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현존연습]
니콜라 에르망(부활의 로랑 형제) 맨발의 가르멜 수사
<편지>
하느님을 누리는 영혼은 오로지 하느님밖에 원치 않습니다.
존경하는 신부님,
저와 같은 삶의 방식을 책에서는 찾지 못했으므로, 비록 크게 염려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더 확신을 갖고자 하여, 신부님께서는 제가 처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쭙고자 합니다. 며칠 전, 한 신앙심 깊은 분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분은 제게 영적인 삶이란 은총의 삶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즉, 그런 삶은 종이 갖는 것과도 같은 두려움에서 시작하여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으로 자라서 순수한 사랑으로 완성되는데, 그 각각의 상태 안에서도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마침내 행복한 완성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저는 이제껏 이 모든 방법을 따라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방법들은 왠지 모르지만 처음부터 두려움을 주었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저는 수도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저의 죄에 대한 보상으로 저라는 사람 전부를 모두 하느님께 바치고, 그분에 대한 사랑을 위해 그분께 속하지 않은 일체의 것은 버리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리 처음에는 기도할 때 대개 죽음, 심판, 지옥, 천국, 저 자신의 죄와 같은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몇 년 동안 그렇게 계속하면서, 나머지 시간에는, 심지어 일을 할 때도, 하느님의 현존에만 몰두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제 가까이에 계시다고 느껴졌고, 때로는 바로 제 마음속에 계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이 너무나 커졌으므로, 그 점에 있어서는 믿음만이 저를 만족시켜 줄 수 있었습니다.
어느새 기도 시간에도 하느님의 현존에만 몰두하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크나큰 기쁨과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의 방식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10년 동안은 무척 괴로웠다는 점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제가 원하는 만큼 하느님께 온전히 속해 있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 항상 제 눈앞에 있는 과거의 죄, 그럼에도 하느님께서 제게 베푸신 크나큰 은혜, 그런 것들이 제 불행의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내내 저는 넘어지고 또다시 일어나고 했습니다. 제게는 모든 피조물과 이성과 하느님조차도 저를 대적하고 오로지 믿음만이 제 편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은 오랜 노력 끝에 도달하는 지점에 단번에 이르렀다는 것이 제 스스로 생각해도 주제넘은 것 같기도 하고, 또 때로는 그 모든 것이 제멋대로 저주를 자초하는 일 같고 저를 위한 구원은 없는 것 같아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민과 불안 가운데서 하루빨리 생애를 마감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그렇다고 해서 하느님께 대한 신뢰가 덜해지기는커녕 제 믿음이 더해질 뿐이었지만), 갑자기 제 자신이 변한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줄곧 번민에 싸여 있던 제 영혼은 깊은 내적 평화 가운데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치 그 중심이자 안식의 장소에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하느님 앞에서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겸손과 사랑으로 일하며, 하느님께서 싫어하실 만한 것은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않으려고 애쓸 따름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하게 되면 하느님께서 저를 뜻대로 하시리라고 바라고 있습니다.
