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김문홍, 영화 속을 걷다〛(69)
지금은 지금의 '볕뉘'를 즐기며 살아라
-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라
유진 오닐과 함께 미국의 1세대 극작가인 손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라는 희곡은 지나간 시절의 소중함에 관한 애틋한 정서를 담고 있다. 3막에서 여주인공은 아기를 낳다 죽어, 그녀는 영혼인 채로 남편을 비롯한 마을의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며 과거를 회상한다. 저 사람들은 지금 살고있는 오늘의 소중함을 알기나 하는 걸까, 왜 그때 나는 저 눈부신 날들을 그냥 흘려보내고 만 것일까, 왜 그때 나는 그 소중한 날들을 꼭 붙안은 채 소중하게 보내지 못했는가 하고 후회한다. 이 작품은 인간의 탄생, 성장, 죽음, 이별의 보편적인 정서를 담아, 오늘 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가라고 독자(관객)의 애틋한 감정으로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현대의 고전이다.
우리 역시 모두 그렇지 않을까?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물건의 소중함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사랑하는 존재의 눈부신 기억을 떠올리며 뒤늦게 가슴을 친다. 왜 그때 그 사람을 온 영혼으로 사랑하지 못했느냐며 자신의 아둔함을 질책하기도 한다. 있을 때 잘하라는 평범한 말이 온 우주의 무게감으로 밀려오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이 희곡은 오늘 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다.
독일의 빔 벤더스 감독은 일본을 사랑하는 감독이다. 그는 일본의 감독인 오즈 야스지로를 존경해 <도쿄가>라는 영화로 오마주하기도 했다. 빔 벤더스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미국의 극작가 샘 셰퍼드가 각본을 쓴 영화 <파리, 텍사스>(1987)는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페터 한트케가 각본을 쓴 <베를린 천사의 시>(1993) 등, 그는 이 두 작품으로 널리 이름을 떨친 바가 있다. 이번에도 역시 <퍼펙트 데이즈>(2024, 124분)를 만들어, 일본의 영화감독인 오즈 아스지로에 대한 흠모와 존경을 통한 그의 일본 사랑을 증명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히라야마'를 연기한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소 코지는 지난해 제76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남자연기상을 수상한 바가 있다. 원래 이 영화는 지난 2020년 도쿄올림픽 전에 일본 시부야에 산재한 17개의 공중화장실을 유명 건축가 안도 타다오를 비롯한 17명의 건축가에게 디자인을 의뢰했다고 한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관중 없이 올림픽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일본재단의 ‘THE TOKYO PROJECT’라는 홍보영화를 빔 벤더스에게 의뢰했는데, 그는 야쿠소 코지에게 히라야마 역을 맡게 해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오즈 야스지로의 <꽁치의 맛> 주인공 이름이 ‘히라야마’인 것을 봐서, 이 영화는 그를 오마주해서 만든 영화일지도 모른다.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하루를 담다
이 영화는 일종의 아날로그 영화다. 화면도 '4:3' 비율의 고전적인 크기로 인물 이외의 배경을 최소화하고 오직 히라야마라는 인물에만 초점 심도를 맞추고 있다. 그리고 디지털 대신 필름 카메라로, 질감 역시 화려한 기능보다는 소박하고 단순한 인물의 일상을 담고 있다. 서사 역시 자극적인 사건보다는 잔잔한 일상의 풍경을 담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미국 독립영화계 거장인 짐 자무시의 <패터슨>의 서사 구조와 무척 닮아있다. 히라야마의 일상은 아주 담담한 숭늉맛처럼 담백하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시부야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고, 점심은 인근 숲속에서 준비해 온 음식을 먹으며 나무 이파리 사이에 순간 일렁이는 햇빛의 눈부신 빛살을 즐긴다. 일이 끝나면 목욕을 하고 지하철 옆의 단골 음식점에서 맥주 한 잔을 한다. 집에 돌아오면 지극히 자연스럽고 비스듬한 자세로 누워 미국 작가이며 시인인 포크너의 시를 읽는 것이 일상의 전부다.
짐 자무시의 <패터슨>의 주인공 역시 버지니아주 소도시 패터슨 시의 운전기사로 운전을 하며 버스 승객들의 작은 변화를 눈여겨본다. 점심은 늘 찾는 폭포수 곁에서 떼우고, 수첩에다 시를 쓴다. 퇴근하면 개를 데리고 산책하다 단골 바에서 술 한잔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 곁에서 잠자는 것이 패터슨의 일상의 전부이다. 히라야마가 포크너의 시를 읽고, 패터슨이 시를 쓴다는 것이 다를 뿐 심심하고 단순한 일상의 반복은 거의 유사하다. 패터슨은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지만, 히라야마의 전사는 전혀 밝혀지고 있지 않다는 것만 다르다.
