한 2,3), 그것은 ‘성모님은 행동으로 실천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잘 나타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셨는데(요한 2,4), 그런데도 성모님께서는 일꾼들을 불러서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2,5) 이 말씀은,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긴다는 믿음도 나타내고, 예수님의 뜻에 전적으로 따르겠다는 순종도 나타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시키지 않고 직접 일꾼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는 점에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은 ‘생각만으로’ 해도 되는 생활이 아니고, 또 ‘말로만’ 해도 되는 생활이 아닙니다. 온 삶으로 실천해야 하는 생활입니다. 실천이 없으면 ‘죽은 믿음’입니다.(야고 2,17) ‘죽은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성모님처럼 기도하고, 순종하고, 실천하는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도 성모님이 계시는 곳으로 갈 수 있을 것이고, 그곳에서 영원히 함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신앙생활의 최종 목표입니다. 엘리사벳이 성모님께 한 인사말을, 신앙인들의 최종 목표에 대한 희망을 나타낸 말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2-45)
예수님이 복되신 분이신 것은, 인류를 구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모님이 모든 사람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신 분이신 것은, 하느님의 인류 구원사업의 첫 번째 협력자이시고, 중개인이시고, 통로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이라는 ‘복’을 받아서 영원히 누리는 것, 또 성모님께서 이미 누리고 계시는 그 ‘참된 행복’을 성모님과 함께 누리는 것, 그것이 모든 신앙인의 희망입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청주교구 정용진 요셉 신부님]
오늘 복음은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엘리사벳의 집으로 갔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세상일 가운데 우리가 가장 서둘러야 하는 일은 하느님의 일입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을 태 안에 모시고 그분과 함께 가십니다. 즈카르야와 엘리사벳과 세례자 요한은 그분들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구세주의 오심을 희망으로 기다려 온 이스라엘의 모든 의인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엘리사벳의 눈을 열어 주시어 성모 마리아께서 참된 계약의 궤, 하느님의 어머니이심을 알아보게 하십니다(43절 참조). 성령께서는 엘리사벳의 태 안에 있는 세례자 요한의 마음도 열어 주십니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즐거워 뛰놀다’로 옮긴 말은 구약 성경에서 되찾은 계약의 궤를 보고 환호하며 다윗 임금이 뛰며 춤추는 것을 표현하고자 쓰인 말입니다(2사무 6,16 참조). 세례자 요한은 참된 계약의 궤 앞에서 다윗 임금처럼 뛰며 그분을 뵙는 기쁨을 표현합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을 자신 안에 가두지 않으시고 그 넘치는 은총을 모든 이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전부터 교회는 성모님을 가리켜 “즐거움의 샘”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모님을 통하여 구세주께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오르신 성모 마리아를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벅찬 희망과 기쁨으로 가득한 미래를 열어 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 주시고 그분께 나아가는 길을 알려 주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에도 한결같이 당신의 아드님을 따르는 모범을 보여 주시며, 분명히 우리가 참된 집, 영원한 우리의 본향으로 나아간다고 말씀하십니다.
=====================
《춘천주보》 말씀의 향기
[춘천교구 강성구 요한 사도 신부님]
<우리의 희망이신 성모님>
오늘 우리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고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지상에서의 생활을 마치신 후 하늘로 승천하심을 기념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을 지냅니다.
성모님의 승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① 비오 12세 교황은 "평생 동정이시며, 원죄에 물들지 않은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지상 생활을 마치신 후에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셨다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된 진리"라고 선포하셨습니다.
②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는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으며 지상 생활을 마치신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셨고."(교회 현장 59항), "내세에 완성될 교회의 표상이고,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에게 희망과 위로의 표지"(교회 현장 68항)라고 가르칩니다.
성모님 승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우리가 받게 될 하느님의 영광을 미리 보여주고 영원한 생명을 믿고 살아가는 하느님의 백성 모두에게 구원의 희망을 줍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신앙인의 희망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 모두 성모님의 삶을 닮아 가면 언젠가 하느님의 품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의 표징입니다. 성모님의 일생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충실한 응답이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방문하여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리라는 전갈을 받고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하시면서 자신의 삶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찾으시고, 예수님의 탄생 후에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과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함께하심으로 받은 기쁨(칠락, 七樂)도 있었지만, 고통(칠고, 七苦) 속에서도 굳건한 믿음과 변하지 않는 희망으로 구원 사업에 함께하셨기에 오늘 하늘에 오르는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성모님의 생애를 기억하며 오늘 하늘에 오르신 분. 예수님을 낳으신 분, 주님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 주신 성모님께 '하느님의 뜻이 모든 신앙인 안에서 하루빨리 이루어질 수 있도 록,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하며 오늘 축일을 지냅시다.
