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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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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아뜨리에,.. 애송시 스크랩 다리를 위한 변명 외 / 이상국
동산 추천 0 조회 133 09.07.14 18:1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다리를 위한 변명 / 이상국 

 

 

먼 길을 다니다보면 자동차의 발이 천형 같다

말은 안하지만 그들도 몸을 버리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쓰레기 봉지를 찢고 나온 닭발이나

바지 밖에서 잠든 노숙자의 다리나

다리는 쉬고 싶다

 

저 가느다란 것들에게 세상이 얹혀 다니다니

 

외다리 집게는 몸이 다리이고

시장바닥을 배밀이 수레로 밀고가는 사람은 찬송가가 다리이다

한 번도 집밖에 나간 적이 없는데 몸통을 잃은 나무를 보거나

아프리카는 짐승들이 사납고 먹을 것도 별로 없다는데

지뢰 때문에 다리가 날아가버린 우간다 아이들이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면

내 무릎 밑이 다 서늘해진다

 

다리는 먹이를 위하여 걷거나 뛰거나 하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감자떡 / 이상국  

 

 

하지가 지나면

성한 감자는 장에 나가고

다치고 못난 것들은 독에 들어가

가을까지 몸을 썩혔다

헌 옷 벗듯 껍질을 벗고

물에 수십번 육신을 씻고 나서야

그들은 분보다 더 고운 가루가 되는데

 

이를테면 그것은 흙의 영혼 같은 것인데

 

강선리 늙은 형수님은 아직도

시어머니 제삿날 그걸로 떡을 쳐서

우리를 먹이신다  

 
 
 
 
 

있는 힘을 다해 / 이상국  

 

 

해가 지는데

왜가리 한마리

물속을 들여다 보고 있다

 

저녁 자시러 나온 것 같은데

 

그 우아한 목을 길게 빼고

아주 오래 숨을 죽였다가

가끔

있는 힘을 다해

물속에 머릴 처박는 걸 보면

 

사는 게 다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성묘 / 이상국  

 

 

 

- 야덜아 내 죽거든 태워서 물치 바다에나 뿌려다오

 

 어머니는 살아생전 늘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선산이 수만평이나 있고 아들자식들이 모두 이름 석자는 쓰고 사는 집에서 될 법이나 한 일이냐고 감동골 솔밭 속의 아버지와 합장을 해드렸습니다

 

30촉짜리 전등이라도 하나 넣어드릴 걸
평생 어두운 집에서 사시던 분들
 

 

 

 

 

 아침 시장 / 이상국  

 

 

 화장을 곱게 한 닭집 여자가 닭들을 좌판 위에 진열하고 있다. 발가벗은 것들을 벌렁 잦혀놓아도 그들은 별로 부끄러워하는 것 같지 않다. 그 옆 반찬가게집 주인은 두 무릎을 공손히 꿇고 앉아 김을 접는다. 꼭 예배당에 온 사람 같다. 어느 촌에서 조반이나 자시고 나왔는지 장바닥 목 좋은 곳  깔고 앉으려고 일찍도 나온 할머니가 나생이와 쪽파 뿌리를 손주 머리 빗겨주듯 빗어 단을 묶는다. 각을 뜬지 얼마  안돼 아직 근육이 퍼들쩍거리는 돼지고기를 가득 싣고 가는 리어커를 피하며 출근길의 아가씨가 기겁을 하자 무슨  씹이 어떻다고 씨부렁거리는 리어커꾼의 털모자에서 무럭무럭 김이 솟는다. 아직 봄이 이른데 딸기 빛깔이 꼭 칠한 것처럼 곱다. 순대국밥집 앞의 시멘트바닥에 잘생긴 소머리 하나가 새벽잠을 자다가 끌려나왔는지 꿈꾸는 표정으로 면도를 하고 있다. 갑자기 골목 안이 화안해지며 차 배달 갔다오는 미로다방 아가씨가 어묵가게 아저씨를 향하여 엉덩이를  힘차게 흔들며 지나간다.            

