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수필>
독감 피접
권다품(영철)
초겨울에 독감 예방 접종도 하고 코로나 예방접종을 했는데도 감기 기운이 살짝 있길래 혼자 시골로 피신을 왔다.
다른 가족들에게 옮기면 안 될 것 같아서다.
무엇보다 올해 100세 되시는 장인어른 때문에라도 더 그렇다.
기침과 콧물도 가끔 나오고 가래도 끓는 게 이번 감기는 좀 독한가 보다.
가끔 올라왔다가 잠도 안 자고 제날 내려가고, 잠을 자는 건 늦가을부터는 처음이다 보니 겨울 시골집이라 뭔가 선득하긴 했다.
그래도 시골 흙집은 보일러와 온열침대만 올리면 생각보다 금방 온기가 돈다.
아내가 혼자 먹을 반찬들을 냉장고에 정리하면서, 이것 저것 당부를 한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불안한지, 아내도 이거는 어떻게 해야 된다, 또 저거는 어떻게 하면 안 된다는 둥 부지런히 말하는데도 알았다고는 하면서도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모르면 나중에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지 뭐 하며 귓등으로 듣는다.
혹시 김장꺼리가 될까 하고 배추를 좀 늦게 심었다.
역시나 김장할 때까지는 크지도 않았다.
마 겨울용 쌈배추로 먹어야 겠다.
"배추 몇 포기 뽑아줄래요? 쌈 사 먹게. 냉장고에 쌈장하고 젓갈도 있으이끼네 자기도 쌈 쫌 사먹고. 청방배추라 쌈사먹으마 꼬시고 맛있다 아이가."길래 예닐곱 포기를 뽑아 줬다.
"뭐할라꼬 그래 많이 뽑노?"
"가져가서 한솔이 사무실에도 가져가라 카고, 해숙이나 새댁이나 할매한테도 한 포기씩 주라뭐."
"그라까?"
우리 시골 마을은 산밑이라 어둠이 빨리 내린다.
흙집이라 그런지 방도 그새 제법 따뜻해졌다.
오랜만에 사람사는 집처럼 마당에다가 불도 환하게 켰다.
저녁을 빨리 먹고 커피를 타서 마루에 앉아서 밖을 내다 보며 마신다.
올 때마다 보던 것들이고, 특히 겨울에는 마당에는 앙상한 나무들뿐 특별히 볼 것도 없고, 꼭 해야 하는 일도 없다.
책을 읽거나 아니면 늘 쓰는 낙서처럼 글쓰는 것뿐이다.
그래도 나는 올 때마다 요렇게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 혼잔데도 참 편안하고 좋다.
이튿날, 아내가 전화가 와서 "감기 좀 낫나?"하고 묻더니 " 참, 냉이 나왔는강 밭에 한 번 나가보지?" 한다.
"봄도 아이고 아직 날씨가 이래 추분데 냉이가 나오나?"
"그래도 바람 쉴 겸 호매이 들고 살살 나가 봐라. 봄에 나오는 것보다 요새 캐야 약도 되고 더 맛있다."
"춥다. 마 안 갈란다. ㅎ" 해 놓고도 또 따뜻한 방에 누워버렸다.
그래도, 혹시 양지쪽에는 나왔을라나 싶어서 주머니에다 비닐 봉지 하나를 넣고 호미를 들고 나가 봤다.
아내 말대로 없으면 그냥 오면 되니까 운동삼아다.
눈에 한두 포기가 뜨이길래, 혹시 하면서 캐 봤더니 아, 그래도 땅속에 뿌리는 좀 들었다.
그렇게 사부작 사부작 캤더니 어느듯 작은 비닐봉지에 꼭꼭 눌러서 한 봉지다.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냉이 캐기는 캤는데, 이파리는 아직 얼어서 못 먹겠고, 그래도 뿌리는 쪼매이 들기는 들었네!" 했더니, "뿌리가 약된다. 밖에 놔뚜마 얼어뿔라 씻지말고 밖에 마루 차가운데 놔뚜라." 하길래, 시키는 대로 봉지째 마루에 갔다 놨다.
아직 어둡살이가 안 지길래, 나선 김에 뒤안에 심어둔 황칠나뭇가지도 좀 솎아줘야 겠다 싶어서 전지 가위로 잘랐다.
횡칠나무는 약효가 좋아서 한방에서는 약재로 쓰인다니 저대로 방치해두기는 아까운 나무다.
밖이 추워서 방에다 비닐을 깔고, 자른 약나뭇가지들을 안고 방으로 와서 잘랐다.
자식들 건강에 좋으려나 싶어서, 닭백숙 오리백숙도 해먹고, 차로도 끓여먹으라고 2~3센티로 자잘하게 잘랐다.
저녁 때가 됐길래 저녁을 먹고 마무리를 해서 작은방에다 비닐을 깔고 펴 널어놨다.
작업 끄~~ㅌ!
아, 그라고 보이 끝이 아이네!
오가피나무도 쫌 잘라야 되고, 텃밭 엄나무도 쫌 잘라야 되고, 꾸지뽕나무 가지, 뽕나무 가지들도 쫌 잘라야 닭백숙 오리백숙 해 물 낀데....
에이, 모르겠다.
날씨가 추워서 하기가 싫다.
날씨 풀려서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으마 안 할 끼고...
나는 마 커피 한 잔 타 물란다.
2025년 1월 10일 오전 11시 50분 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