=====================
《서울주보》 생명의 말씀
[서울대교구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님]
<2023년 성모 승천 대축일 메시지>
”마리아는 일어나 서둘러 길을 떠났다.(루카 1,39)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내리길 기원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인 광복절이며,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서 하느님께 들어 올림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항상 주님의 뜻에 일치하시며 우리를 위해 늘 하느님께 전구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도 성모님처럼 그리스도의 완전한 영광에 참여하도록 부름 받고 있다는 희망의 표지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으시고 그 뜻에 따라 성실하게 사셨기에 우리들의 모범이 되십니다. 자녀들이 그 어머니를 닮으려고 하는 것처럼 우리도 교회의 자녀로서 교회의 어머니를 닮고 따르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받으신 천상의 영광은 장차 우리도 받게 될 영광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므로 우리에게는 언제나 희망의 기쁜 소식이 됩니다.
성모님의 일생은 고통과 시련의 삶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아드님 예수님을 잉태하는 순간부터 수많은 역경과 수난을 이겨내셔야 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아들 예수님을 품에 안은 어머니의 슬픔과 아픔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이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험난한 길을 가시면서도 끝까지 성모님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우리도 성모님의 전구에 의탁하며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 노력해야겠습니다.
신앙이란 인간의 생각과 판단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마리아는 일어나 서둘러 길을 떠났다."(루카 1.39)고 전합니다. 마리아는 태중에 예수님을 잉태한 몸으로 서둘러 위험한 산길을 걸어가 엘리사벳을 만납니다. 성모님의 방문은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 이루어진 결단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도 늘 이웃을 돕는 모습이셨고, 겸손하셨고, 결단력 있으며, 실제 투신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풍습에 비추어 보면 마리아는 십대의 어린 소녀였을 것입니다. 이 위험 가득한 여정 동안 마리아는 성령의 인도를 체험하셨고, 구세주의 어머니께서 이렇게 직접 찾아오시다니요.' 하면서 반기는 엘리사벳과 만남을 통해 더욱 확실한 성령의 체험을 하셨습니다. 이는 마리아에게 일생일대의 중요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전 세계를 괴롭혔던 코로나19 팬데믹이 점차 약화되어 일상을 되찾고 있음은 정말 다행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의 예상처럼 팬데믹으로 빈익빈 부익부의 차이가 더 심화되었을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환경문제, 빈곤, 전쟁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눈에 띄게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습니다.
저는 8월 초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파티마에서 멀지 않은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이루어진 WYD(세계청년대회)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세계청년대회가 청소년과 청년 사목에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올 사목적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전 세계의 많은 젊은이가 한자리에서 함께 가톨릭 신앙을 고백하며, 하느님 체험을 깊이 한다는 것이 각자에게도 또 교회 공동체에도 커다란 은총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그렇게 깊은 하느님 체험 안에서 우리 모두의 어려움을 돌아볼 수 있게 되길 희망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지 도층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성모님의 자기희생의 모범을 본받고, '정직성의 회복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히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또한 우리 교회도 스스로를 성찰하며,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역할을 더 겸손하게 실행해야겠습니다. 교회는 많은 사람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그 들과 더 적극적으로 함께함으로써 성모님께서 기쁜 소식을 전하신 것처럼 많은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주시는 빛과 희망을 선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명하시고, 기쁜 소식을 전하신 성모님의 승천을 기념하며 세상을 변화시킬 커다란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음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이기심에서 벗어나 고귀한 가치에 희망을 두고,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며 평화의 도구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야말로 신앙의 본질인 선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 분야에서 하느님 체험을 널리 전하는 기쁜 소식의 선 포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다가오시고 이끌어 주시는 놀라운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산을 우리가 잊지 않도록 알려주시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성모승천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가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널리 퍼져나가도록 우리의 어머니,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전구를 청합시다. 특별히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 민족이 분단의 대결 속에서 생겨난 상처와 아픔을 이겨내고 화해와 평화를 이루어 온 겨레가 함께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게 되길 기도합시다.
=====================
[춘천교구 이명호 베드로 신부님]
<같은 믿음으로 서로 기뻐하는 하늘나라>
오롯이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의탁하시면서,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적극 협력하신 구세주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승천 축일을 기뻐합니다.