 

 

 

           

                                                   

/ 이상국

 

 

 

나무들도 엉덩이가 있다
새벽 숲에 가면 군데군데 쭈그리고 앉아
볼일 보는 나무들을 볼 수 있는데
그런 날 아침은 산이 향기로 가득하다

 

내 사는 설악산의 엉덩이는 얼마나 깊고 털이 무성한지
내 그것과는 감히 견줄 수가 없다
또 어떤 날은 미시령을 넘어가며
달도 엉덩이를 보일 때가 있는데
그 모습이 하도 아름답고 섹시해서
나는 어둠 속에서 용두질을 할 때도 있다

 

모든 것들은 엉덩이가 있고
우리는 모두 그곳에서 왔는데
하늘은 발딛을 데가 없으므로
더러 구름이나 물새를 보내거나
오줌 소나기로 강을 닦아 놓고는
자신의 엉덩이를 비춰 보고는 한다 

 

 


 

똬리 다섯 개 / 이상국

 

 

배다리 솔밭 살던 장수 아버지 별명이 똬리 다섯 개, 아잇적부터

물건이 하도 커 거짓말 좀 보태면 홍두깨만해서 물동이 이는 똬리

다섯 개를 걸어도 끄떡없었다. 이게 수캐처럼 처녀 과부 안 가리고

밤낮 없이 껄떡거리는 바람에 사람 축에도 못 들고 몰매똥매 숱해

맞았다. 어느 해 봄 이웃집 닭에다 그 짓을 했다고 온 동네가 수군

거리자 장수 할아버지 아예 뒈지라고 뒤란 도라무깡에 엎어놓고

집채 만한 돌로 눌러놓았는데 밤이 되자 땅 파고 기어나와 또

과붓집을 기웃거렸다는 장수 아버지,


올 봄 저 세상 가며 그 좋은 물건도 가지고 갔다.  

 

 

 

 

 

오길 잘했다 / 이상국 

 

 

 

어느 날 저녁 동네 골목길을 지나다가 자즈러질 듯 우는 갓난애의 울음소

리를 들으며 

아, 누군가 새로 왔구나

그리고 저것이 이제 나와 같은 별을 탔구나 하는 즐거움 

 
상당히 이름이 나있는 시인의 시를 읽다가 야, 이 정도면…… 어쩌고 하

이 희떠움

 

티브이 속에서 줄줄이 끌려가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을 향해 

노골적으로 꼴좋다 꼴좋다 외치는 즐거움 

 

아무 생각없이 생을 두루마리 휴지처럼 풀어쓰다가 

남 모르게 우주의 창고를 열어보는 이 든든함 

 

때로 따뜻한 여자 속에서 내 그것이 죽어가는 즐거움 

 

친구를 문상 가서 웃고 떠들다가 언젠가 저것들이 내 주검 앞에서 나를

보며

내 음식을 축내는 즐거움을 미리 보는 즐거움

 

어쩌다 공돈이 생긴 날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집에 가는데

나무 이파리들이 멋도 모르고 바람에 뒤집어지는 걸 바라보며

아무래도 세상에 오길 잘했다는 이 즐거움 

 

 

 

 

집은 아직 따뜻하다 / 이상국 

 

 

흐르는 물이 무얼 알랴

어성천이 큰 산 그림자 싣고

제 목소리 따라 양양 가는 길

부소치 다리 건너 함석집 기둥에

흰 문패 하나 눈물처럼 매달렸다

 

나무 이파리 같은 그리움을 덮고

입동 하늘의 별이 묵어갔을까

방구들마다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어둠을 입은 사람들 어른거리고

이 집 어른 세상 출입하던 것이

비료포대 속에 들어 바람벽 높이 걸렸다

 

저 만리 물길 따라

해마다 물에 혼은  실어보내고 몸만 남아

사진액자 속 일가붙이들 데리고

아직 따뜻한 집

 

어느 시절엔들 슬픔이 없으랴만

늙은 가을볕 아래

오래 된 삶도 짚가리처럼 무너졌다

그래도 집은 문을 닫지 못하고

다리 건너오는 어둠을 바라본다 

 

