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7.6.(월)
비유를 통한 글감찿기
제목 : 내게 복지관은 ( 대학원)이다
상고졸인 나는 제대후 하이트맥주에서 23년 근무하고
98년12월31일부로 명퇴하였다
당시 52세 였고 아이들은 고3 딸. 고2 아들이 있었다.
아이들 학원도 끊고 허리띠 졸라매고 살아야했다.
IMF 시절이라 재취업은 불가능했다
이력서를 들고 찿아나서긴 했지만 아파트 경비원자리 뿐이었다
그것도 면접을 보고 처음 들어간 자리가 잠원동 한신아파트
경비원이 50명이 넘었다. 24시간 교대 근무 정말 힘들었다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다
봉급은 월 70만원 내가 최종일터에서 받던 평균임금 3백만원에
비하면 형편없었다.
우물안 개구리 같던 내가 세상에 눈을 뜬 시기였다
경비원 자리도 1년 단위로 계약, 퇴직금을 안주려고 했다
집근처 성신여대 경비원으로 들어가 만 60세까지 4년간 근무하고
용역회사라 1년 단위로 재계약하고 - 퇴직금은 물론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떡게 살아왔는지.
두 아이 결혼 시키고 충주시 노은면으로 귀촌하였다
회사 다닐때 고졸이라 차별을 많이 받았다 학력 때문에 진급이 안되었다
입사동기생 대졸5명 고졸 5명 대졸은 4년이면 자동진급이 되어 과장 차장이
되는데 고졸인 나는 1981년 34세에 야간대학을 갔다
주경야독 쉬운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진급도 남보다 무척 늦었다
마흔한살에 과장이 되고 마흔여섯살에 차장이 되었다
딸아이는 교대 졸업후 서울지역 임용고시 합격하고 교사생활을 하고 있다
몇 년전 서울교육대학원 졸업하고 석사가 되었다. 아들은 등록금이 저렴한 서울산업대 다니며 졸업후 ccc간사가 되더니 미국 신학대학원에 가서 3년간 유학하고 목사가 되어 돌아왔다
귀촌한 후 산불감시원 골프장노가다 배움터 지키미하며 근근히 살아왔다
우연히 노인복지관 소개받아서 10년전 문예창작반 정태국선생님 수업을 들었다
약6개월 들었는데 집근처에 장애인 신설학교가 생겨서 배움터 지킴이로 취업 7년간 다니다가 출근길 빙판길에 넘어져 119 실려가 중앙병원에서 수술받고 퇴원, 5개월 정도 통원치료 받고 수술핀 빼러갔다가 당신은 근로자가 아니라고 지금까지 치료비와 휴업수당 다 변상하라는 공문을 받고 공단과 전쟁중이다
총금액 21,500,000원 변상하라는 공문도 몇 번오고 -충주지사에서 대전본사로 이관 처음 5백만원 변상하고 지금은 매월 10만원씩 내고 있다
여기저기 전화하여 억울한 사정을 호소 하던중 노인복지관 고문 변호사이신 함동훈변호사님이 조언을 해주셔서 참고가 되었다
시간이 나는 대로 근로복지공단 찿아가서 항의(이의신청) 할 생각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노인복지관은 저에게 대학원이란 느낌이 든다
비슷한 나이또래 동년배와 좋으신 선생님 덕분에 공부하러 올 때 멀긴 해도 엔돌핀이 생긴다.
지금도 다리가 아퍼서 진통제를 먹고 있습니다 허지만 수업시간에 참석하면 여기가 천국처럼 느껴진다.
선생님의 명품 강의와 귀와 마음이 열리는 동료들의 좋은 글들-
등록금도 없고 버스비 식대만 있으면 내가 선호하는 공부를 할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노인복지관 문예창작과 등굣길이 먼길(노은면) 이지만 참 행복하다 취미가 같은 분들 만나서 좋은 생각과 이상을 주고 받으며 습작을 통해서 발전해간다는 사실이 참 보람차다
노인복지관은 나에게는 대학원이라고 생각된다 수업시간은 천국처럼 느껴진다
2026,7.6.(월)
오늘 수업시간에 맨먼저 선생님이 읽으라고 한다 몇 번 수정한 글이라 애착이 간다
박수를 받았다 내가 쓴글 감명깊다 내가 살아온길 후회는 없다 순리대로 살자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