오늘 성모 승천 대축일을 예전에는 ‘성모 몽소승천 대축일’ 이라 하였습니다. 그 뜻은 ‘입을 몽(蒙), 부르심 소(召)’ 라 하여 ‘하늘의 부르심을 입고 올라갔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천상 영광으로 들어 올림을 받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나자렛의 소박한 한 여인이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겪으셔야만 했던 온갖 어려움과 ‘비천함’(루카 1,48)을 극복하고, 마침내 하느님과 일치하려는 믿음의 결실로 몽소승천의 은총을 입으신 것입니다.
오늘 루카복음 1장에서 성모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아기를 낳을 것이라는 예고를 받은 후 유다 산골에 사는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이때 마리아를 맞이하는 엘리사벳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라고 찬양합니다.
아직 마리아가 혼인을 하지 않았음에도 임신한 사실에 대하여 다른 어떤 의심이나 절망스러운 말을 하지 않고 ‘성령으로 가득 차서’ 축복의 인사말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축복하고 믿어 주는 말은 사람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라는 이 말은 마리아의 믿음을 찬양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남을 끝까지 믿어 주는 엘리사벳의 마음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믿는 사람만이 믿음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엘리사벳의 인사말에 감격한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뜁니다.” 기쁨의 노래는 남이 인정하고 믿어 줄 때 더한 기쁨으로 표출되는가 봅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 그것은 믿음과 믿음의 만남, 기쁨과 기쁨의 만남이었습니다. 서로 성령으로 가득 찼기에 가능한 만남이었습니다. 어쩌면 하늘로 올라가신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을 만나서 이런 믿음과 기쁨 중에 있을 것입니다.
흔히 그동안 이런 만남을 동병상련(同病相憐,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의 마음이었다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동신상희(同信相喜, 같은 믿음을 갖은 사람과 서로 기뻐하다)의 천상의 만남이었습니다.
이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그런 만남을 갖겠다고 꿈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 가운데에서 같은 믿음으로 서로 기뻐하는 천상(하늘나라)과 같은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을 성모 몽소승천 대축일에 기도해 봅니다.
=====================
[전주교구 정동수 안드레아 신부님]
<‘불순종’의 기술>
저는 원래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당번이었습니다. 부담스러웠습니다.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에 김대건 신부님 축일 강론이라니!
호남교회사연구소장 이영춘 신부님이 떠올랐습니다. 그분이야말로 그날에 딱 어울리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부님께 바꿔 달라고 청하자 흔쾌히 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신부님의 당번은 성모승천 대축일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순명의 아이콘입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강론 당번조차 마음대로 바꾼 마당에 성모님을 언급하려니 찔렸습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만큼 볼품없는 게 또 없습니다.
돌아보면, 사제서품을 받고 처음에는 군말 없이 순명했습니다. 연차가 쌓이면서 군말이 입에 맴돌기도 했고, 버텨보기도 하고, 반항도 해보고, 이도 저도 안 될 땐 친구를 팔아보기도 했습니다.
점점 순명에서 멀어지고, 불순종의 기술만 연마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 더 나이 들면, 먼저 인사 청탁을 하는 경지(?)에 오를까, 그래서 하느님께서 삶을 맡겨드리지 않고, 내가 하느님을 질질 끌고 다닐까 겁납니다.
‘성모승천’은 성모님이 스스로 하늘로 올라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늘로 올려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에 몸을 맡겨드렸다는 뜻일 겁니다.