 

 

 

 

 

여름 / 이상국 

 

 

 

 

산을 내려온 바람이

멧돼지처럼 옥수수밭을 뒤지고 다니는 저녁이다

 

하루살이들 이악스럽게 달려드는 멍석마당에서

하늘의 별들이 가끔 더 먼 곳으로 날아가는 걸 바라보며

어머니는 감자를 깎으시고

오뉴월 하루 볕이 다른데

어디 보자며

불쑥 사타구니에 손을 넣어

감자톨 같은 내 불알을 만져보시던

 

아버지야 아버지야

 

 

 

 

 

 

겨울 선운사에서 / 이상국

 

 

 

 

누가 같이 자자 그랬는지

뾰루퉁하게 토라진 동백은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절 아래 레지도 없는 찻집
담벼락에서 오줌을 누는데
분홍색 브레지어 하나 울타리에 걸려있다

저 젖가슴은 어디서 겨울을 나고 있는지

스님 하나가 잔뜩 허리를 구부리고
고해(苦海)만한 절 마당을 건너가는 저녁

나도 기러기 같은 목도리를 하고
남 다 살고 간 세상을 건너가네

 

 

 

 

 

물 속의 집 / 이상국 

 

 

 

그 해 겨울 영랑호 속으로
빚에 쫓겨온 서른세 살의 남자가
그의 아내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가던 날
미시령을 넘어온 장엄한 눈보라가 
네 켤레의 신발을 이내 묻어주었다

고니나 청둥오리들은
겨우내 하늘 어디선가 결 고운 물무늬를 물고 와서는
뒤뚱거리며 내렸으며
때로 조용한 별빛을 흔들며
부채를 청산한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인근 모래기*까지 들리고는 했다

얼음꽃을 물고
수천 마리 새떼들이 길 떠나는 밤으로
젊은 내외는 먼 화진포까지 따라나갔고
마당가 외등 아래서
물고기와 장난치던 아이들은 오래도록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애들이 얼마나 추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의 뺨을 적신다

그래도 저녁마다
울산바위가 물 속의 집 뜨락에
오래 가는 놀빛을 떨어뜨리고 가거나
산 그림자 속 화암사 중들이
일부러 기웃거리다가 늦게 돌아가기 때문에
영랑호는 문을 닫지 않는 날이 많다

그런 날은 물 속의 집이 너무 환하게 들여다보였다
  

                                            

* 모래기는 영랑호 주변에 있는 마을 이름. 

 

 

 

 

 

 

딸부잣집 낙수 소리 / 이상국 

 

 

 

내 말이 그 말이어유 글쎄
저 냥반은 그거시 어째서 그렁가
쇠딱따구리 소리만 났다 허면
벌떡허니 나가 장작을 패드라구유
굴뚝 모탱이구 마루 밑구녕이구
틈새기 읍시 꽉꽉 쟁여 놨었응게
아매두 부엌 아궁이가 그것덜
모다 먹느라구 입깨나 아펐을뀨
산내기 꼬는 것두 하루 이틀이지
밤 질구 방 뜨건디 저 양반은 글쎄
바까티만 뜨겁구 안은 안 뜨건가
나만 맨날 맷돌 밑짝 맹글데유
웃짝 밑짝 그러다봉게 이리 됐지유

 

 

 

 

 

나도 보험에 들었다 / 이상국 

 

 

 

좌회전 금지구역에서
좌회전을 하다가 사고를 냈다
택시기사가 핏대를 새우며 덤벼들었지만
나도 보험에 들었다
문짝이 찌그러진 택시는 견인차에 끌려가고
조수석에 탔다가 이마를 다친 남자에게
나는 눈도 꿈쩍하지 않고
법대로 하자고 했다
나도 보험에 들었다
좌회전이든 우회전이든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나의 불행이나 죽음이 극적일수록
보험금이 높아질 것이고
아내는 기왕이면 좀더 큰 걸 들지 않은 걸 후회하며
그걸로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가구를 바꾸며
이 세계와 연대할 것이다
나도 보험에 들었다
 

