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표 이야기 ~
이중섭의 "황소" 그림 우표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루스벨트 ~
이중섭(1916-1956)은
서양화가 임용련으로부터
함경북도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진보적인 미술지도를 받았다.
또 1937년에는 일본의
분카학원 미술학부(양화과)에 입학해
진취적인 미술수업을 받기도 했다.
1938년 '자유미술가협회'의
두 번째 공모전에서 협회상을 받아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는,
1941년 문학수, 이쾌대 등과 함께
'조선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하여
민족적 미의식 실현을 도모했다.
또 한국의 서양화 도입기에는
서구 아카데미즘을 탈피하여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어 나갔다.
억제할 수 없는 감정을 분출하듯
고개를 휘저어 올린
소의 움직임을 포착한 이 그림은,
이중섭의 탁월한 표현력을 담아낸 대표작이다.
왼쪽으로 향한 얼굴과 눈빛은
공간을 장악한 느낌을 자아내며,
코와 입가의 선연한 붉은색 및
배경의 붉은 노을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소'는 이중섭이 오산학교 시절부터
열중했던 각별한 소재로서,
그의 자화상인 동시에
한민족의 표상으로까지 인식된다.
이중섭의 작품 전반에
자주 등장하는 소는,
대부분 분노에 차 울부짖거나
저돌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에서, 화가는 강렬한 황색과
붉은색의 뼈대 있는 필선,
필획을 이용해 소에 대한
강한 인상과 감동을 빚어내고 있다.
크기는 세로 32.3㎝, 가로 49.5㎝로,
이중섭이 1953년경에 그린 작품이다.
이중섭은 오산학교 재학중에
"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30대인 1950년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작가는 오산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들에서 묵묵히 일하는 황소를
자세히 관찰하고 열심히 스케치하였는데,
이러한 관찰을 바탕으로 이루어낸
그의 "소" 그림은 굵은 붓을 사용한
거친 붓질에 의해
근육질의 형태로 표현되었다. 이중섭의 다른 "소" 그림들과 달리
이 그림에서는 황소의
머리 부분을 확대하여 그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붉은 바탕의 배경에
작가 특유의 거친 붓질로 표현된
황소는 몸을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향한 채 고개는 왼쪽으로 돌리고
울부짖고 있는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붉은 기운이 도는 배경을 바탕으로
초점을 잃은 채 어딘가를 향하고 있는
눈이 소의 슬픈 내면을
강하게 전달하고 있는
이 작품은 작가의
비극적인 내면을 담고 있는 듯하다.파란의 삶을 살았던 이중섭에게
"소"는 작가 자신의 분신이었다.
화가가 처한 상황이나 감정 등이
상징적으로 그림 속의
"소"에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화가의 개인적 삶을
평생에 걸쳐 상징하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면서
동시에 보편적으로는 우직하고
성실한 "소"의 성질을 통해
우리의 민족성을 상징하고 있기도 하다.
그의 그림에서 "소"는
갈등과 고통·분노·절망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때로는
힘·의지·희망의 상징으로
변화무쌍하게 구현되었다.
이중섭/황소/1953년경
1989 ~ 제1회 '이중섭 미술상'
화가 황용엽씨 선정
이중섭미술상(李仲燮美術賞)은
화가 이중섭을 기리고 능력 있는
작가에게 시상함으로써 미술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조선일보사가 제정한 상(賞).
이중섭미술상설립추진위원회·
이중섭기념사업회가 추진,
이중섭과 친분이 있는
국내 중진화가 24명이 상(賞)의
제정을 위해 작품을 기증하여 기반을 만들었다.
이들이 돕기위해 출품한
작품을 기반으로 조선일보사에
이중섭미술상운영위원회를 설치하고
1989년부터 해마다 솜씨가 뛰어난
회화작가를 심사, 선정하여
이중섭의 기일인 9월 6일 시상한다.
수상작가의 기념개인전도 개최하는데
제1회에는 황용엽(黃用燁),
제2회에는 김상유(金相遊),
제3회에는 최경한(崔景漢).
각각 수상하였다.
2 0 1 5. 8. 1 4. 시 곡(枾 谷).
이중섭/소/1953년경
출처: ♣ 이동활의 음악정원 ♣ 원문보기 글쓴이: 시 곡