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푸치노 감정 / 고선경
하얀 머그잔 속 부풀어 오른 우유 거품을 바라본다 왜 이런 것이 나를 끓게 하는지 넘치게 하는지 알 수 없다 기다리라는 문자 메시지 하나에 시간은 무수히 알을 까게 되는데 씁쓸한 시나몬 향을 맡다 보면 담배를 배우고 싶어져 그런 것이 나의 최선은 아니겠지만 나는 계속해서 태어나는 기분 우유 거품 아래에는 커피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을 것도 같다 침착하게 식어 가기 최선을 다해 가라앉기 나는 이제 그런 것을 배우고 싶어 끓음과 넘침의 시간을 지나 은색 스푼이 거품을 걷어 내면 날벌레 한 마리 떠올라 있을지라도
나는 커피를 다 마시고 남은 거품의 자세 넘치지 못하지만 부푼 채로 멈춰 있다 빈 잔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이대로 다른 것을 따라 넣을 수는 없어 내 어깨를 붙잡는 차가운 손 위로 내 손을 겹쳐 부드럽게 감싼다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으니 기다리라고
― 시집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열림원, 2025.01) --------------------------------------
* 고선경 시인 1997년 경기도 안양 출생.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졸업.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 고선경의 첫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의 대표 이미지가 무한한 기포를 가진 소다수와 같이 청량하고 시원한 것이었다면,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에서는 “씁쓸한 시나몬 향”이 가미된 커피나 오래 끓인 “어두운 술”(「뱅 쇼 러브」)처럼 높은 온도와 입안에 남는 맛을 가진 종류의 이미지가 돋보인다. 끈적이지 않고 휘발되는 산뜻함이 아니라 오래 남는 맛과 향은 시적 주체에게 남은 어떤 것을 환기시킨다. 예컨대 「카푸치노 감정」에서 “우유 거품 아래” “커피”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을 것도 같”다는 화자의 불안이 “기다리라는 문자 메시지”에서 시작되었듯 말이다.
잔을 모두 비운 후에도, 시가 끝난 후에도 남아 있는 맛과 향은 ‘나’에게 남아 있는 이전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고선경은 지금 곁에 없지만 ‘있었던’ 존재에 대한 기억을 불러오며 기억하기를 반복한다. 이는 기억해야만 하는 기억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반복적으로 각인하는 방식이다. 앞선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 지점에서 가능해진다. 시적 주체가 할 수 있으며 해야 하는 ‘무엇’이 있다면 그건 다름 아닌 기억이다. 기억하면서 그리워하고, 기억하면서 기대하고, 기억하면서 기다리는 모든 일이 ‘나’에게는 애도의 과정이다. 애도의 수행은 대상이 되는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상실을 견디며 살아가는 ‘나’를 위한 일이다. - 소유정 (문학평론가), 시집『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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