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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기도)
주님,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바깥의 일들을 종종 걸음으로 해내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음이 감사합니다.
치열한 영적 전투와 같은 삶이라도
늘 아버지 품속으로 돌아와 평안을 누리는 것과 같습니다.
생명의 말씀 앞으로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판단하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저 자신이 긍휼히 여김을 받은 자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2. 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 명철과 지식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
3,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가난한 자는 곡식을 남기지 아니하는 폭우 같으니라
4.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5. 악인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
6.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부유하면서 굽게 행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7.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음식을 탐하는 자와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
8.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늘이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해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
9.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10.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져도 성실한 자는 복을 받느니라
11.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나 가난해도 명철한 자는 자기를 살펴 아느니라
12.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느니라
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14.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본문 주해)
1절 : “악인은 뒤쫓는 사람이 없어도 달아나지만, 의인은 사자처럼 담대하다.”(새번역)
죄를 지은 자는 늘 숨거나 쫓기는 입장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악인은 주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런 자들은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하기에 늘 두렵다.
그러나 의인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이기에 적들이 사방에 진을 치고 있어도 평안하게 잘 수가 있는 것이다.
2절 : “나라가 부패하면 지도자가 자주 바뀌지만, 슬기롭고 지혜로운 지도자는 나라를 안정시킨다.”(쉬운 성경)
북이스라엘은 남유다보다 짧은 역사이지만 왕들이 자주 바뀐다. 반역으로 점철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유다는 다윗의 씨로 이어진다. 때론 반역이 있어도 곧 회복되는 것은 다윗 언약 때문이다. 그러므로 명철과 지식으로 다스리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여야 한다. 그런 나라는 영원할 것이다.
다윗의 위에 앉아서 영원히 왕 노릇 하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3절 :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권력자는 곡식을 낟알 하나 남김없이 쓸어 가는 폭우와 같다.”(쉬운 성경)
가난한 자가 갑자기 재물이 많아지거나 권력을 차지하게 되면 가난한 자들을 더욱 학대하는 경우가 있음을 말한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말처럼 자수성가한 사람이 가난한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기보다는 자신의 부를 채우기 위하여 약하고 가난한 자를 더 악착같이 대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모습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언약과 사랑으로 구원하여 약속에 땅에 들여놓았다. 그러면서 너희가 애굽에서 나그네로 살았기에 너희의 땅에서 약자를 잘 돌보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약자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착취함으로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된다.
4절 : “율법을 버린 사람은 악인을 찬양하지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악인에게 대항한다.”(새번역)
이스라엘은 왕이 필요가 없는 나라이다. 백성들이 원하여 왕이 세워지지만 왕이 율법을 버리면 백성들이 고생을 한다. 이때에 선지자들이 등장하여, 왕이라도 율법을 버리면 책망을 한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율법을 버리는 왕을 칭찬함으로 자기들의 이득을 챙긴다.
그러므로 악인을 칭찬하는 자가 율법을 버리는 자인 것이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한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참된 선지자는 다 핍박을 받았지만 거짓 선지자들은 세상의 영광을 얻었던 것이다.
5절 : “악한 사람은 공의를 깨닫지 못하나, 주님을 찾는 사람은 모든 것을 깨닫는다.”(새번역)
율법을 버린 자는 정의를 깨닫지 못하지만, 율법을 지키는 자 곧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는다.
율법을 버린다는 것은 말씀을 버린다는 것이며, 말씀을 버린다는 것은 결국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를 찾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는다.
6절 : “부유하나 구부러진 길을 가는 사람보다는 가난해도 흠 없이 사는 사람이 낫다.”(새번역)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부정하게 부를 축적한 사람보다 낫다.
7절 : “슬기로운 아들은 율법을 지키지만, 먹기를 탐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아들은 아버지에게 욕을 돌린다.”(새번역)
음식을 탐한다는 것은 음식만이 아니라 모든 탐심을 따라가는 자들이다. 이들과 사귀는 자들은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가 된다. 아비란 지혜의 전달자이다. 그러므로 아비를 욕되게 한다는 것은 결국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8절 : “높은 이자로 재산을 늘리는 것은, 마침내, 가난한 사람들에게 은혜로 베풀어질 재산을 쌓아 두는 것이다.”(새번역)
고리대금으로 자기 재산을 늘리는 자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것이기에 그들의 재산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며, 그것은 오히려 가난한 자를 도우는 사람에 의해 사용될 것이라는 것이다.
9절 : “귀를 돌리고 율법을 듣지 않으면, 그의 기도마저도 역겹게 된다.”(새번역)
율법을 버리는 자가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않는 자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라고 자처하였지만 그들의 속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하였다. 그러면서도 기도하고, 금식하고, 구제하고, 전도하는 티를 내고 다닌 사람들이다.
이들의 기도는 겉과 속이 다른 가증한 것이 되고 말았다.
10절 : “정직한 사람을 나쁜 길로 유인하는 사람은 자기가 판 함정에 빠지지만, 흠 없이 사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새번역)
죄인의 본성은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여 그도 죄를 짓게 한다. 악한 동무는 선한 행실을 더럽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속아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성실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1~2)
11절 : “부자가 자기 보기에는 지혜롭지만, 가난하나 슬기로운 사람은 그 사람의 속을 꿰뚫어 본다.”(새번역)
“부자는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지만, 명철을 지닌 가난한 사람은 자신을 살핀다.”(쉬운 성경)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가난해도 명철한 자는, 자기를 지혜롭다고 여기는 그 부자의 속을 꿰뚫어 본다는 것과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지만 가난해도 명철한 자는 자기를 살펴 안다는 해석이다.