이는 사는 동안 매사 하느님께 자신을 맡겨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저처럼 거부하고 불순종의 기술만 연마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들어 올려주셔도 맡겨드리지 못해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란 그가 내린 선택의 총합이다.’ 그렇다면 신앙은 내가 해왔던 순명과 불순종의 총합일 것입니다. 저의 신앙은 아직 이 모양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어떤가요? 함께 회개하시게요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믿음의 어머니를 통하여>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영원히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구세주의 어머니를 우리에게 보내주셨고 어머니를 통하여 우리의 필요를 전구해 주시도록 안배하셨습니다. 오늘 성모승천 대축일을 맞이하여 성모님의 전구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아울러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길에 있어서 성모님을 모범이요, 안내자요, 동반자로 모실 수 있는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자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하늘로 불러올리셨습니다. 교황 비오12세는 1950년 교황령에서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었던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가 지상 생애를 마친 다음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으로 들어 올림을 받았다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계시 된 신앙의 진리이다.” 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성모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이 장차 얻게 될 신분을 이미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모님께서도 예수님과 같은 운명을 하느님 안에서 누린다는 뜻입니다. 천국을 차지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성모승천은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 줍니다. 인간의 몸을 지니신 성모님께서 하늘로 올림을 받았기에 우리도 하늘로 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도 하늘로 올림을 받을 수 있도록 성모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초대이기도 합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믿음의 승리요, 모든 믿는 사람들의 예형이요, 모범으로서 죽음을 극복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모님과 더불어 하늘의 꿈을 이루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마리아가 엘리자벳을 방문하였을 때 엘리자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참으로 복된 마리아입니다. 참으로 행복한 성모마리아이십니다. 그런데 그 행복이 어디서 왔느냐 하면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믿음에서 왔습니다. 루카복음 11장 27절, 2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실 때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하고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하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사실 구원의 역사는 믿음의 행위로 시작되고 또 열매 맺게 됩니다. 마리아는 처녀였지만 구세주를 낳을 것이라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믿었고 구세주를 낳았습니다. 마리아가 믿고 받아들인 행위는 죽음을 각오한 가장 아름다운 기도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처녀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돌에 맞아 죽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믿음의 어머니, 순명의 어머니,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시는 어머니이십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잉태하실 몸이었기에 “그리스도의 예견된 공로에 힘입어” 원죄로부터 보호받아 당신 자신이 “원죄 없이 잉태” 되시는 특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 활동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남김없이 봉헌하시어 “평생동정”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의 삶의 여정에 함께하여, 누구보다도 철저히 주님을 뒤따랐던 성모님을 성자 예수님께서 누리신 영광에 동참하게 “몽소승천”, 하늘로 불러올리셨습니다. 그리하여 천상 영광을 누리고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한 전구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기를 원하는 이는 성모님의 도우심을 청해야 합니다. 구지 성모님을 통하지 않아도 되지만 통하지 않으면 그만큼 “전구하심”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모님께 의탁함으로써 더 큰 은총을 입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모님은 당신의 순명과 겸손의 삶으로 모든 사람에게 모범이 되었고,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의 청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카나의 혼인잔치 현장에서 첫 기적을 행하셨는데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을 헤아려 여섯 개의 물독에 물을 가득 채워 포도주로 변하게 하여 어머니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요한 2,1-12). 그러므로 “성모님을 통하여 은총을 구하십시오. 성모님을 통하여 반드시 얻을 것입니다”(성 베르나르도).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잉태에서 죽음까지 그리고 성령강림을 기다리며 제자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아드님이 십자가에 매달려서 갖가지 모욕을 당하며 돌아가시는 것을 보았을 때 다른 모든 이의 믿음은 흔들렸지만, 성모님께서는 그분이 하느님이셨다는 믿음을 끝까지 지키셨습니다.”(성 알폰소리구리오)
바로 성모님은 예수님의 삶의 여정에 누구보다도 가까이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셨습니다. 믿는 이들의 모범이십니다. 그래서 “성모님을 통하여 모든 것을 예수님께로!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성모님께로!”입니다.
성모님의 시선이 늘 당신의 아드님을 향해 있었고 하느님의 뜻을 가슴에 품었기에 우리도 “성모님처럼 생각하고 그분이 바라신 것을 바라고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바를 행하고 그분이 지향하시는 바를 지향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님 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먼저 성모님 안에 있으라는 뜻입니다”(알베리오네). 성모님 축일에 그분의 믿음, 겸손을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은 정령 ‘믿으셨기에 복된 분’입니다. 우리도 믿었기에 복된 사람이 되어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사랑합니다. 어머니!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희망의 어머니>
‘마리아 당신은 희망의 어머니
주께서 빛나는 별들로 구미셨네
우리를 비추소서 동정녀시여
사랑의 어머니 마리아여’
1. 은총이 가득하신 어머니 마리아
당신은 우리 구원의 여명이여
우리 즐거움의 원천 빛나는 등대
영원한 빛줄기 하늘의 문
2. 주님의 말씀을 실행한 복된 분
당신은 우리 마음의 기쁨이며
모든 덕의 씨를 뿌리시니
당신은 수려한 하얀 꽃
=====================
[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신학생 때, 동아리 MT로 전라도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광주신학교 신학생들을 만나서 모임을 하고, 저녁에 술자리를 함께했지요. 이 자리에서 안주로 ‘홍어’라는 것을 처음 접했습니다. 심한 암모니아 냄새와 함께 코가 뻥 뚫리는 체험을 했지요. 이 이상한 음식을 왜 먹나 싶었습니다. 몸에 좋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고통을 느끼면서까지 먹어야 하냐고 물었지요. 하지만 그곳 신학생들은 계속 먹다 보면 없어서 못 먹을 지경이 된다면서 너무 좋아했습니다.