이즈음 제 마음속에 일어나는 일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제가 처한 상태에 대해 아무런 괴로움도 의심도 없는 것은, 하느님의 뜻 외에 제게 다른 아무 뜻도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모든 일에서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고자 힘쓰며 온전히 하느님의 뜻만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여 그분의 명령을 거스르거나 혹은 그분에 대한 순수한 사랑 이외의 다른 동기에서라면 지푸라기 하나 들어 올리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의무가 아닌 예배와 기도는 다 그만두고 오로지 하느님의 거룩하신 현존 안에 머무르는 데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저는 단순한 주의와 전반적이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하느님을 우러러볼 뿐입니다. 이를 하느님의 현재적 현존 혹은 영혼이 하느님과 나누는 은밀하고 말없는 대화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그런 친교는 때때로 저를 만족과 내적인 기쁨으로 충만케 하며 때로는 그 기쁨은 너무나 커서, 그것을 억제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외견상으로는 신앙적 행위라기보다 어리석음으로 보이는 유치한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컨대, 존경하는 신부님, 저는 제 영혼이 30년 전부터 하느님과 동행해 왔음을 결코 의심할 수 없습니다. 신부님을 번거롭게 해 드리지 않으려고 다 말씀드리지 않은 일도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저의 임금이신 하느님 앞에서 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서는 말씀드리는 것이 옳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인간 가운데서도 가장 비참한 자입니다. 숱한 상처로 찢어지고, 악취를 풍겨대며, 임금이신 하느님 앞에서 온갖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고통스러운 후회를 느끼며 하느님 앞에 제 모든 악행을 고하고 용서를 청하며 저를 당신 뜻대로 해 달라고 그분의 손에 저를 내맡깁니다. 그런데 선함과 자비가 무한하신 이 임금께서는 저를 벌하시기는커녕 다정히 안아 주시며 그분의 식탁에서 먹게 하시고 친히 제게 먹을 것을 주십니다. 제게 보물 창고의 열쇠를 주시고, 저를 마치 가장 사랑하시는 자식을 대하듯 대해 주십니다. 그분께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다정하게 저와 대화하시고 저와 함께 있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제 죄의 용서에 대해 말씀하시거나 저의 오래된 습관을 없애려 하지 않으십니다. 저를 당신 뜻대로 해 달라고 기도드리지만,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연약하고 비참한 저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어 주십니다. 이상과 같은 것이 하느님의 거룩하신 현존 가운데서 제가 종종 돌아보게 되는 저의 모습입니다.
제 가장 일상적인 삶은 그처럼 단순한 주의와 사랑에 찬 시선으로 하느님을 우러러보는 것이며, 저는 그런 삶에 대해 어린아이가 유모의 젖에 매달려 느끼는 만족과 기쁨보다 더한 애착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만일 이런 말을 써도 된다면, 저는 그 상태를 기꺼이 “하느님의 젖”이라 부르겠습니다. 제가 거기에서 맛보고 체험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미로움은 그렇게나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혹은 나약함 때문에 그런 상태에서 벗어날 때면, 하느님께서는 어찌나 다정하고 부드러운 내심의 동요로 저를 일깨워 주시는지, 다 말씀드리기가 쑥스러울 정도입니다. 저 같은 배은망덕하고 무자격한 자에게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이런 크나큰 은혜보다는, 존경하는 신부님, 이미 잘 알고 계시는 바 제 비참함을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기도 시간도 이와 같은 수련의 연장일 뿐입니다. 때로 저는 제 자신이 상을 만들고자 하는 조각가 앞에 놓인 돌과도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 자신을 그렇게 하느님 앞에 내어놓으며, 아무쪼록 하느님께서 제 영혼 가운데 그분의 완전한 형상을 이루셔서 저를 그분과 전적으로 닮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때로는,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제 모든 영혼이 아무런 노력 없이도 들어올려져 마치 하느님 가운데에 머무는 것만 같은, 그분의 중심이자 안식의 장소에 떠 있는 것만 같은 때도 있습니다.
이런 상태를 나태와 기만과 자만으로 여길 사람들도 있을 것임을 저도 압니다. 만일 그런 상태에 있는 영혼이 나태와 자만에 빠질 수 있다면, 그것은 거룩한 게으름이자 행복한 자만일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그런 안식 가운데 있을 때는 전에 하던 행동에서 아무런 영향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영혼의 의지가 되던 행동이 이제는 그를 돕기보다는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기만이라 부르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상태에서 하느님을 누리는 영혼은 오로지 하느님밖에는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것이 자기기만에 빠진 것이라면, 하느님께서 고쳐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뜻대로 하실 것이며, 저는 그분만을 원하고 온전히 그분께 속하기만을 원합니다. 하지만 제게 이 모든 일에 대한 신부님의 생각을 말씀해 주신다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저는 항상 신부님을 존경해 왔으며, 신부님의 고견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현존 연습/ 콩라 드 메스테르 엮음/ 가톨릭 출판사
(레오 14세 교황님 추천 도서 <하느님의 현존연습>. 첫번째 사목 방문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언급)
첫댓글 아멘 🙏
하느님의 자비와 무한한 사랑을 느낍니다.!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