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년도가 광복 63주년 광복절이다. 그래서 광복 63주년기념 부부동반 산행을 실시하였다.
2008년 8월 15일과 16일 1박 2일 일정으로 부부동반 광복 63주년 기념 부부동반 산행을 실시하였는데,
# 용인에서 1번 국도로 계속 내려가다 천안을 지나 충남 계룡산 갑사에 들어가 갑사을 지나 계속 계곡을 오르다가 비가 올려고 하여 하산하였다.
충남 계룡산 산속(?)에 신도시 계룡시에 들어가 호텔리어에서 휴식을 취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대둔산 산행을 실시하려고 논산시 별곡을 지나 대둔산에 들어가게 되었다.----ㅋ ~ ㅋ ~ ㅋ ~
충남 계룡시에 대전시, 그리고 공주시에 접하여 있는 계룡산 갑사 방문---출입문 단청이 아름다워서 한장

# 갑사에 들어가 대웅전 앞에서 한장

# 충남 공주시 계룡면에 있는 갑사
계룡사·계룡갑사·갑사(岬寺)·갑사사(甲士寺)라고도 한다. 420년(백제 구이신왕 1) 고구려에서 온 승려 아도(阿道)가 창건하였다.
505년(무령왕 5) 천불전(千佛般)을 중창하고 556년(위덕왕 3) 혜명(惠明)이 천불전·보광명전·대광명전을 중건하였다. 679년(문무왕 19) 의상(義湘)이 당우(堂宇) 1,000여 칸을 더 지어, 화엄도량(華嚴道場)으로 삼아 신라 화엄십찰(十刹)의 하나가 되었고, 옛 이름인 계룡갑사를 갑사로 개칭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모두 소실되어 1654년(효종 5) 사정(思淨)·신휘(愼徽) 등이 크게 중창하였고, 1875년(고종 12) 다시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강당·대적전(大寂殿)·천불전·응향각·진해당(振海堂)·적묵당(寂默堂)·팔상전·표충원·삼성각·종각 등이 있다. 또, 보물 제256호인 철당간 및 지주와 제257호인 부도(浮屠)가 있으며, 《석보상절(釋譜詳節)》의 목각판이 있고, 1584년(선조 17)에 만든 범종, 경종이 하사한 보련(寶輦), 10폭의 병풍, 1650년(효종 1)에 만든 16괘불이 있다
# 갑사를 지나 계곡을 오르니 비가 많이 온 관계로 계곡의 물이 많아 폭포를 이루고 공기 좋고 - 계곡의 물소리 좋고---- 맑은 물 속에 열목어가 몇 마리 보였다.

# 열목어가 보이고 숲이 우거져 공기도 더욱 맑고------ 계곡의 물소리가 너무 맑고 꺠끗하게 들리고-----

# 갑사가 있는 계곡을 계속 오르니 폭포가 있어서 시원한 폭포 앞에서 한장---주연 배우 옆에 웬 조연 배우(?)
계곡 좋고, 배경 좋고, 공기 좋고,인물 좋고, 물소리 좋고----------좋고, 좋고,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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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보는 사람도 시원하게 느껴집니다.갑사는 아주 오래되고 유서 깊은 사찰 이군요...기억도 희미하게 옛날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사찰 사진을 보다 보니 글쎄,조계사를 나오는 지관스님인가 불교계에선 되게 높은 스님이 탄 차를 경찰관이 검문한데 대하여 불교계가 모욕감을 매우 크게 느꼈다고 하는 데요...하안거 동안거 선을 하고 도를 딱은 평생 일텐데 차 창을 열고 "수고 많습니다.어서 검색 하시지요"할수는 없었을까 생각해 봅니다.법 집행 행동 이니까요..불교의 근본인 자비와 관용 화해 친절등은 그냥 그렇다는 것이고 실천은 안 되는 그런 지향적인 목표에 불과한것인가...일반 스님이 탄 차를 검색 했다면 또 다른 반응이었을까..
친구의 의견에 동감입니다. 왜 자중들을 못하는지 안타갑기만 합니다. 풍산
갑사를 약 40여년 전에 총각시절에 가 보고 두번쨰로 가 보는데 참으로 좋았습니다.
제목을 보고 명우회 행사인 줄 알았더니 개인 행사였나보군요, 계룡산에 가려면 갑사에 들려 계룡산 넘어 동학사로 나오는 게 보통이지요 물론 그 반대의 코스도 있지만, 30여년 전 직장 동료들과 갑사에서 밥을 해 먹다 치마에 가스 버너 불이 붙어 화상을 입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당시 절간엔 돌로 만든 물탱크도 있었는데 이 여직원을 끌어 안고 탱크 속으로 뛰어들지 못했던 걸 후회한 일도 있고....
나도 제목보고 명우회 행산줄 알았어요...정말로 국 쏟고 치마 버리고 뭣 덴다 더구마는...그럴 때가 바로 순간 포착이 필요할 때... 갑사 부근엔 감나무가 많아서 깊은 가을엔 빨간 홍시가 많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목이 좀 아리송하여야 관심을 보일것 같아서-----그렇게 유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