30년 전에 시작했던 홍어와의 만남이 지금은 어떨까요? 여전히 고통스러운 기피 음식일까요? 아닙니다. 이제 홍어가 나오면 입맛이 돋고 술맛도 더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고통이었지만, 지금은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왜 그럴까요? 홍어의 맛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미사를 처음부터 기쁨과 행복으로 체험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군대에 있을 때, 성당 가면 맛있는 간식 준다고 꼬셔서 함께 미사에 갔던 동료가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성당의 미사는 너무 힘들어. 계속해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니, 편안히 잠잘 수 있어야 말이지. 그런 면에서 불교가 최고야.”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기쁨은 이 고통을 넘어서야 했습니다. 진짜 맛을 느끼는 상태까지 와야만 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디쯤 오셨습니까?
오늘 우리는 성모 승천 대축일을 지냅니다. 주님의 어머니이신 동정 마리아께서 지상 생애를 마치신 다음 하늘로 불려 올라가신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상당히 부러울 수밖에 없는 하느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모님의 승천이지요. 죽음을 건너뛰고 하늘로 오른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은총이며 영광입니까? 그러나 이 영광은 단순히 예수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얻은 것도, 또 운이 좋아서 얻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잉태 순간부터 예수님의 죽음 때까지 성모님께서는 계속된 고통을 당신의 가슴으로 안으셔야만 했습니다. 그 고통의 크기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잉태 소식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성모님께는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낳을 장소가 없어서 허름한 마구간을 선택했던 것도 큰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또 산후조리도 못 한 채 이집트로 피신까지도 가야 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성전에서 잃어버리기도 했고, 세상에 나간 아들이 미쳤다는 말도 듣습니다. 이것도 부족했는지 이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는 모습까지도 직접 봐야만 했습니다.
이 모든 고통과 시련을 넘어섰기에 하느님을 제대로 알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 모든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성모승천이라는 영광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작은 고통과 시련에도 크게 넘어져서 주님으로부터 더 멀리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요?
=====================
[의정부교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꿈>
루카 1,39-56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다, 마리아의 노래)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꿈>
꿈을 꿉니다
하늘로 오르는 꿈을
이 땅에서
하늘을 품은 이만이
마침내
하늘의 부르심으로
오를 수 있는 그곳을
향한 고운 꿈을
지금여기에서 이루렵니다
꿈을 꿀 수 있도록
=====================
[프란치스코회(작은형제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땅에서 하늘을 살기>
오늘 축일의 복음은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났을 때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덕담하자 이에 마리아가 하느님을 찬미하는 내용입니다.
엘리사벳의 덕담은 이것입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여기서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여인 가운데 가장 복되다고 하는데, 마리아가 여인 가운데 가장 복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제 생각에 이 세상에서는 마리아만큼 불행한 여인이 없는데 어째서 마리아가 여인 가운데서 가장 복되다고 하는 겁니까?
마리아가 가장 행복한 이유는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저세상에서고,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듯 저세상으로 바로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리아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였기 때문이고, 아들의 Passio(수난)를 Compassio(동병상련)했기 때문이며, 아들의 수난에 동병상련했기에 아들을 따라 하늘로 올려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마리아의 축일은 오늘 축일뿐 아니라 모두 아들을 따르는 축일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축일이 십자가 현양 축일과 성모 통고 축일이고, 그리고 예수 승천 축일과 성모 승천 축일입니다.
사실 두 분뿐 아니라 아들과 엄마의 관계가 대개 그렇습니다. 어렸을 때 아들이 가는 곳은 엄마가 가는 곳이다가 나이를 먹으면 그것이 바뀌어 아들이 가는 곳이 엄마가 가는 곳이 됩니다.
예수님과 마리아도 그랬을 겁니다. 그러다가 예루살렘 성전 방문을 기점으로 바뀌기 시작했을 겁니다. 어린 예수가 부모를 따르지 않고 성전에 홀로 남은 사건 말입니다.
왜 부모를 따르지 않았느냐고 어머니 마리아가 나무라자 당돌하게도 아들 예수가 오히려 어머니 마리아를 나무라는데, 그것은 당신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하는 것을 모르셨냐는 거였고, 이것을 마리아는 마음속에 깊이 그리고 오래 간직하였다는 거였지요.
