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요즘 유행하는 축구증후군에 걸린것 같습니다. 너무 창피해서 병원에도 못가보고 결혼 계획을 포기해야 할지 고통 속에서 고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죽고만 싶습니다.
차 박사님께서 도와주세요.
월드컵 한국팀 경기 다음날은 목이 쉬어서 전화도 못받을 지경이고, 경기 중에 골이 나오면 순간 심장이 멎는 것이 아닌가 할 만큼 정신을 잃다시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화장 하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볼에 매니큐어와 립스틱으로 태극기를 그려서 지각한 적이 몇 번이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한달 가까이 상의는 빨간색만 입고 다녀서 주변사람들이 지겹다고 몸서리를 치지만 바꾸지를 못합니다.
회사 근무 중에도 축구 관련 사이트 검색하느라고 하루종일 일을 못하기 일쑤고, 얼마전까지 회사 빌딩 16층을 괜히 하루에도 몇 번씩 서성이게 되더니... 며칠전까지는 8층, 요즘은 엘리베이터타고 올라가다가 4층에 불만 들어와도 저도 모르게 '우와' 하고 탄성을 내지르게 되어서 창피해서 회사 사람들 얼굴을 못보겠어요.
밤마다 월드컵 끝나고 히딩크를 한국에 잡을 300가지 계책을 마련하느라고 잠을 잘수가 없습니다.
얼마전에는 그이가 공원에서 청혼을 하며 반지를 내밀었는데, 저는 너무 기쁜 나머지 그 반지를 끼자마자 반지에 입맞춤하고 환호하며 20여 미터를 뛰어가서 쇼트트랙 타는 모습을 흉내내고 있는 저를 발견하곤 정말 죽고만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 뒤에 어느샌가 다가와서 제 팔꿈치에 밀리는 동작을 취하는 미친놈도 있더군요. 머리는 축구공 무늬로 깎고 얼굴에는 'Go Duri'라고 써있는 모습이 얼마나 웃기든지...)
선생님 저는 지금 죽고만 싶습니다.
창피해서 병원도 못가보고 주변에 의논도 할수가 없습니다.
또 축구증후군이라는 병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제발 도와 주세요.
--- 가리봉동에서 고민녀 숙
A : 직접 검진해보지 않고는 쉽게 단언할수가 없지만 일단 증세로 보아서 일종의 축구증후군에 걸리신 것이 확실한듯 합니다.
앞날이 구만리 같은 여자분이 어려운 병에 걸리셔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군요.
축구 증후군은 20세기의 흑사병이라 불리며 남미와 유럽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무서운 전염병입니다. 4년 마다 늦봄과 초여름 사이에 급속히 확산되어 수많은 희생자를 낸 다음 다시 잠복기에 들어가는 특징을 보이고, 치사율은 무려 0.0000001%에 달해서 세계 보건기구와 대부분 국가에서 1종 전염병으로 분류하고 있죠.
전염성은 무서울 정도로 강하고 확산 경로도 다양해서, 대인접촉은 물론 TV나 라디오, 신문, 특히 최근에는 인터넷으로도 전염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특히 4년마다 찾아오는 활동기에는 모든 대인접촉을 끊고 언론매체와도 완전히 차단되는 안전장소로 대피하지 않는한 감염확률이 90% 가까이 된다는 것이 그동안의 임상연구 결과 입니다.
한국은, 지난 세기에는 비교적 축구 증후군의 확산 위험도가 낮은 3급 위험 국가로 분류되었으나 1990년대 중반 레드데블스라는 변종 바이러스가 발견되면서 급속히 감염자가 확산되기 시작했고, 지난해 초 한 네덜란드인 보균자가 검역을 거치지 않고 입국한 뒤로는 축구 증후군과 변종인 코리아팀 파이팅 증후군이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식품의약품 안전청에서는 현재 국내 감염자를 4,000만명으로 잡고, 긴급 방역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세계 보건 기구에서는 한국을 축구증후군 1급 위험지역으로 규정하고 해외 여행객들의 주의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일부 외신에 의하면 축구 증후군에 특히 취약한 프랑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는 월드컵 우승조차 포기하고 자국 선수들을 조기에 철수시켰고, 스페인 정부도 대표팀 조기 철수를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축구 증후군에 대해 현재 특별한 치료법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고, 다만 세계적인 제약회사 아디독스에서 연고를 개발중인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임상실험과 보건당국의 승인 등을 과정을 거치면 4년 뒤에나 시판 가능할것 같습니다.
숙이님의 증세로 보아서 축구증후군의 변종인 코리아팀 파이팅 증후군이 확실한 것으로 판단되며,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특별한 치료법이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증세에 따라 잘 대처하여 병이 잠복기에 들어갈때를 기다리셔야 하겠습니다.
