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이 아름다운 계절 오월이네요.
원풍동지들 가슴에도 푸르른 오월처럼 맑은 날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래에 적은 투쟁가는 1982년 9.27 사건 때
영등포산선에서 합숙하면서 지었던 노래가사입니다.
그 당시 <잊지는 말아야지>, <잊지 못할 그날> 등
투쟁가 몇 곡을 노래가사를 바뀌어서 불렀었지요.
아주 어언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우리들이 남긴 역사입니다.
방지부장님께서 이 노래가사를 지은 동지를 찾으십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들여다보아도 가사 한마디 한마디가 참 훌륭하다면서요.
새삼, 지부장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그 시절 그 상황을 적절하게 함축적으로 가사를 잘 지었지요.
가슴 절절했던 심정들이 그대로 담겨진 투쟁가들이었습니다.
이 노래가사를 지은 사람들 '손' 들어보세요.
제 기억으로는 몇몇이 그룹을 지어서 투쟁가 작사를 했던 것 같습니다.
오월의 빛깔처럼 곱던 아주 머언 우리들의 옛날이야기들 더듬어보시고
‘손’ 번쩍 들어주세요..^^
어두운 밤 지나면(늙은군인의 노래)
1절
나 태어나 원풍모방 노동자되어
민주노조 세운지 어언 십여년
내 젊음 다 바쳐서 땀 흘려 일했것만
9월에 마지막 밤에 매 맞고 끌려났네
아~ 억울하다 짓밟힌 생존권
민주노조 어디 갔나
감옷속에 갇혀있나
2절
나 끌러나 거리에서 방황했지만
한 맺힌 이 울분 참고는 살 수 없다
무엇을 배웠는가 무엇을 느꼈는가
어둠이 깊어지면 새벽이 밝아온다
아~노동자여 잠 깨어 일어나서
단결과 투쟁으로 민주사회 이룩하자
첫댓글 '부서지지 않으리"는 구속자들 사진 동그랗게 넣은 그림판을 만들어 배포했는데 그것땜에 피해있는게 좋겠다해서 당시에 전주에서 요가원하던 영등포산선 실무자였던 박상희선생님 요가원에 한동안 숨어 있었습니다.
간부들은 구속되어 있고 뭐라도 하려고 잘 다니던 풀무원 사표까지 내고 동동거리던 옛생각 많이 나네요.
우리가지은같은데.몇명이모여서.기억은가물거리는데분명히지은거같에요.
그자리에분명히있었느데.
오타 수정 했어요..
'부서지지 않으리' 유인물제작은 남수동지 기억이 맞아요.
그 당시 조지송목사님의 조언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어두운 밤 지나면' 개사는 직포과와 탈춤반이 한모둠이었다면 두 동지 기억이 맞을 거예요.
내 기억으로는 4개의 모둠에서 투쟁가를 한곡씩 창작을 했고 그 결과물중에 하나였다고 생각이 됩니다.
참여했던 동지들 있으면 기억을 더듬어보세요..^^
참고로 제가 참여해서 창작한 투쟁가는 송대관의 '쨍하고 해뜰날'이었는데, 가사를 기억못하고 있네요..
ㅎ~
특히 "민주노조 어디갔나, 감옥속에 갇혀있나" 라는 비유로 가사를 떠올렸던 기억이 선명하긴
하지만 기억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첫번째 댓글은 삭제합니다.
이거말고 '사의찬미'에 붙인 가사
"내손거쳐 만든 물건 백화점엔 가득해도
셋방살이 내방에는 재고품도 하나없네....."
요거는 제가 확실히 가사 쓴게 기억나는데 곡이 너무 처져서...
ㅎㅎ그리고 기억도 가공한다니까 누가 지은들 어떠리요.
저작권 다툼할것도 아닌데...
행복전령사님과 함께 지었나 봅니다 ...
우리후속모임할때ᆞ이옥순언니랑지은것같은데ᆢ여러개있는데잘생각은안나네요
하도 많이부르고 내마음속에 절절히 맞는곡이기에
. 그런데옥순이는 이노래는 될수가없지 감옥에갇혀있었기때문에
제 기억에 영등포산선에서 단체합숙하고 있을때 이런저런 프로그램 으로 활동했구요. 활동비 만든다고 연하장 만들어 단체나 성직자들 찾아 다녔던 기억도 나네요. 위 노래는 조별로 만들었던 노래로 알고 있는데 언년이가 기억나는것 보면 탈춤반에서 한것 같기도 하고 ~ 정사과에서 한것 같기도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