 

 

 

 

싸움 / 이상국  

 

 


여러 해 전이다.
내설악 영시암에서 봉정 가는 길에
아름드리 전나무와 등칡넝쿨이
엉켜 붙어 싸우고 있는 걸 보고는
귀가 먹먹하도록 조용한 산중에서
목숨을 건 그들의 한판 싸움에
나는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적어도 싸움은 저쯤 돼야 한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었다
산속에서는 옳고 그름이 없듯
잘나고 못나고가 없다. 다만
하늘에게 잘 보이려고 저들은
꽃이 피거나 눈이 내리거나
밤낮없이 살을 맞대고
황홀하게 싸우고 있었던 것인데
올 여름 그곳에 다시 가보니
누군가 넝쿨의 아랫도리를 잘라
전나무에 업힌 채 죽어 있었다
나는 등칡넝쿨이 얼마나 분했을까 생각했지만
싸움이 저렇게도 끝나는구나 하고
다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산방일기(山房日記) / 이상국  

 

 

 

 새벽 한기에 깨어 마당에 내려서면 녹슨 철사처럼 거친 햇살 아래 늦매미 수십 마리 떨어져 버둥거리고는 했다. 뭘 하다 늦었는지 새벽 찬서리에 생을 다친 그것들을, 사람이나 미물이나 시절을 잘 타고나야 한다며 민박집 늙은 주인은 아무렇게나 비질을 했다.
 

 주인은 산일 가고 물소리와 함께 집을 보며 나는 뒤란 독 속의 뱀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서럽도록 붉은 마가목 열매를 깨물어보기도 했다. 갈숭어가 배밀이를 하다가 하늘이 보고 싶었던지, 어디서 철버덩 소리가 나 내다보면 소리는 갈앉고 파문만 보이고는 했다
 

 마당 가득한 메밀이며 도토리 멍석에 다람쥐 청설모가 연신 드나든다. 저희 것을 저희가 가져가는데 마치 도둑질하듯 살금살금, 청설모는 덥석덥석 볼따구니가 터져라 물고 간다
 

 어느덧 저녁이 와 어느 후미진 골짜기에 몸을 숨겼던 밤이 산적처럼 느닷없이 달려들어 멀쩡한 집과 나무와 길을 어둠속에 처박는 산골, 외롭다고 풀벌레들이 목쉰 소리를 하면 나는 또 산 너머  세상의 의붓자식 같은 내 인생을 생각하며 밤을 새고는 했다 
   

 

 

 

 

 

봄을 기다리며 / 이상국   

 

 

 

겨울산에 가면
나무들의 밑동에
동그랗게 자리가 나있는 걸 볼 수 있다
자신이 숨결로 눈을 녹인 것이다
저들을 겨우내 땅속 깊은 곳에서 물을 퍼올려
몸을 덥히고 있었던 것이다
좀 더 가까이 가보면
모든 나무들이
잎이 있던 자리마다 창을 내고
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어디에선가 "봄이다!" 하는 소리만 났다 하면
뛰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겨울에 둘러싸인 달동네
멀리서 바라보면 고층빌딩 같은 불빛도
다 그런 것이다 

 

 

 

 

 

돌배나무와 면장 / 이상국 

 

 

 

강선리 사람치고
은직이 아저씨네 돌배 안 따 먹고 큰 사람 있으면 나와봐라
걸립패 상쇠 놀고
상여머리 선소리 청승맞던
은직이 아저씨 들일 나가면
물매질하고 장대로 털어 먹던
그 사근사근하고 달착지근한 맛
모르는 사람 없었지
깨밭 다 망친다고
이악쟁이 할멈 '베락이 맞을 놈들'이라고 쫓아오면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다가도
다시 모여들던 나무 밑
그 아저씨 자식 하나 못 남긴 채 돌아가고
그 큰 돌배나무 작년에 없어졌다
칠성이 어머니가 그러는데
'면장질 하던 눔'이 우물 파준다며
즈이 집 치장하려고 뿌리째 캐갔단다
참 더러운 면장이다