이것이 인간적으로는 사춘기 현상 곧 부모로부터의 독립 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신앙적으로는 이제 아들이 더 이상 인간 부모의 아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무튼, 이때부터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고, 아들 예수가 그리스도로서 가는 길을 끝까지 따릅니다.
그리스도의 길이란 타볼산에서 내려와 해골산으로 오른 십자가 길이고, 이 세상을 떠나 저세상으로 옮아가는 나그넷길이요 승천의 길입니다.
오늘 감사송은 마리아가 이 길을 충실히 간 우리의 모범이라고 찬미합니다. “동정 마리아께서는 완성될 주님 교회의 시작이며 모상으로서, 나그넷길에 있는 주님의 백성에게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 주셨나이다.”
우리가 이 축일을 성대하게 지내는 이유는 우리가 가야 할 곳을 마리아가 우리에게 선명히 보여주셨기 때문이라는 얘기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리아처럼 나그넷길을 잘 가 ‘직 천당’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것이 오늘 본기도에 잘 나와 있습니다.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이시며 성자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하늘로 부르시어 그 육신과 영혼이 천상 영광을 누리게 하셨으니 저희도 언제나 하느님을 그리워하며 그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소서.”
그리워하는 것,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늘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자주 얘기하듯 ‘땅에서 하늘을 사는’ 것입니다.
=====================
[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 우리 모두 승천하신 마리아 성모님과 함께 -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참으로 오늘 성모 승천 대축일에 적절한 권고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5주년인 2018년 3월19일 자신의 세 번째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에 서명했고, ‘현대 세계에서 성덕의 소명에 관한’이라는 부제를 단 이 교황 권고는 4월9일 전 세계에 공개됐습니다. 말 그대로 ‘현대 그리스도인을 위한 지침서’입니다.
“모든 거룩하고 충실한 하느님 백성의 전구와 더불어, 여러분에게 저의 새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를 보내 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모든 이가 각자 일상생활에서 성덕의 소명을 받아들이도록 격려하고자 이 권고를 작성했습니다.”
교황님의 서두 말씀이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과 더불어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된지 78주년이 되는 광복절입니다. 얼마나 성모 마리아님과 축복된 인연의 한반도 나라인지 깨닫습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는 하루하루 날마다 승천 대축일이요 성모님과 함께 승천 여정의 삶입니다.
희망과 꿈이 사라진, 길을 잃고 방황하는 혼돈과 어둠의 시절에 주님은 승천하신 성모님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희망의 하늘길을, 하늘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바로 성모님 승천의 희망의 빛이 우리의 어둠을 환히 밝힙니다. 문득 성모님께 무엇인가 선물로 드리고 싶은데, 하루하루 날마다 나를 통째로 다 드리기에 드릴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주님 앞에 갔을 때 저는 매일 평생 써놨던 연서(戀書)와 같은 강론집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성모님을 뵈올 때는 지금까지 써놨던 연시(戀詩)와 같은 사랑의 시집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바치고 싶은 두 편의 시가 생각나 그대로 나눕니다. 앞 시는 주님께, 뒤 시는 성모님께 드리는 선물 시입니다.
“당신이 꽃을 좋아하면
당신의 꽃이
당신이 별을 좋아하면
당신의 별이
당신이 하늘을 좋아하면
당신의 하늘이
되고 싶다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1998.12.25.
사랑하올 주님께 바칠 연시로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에 이어 오늘 승천하시어 우리를 위해 늘 전구하고 계신 성모님께 드리는 다음 “임오시면”이란 연시입니다.
“임오시면
달맞이꽃
연노랑 저고리에
메꽃
연분홍 치마
달개비꽃
영롱한 고무신
해드리고 싶네
임오시면”-2000.7.16.
모두가 여름철에 들판에 피어나는 영롱하고 청초한 야생화 들꽃들입니다. 이 시와 더불어 오늘 일어나자마자 수도형제들과 함께 주님과 성모님께 선물로 바쳤던 아름다운 성무일도 초대송에 이어 찬미가와 후렴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1.“오늘 그리스도의 모친 마리아 하늘에 오르셨으니, 어서와 우리 주님께 조배드리세”(초대송 후렴)
2.“태양의 빛입으신 동정녀시여 열두별 머리위에 꾸미신이여
저달을 발판삼아 우뚝서시니 환하게 빛나도다 당신의 광휘”(찬미가1절)
이어 5절까지 계속되는 찬미가 내용들은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지, 우리 영혼을 고무하고 위로하며 환희에 넘치게 합니다. 이어지는 후렴 둘도 아름답습니다.