자신을 지혜롭다고 여기는 부자들에게는 말씀이 들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정말 가난하고 병든 죄인임을 아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는 것이다.
말씀을 통하여 자기를 보고 가난하고 비참한 죄인임을 아는 자가 명철한 사람이다.
12절 : “의인이 권력을 잡으면 나라가 잘 되지만, 악인이 권력을 잡으면 백성들이 모조리 피해 도망간다.”(쉬운 성경)
악인이 득세를 하면 의인들의 입을 막아버린다.
독재정부일수록 언론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이다. 물론 악한 언론인들은 알아서 권력에 기생한다.
지혜자가 잠잠하게 되는 것은 그 시대가 악한 시대인 것이다.
13절 : “자기의 죄를 숨기는 사람은 잘 되지 못하지만, 죄를 자백하고 그것을 끊어 버리는 사람은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이다.
그런데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되면 자기 죄를 알게 되고 예수님을 통해 죄를 용서 받는 것이 참된 복임을 알게 된다. 이 복이 긍휼을 입는 것, 즉 불쌍히 여김을 받는 것이다.
14절 :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복되지만, 고집쟁이는 재난에 떨어진다.”(쉬운 성경)
하나님을 경외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복을 받지만, 완악하여 콧대가 센 사람은 망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 경외란 예수님을 주로 믿는 것이다.
(나의 묵상)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9절)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들라면 바로 말씀과 기도일 것이다.
말씀으로 주님을 바로 알고, 그것을 바탕으로 주님과 기도로 교제하는 것이다.
본문 9절은 말씀 없는 기도는 가증한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이 가증한 짓을 참 많이 했다.
나의 욕구를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행동을 많이 했던 것이다.
교회의 모든 기도회 시간에, 수련회 등 특별한 시간을 보내는 기도원에서, 그리고 일상에서.....숨을 쉬듯 기도하라고 해서 숨을 쉬듯 내 소원을 위해 하나님께 빌었던 것이다.
그 기도의 내용들을 생각하면 주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하지 않으니 주님의 뜻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니 내 뜻이 이루어지면 기도응답이라고 기뻐하고, 아니면 낙심하고를 반복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복음을 알게 되었다.
뛸 듯이 기뻤다.
그런데 복음을 알게 된 기쁨은 너무도 컸는데, 문제는 기도할 것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직면한 것이다.
참으로 혼란스러웠다.
성경에는 분명히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는데, 나는 복음을 알고 난 뒤 도리어 예전보다 더 기도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시간이 좀더 흐르고 깨닫게 된 것은, 그 동안 내가 한 기도-내 소원을 비는 기도-라는 것이 다 가증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겉과 속이 다른 그런 기도를 멈추니, 기도할 것이 없어진 것이다. 겉으로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니 거룩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전부 이 세상에서 나 자신의 형통을 위한 것이니 가증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 옛날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의 위선적인 신앙-주님은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고 말씀하셨다-을 닮은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혼란한 시간이 더 흘러갔다.
말씀을 통해 창세전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복음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되었다.
내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되는 삶이 성도의 귀한 삶이라는 것을 성령께서 알게 해 주셨다. 이 복음의 말씀에 반응하며 살기 위해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갔다. 성령께서 전적으로 인도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실제 내 삶은, 기쁨으로 받은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연약하고 간사한 삶이라는 사실이었다.
말씀을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내가 지독한 죄인이요, 미련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내가 진짜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를 깨닫게 된 것이다.
말씀에서 보여주시는 은혜는 너무도 컸지만, 나는 그 은혜대로 살지 못하는 낯 두꺼운 자였다.
그러나 거기에 실망하거나 낙심하여 주저앉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내 모양을 다 덮고도 남는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라는 말씀까지도 주시기 때문이다.
이제 겉과 속이 다른 가증한 기도를 그치는 것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매일 말씀을 통해 주님과 교제하는 자로서 내 삶의 모습에 대해 기도하는 것이다.
말씀에 비춰진 내 삶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실한가를 보고 회개의 기도를 한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구하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어떻게 이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막막해하는 나를 애통해 하며 오로지 십자가에 연합되기만을 기도한다.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을 믿으며.....
그러고 보니 오히려 기도 시간이 부족하다.
내 죄와 연약함과 미련함이 끊이지 않으니 더욱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께서 우물쭈물 혼란했던 시간에 마침표를 찍게 하셨다.
매일 말씀의 자리에 앉게 하셔서 주님을 더 잘 알아가게 하실 뿐 아니라, 무엇을 기도해야 할 것인지를 알게 하신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말씀 없는 기도,
그 가증한 짓을 많이 해 놓고 믿음이 좋은 척 했던 저를 용서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구역질 나는 자를 뱉아내 버리지 않으시고
보혈로 덮어 안아 주시니 어리둥절하다가 눈물만 흘립니다.
말씀의 자리,
이 생명의 빛의 자리가 너무도 귀함을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주님을 알게 되는 것과 나를 알게 되는 것......
그러니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귀 기울여주시는 진실한 기도를 올려드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저를 주관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