 

 

 

 

 

봉희네 / 이상국


 

 

그해
마구간 딸린 집 한 채에
궁둥이 먼저 디밀어야 하는 뒷간 옆 돌배나무와
애호박처럼 애리애리해도
억척스럽기 칡줄기 같은 처와 함께
어스럭송아지 앞세우고 세간을 났다
스물일곱에 장가 들고 이듬해 봄
양지 쪽 어린 풀포기들 샛바람에 떠는 날
세상 한가운데 나앉았다
한번 시동 걸어놓으면 멈출 줄 모르는 기계처럼
다시 스무 해 넘게 농토에 엎드렸지만
강선리는 자꾸 지구에서 지워져간다
칠 벗겨진 슬레이트 지붕 아래
아직 안테나를 따로 장만치 못해
주말 연속극이 잘 나오지 않는 TV를 들여놓았고
비온 다음날 돌담 밑 원추리 순 돋듯
비수 같은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죽은 땅을 뚫고 올라왔을 뿐
나라가 뒤집어진다 해도 봉희네는 지킬 게 없다
 

 

 

 

 

폭설 / 이상국 

 

 

 

곡(哭)을 하다 배고프면 국수를 먹었다


처음에는 두 형님과 소리가 엇갈렸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곡은 어우러졌다
밤이 깊어질수록, 살다 이렇게 가는구나 하며
나는 속으로 아는 체를 했다
 

꼬질대가 휘도록 눈은 퍼붓고
차일 밖에서 마른 눈을 삼킨 개들이
컹컹 기침을 했다
 

문상객들은 눈을 털며 들어와
양초나 문종이로 부조를 하고는
피가 비치는 돼지고기에 독한 소주를 먹으며
내년 농사 걱정을 했다
 

눈은 잠처럼 쏟아지고
영정 속의 어머이는
졸리면 형들에게 맡기고 들어가 자라 했으나
나는 추우면 화로불을 쬐다가 다시 곡을 했다  

 

 

 

 

 

소나무 숲에는 / 이상국 

 

 


소나무 숲에는 뭔가 있다
숨어서 밤 되기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은근할 수가 있는가
짐승처럼 가슴을 쓸어 내리며
모두 돌아오라고, 돌아와 같이 살자고 외치는
소나무 숲엔 누군가 있다
어디서나 보이라고, 먼 데서도 들으라고
소나무 숲은 횃불처럼 타오르고 함성처럼 흔들린다
이 땅에서 나 죄 없이 죽은 사람들과
다치고 서러운 혼들 모두 들어오라고
몸을 열어놓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바람 부는 날
저렇게 안 우는 것처럼 울겠는가
사람들은 살다 모두 소나무 숲으로 갔으므로
새로 오는 아이들과 먼 조상들까지
거기서 다 만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나라 밥 짓는 연기들은
거기 모였다가 서운하게 흩어지고
소나무 숲에는 누군가 있다
저물어 불 켜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기다리는 누군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날마다
저렇게 먼 데만 바라보겠는가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 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봄날 옛집에 가서 / 이상국

 



봄날 옛집에 갔지요
푸르디푸른 하늘 아래
머위 이파리만한 생을 펼쳐들고
제대하는 군인처럼 갔지요
어머니는 파 속 같은 그늘에서
아직 빨래를 개시고
야야 돈 아껴 쓰거라 하셨는데
나는 말벌처럼 윙윙거리며
술이 점점 맛있다고 했지요
반갑다고 온몸을 흔드는
나무들의 손을 잡고
젊어서는 바빠 못 오고
이제는 너무 멀어서 못 온다니까
아무리 멀어도 자기는 봄만 되면 온다고
원추리꽃이 소년처럼 웃었지요

 

 

 



집은 아직 따뜻하다 / 이상국 

 



흐르는 물이 무얼 알랴
어성천이 큰 산 그림자 싣고
제 목소리 따라 양양 가는 길
부소치 다리 건너 함석집 기둥에
흰 문패 하나 눈물처럼 매달렸다