3.“기뻐하라. 오늘 동정녀 마리아,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도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다스리시는도다. 동정녀 마리아,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도다. 그곳에 왕중의 왕께서, 별빛 찬란한 옥좌에 앉아 계시는도다”
온통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승리와 영광의 성모님을 기리는 내용들입니다. 참 고마우신 주님에 이어 참 아름다운 성모님입니다. 성모님이 좋아 말이 많다보니 서론이 길었습니다. 성모님 사랑과 자랑에 서론만 쓰다 강론이 끝날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주님과 함께, 성모님과 함께 승천 여정을 살고 있는, 이미 지상에서 천국의 하늘 나라를 살고 있는 복된 우리들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을 나눕니다.
첫째 믿음(信)의 참된(眞) 삶입니다.
겸손과 섬김, 순종의 믿음입니다. 바로 성모님의 삶이 그러하셨습니다. 혈연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마리아 성모 어머니는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제 강론을 쓰는 책상 위 사제서품식때 가족사진의 신마리아 어머니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저를 보는 듯 합니다.
겸손과 섬김, 순종과 믿음의 어머니 마리아 성모님은 친히 영적도반 엘리사벳을 찾아 나섭니다. 감격에 벅찬 엘리사벳의 환대와 더불어 크나큰 위로와 격려를 받는 마리아 성모님입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귀에 들리자 저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지요! 바로 이런 성모님을 닮아 참된 믿음의 삶, 겸손과 섬김, 순종의 삶을 사는 것이요, 바로 이것이 승천의 삶입니다.
둘째, 희망(望)의 참 좋은(善) 삶입니다.
희망과 기쁨의 삶입니다. 성모님의 삶이 그러하셨습니다. 희망에서 샘솟는 기쁨이요, 무한한 인내의 기다림입니다. 성모님을 통해 은은히 빛나는 그리스도요, 바로 성모님이, 그리스도가 우리의 희망과 기쁨이 됩니다. 성모님을 통해 궁극의 승리와 영광으로 빛나시는 그리스도야 말로 우리의 희망이자 기쁨의 샘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실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굴복시키셨습니다.”
아 이런 궁극의 희망이자 기쁨이신 그리스도가, 하느님이, 성모님을 통해 환히 드러납니다. 화답송 시편과 묵시록에 소개되는 성모님의 모습은 얼마나 우리의 희망과 기쁨을 붇돋우는지요!
“오피르 황금으로 단장한 왕비, 당신 오른쪽에 서 있나이다.”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바로 승리와 영광의 성모님이, 주님이 우리의 영원한 희망과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 희망과 기쁨의 참 좋은 승천의 삶을 살게 합니다.
셋째, 찬미와 감사의 삶입니다.
성모님의 삶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찬미와 감사의 사랑(愛)에 기쁨이요, 찬미와 감사의 아름다움(美)입니다. 묵시록의 마지막 말씀도 우리의 찬미와 감사를 북돋웁니다. 성모 마리아 어머니를 통해 환히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권세입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찬미의 기쁨, 찬미의 사랑, 찬미의 행복입니다. 감사의 기쁨, 감사의 사랑, 감사의 행복입니다. 하느님 찬미와 감사가 우리의 운명을 바꿉니다. 긍정적 낙관적 인생관을 지니게 합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영혼 건강, 정신 건강에 하느님 찬미와 감사보다 더 좋은 영약(靈藥)은 없습니다.
그러니 찬미와 감사의 삶을 선택하여 부단한 훈련을 통해 찬미와 감사를 습관화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에, 은혜에 감격하여 바치는 오늘 복음의 마니피캇 찬미감사가는 얼마나 우리 전존재를 찬미와 감사의 기쁨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는 지요!
참으로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인 아나뷤의 후예들인 우리가 바칠 참 자랑스런 특권이 이런 찬미와 감사의 기도입니다. 2천년 동안 가톨릭교회가 저녁기도때 마다 성모님과 함께 바치는 참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마니피캇 찬미감사가입니다. 늘 바쳐도 늘 샘솟는 찬미의 기쁨, 감사의 기쁨을 선물하는 마니피캇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습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칠 것입니다.”