경기후 목이 쉬는 증세는 시합전 입에 재갈을 물고 경기를 관람하도록 전문의들은 권하고 있고, 양말을 구겨서 입안에 넣고 경기를 관람하는 민간요법도 널리 이용되고 있습니다만 의사들은 이것만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얼굴에 화장대신 태극기 그리는 증세는 요즘 그러는 분들이 많으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 그냥 그대로 출근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경기중 심장이 멎을 듯한 증세는 정말로 심각하게 위험한 부분인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경기 중 밖에 나가 잠시 바람을 쐬는 등의 방법으로 냉정을 유지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민간요법으로, 한국팀 대신 상대팀을 응원하는 치료법이 일부 무면허 의료인들에 의해 시술되고 있는데, 이는 주변 관중으로부터의 집단구타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수 있으므로 절대 삼가야 합니다.
빨간 상의만 입는 증세는 주변 사람들의 불편을 고려해서 가급적 속옷을 빨간색으로 입는 선에서 참는 인내력을 발휘하셔야 할것 같습니다.
속에 입는 것만으로 도저히 참으실수가 없으시면 저희 병원을 방문하셔서 빨간 속옷 입은 모습을 보여주시면 진료 차원에서 제가 봐드리겠습니다.
저희 병원 주소는 xxx xxxx xxxx xx-x 입니다.
그리고,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만 히딩크 한국에 잡을 계책 생각하시느라고 잠을 못자시는건, 계속 잠 자지 마시고 좋은 방법 생각나시면 바로 전화주십시오.
축구 협회에 건의 하게요.
끝으로 공원에서 쇼트트랙 세레모니 하실때 숙이님 팔꿈치에 밀리던 미친놈... 다시 보면 꼭 좀 바로 전화 주십시오.
우리 둘쨉니다.
--- Dr. 차
Q : 도와주세요 Dr. 차.
월드컵 16강전 이후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승리를 강도 당해서 너무 억울한 마음에 잠도 오지 않고, 겨우 잠을 이뤄도 주심이 우리 이탈리아팀에게만 편파판정을 하는 악몽에 시달려서 금새 다시 깨게 됩니다.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 나폴리에서 토토
A : 반갑습니다, 토토.
우리집 개새끼 이름도 토토 입니다.
제가 보기엔 그 증상에 특별한 대책은 없고 그냥 니가 맘을 고쳐먹는게 젤 낫다고 사료됩니다.
강도를 당했다느니 그런 되먹지 않은 생각을 계속 하시면 4년 후에도 똑같은 증세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 제 소견입니다.
아! 그리고 그 꿈... 그거 개꿈입니다.
--- 우리집에서 Dr. 차
Q : 범근이형 저 다녀갑니다.
--- 정무
A : 너 한번만 더 여기다 낙서하면 죽는다.
--- Dr. 차
Q : 차박사님 명성은 이곳에서도 혼또니... 정말로 대단합니다.
저도 차박사님의 상담을 받고 싶습니다.
저도 축구 증후군 때문에 한동안 이빠이... 대단히 고생했습니다만, 며칠전부터 다른 증세는 싹 사라지고 하루종일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나면서 배가 살살 아픈 것이 병원 진료를 받고 약을 먹어도 도저히 나아지지가 않습니다.
저희 동네 병원 의사 선생님은 오는 22일 저녁 쯤 되면 배아픈 것은 씻은듯이 나을 거라고 진단했는데 정말 나을까요?
그리고 앞으로 축구 증후군의 재발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 차박사님께 정기 검진을 받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되지요?
--- 오사까에서 나까무라 드림
A : 나까무라님 고생이 많으시겠군요.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나는 증세는 홧병으로 생각됩니다마는 특효약은 없고 그저 16강 올라간것도 재수였다고 생각하시면 증세가 나아질 것입니다.
배아픈 증세는 원인은 짐작이 가는데 공동 개최국이라 차마 말은 못하겠고, 단 22일 지나도 복통은 호전되지 않고 배가 4배로 아플 것이 확실합니다.
원인은 묻지 마시고 그냥 그렇게만 아시면 됩니다.
정기 검진 건에 대해서는 일본이 4년 뒤에도 월드컵을 개최하지 않는 이상은 지역예선에서 떨어질 확률이 농후하므로 축구증후군 전혀 걱정 안하셔도 되니까 정기 검진 같은건 생각지도 마시고 안심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Dr. 차
Q : 지난번에 한번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탈리아의 토토라는 환자입니다.
Dr. 차의 처방대로 해보려했지만, 도저히 증세가 나아지지 않고 한국인들만 봐도 분노가 치솟고 혈압이 올라갑니다. 그래서 어제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지나가는 한국인 유학생에게 '이 도둑놈들아!'하고 욕을 해줬더니 조금 낫더군요.
하지만 Dr.차! 매일 한국인들만 쫒아 다닐수도 없고 이대로는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제발 처방을 내려주세요.
--- 나폴리에서 다시 토토
A : 할수 없군요.
일반적인 처방으로 도저히 상태가 호전될 기미가 없다면 단방 처방을 해드려야겠군요.
한국의 신토불이라는 옛 이야기대로 이탈리아분이니까 이탈리아산 처방을 해드리겠습니다.
이탈리아의 피에트로 베레타사라고 총 만드는 회사가 있습니다만, 거기서 M92SF 모델을 구입한 다음 9mm 패러배럼탄 1발을 장전하여 관자노리에 대고 조용히 방아쇠를 당겨주면 모든 고통에서 해방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