이 영화의 발단 부분에서 히라야마가 작업장으로 가는 차 안의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애니멀스의 팝송 'The House of The Rising Sun'이 흘러나온다. 그 가요는 뉴올리언스 고향에서 떠나온 한 사내의 과거 회상에서 알 수 있듯이, 아버지와의 갈등을 못 이겨 떠나온 것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인 히라야마 역시 가족과의 갈등, 특히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로 홀로 떠나와 살고 있지 않을까 하고 추론할 뿐이다. 후반부에 가출해 삼촌인 히라야마와 함께 지내는 조카 니키를 데리러 온 여동생이 히라야마에게 이제는 아버지를 볼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것으로 얼추 짐작할 수 있다. 히라야마가 포크너의 시집을 읽고 음악을 듣는 것으로 봐서, 그의 지적 능력과 단순 소박한 삶을 우선시하는 삶에 대한 가치관 역시 경쟁 사회에서 한발 비켜서서 삶을 관조하는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히라야마가 인근 숲에서 점심을 먹은 뒤 숲의 나무들을 올려다보는 대목이 자주 반복된다. 나무 이파리 사이에서 출렁이는 햇빛을 그는 무척 사랑한다. 그런 모습을 일본어로는 '코모래비'라고 하는데,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뜻한다. 순우리말에서는 이를 '볕뉘'라고 한다. 이 말은 이런 뜻도 있지만, 자신이 다른 이에게 끼치는 도움이란 뜻으로 '음덕'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도 쓰이고 있다. '코모래비'란 영속적인 것이 아니라, 순간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삼촌인 히라야마를 찾아온 조카 니키에게 하라야마가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아란 말을 읊조리곤 한다. 이것은 인생은 속절없는 것이니 '지금 현재'의 삶을 즐기라는 뜻의 은유로 쓰인다. 즉, 지금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즐기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히라야마의 단순하고 소박한 삶의 찬가라고 볼 수 있다. 나무 이파리 사이에서 일렁이는 햇살은 영원성보다는 금세 사라지는 순간의 시간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삶은 순간적이고 짧은 유한성을 지닌다. 남보다 한발 앞서가고 경쟁에 이기기 위해 치열하게 생존의 싸움을 하는 것은, 이 우주의 영원성에 비하면 아주 부질없고 덧없는 짓이다. 그러니 영원히 살 것처럼 오만하게 사는 것보다는 한발 비켜선 채 주어진 지금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 현명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자신의 행복이나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의 태도가 아닌가 하고 우리에게 반문하고 있다.
지금은 볕뉘 같은 인생을 즐길 시간
영화 후반부에 병에 걸려 유한적인 삶을 영위하는 한 사내와 히라야마가 그림자놀이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곧 '코모래비' 나 '볕뉘'의 은유라고 볼 수 있다. 서로의 그림자를 겹치면 더욱 짙어져 보이는 것처럼, 한순간의 기쁨을 서로 함께 나누어 살면 더욱 은혜로운 것처럼, 우리 인생과 삶은 더욱더 의미 있듯 바람직한 것이 아니겠는가.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지금 당장 이 세상에 하직을 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주어진 시간을 선물처럼 생각하며 살아라."라는 구절이 있다. 히라야마가 조카에게 말하는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이라는 말과 그 속뜻이 같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언제 어느 때 죽음이 우리에게 찾아올지 모른다. 그러니 마치 오늘이 이 세상의 끝인 것처럼 하루하루를 보람있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볕뉘는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코모래비'를 지금 당장 기뻐하며 즐겨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할 수 있으면 지금 당장 사랑하고, 내 기쁨과 유쾌함을 나만 즐기지 말고 가까이 있는 누군가와 함께 즐기고, 사랑한다는 말도 망설이지 말고 지금 당장 속삭여 주며 현재를 즐기기를 바란다.
철학자 니체의 '아모르 파티' 는 내게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며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우리 속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처럼, 지금 당장 내게 주어진 순간을 즐기며 살라고 이 영화는 가르치고 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정상 위에 바윗돌을 굴려 올리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반복을 계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시포스의 형벌인 획일적인 반복이 비록 우리 의 삶일지라도, 그 획일성에 나타나는 코모래비나 볕뉘처럼 변주의 리듬에 충실하며 눈부신 일상을 보내라고 한다, <패터슨>의 운전기사 패터슨이 시를 쓰는 것처럼,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가 지금 한순간 찾아오는 볕뉘나 코모래비를 즐기며 사는 것처럼, 순간을 즐기면서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 아닌가 하고 우리에게 되묻는 것이 바로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다.
아모르 파티,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라고 이 영화는 히라야마라는 주인공의 단순 소박한 삶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볕뉘를 지금 당장 사랑하며 살라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퍼펙트 데이즈>는 완전한 삶, 충만한 나날을 가리킨다. 그냥 획일적인 시시포스의 형벌적인 삶이 되지 않기 위해선 나날의 일상에 가치 있는 시간의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반복의 삶을 물리적으로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변주가 될 수 있게 삶을 풍요롭게 치장해야 한다.
그런데 감독이 왜 히라야마의 전사를 보여주지 않고, 그의 현재 일상만 보여주고 있는가를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과거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아직 다가오지 않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굳이 알 필요도 없다. 과거를 떠올려 봐야 회한만 쌓일 것이고, 미래를 생각해 본들 긴장과 불안만 쌓일 것이 아닌가. 오직 히라야마의 지금 현재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지난 과거와 아직 당도하지 않은 미래를 능히 알고도 남음이 있다고 이 영화는 속삭인다. 그래서 구태여 그의 과거를 보여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현재만 잘 살고있다면 그의 과거도 능히 알 수 있고, 미래 역시 현재의 연속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 계간 <문장> 2024년 가을호)
첫댓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