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스님 - 망상을 항복받는 공부]
발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하라는 말을 줄이면
발보리심하라는 넉 자로 되고
이것을 더 줄이면 발심하라는 두 자로 됩니다.
아뇩다라삼막삼보리도
다 깨달은 마음자리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범부중생이라도 이런 법문을 듣고
"내 마음자리가
본래 생사가 없는 이렇게 위대한 존재였구나,
나도 마음을 어서 깨쳐서 생사를 해탈해야겠고
본래 내가 부처인 자리를 찾아야겠구나"
하고 결심을 했다면 이것도 중생으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것입니다.
또 수행을 해서 마음이 밝아지므로
육체가 내가 아니라는 원리를 깨닫고
주관 객관이 떨어져서 실상반야가 오롯이 드러나면
이것이 아무 생각 없는
적멸의 본심 자리를 깨달은 것이니
역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것이며
중간 발심인데 이것이 곧 견성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사람은
첫째 마음을 어떻게 가지고
마음을 어디다 두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아무리 견성을 해서
마음을 가지고 두는 법을 알았다 하더라도
다생겁, 무량겁으로 남을 못살게 하고
나만 잘 살겠다고 욕심으로 살던 버릇 때문에
8만 4천 번뇌가 죽 끓듯이 하므로
이것을 완전히 항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체득합니다.
그러니 처음에는 중생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한 발심을 했고
그 다음에는 아공. 법공. 구공의 3공을 체득해서
공리를 증득하게 되면 이것도 역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체득한 것이고
참으로 발심을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무량겁래로 오던 여습(남아 있는 습기)이
제팔장식으로 남아 있어서 그 뿌리까지
다 녹아 없어져서 정
말 자기 정신이 완전하게 드러나게 되는데
차차차차 공부가 될수록 아는 것도 많아지고
신통도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허공도 녹고
진공까지도 녹아서 근본무명이 다 녹아 없어지면
완전한 부처님의 불과를 성취하게 되는데
그러면 열반이 생사고, 생사가 곧 열반이고
만법하고 나하고 둘이 아닌 그때는
정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완전히 체득한 때입니다.
이 망상을 항복받는 게 불교공부인데
산중의 절에 있으면
요 근래까지도 그런 실례를 많이 들었습니다.
공부하다가 흔히 노루나 토끼가 와서
도망가지 않고 옆에 와 있습니다.
나중에는 정이 들어 안가려고 하는 정도입니다.
얼마 있다 다른 절로 가려고 하면 자꾸 따라옵니다.
그러면 사람들한테 붙들릴거고
그래 돌맹이질을 하고 막 야단을 치고 이러며는
또 눈을 꿈벅꿈벅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올라갑니다.
올라갔다가 자꾸 내려다 보다가
그만 또 뛰어 내려옵니다.
그래 그놈 잡아가지고 온갖 설교를 해서 타이르고
"네가 여기 내려가면 잡혀서 죽으니까
너희 동무하고 가서 놀아라"
그래도 잘 가지를 않습니다.
나중에는 할 수 없이 몽둥이로 때려 주고
돌맹이로 엉덩이를 한번
되게 때려 주면 그때는 안옵니다.
옛말에 "불탐이면 야식 금은기"라고 하여
탐심이 없으면
그믐밤에 금과 은의 서기가 보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원해면 조간 미록유"하고 하여
아무 해물지심이 없으면 아침에 일어나
뜰에 나가도 사슴과 노루가 뜰 앞에서 자고
사람이 나와도 안 달아납니다.
이런 마음 공부하는 것이 보살장엄입니다.
국토를 이렇게 장엄하여
악한 집승도 악한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집니다.
내 마음이 완전히 그렇게 청정해지면
다른것은 다 모두 내 마음의 그림자니까
따라서 다 청정해집니다
이렇게 공부를 자꾸 해서
응무소주하는 주하지 않는 보리의 마음을 깨쳐 가지고
견성해 가지고 항복기심을 해서 해물지심이 없어지고
춘삼월에 눈 녹아 가듯이
온갖 욕심이 사라지고
이 세상이 참말로 있는 것인 줄 알고
허덕대는 마음, 이런 마음이 자꾸 눈 녹듯
얼음 녹듯이 녹아 내려갑니다.
그래서 불성자리만 드러나서
서로 해롭게 할 그런 일이 없으니까
이 세계가 차차 극락세계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극락세계에도 새가 있고 나무가 있지만
모두가 불보살의 화현이어서
축생 그대로가 아미타불이며
관세음보살. 보현보살이고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나 보살님들이
불토를 장엄한다 하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것이니
그 마음에 한 점의 티도 없이청정하므로
그 거룩한 마음의 광명이 장엄으로 나타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