참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성모님 자랑하기로 하면 끝이 없습니다. 성모님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영광이요, 주님의 은총이 우리 모두 지상에서 성모님처럼 영적 승리와 영광의 삶을 살게 합니다.
1.섬김과 순종의 참된 믿음의 삶을,
2.희망과 기쁨의 참 좋은 삶을,
3.찬미와 감사의 아름답고 사랑 충만한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승리와 영광의 승천의 삶을 살게 합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이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성모님을 닮아 진선미(眞善美)의, 신망애(信望愛)의 영원한 삶, 승천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오늘 승천하시어 승링의 영광을 누리시며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전구하고 계시는 성모 마리아는 참으로 우리의 영원한 미래요 희망입니다.
“마리아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으니 천사들이 기뻐하며, 주를 찬미하는도다.” 아멘.
=====================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님]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1,47-48)
<위로와 희망의 표지!>
오늘 복음(루카1,39-56)은 '하느님의 어머니요 우리의 어머니로 부르심을 받은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과 마리아의 노래'(마니피캇)입니다.
우리는 어머니 마리아를 사랑합니다. 그분이 하느님의 어머니요 우리의 어머니로 부르심을 받았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 마리아를 공경합니다. 마리아를 믿는 것이 아니라 공경합니다. 부르심의 응답 이후 한 생을 당신 아들 그리스도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의 완전한 모범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어머니 마리아께서 하늘로 들어 올림을 받으신 '성모승천대축일'입니다. 오늘은 의무대축일입니다. 그러니 꼭 성당에 가셔서 미사에 참례하셔야 합니다.
어머니 마리아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큰 날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합시다! 그리고 오늘 영명축일을 맞은 많은 자매님들과 오늘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새 영세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성모승천은 이 세상 나그넷길에 서 있는 우리의 확실한 '희망이요 위안'입니다. 조금 후에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을 먼저 들어가심으로써, 우리의 확실한 '위로와 희망의 표지'가 되셨습니다.
구원자 하느님의 비천한 종이신 어머니 마리아가 이렇게 '감사와 찬미의 노래(기도)'를 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1,51-53)
'성모신심'은 레지오 단원도 아니고 묵주기도도 아닙니다.
'성모신심'은 어머니 마리아처럼 충실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
[예수성심시녀회 김연희 마리아 수녀님]
(5분 아침묵상)
https://m.youtube.com/watch?v=zCBZIRSovxg
=====================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 48)
승천의 일상
승천의
여정인
가장 좋은
사랑입니다.
새로운
이 모든 것이
시작될 때는
언제나
아픔과 두려움이
있지만
새로운 모든 것이
완성될 때는
승천처럼
진정한 기쁨과
영광으로
우리를
가득채웁니다.
평범하고
소박한 뜻이
하느님을 만나면
이와 같이
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가르침이 됩니다.
하느님을 낳으시고
하느님을 길러주신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오늘 하늘나라로
승천하십니다.
고맙고 존귀하며
고맙고 소중하신
우리의
어머니의
여정입니다.
우리보다
더 기뻐하시고
우리보다
더 애태우시는
우리보다
더 안타까이
슬퍼하시는
우리 어머니의
삶입니다.
화려함만
승천이 아닙니다.
비천함도
가난함도
승천의 놀라운
선물들입니다.
우리 인생의
여정 끝에서
우리를
맞이하여 주시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사랑의 결실이
있습니다.
승천은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결실입니다.
올리시는 분도
내리시는 분도
하느님이십니다.
끝내 우리모두는
비천함을 지나
하느님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땅은
사랑의 하늘로
이어집니다.
하느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삶입니다.
문을 열어주시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고
이끌어주시지
않고서는
오를 수 없는
승천의 여정입니다.
사랑한 모든
시간이 신비이며
은총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승천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을 완성하는
우리들이길
기도드립니다.
은총 가득하신
고마우신 사랑의
마무리는
승천입니다.
끝내 만나게 되는
믿음과 사랑의
진정한 승리입니다.
믿음은
미끄러지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한걸음씩
오르는 것입니다.
사랑은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향하는
우리의 일상입니다.
우리 일상의
소중한 승천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성모 승천의
발걸음을
기억하는
소중한 대축일
되십시오.
모든 이야기의
끝은 사랑이며
하느님이십니다.
=====================
시작 2013. 10. 24
연희동성당 류상현 스테파노
■묵상글 나눔합니다■
[이름,본명,지역(본당),축일,연령,연락처]를 문자로 보내주세요.
010-3284-9295 | 카톡ID jijive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