나무 이파리 같은 그리움을 덮고
입동 하늘의 별이 묵어갔을까
방구들마다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어둠을 입은 사람들 어른거리고
이 집 어른 세상 출입하던 것이
비료포대 속에 들어 바람벽 높이 걸렸다

저 만리 물길 따라
해마다 물에 혼은  실어보내고 몸만 남아
사진액자 속 일가붙이들 데리고
아직 따뜻한 집

어느 시절엔들 슬픔이 없으랴만
늙은 가을볕 아래
오래 된 삶도 짚가리처럼 무너졌다
그래도 집은 문을 닫지 못하고
다리 건너오는 어둠을 바라본다


                

 

 

 

 

 

小說家 강석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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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시인


1946년 강원도 양양 출생  
1976년 <심상>에 시 <겨울추상화>가 당선되어 등단  
<갈뫼>, <신감각> <속초시> 동인 
민족예술인상, 제1회 백석문학상, 유심작품상 수상

 

시집

 <동해별곡(東海別曲)>,  <내일로 가는 소>
<우리는 읍으로 간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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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평화의종...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백담사 만해마을



백두대간의 허리쯤인 미시령과 진부령을 분수령으로 서쪽으로 흘러내리는 물과

내설악 백담계곡에서 달려 나온 물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에서 만난다.

그들이 부둥켜안고 북한강으로 떠나는 북면 소나무숲속에 만해마을이 있다.


만해마을이 있는 곳은 백담사로 가는 길목이다.

백담사는 만해가 출가해서 님의 침묵을 집필한 곳이다.


아르코 예술정보관 「문학, 작가의 목소리로 남다」의 프로그램은 지난 10월19일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이상국시인과 홍용희 문학평론가의 대담으로 진행됐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 일찍 서초동 예술의전당 앞에서 인제군 백담사

만해마을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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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있는 백담사 만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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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마을에 들어서면 먼저 310편의 시를 동판에 담은                                       평화의 시벽이 눈에 들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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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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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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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용희 문학평론가(왼쪽)와 이상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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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담사 만해마을을 운영하고 있는 이상국 시인의 자작시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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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러기 가족 / 이상국

 

 


이상국시인은 ″농촌에서 쓰는 농촌의 시는 시속에 인간의 구체적인 삶과 일상이

녹아있으며 토속적이고 보다 절제된 것이 도시에서 쓰는 농촌의 시와 다른 점

이다″라고 한다.

″이상국시인의 <기러기 가족>은 동화책을 읽는 느낌이며, 목가적인 동심의

세계가 느껴진다″는 홍용희 문학평론가의 설명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만해 평화의종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만해 문학박물관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만해 문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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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문학박물관... 심우장  


 

 


아버지의 집으로 가고 싶다 / 이상국

 

 

 

벌써 오래 되었다

부엌 옆에 마구간 달린 아버지의 집을 떠나

마당도 굴뚝도 없는 아파트에 와 살며

나는 그게 자랑인줄 알았다


이제는 그 부드러운 풀이름도 거반 잊었지만

봄 둑길에 새 풀이 무성할 때면

우리 소 생각난다


어떤 날 저녁에는

꼴짐 지고 돌아오는 아버지 늦는다고

동네가 떠나갈듯 우는 울음소리도 들었다


이제는 그 소도 아버지도 다 졸업했다고

이 도시의 시민이 되어 산지 오래인데도

우리 소 잘 먹던 풀밭 만나면

한 짐 베어지고

그만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상국의 시에는 어머니 보다 아버지가 많이 등장한다.

<기러기 가족>, <달이 자꾸 따라와요>,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등 에서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 이유를 시인은 ″어머니는 다른 분들의 시에

많이 나오잖아요... 어릴 때 많이 고단했던 어머니가 도망갈까 봐 치마끈

을 손에 감고 잠이 들곤 했는데... 이 때의 아버지에 대한 이해부족이

철이든 후 그리움과 연민으로 다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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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문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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